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서론
1. 신도의 역사적 배경
(1) 신도에 대한 역사적 고찰
(2) 고대와 중세 신도
(3) 근세 전기의 신도
(4) 근세 후기의 신도
2. 신사참배의 시민종교로써의 역할
3. 신사참배에 대한 문제의식
4.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한 일본에서의 반응
(1)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
(2) 언론보도에 대한 사회의 반응
(3) 야스쿠니신사에 관련된 일본의 사례
5. 신사 참배로 인한 주변국과의 갈등
[참고자료]
1. 신도의 역사적 배경
(1) 신도에 대한 역사적 고찰
(2) 고대와 중세 신도
(3) 근세 전기의 신도
(4) 근세 후기의 신도
2. 신사참배의 시민종교로써의 역할
3. 신사참배에 대한 문제의식
4. 야스쿠니 신사참배에 관한 일본에서의 반응
(1) 야스쿠니 신사에 대한 일본인들의 반응
(2) 언론보도에 대한 사회의 반응
(3) 야스쿠니신사에 관련된 일본의 사례
5. 신사 참배로 인한 주변국과의 갈등
[참고자료]
본문내용
에서 묵념
2006. 08. 15.
연미복 차림으로 본전에서 참배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이후 21년 만에 현직 총리가 종전기념일에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이후로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 왔지만 8월 15일을 피해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 후 기자회견에서 \"(여러 사람의 말도 있고 해서) 그 동안 8월 15일을 피해서 참배했지만 언제나 비판과 반발이 있었다\"며 \"언제 가든지 마찬가지라면 오늘이 적당한 날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과거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의 고난을 겪었던 한국과 중국은 일제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미 2005년부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문에 한국과의 정상회담은 11월, 중국과는 4월 각각 단절됐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국의 비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총리의 개인적인 신사 참배로서, 총리가 개인의 계획에 따라 개인 자격으로 또 개인의 비용으로 신사 참배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참배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서는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 일본 국민들 역시 개인의 신사 참배보다는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로 바라볼 것이다. 또 고이즈미 총리는 1년 전인 2005년 10월에는 사적 참배임을 강조하기 위해 양복차림으로,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곳에서 참배했지만 2006년 신사 참배는 연미복 차림으로 본전에서 참배하고 방명록에도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 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에 개인자격의 신사 참배라는 일본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일본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다는 것은 “현재의 일본이 과거의 일본에 얽매여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전쟁의 악몽을 경험했던 주변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전쟁을 주도했던 A급 전범들을 신으로 모시면서 현재의 일본과 이어져 있다고 보이기 때문에 주변국의 우려와 비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주변국의 비판에 대해 일본인들은 내정간섭이라고 비난을 한다. 그러나 국제법이나 조약을 위반한 나라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간섭은 국제법상 합법적인 간섭으로서 국제적으로 용인되어 있다. 또한 총리의 신사 참배는 일본의 헌법이 명시한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오사카 고등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은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서 대다수가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전쟁 희생자들과 그 전쟁을 일으켰던 전쟁 범죄자들을 같은 장소에 뒤섞어 놓고 제사를 올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태도는 무엇에서 유래된 것일까?
일본의 신사는 죽은 사람을 모셔놓고 신으로 받드는 종교이다. 여기에는 “죽으면 모두 부처님”이라는 일본의 사생관이 깃들어있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죽으면 모두 같다는 것이다. 2002년 8월 고이즈미 총리가 공식 참배했을 때 ‘A급 전범 위령을 위한 야스쿠니 공식 참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총리는 “사람은 죽으면 모두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일본의 문화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생관을 갖고있는 일본인들은 죽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을 껄끄럽고 불쾌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 역사에 대한 올바른 재인식과 반성이 없는 현재 일본의 모습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참고자료]
곽진오, 「일본인과 정국신사」위키 백과
곽진오, 「일본인과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반대에 있어서 신사를 둘러싼 성격규명에 관한 연구]」
김남식, 「그들은 왜 신사참배를 고집하는가?」 (선교신학, 2001)
김승태, 「한국 기독교와 신사참배문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종성, 「일본 총리는 개인적으로라도 야스쿠니를 참배해서는 안된다.」(월간말. 2005.7)
문중렬, 「일본인들이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 용인하는 이유」 죽으면 모두 부처님(민족21. 2002.8)
이근삼, 「신사참배 문제를 재검토 한다.」 (정암신학강좌, 1994)
이청길, 「야스쿠니 신사참배문제」코람데오닷컴
스나미 케스케,「야스쿠니 문제 핵심은 ‘A급 전범’이 아니다」
한영학, 「일본 언론에 비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2001. 9)
2006. 08. 15.
