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장 맑스의 유산
2장 현실 사회주의와 소비에트의 경험
2장 현실 사회주의와 소비에트의 경험
본문내용
로 필요한 노동력의 양이다. 교환가치는 일정한 균형이 전제된 시장에서 상품들간의 교환비율의 형식으로 가치가 어떻게 자신을 나타내는가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시장가치는 맑스가 사용한 또 다른 개념인 시장가격과 구분된다.
여기서는 이 문제를 잠시 접고 이것과 관련해 사용가치를 살펴보자. 사용가치는 맑스가 측정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가치와 사용가치를 인위적이고 부적절하게 분리함으로써 많은 혼동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이다.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오직 시장을 통해서만 사후적으로 그리고 불완전하게나마 비교될 수 있으며, 이에 반해 사회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비교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상품화폐 관계 및 그 외 여러 가지 다양한 매개 없이도 가능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종류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서로 다른 사용가치는 비교 할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렇게 빤히 눈에 들여다보이는 불일치가 여전히 많은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맑스도 알았던 것처럼, 사용가치는 어떤 생산물이 가치를 가지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별로 쓸모 없는 목적에 노동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이며, 이것은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프랑스 학자 바슬레는 맑스의 주장에 내재한 이론적 모호함에 관심을 기울여 그는 만약 가치법칙이 자본주의에서 교환관계의 기초가 된다면, 가치는 이미 교환 이전에 경쟁의 영역 밖에서 결정되는 것이거나 또는 교환과 경쟁이 가치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라고 묻고 있다.
맑스에게 있어 가치는 현실 세계에서 교환을 통해 실현된다고 할지라도, 수요와 공급 및 교환과는 관계없이 가격의 기초로 이해된다.
그러나 맑스는 비록 가치가 시장에서 사후적인 평가를 필요로 한다고 해도 가치는 이미 상품이 생산될 때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한 것 같다. 비록 맑스가 사회적 필요수준이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약간의 언급들을 남겨두고 있을지라도, 그의 전체적인 주장의 요점은 오직 생산조건들만이 가치의 형성에 관여한다고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었다.
맑스주의 경제학자인 리피에츠는 사회적 수요가 소비와 축적의 구조를 결정하는 계급투쟁의 한 기능이라고 주장하고 그는 가치이론이 효용과 희소에 근거한다는 주장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효용이 외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소득 분배뿐만 아니라 생산이 수요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것은 이 문제에서 벗어나는데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방법이다.
오늘날 맑스주의 근본주의자들이 소비에트 사회주의에서의 가치법칙에 대한 공식적인 정식들이 맑스가 사회주의에 대해 주장했던 진술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소비에트 경제학자들은 가치이론에 실현될 수 없는 기능을 부여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치이론을 통해 상이한 생산물과 노동을 측정하고 비교하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을 발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하는 자본주의 상품생산의 세계에서 만약 노동생산물이 서로 관계한다면, 그것들의 가치는 시장을 통해서 사용가치 및 그 외 여러 가지와 연결된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시 사회주의 경제학의 분석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허함을 준다.
맑스주의가 상정하는 가치의 다른 모습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가치가 노동량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만약 이 양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에 기초해 리피에츠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전후 부흥기동안 프랑스의 현실을 그린 단순 풍자화에 의하면 생산 축적 그리고 소비는 세배나 증가했다. 이것은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의미 한다.
맑스의 가치이론과 그것이 사회주의 경제학에 미친 영향으로 되돌아가는 얼가간의 맑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가치평가를 노동가치 이론에 기초하고자 했던 경제학자들이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은 전혀 적합하지 않은 이론 때문에 잘못된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맑스는 사회주의에서의 비용계산과 관련해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맑스의 가치 이론을 가치평가에 적용시키고자 했던 맑스주의자들은 노동비용만을 가지고 가치를 평가하려는 오류를 범해왔다. 효율적인 자원할당에 관한 한, 그것은 노동이외의 다른 생산요소들의 부족을 무시하고 사용가치를 소홀히 다룬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이제 우리는 제도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사회가 혼합 생산물을 생산하는 데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대안적인 수단과 목적을 비교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 맑스주의 이론에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중앙집중화된 계획을 주장하는 매우 강력한 경향들이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론과 실천의 동시적 이유 때문이다. 생산단위는 누구를 위해 생산할지, 무엇을 생산할지, 그리고 언제 그것을 공급할지를 어떻게 알수 있으며, 만약 계획입안자들이 그것을 결정해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투입물을 얻을 수 있는가? 그 결과의 복잡성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룰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은 ‘소비를 위한 생산’, 시장의 제거라는 중앙집중화 논리이다.
