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백두대간의 개념
Ⅲ. 백두대간의 형태
Ⅳ. 백두대간의 역사
1. 10세기 초
2. 1402년
3. 16세기 경
4. 1751년
5. 1760년 경
6. 1770년
7. 1800년 경
8. 1861년
9. 1899년
10. 1908년
11. 1913년
12. 1980년
13. 1986년
14. 1988년
15. 1990년
16. 1993년
17. 1997년
18. 2000년
Ⅴ. 백두대간의 코스
1. 백두산
2. 두류산(頭流山)
3. 금강산(金剛山)
4. 설악산(雪嶽山)
5. 오대산(五臺山)
6. 태백산(太白山)
7. 소백산(小白山)
8. 속리산(俗離山)
9. 덕유산(德裕山)
10. 지리산(智異山)
11. 한라산
Ⅵ. 백두대간과 산경표
1. 유래
2. 내용
Ⅶ. 백두대간과 산맥체계
Ⅷ. 백두대간과 태백산맥
1. 백두대간(산경도)
2. 태백산맥(산맥도)
Ⅸ. 백두대간의 평가
참고문헌
Ⅱ. 백두대간의 개념
Ⅲ. 백두대간의 형태
Ⅳ. 백두대간의 역사
1. 10세기 초
2. 1402년
3. 16세기 경
4. 1751년
5. 1760년 경
6. 1770년
7. 1800년 경
8. 1861년
9. 1899년
10. 1908년
11. 1913년
12. 1980년
13. 1986년
14. 1988년
15. 1990년
16. 1993년
17. 1997년
18. 2000년
Ⅴ. 백두대간의 코스
1. 백두산
2. 두류산(頭流山)
3. 금강산(金剛山)
4. 설악산(雪嶽山)
5. 오대산(五臺山)
6. 태백산(太白山)
7. 소백산(小白山)
8. 속리산(俗離山)
9. 덕유산(德裕山)
10. 지리산(智異山)
11. 한라산
Ⅵ. 백두대간과 산경표
1. 유래
2. 내용
Ⅶ. 백두대간과 산맥체계
Ⅷ. 백두대간과 태백산맥
1. 백두대간(산경도)
2. 태백산맥(산맥도)
Ⅸ. 백두대간의 평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라서 지질학에 기반을 둔 산맥체계의 교육은 은연중에 자연을 개발이나 착취의 대상으로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글쓴이는 어린 시절 지도를 보면서 우리나라는 왜 지하자원이 이렇게 빈약할까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있다. 이 땅이 가진 아름다움이나 생명력을 모르던 시절의 철없던 생각은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바뀌게 되었다. 만약 우리가 백두대간에 담겨 있는 사람과 산천(자연)이 기를 통해 서로 교감하는, 즉 생태적이고 생명체적 지리관을 교육받고 접했다면 무조건적인 개발과 파괴의 현장을 지금처럼 둔감하게 바라보지는 않을 것이다.
산맥체계가 가지는 문제는 또 있다. 실생활과 밀접한 산이나 강 등 지형지물들이 연속적인 의미보다는 땅 속의 서로 독립적인 지질이 강조되면서, 이 땅은 하나로 연결된 단일체가 아닌 서로 다른 지질의 집합체로 인식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한반도의 중간에는 추가령 구조곡이 있어 지도를 펼쳐놓으면 남쪽과 북쪽이 마치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백두대간이 이 땅을 백두산을 뿌리로 한 하나의 나무에 비유하여 유기체적인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시각적인 이미지는 사람의 심성에 큰 영향을 준다. 산경도와 산맥도를 보시면서 그 차이를 느끼길 바란다.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나라를 잃은 충격과 서구 문물의 유입에 따른 정체성의 혼란의 과정에서 이 땅에서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관심에 인색했다. 어떤 경우는 \'미신\', \'봉건적\', \'전근대적\' 등의 용어를 붙여 마치 옷에 달라붙은 벌레처럼 빨리 떼어내 버려야 할 존재로까지 비하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현재 젊은 세대와 이전 세대 사이에는 겉모습에서 사고방식까지 심각한 거리감이 생겼다. 경제적인 여유는 얻었지만 마음이 돌아갈, 고향 같은 안식처는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문화란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백두대간을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외세에 의해 단절된 문화, 스스로의 나태로 잊혀지거나 비하해 온 문화 중에서 오늘날에도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이를 되살려서 문화의 연속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위한 밑거름이기도 하다.
Ⅷ. 백두대간과 태백산맥
1. 백두대간(산경도)
1) 땅 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과 강에 그렸다.
2) 산경은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지고
3) 실제 지형과 일치하는, 지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선이다.
2. 태백산맥(산맥도)
1) 땅속의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그렸다.
