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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易說), 서설(書說), 시설(詩說), 춘추설(春秋說), 예기천견록(禮記淺見錄)이라는 명칭으로 주석한 것이다. 예기천견록은 11책 26권의 방대한 규모로서 목판본으로 간행되었고 《주역천견록》은 3책의 필사본으로 보물 제550호로, 《시천견록》은 전부 16쪽밖에 안되고 《서천견록》도 전부30쪽밖에 안 되는 필사본으로 합본되어 보물 제573호로 지정되었다. 춘추천견록은 단지 4쪽인 간략한 분량의 필사본으로 남아있다. 오경천견록은 현존하는 유교 경전 주석서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으로 도학적 경학의 전통을 계승하면서도 기존 업적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와 창의적 해석의 시도를 통해 문제 제기를 함으로써, 매우 독자적인 경전 주석의 입장을 보여 주고 있다. 권근이 오경천견록을 저술했다는 사실은 한국 유학의 경학적 신기원을 열어주는 의미 깊은 업적이라 말할 수 있다. 또한, 한국 유학에서 독자적 경학이 성립함으로써, 한국 유학 자체의 독립된 학통을 형성할 수 있는 기반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3. 정도전의 사상 - 주요 저서를 중심으로
정도전은 이색의 수하에서 성리학을 배웠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부패한 현실사회를 개혁하고 권문세족의 횡포로부터 농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새 국가체제 건설을 위한 역성혁명론에 주목하였다. 또한 그는 불교와 도교, 무속 신앙이 미신을 조장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생각은 이후 불씨잡변이란 책을 통하여 정리한다. 그러므로 정도전의 사상의 핵심은 성리학적 기반을 둔 이상사회 건설하고 불교 등 현실세계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미신타파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두가지를 고려하여 정도전의 사상을 그의 저서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하며 그의 교육사상도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정도전의 사상은 《삼봉집》이라는 문집에 정리되어 있다. 모두 1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삼봉집은 그의 생존당시 출간한 것은 전해지지 않고, 그의 후손이 <경제문감>·<조선경국전>·<불씨잡변>등을 더하여 중간한 것이 전해진다. 권1~4에는 오언 및 칠언고시등의 시와 각종 문장으로 구성된 잡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사상은 권5∼12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삼봉집 권5·6은 경제문감(經濟文鑑)으로 재상 제도의 변천 과정, 득실, 재상의 자세를 서술하고 대간·위병(衛兵)·감사·수령의 직책에 대해 논하고 있다. 《경제문감》은 재상·감사·대간·수령·무관의 직책을 차례로 논하고, 《경제문감별집》에서는 군주의 도리를 밝혔다.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에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교체될 수 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긍정하였으며, 실제로 역성혁명의 방법으로 고려왕조를 조선왕조로, 왕조교체를 수행하였다. 성리학적 왕도 정치와 패도 정치의 사례를 제시한 후, 패도 정치를 하는 군주는 역성혁명이나 기타 수단에 의해 폐위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또한 군자와 소인의 존재를 역설하여 군왕은 군자들을 등용하여 올바른 정치를 수행해나가야 된다고 봤다.
그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정치제도는 재상을 최고실권자로 하여 권력과 직분이 분화된 합리적인 관료지배체제이며, 의정부서사제라는 제도를 통하여 태조 대에는 재상 등 신하가 중심이 되어 정치가 이루어졌다.