맑스주의 경제학의 또 다른 문제들 (p 91~94)
이 책의 우선 관심이 사회주의 경제학이기 때문에, 맑스주의 정치 경제학에 나타나는 또 다른 모호성을 살펴볼 필요는 없다. 이미 지적 했듯이 맑스에게 가치는 가격의 기초를 이룬다. 많은 비판자들의 지적후 맑스는 이윤율 저하 법칙이라는 조야한 초기의 생각으로 나아갔다.
물론 만약 착취율이 어느 정도 임금에 비례해서 균등화하는 경향이 있다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즉 불변자본의 증가는 자연적으로 이윤율을 저하시킬 것이다. 그러나 맑스가 생산성의 증가를 잊지 않았음에 주의하라. 왜냐면 이것이 이윤율 저하를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다양한 부문에서 착취율의 균등화를 가져오는 힘은 없다는 사실을 자주 잊은 것 같다. 이 모델에서 자본가들은 그들이 선대한 총자본과 관련해서 얻을 수 있는 이윤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은 임금협상을 벌인다.
맑스는 가치가 다수의 비숙련 노동으로 측정되어야
여기서는 이 문제를 잠시 접고 이것과 관련해 사용가치를 살펴보자. 사용가치는 맑스가 측정할 수 없는 것으로 간주하고, 가치와 사용가치를 인위적이고 부적절하게 분리함으로써 많은 혼동을 불러 일으켰다는 점이다.
맑스는 자본주의에서 오직 시장을 통해서만 사후적으로 그리고 불완전하게나마 비교될 수 있으며, 이에 반해 사회주의 사회에서 이러한 비교는 의식적으로, 그리고 상품화폐 관계 및 그 외 여러 가지 다양한 매개 없이도 가능하다고 말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런 종류의 언급을 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서로 다른 사용가치는 비교 할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다. 이렇게 빤히 눈에 들여다보이는 불일치가 여전히 많은 혼란을 안겨주고 있다.
맑스도 알았던 것처럼, 사용가치는 어떤 생산물이 가치를 가지기 위한 필수적인 전제조건이다. 별로 쓸모 없는 목적에 노동을 사용하는 것은 낭비이며, 이것은 가치를 창조하지 않는다. 프랑스 학자 바슬레는 맑스의 주장에 내재한 이론적 모호함에 관심을 기울여 그는 만약 가치법칙이 자본주의에서 교환관계의 기초가 된다면, 가치는 이미 교환 이전에 경쟁의 영역 밖에서 결정되는 것이거나 또는 교환과 경쟁이 가치의 원인이 되는 것은 아닌가? 라고 묻고 있다.
맑스에게 있어 가치는 현실 세계에서 교환을 통해 실현된다고 할지라도, 수요와 공급 및 교환과는 관계없이 가격의 기초로 이해된다.
그러나 맑스는 비록 가치가 시장에서 사후적인 평가를 필요로 한다고 해도 가치는 이미 상품이 생산될 때 존재하는 것으로 가정한 것 같다. 비록 맑스가 사회적 필요수준이 가치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약간의 언급들을 남겨두고 있을지라도, 그의 전체적인 주장의 요점은 오직 생산조건들만이 가치의 형성에 관여한다고 계속해서 강조하는 것이었다.
맑스주의 경제학자인 리피에츠는 사회적 수요가 소비와 축적의 구조를 결정하는 계급투쟁의 한 기능이라고 주장하고 그는 가치이론이 효용과 희소에 근거한다는 주장을 거부하는데, 그 이유는 효용이 외재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물론 소득 분배뿐만 아니라 생산이 수요에 영향을 준다는 사실을 인정한다고 해도, 이것은 이 문제에서 벗어나는데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방법이다.