2) 산맥은 강에 의해 여러 차례 끊기고
3) 실제 지형에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지질학적)인 선이다.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사람과 산. 1997)에서 인용
이렇게 분류를 하고 보면 명확한 사실을 한 가지 알 수 있다. 중간에 무엇인가가 잘못 끼어들었을 가능성 말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백두대간은 보이는 것 중심이니 지리학에서 다루고, 태백산맥은 보이지 않는 지질 구조 중심이니 지질학에서 다루면 제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태백산맥은 지리학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앉아 있고, 백두대간은 제자리를 잃고 잊혀져 왔다. 중간에 잘못 끼어 든 것은 바로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그 정신적 유산들이다. 그 결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이는 것인 양 교육을 받아 왔고, 또 그렇게 믿고 살아 왔다. 그 세월이 어느새 100년이 되었다.
Ⅸ. 백두대간의 평가
백두대간의 등장(1980년 『산경표』 발굴)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백두대간의 개념으로 보면 왜 백운산에서 지리산으로 갈 수 없었는지 바로 답이 나온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에 속해 있고, 백운산은 호남정맥에 있는 산이다. 그러니 거리는 지척이라도 호남정맥을 빙 돌지 않으면 가 닿을 수 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 닿을 수는 있는데 소백산맥을 타고서는 안 된다. 산경도를 보면 이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태백산맥(지질구조선에 따른 산맥)은 지질학이나 지구과학의 교과서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일반인을 교육시키는 지리학에는 백두대간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옛 부터 내려오는 지도들도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거기에는 단순히 이 땅을 현대 지도에 비추어 비슷하게 그렸구나 아니구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조상들이 땅을 바라보는 시각, 자연과 우주 바라본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땅은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은 존재 곧 함부로 다루거나 헤쳐서는 안 되는 용으로 상징한 \'땅의 기운(地氣)\'이 흐르고 있다는 인식이 들어 있다.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광물탐사사업의 학술 책임자였던 고토 분지로가 1900년과 1902년의 두 해에 걸쳐, 14개월 동안 이 땅을 답사하고 만들어 낸 \'산맥\'의 개념이 어느새 100년 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해방이 된지 55년이 되어 가는 이 시간에도 아직(정신의) 식민지는 계속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아직 한 번도 우리 손으로 이 땅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교통과 통신 시설이 너무나 보잘 것 없던 시절, 말을 타고 다니며 100년 전 한 개인이 조사한 지질 구조가 현재에도 그대로 이 사회에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기초 자료를 수집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백두대간을 살리는 일이 비단 이름을 하나 바꾸고 안 바꾸고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김영식(2010), 백두대간 현장의 환경교육 프로그램 개발 연구, 청주대학교
김향자(2009), 백두대간 생태관광자원 개발 사업,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찬국 외 11명(2010), 백두대간 생태 복원을 위한 시민참여 프로그램 개발과 적용, 한국환경교육학회
박상곤(2011), 백두대간 침엽수림의 식생조성 및 구조, 경북대학교
신준환(2004), 백두대간 관리범위 및 관리방안, 한국환경생태학회
최길본(2004), 백두대간 보호정책방향, 현대사회연구소
산맥체계가 가지는 문제는 또 있다. 실생활과 밀접한 산이나 강 등 지형지물들이 연속적인 의미보다는 땅 속의 서로 독립적인 지질이 강조되면서, 이 땅은 하나로 연결된 단일체가 아닌 서로 다른 지질의 집합체로 인식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로 한반도의 중간에는 추가령 구조곡이 있어 지도를 펼쳐놓으면 남쪽과 북쪽이 마치 서로 섞일 수 없는 존재인 것처럼 보인다. 백두대간이 이 땅을 백두산을 뿌리로 한 하나의 나무에 비유하여 유기체적인 동질성을 강조하는 것과는 너무나 대조적이다. 시각적인 이미지는 사람의 심성에 큰 영향을 준다. 산경도와 산맥도를 보시면서 그 차이를 느끼길 바란다.
우리는 지난 세기 동안 나라를 잃은 충격과 서구 문물의 유입에 따른 정체성의 혼란의 과정에서 이 땅에서 선조들이 이루어 놓은 문화적 유산에 대한 올바른 평가와 관심에 인색했다. 어떤 경우는 \'미신\', \'봉건적\', \'전근대적\' 등의 용어를 붙여 마치 옷에 달라붙은 벌레처럼 빨리 떼어내 버려야 할 존재로까지 비하시키기도 했다. 그 결과 현재 젊은 세대와 이전 세대 사이에는 겉모습에서 사고방식까지 심각한 거리감이 생겼다. 경제적인 여유는 얻었지만 마음이 돌아갈, 고향 같은 안식처는 찾기가 쉽지 않게 되었다. 문화란 연속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백두대간을 주장하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이것이다. 외세에 의해 단절된 문화, 스스로의 나태로 잊혀지거나 비하해 온 문화 중에서 오늘날에도 충분한 의미와 가치를 가지고 있는 것이 많다. 이를 되살려서 문화의 연속성을 유지해 나가는 것은 이 땅을 살아가는 사람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생각한다. 이것은 우리 문화의 다양성을 위한 밑거름이기도 하다.