권 7·8은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은 인데 여기서 조선 왕조의 모든 관제의 대강을 서술하며, 조선왕조의 통치규범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는 조선경국전을 저술하면서 기존의 여러 사례등을 참고하였다. 《주례 周禮》에서 재상 중심의 권력체계와 과거제도, 병농일치적인 군사제도의 정신을 빌려오고, 한당(漢唐)의 제도에서 부병제(府兵制)·군현제(郡縣制, 守令制)·부세제(賦稅制) 장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권9에는 성리학적 입장에 서서 불교의 윤회설·인과설·심성설 등을 비판하고, 그 사회적 폐단을 폭로한 ‘불씨잡변(佛氏雜辨)’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 말기 부패한 현실과 타락한 불교계를 보며 그는 권문세족의 횡포 이상으로 불교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현세에서 백성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삶을 개선시켜주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길도 어려운 길이며 통치자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데, 삶의 문제는 커녕 삶조차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인간 세계에서 사후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불씨잡변에서 그는 \"윤회설이 판명되면 인과설은 변형하지 않아도 자명해진다. (중략) 과연 불씨의 설과 같다면 사람의 화복과 질병이 음양오행과는 관계없이 모두 인과의 보응에서 나오는 것이 되는데, 어찌하여 우리 유가의 음양오행을 버리고 불씨의 인과응보설을 가지고서 사람의 화복을 정하고 사람의 질병을 진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불씨의 설이 황당하고 오류에 가득 차 족히 믿을 수 없다.\" 라고 하며 불교에 대하여 강한 비판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교육관을 살펴보자. 그의 교육사상은 그의 정치사상과 연관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정치사상을 보면 그의 교육관도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리학적 사상에 입각하여 인격을 수양하고, 인격을 수양한 군자가 정치를 해야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교육도 \'인간을 바르게 하는 것\', 즉 군자를 기르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삼봉에 있어서 정치사상은 다시 경제사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인간의 윤리ㆍ도덕의 실현은 개인의 수양이나 교화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백성의 경제 생활의 안정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쫓기고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면 제대로 된 교육도 이루어 지지 못하고 인격을 수양한 군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경국전에서 그는 \"의식이 풍족하니 염치를 알고, 창고가 가득 채워지니 예의가 일어난다\" 고 한 것에서 이러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그의 정치사상과 경제사상에, 인성에 대한 그의 이해를 더하여 종합하면, 그가 이해한 교육이 무엇인지가 대략 파악된다. 즉, 교육이란「인간의 차등적인 능력을 개발하여 그 개발된 능력을 인간사회에 유용하게 쓰이도록 함으로써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며, 이로써 예의와 염치를 아는 인간으로 교화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도덕적ㆍ윤리적인 인간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성리학에 기반을 둔 이상사회를 꿈
3. 정도전의 사상 - 주요 저서를 중심으로
정도전은 이색의 수하에서 성리학을 배웠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부패한 현실사회를 개혁하고 권문세족의 횡포로부터 농민들을 해방시키기 위하여 새 국가체제 건설을 위한 역성혁명론에 주목하였다. 또한 그는 불교와 도교, 무속 신앙이 미신을 조장한다고 보았으며 이러한 생각은 이후 불씨잡변이란 책을 통하여 정리한다. 그러므로 정도전의 사상의 핵심은 성리학적 기반을 둔 이상사회 건설하고 불교 등 현실세계에서 도움을 주지 못하는 미신타파였다고 할 수 있다. 이 두가지를 고려하여 정도전의 사상을 그의 저서를 중심으로 정리해보고자 하며 그의 교육사상도 같이 살펴보도록 하자.
정도전의 사상은 《삼봉집》이라는 문집에 정리되어 있다. 모두 14권으로 구성되어 있는 삼봉집은 그의 생존당시 출간한 것은 전해지지 않고, 그의 후손이 <경제문감>·<조선경국전>·<불씨잡변>등을 더하여 중간한 것이 전해진다. 권1~4에는 오언 및 칠언고시등의 시와 각종 문장으로 구성된 잡문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그의 사상은 권5∼12에서 찾아 볼 수 있다. 삼봉집 권5·6은 경제문감(經濟文鑑)으로 재상 제도의 변천 과정, 득실, 재상의 자세를 서술하고 대간·위병(衛兵)·감사·수령의 직책에 대해 논하고 있다. 《경제문감》은 재상·감사·대간·수령·무관의 직책을 차례로 논하고, 《경제문감별집》에서는 군주의 도리를 밝혔다. 통치자가 민심을 잃었을 때에는 물리적인 힘에 의해서 교체될 수 있다는 역성혁명(易姓革命)을 긍정하였으며, 실제로 역성혁명의 방법으로 고려왕조를 조선왕조로, 왕조교체를 수행하였다. 성리학적 왕도 정치와 패도 정치의 사례를 제시한 후, 패도 정치를 하는 군주는 역성혁명이나 기타 수단에 의해 폐위될 수 있음을 경고하였다. 또한 군자와 소인의 존재를 역설하여 군왕은 군자들을 등용하여 올바른 정치를 수행해나가야 된다고 봤다.