연미복 차림으로 본전에서 참배
2006년 8월 15일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일본 총리가 야스쿠니(靖國) 신사 참배를 강행했다. 1985년 나카소네 야스히로(中曾根康弘) 총리 이후 21년 만에 현직 총리가 종전기념일에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한 것이다. 고이즈미 총리는 취임 이후로 매년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해 왔지만 8월 15일을 피해왔다. 고이즈미 총리는 참배 후 기자회견에서 \"(여러 사람의 말도 있고 해서) 그 동안 8월 15일을 피해서 참배했지만 언제나 비판과 반발이 있었다\"며 \"언제 가든지 마찬가지라면 오늘이 적당한 날이라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이에 과거 일본으로부터 식민 지배의 고난을 겪었던 한국과 중국은 일제히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미 2005년부터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 때문에 한국과의 정상회담은 11월, 중국과는 4월 각각 단절됐었다.
그러나 이러한 주변국의 비판에 대한 일본 정부의 공식 입장은 총리의 개인적인 신사 참배로서, 총리가 개인의 계획에 따라 개인 자격으로 또 개인의 비용으로 신사 참배를 한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 참배를 한다는 일본 정부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주변국에서는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또 일본 국민들 역시 개인의 신사 참배보다는 일본 총리의 신사 참배로 바라볼 것이다. 또 고이즈미 총리는 1년 전인 2005년 10월에는 사적 참배임을 강조하기 위해 양복차림으로, 일반인들이 이용하는 곳에서 참배했지만 2006년 신사 참배는 연미복 차림으로 본전에서 참배하고 방명록에도 ‘내각총리대신 고이즈미 준이치로’ 라고 기록하였기 때문에 개인자격의 신사 참배라는 일본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일본의 총리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한다는 것은 “현재의 일본이 과거의 일본에 얽매여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일이다. 과거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전쟁의 악몽을 경험했던 주변국의 입장에서 볼 때 이것은 일본이 과거에 저질렀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오히려 그 전쟁을 주도했던 A급 전범들을 신으로 모시면서 현재의 일본과 이어져 있다고 보이기 때문에 주변국의 우려와 비난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이런 주변국의 비판에 대해 일본인들은 내정간섭이라고 비난을 한다. 그러나 국제법이나 조약을 위반한 나라에 대한 주변 국가들의 간섭은 국제법상 합법적인 간섭으로서 국제적으로 용인되어 있다. 또한 총리의 신사 참배는 일본의 헌법이 명시한 정교분리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에 오사카 고등법원으로부터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다.
그러나 주변국들의 거센 비판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들은 총리의 신사참배에 대해서 대다수가 긍정적인 입장을 갖고 있다. 전쟁 희생자들과 그 전쟁을 일으켰던 전쟁 범죄자들을 같은 장소에 뒤섞어 놓고 제사를 올리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일본인들의 태도는 무엇에서 유래된 것일까?
일본의 신사는 죽은 사람을 모셔놓고 신으로 받드는 종교이다. 여기에는 “죽으면 모두 부처님”이라는 일본의 사생관이 깃들어있다. 선인이나 악인이나 죽으면 모두 같다는 것이다. 2002년 8월 고이즈미 총리가 공식 참배했을 때 ‘A급 전범 위령을 위한 야스쿠니 공식 참배를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기자의 질문에 대해서 총리는 “사람은 죽으면 모두 부처님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이것은 일본의 문화입니다.”라고 말했다. 이러한 사생관을 갖고있는 일본인들은 죽은 사람들을 비판하는 것을 껄끄럽고 불쾌하게 생각한다. 이러한 태도는 과거 역사에 대한 올바른 재인식과 반성이 없는 현재 일본의 모습을 잘 설명해주고 있다.
[참고자료]
곽진오, 「일본인과 정국신사」위키 백과
곽진오, 「일본인과 야스쿠니신사 [참배와 반대에 있어서 신사를 둘러싼 성격규명에 관한 연구]」
김남식, 「그들은 왜 신사참배를 고집하는가?」 (선교신학, 2001)
김승태, 「한국 기독교와 신사참배문제」,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김종성, 「일본 총리는 개인적으로라도 야스쿠니를 참배해서는 안된다.」(월간말. 2005.7)
문중렬, 「일본인들이 고이즈미의 야스쿠니 참배 용인하는 이유」 죽으면 모두 부처님(민족21. 2002.8)
이근삼, 「신사참배 문제를 재검토 한다.」 (정암신학강좌, 1994)
이청길, 「야스쿠니 신사참배문제」코람데오닷컴
스나미 케스케,「야스쿠니 문제 핵심은 ‘A급 전범’이 아니다」
한영학, 「일본 언론에 비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 (200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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