Ⅷ. 백두대간과 태백산맥
1. 백두대간(산경도)
1) 땅 위에 실제로 존재하는 산과 강에 그렸다.
2) 산경은 산에서 산으로만 이어지고
3) 실제 지형과 일치하는, 지리학적으로 자연스러운 선이다.
2. 태백산맥(산맥도)
1) 땅속의 지질구조를 기준으로 그렸다.
2) 산맥은 강에 의해 여러 차례 끊기고
3) 실제 지형에 일치하지 않는, 인위적(지질학적)인 선이다.
『태백산맥은 없다』(조석필. 사람과 산. 1997)에서 인용
이렇게 분류를 하고 보면 명확한 사실을 한 가지 알 수 있다. 중간에 무엇인가가 잘못 끼어들었을 가능성 말이다. 상식적으로 볼 때, 백두대간은 보이는 것 중심이니 지리학에서 다루고, 태백산맥은 보이지 않는 지질 구조 중심이니 지질학에서 다루면 제자리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태백산맥은 지리학의 자리까지 차지하고 앉아 있고, 백두대간은 제자리를 잃고 잊혀져 왔다. 중간에 잘못 끼어 든 것은 바로 일제의 식민지 정책과 그 정신적 유산들이다. 그 결과 우리는 보이지 않는 것을 마치 보이는 것인 양 교육을 받아 왔고, 또 그렇게 믿고 살아 왔다. 그 세월이 어느새 100년이 되었다.
Ⅸ. 백두대간의 평가
백두대간의 등장(1980년 『산경표』 발굴)은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했다. 백두대간의 개념으로 보면 왜 백운산에서 지리산으로 갈 수 없었는지 바로 답이 나온다. 지리산은 백두대간에 속해 있고, 백운산은 호남정맥에 있는 산이다. 그러니 거리는 지척이라도 호남정맥을 빙 돌지 않으면 가 닿을 수 가 없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가 닿을 수는 있는데 소백산맥을 타고서는 안 된다. 산경도를 보면 이 사실이 명확해진다.
이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 다가오고 있다. 태백산맥(지질구조선에 따른 산맥)은 지질학이나 지구과학의 교과서로 자리를 옮겨야 한다. 일반인을 교육시키는 지리학에는 백두대간이 자리를 잡아야 한다. 그래야 <대동여지도>를 비롯한 옛 부터 내려오는 지도들도 제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 거기에는 단순히 이 땅을 현대 지도에 비추어 비슷하게 그렸구나 아니구나 하는 차원의 문제가 아닌 조상들이 땅을 바라보는 시각, 자연과 우주 바라본 관점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그 속에는 땅은 살아있는 생물체와 같은 존재 곧 함부로 다루거나 헤쳐서는 안 되는 용으로 상징한 \'땅의 기운(地氣)\'이 흐르고 있다는 인식이 들어 있다.
일본의 조선침략정책의 일환으로 실시된 광물탐사사업의 학술 책임자였던 고토 분지로가 1900년과 1902년의 두 해에 걸쳐, 14개월 동안 이 땅을 답사하고 만들어 낸 \'산맥\'의 개념이 어느새 100년 동안 우리의 의식을 지배하고 있다. 일제의 침략기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해방이 된지 55년이 되어 가는 이 시간에도 아직(정신의) 식민지는 계속되고 있다.
또 한 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아직 한 번도 우리 손으로 이 땅을 제대로 조사한 적이 없다는 것이다. 교통과 통신 시설이 너무나 보잘 것 없던 시절, 말을 타고 다니며 100년 전 한 개인이 조사한 지질 구조가 현재에도 그대로 이 사회에 통용되고 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이 땅을 식민지로 만드는데 기초 자료를 수집하려는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데도. 백두대간을 살리는 일이 비단 이름을 하나 바꾸고 안 바꾸고 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참고문헌
김영식(2010), 백두대간 현장의 환경교육 프로그램 개발 연구, 청주대학교
김향자(2009), 백두대간 생태관광자원 개발 사업, 한국문화관광연구원
김찬국 외 11명(2010), 백두대간 생태 복원을 위한 시민참여 프로그램 개발과 적용, 한국환경교육학회
박상곤(2011), 백두대간 침엽수림의 식생조성 및 구조, 경북대학교
신준환(2004), 백두대간 관리범위 및 관리방안, 한국환경생태학회
최길본(2004), 백두대간 보호정책방향, 현대사회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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