오늘날 맑스주의 근본주의자들이 소비에트 사회주의에서의 가치법칙에 대한 공식적인 정식들이 맑스가 사회주의에 대해 주장했던 진술들과 일치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데에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다.
소비에트 경제학자들은 가치이론에 실현될 수 없는 기능을 부여 했는데 그것은 그들이 가치이론을 통해 상이한 생산물과 노동을 측정하고 비교하기 위한 실질적인 수단을 발견하려고 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실재하는 자본주의 상품생산의 세계에서 만약 노동생산물이 서로 관계한다면, 그것들의 가치는 시장을 통해서 사용가치 및 그 외 여러 가지와 연결된다. 그러나 이것은 또 다시 사회주의 경제학의 분석가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공허함을 준다.
맑스주의가 상정하는 가치의 다른 모습에 대해서도 간단하게 언급할 필요가 있다. 가치가 노동량에 기초한 것이기 때문에, 만약 이 양이 증가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가치를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에 기초해 리피에츠는 다음과 같이 쓰고 있는데 전후 부흥기동안 프랑스의 현실을 그린 단순 풍자화에 의하면 생산 축적 그리고 소비는 세배나 증가했다. 이것은 노동생산성의 증가를 의미 한다.
맑스의 가치이론과 그것이 사회주의 경제학에 미친 영향으로 되돌아가는 얼가간의 맑스주의자들은, 사회주의적 가치평가를 노동가치 이론에 기초하고자 했던 경제학자들이 오류를 범했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들은 전혀 적합하지 않은 이론 때문에 잘못된 길로 들어섰던 것이다.
맑스는 사회주의에서의 비용계산과 관련해 거의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맑스의 가치 이론을 가치평가에 적용시키고자 했던 맑스주의자들은 노동비용만을 가지고 가치를 평가하려는 오류를 범해왔다. 효율적인 자원할당에 관한 한, 그것은 노동이외의 다른 생산요소들의 부족을 무시하고 사용가치를 소홀히 다룬다는 점에서 부적절하다.
이제 우리는 제도적 측면에서 살펴보자 사회가 혼합 생산물을 생산하는 데 대해 결정할 수 있는 가능성, 그리고 대안적인 수단과 목적을 비교할 수 있는 어떤 가능성이 있는가? 맑스주의 이론에는 모든 것을 포괄하는 중앙집중화된 계획을 주장하는 매우 강력한 경향들이 있음을 강조할 필요가 있다.
이것은 이론과 실천의 동시적 이유 때문이다. 생산단위는 누구를 위해 생산할지, 무엇을 생산할지, 그리고 언제 그것을 공급할지를 어떻게 알수 있으며, 만약 계획입안자들이 그것을 결정해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 투입물을 얻을 수 있는가? 그 결과의 복잡성에 대해서는 깊이 있게 다룰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가능할 수 있는 필수적인 조건은 ‘소비를 위한 생산’, 시장의 제거라는 중앙집중화 논리이다.
맑스주의 경제학의 또 다른 문제들 (p 91~94)
이 책의 우선 관심이 사회주의 경제학이기 때문에, 맑스주의 정치 경제학에 나타나는 또 다른 모호성을 살펴볼 필요는 없다. 이미 지적 했듯이 맑스에게 가치는 가격의 기초를 이룬다. 많은 비판자들의 지적후 맑스는 이윤율 저하 법칙이라는 조야한 초기의 생각으로 나아갔다.
물론 만약 착취율이 어느 정도 임금에 비례해서 균등화하는 경향이 있다면, ‘자본의 유기적 구성’, 즉 불변자본의 증가는 자연적으로 이윤율을 저하시킬 것이다. 그러나 맑스가 생산성의 증가를 잊지 않았음에 주의하라. 왜냐면 이것이 이윤율 저하를 일으키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자본의 유기적 구성이 다양한 부문에서 착취율의 균등화를 가져오는 힘은 없다는 사실을 자주 잊은 것 같다. 이 모델에서 자본가들은 그들이 선대한 총자본과 관련해서 얻을 수 있는 이윤에 관심을 둔다. 그리고 자본가들과 노동자들은 임금협상을 벌인다.
맑스는 가치가 다수의 비숙련 노동으로 측정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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