그가 이상으로 생각하는 정치제도는 재상을 최고실권자로 하여 권력과 직분이 분화된 합리적인 관료지배체제이며, 의정부서사제라는 제도를 통하여 태조 대에는 재상 등 신하가 중심이 되어 정치가 이루어졌다.
권 7·8은 《조선경국전(朝鮮徑國典)》은 인데 여기서 조선 왕조의 모든 관제의 대강을 서술하며, 조선왕조의 통치규범에 대하여 논하고 있다. 그는 조선경국전을 저술하면서 기존의 여러 사례등을 참고하였다. 《주례 周禮》에서 재상 중심의 권력체계와 과거제도, 병농일치적인 군사제도의 정신을 빌려오고, 한당(漢唐)의 제도에서 부병제(府兵制)·군현제(郡縣制, 守令制)·부세제(賦稅制) 장점을 받아들이고 있다.
권9에는 성리학적 입장에 서서 불교의 윤회설·인과설·심성설 등을 비판하고, 그 사회적 폐단을 폭로한 ‘불씨잡변(佛氏雜辨)’이 수록되어 있다. 고려 말기 부패한 현실과 타락한 불교계를 보며 그는 권문세족의 횡포 이상으로 불교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현세에서 백성들의 고민을 해결하고 삶을 개선시켜주는, 경세제민(經世濟民)의 길도 어려운 길이며 통치자로서 많은 고민을 하게 만드는데, 삶의 문제는 커녕 삶조차 완벽하게 알지 못하는 인간 세계에서 사후 세계를 논한다는 것은 허무맹랑한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불씨잡변에서 그는 \"윤회설이 판명되면 인과설은 변형하지 않아도 자명해진다. (중략) 과연 불씨의 설과 같다면 사람의 화복과 질병이 음양오행과는 관계없이 모두 인과의 보응에서 나오는 것이 되는데, 어찌하여 우리 유가의 음양오행을 버리고 불씨의 인과응보설을 가지고서 사람의 화복을 정하고 사람의 질병을 진료하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느냐. 불씨의 설이 황당하고 오류에 가득 차 족히 믿을 수 없다.\" 라고 하며 불교에 대하여 강한 비판을 하였다.
마지막으로 그의 교육관을 살펴보자. 그의 교육사상은 그의 정치사상과 연관지어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그의 정치사상을 보면 그의 교육관도 유추해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성리학적 사상에 입각하여 인격을 수양하고, 인격을 수양한 군자가 정치를 해야한다고 보았다. 따라서 그의 교육도 \'인간을 바르게 하는 것\', 즉 군자를 기르는데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삼봉에 있어서 정치사상은 다시 경제사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는 인간의 윤리ㆍ도덕의 실현은 개인의 수양이나 교화를 필요로 하지만, 동시에 백성의 경제 생활의 안정도 필요로 한다고 보았다. 당장 먹고사는 문제에 쫓기고 생활이 안정되지 못하면 제대로 된 교육도 이루어 지지 못하고 인격을 수양한 군자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조선경국전에서 그는 \"의식이 풍족하니 염치를 알고, 창고가 가득 채워지니 예의가 일어난다\" 고 한 것에서 이러한 그의 생각을 알 수 있다.
이상과 같은 그의 정치사상과 경제사상에, 인성에 대한 그의 이해를 더하여 종합하면, 그가 이해한 교육이 무엇인지가 대략 파악된다. 즉, 교육이란「인간의 차등적인 능력을 개발하여 그 개발된 능력을 인간사회에 유용하게 쓰이도록 함으로써 인간의 생활을 윤택하게 하는 것이며, 이로써 예의와 염치를 아는 인간으로 교화하는 것, 그리고 나아가 도덕적ㆍ윤리적인 인간사회를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는 성리학에 기반을 둔 이상사회를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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