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요 - 사친 주술 - 고전시가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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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속요 - 사친 주술 - 고전시가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비연시)
■ 주제 : 부모를 위하는 농촌 부녀자들의 소박한 효심
■ 의의 : 속요 중 유일한 노동요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노래는 두 사람이 함께 방아공이를 들고 교대로 방아를 찧으면서 부른 것으로 추측이 된다. 한 사람은 사설을 하고 또 한 사람은 \'히얘\' 또는 \'히야해\'의 여음을 불러 장단을 맞추는 장면을 떠올려볼 수 있겠다.
내용은 가난한 생활이지만 방아를 찧어 부모를 봉양하겠다는 효심을 단순하고도 소박하게 표현하고 있다. 거친 밥이라도 부모님께 먼저 공양하고 남으면 자기가 먹겠다는 이 노래말 속에는 순박한 촌부의 효심이 담담하게 표현되어 있다. 옛날 사람들은 미리 쌀을 찧어 놓은 것이 아니라, 끼니 때마다 방아를 찧어서 밥을 해먹었다. 더구나 가난한 농촌이고 보니 벼가 있을 리가 없고, 보리나 조를 급하게 찧어서 만든 밥이니까 거칠고 질척한 밥이 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것이나마 온 식구가 먹을 만한 충분한 양이 아니었기 때문에 먼저 부모님께 드리고 남은 것을 먹겠다는 내용이다. 특히 \' 방해나, 바비나 \'에서 \'∼나\'는 가난한 서민의 애수와 체념을 느끼게 해준다.
또한 \'히얘, 히야해\' 등은 노동요에서 사용되는 여음으로 이해될 수 있는 것으로, 의성적인 후렴구로서 시 전체에 율동감을 가미시켜 준다.
다분히 효의 사상을 간직한 이 노래는 짧은 시형 속에서 소박하면서도 담백한 시정을 나타낸, 옛 선인들의 일상 생활의 애환을 그대로 찾아볼 수 있어서 <유구곡>과 더불어 민간 속요의 절조로 평가된다.
분절체가 아닌 단연체로 이루어져 있어서 형식면에서 다른 고려속요들과 이질적일 뿐만 아니라, 노래말도 지극히 간단하고 \'남녀상열지사\'와는 거리가 멀다. 이 때문에 민요의 본래적 모습이 가장 온전하게 남아 있는 작품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주제면에서 이 작품과 비교가 되기도 하는 <사모곡>과 비교해 보면, <상저가>에서는 <사모곡>처럼 비유에 의한 의미 구현도 볼 수 없으며, 부모의 사랑을 차별화할 줄도 모른다. 이 점에서 <상저가>는 훨씬 원초적이고 직설적인 방법으로 주제를 표출함으로써, 규범이나 이념 이전의 자발적인 정서 표현의 효과를 기대했던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② 상저가의 특징
가명(歌名)인 ‘상저(相杵)’에서 ‘저(杵)’는 절굿공이의 뜻이고, ‘상(相)’은 송저성(送杵聲)이다. 두 사람 이상이 절구통에 둘러서서 방아를 찧을 때 호흡을 맞추기 위하여 부른 노동요(勞動謠)로서 4구의 짧은 비연시(非聯詩)이다.
적은 양식이지만 찧어서 부모님께 드리고, 남은 밥이 있어야 자기도 먹는다는 가난과 효성을 노래하였다.
《시용향악보(時用鄕樂譜)》에 실려 전해지는 이 가요의 근원은 신라 때 백결선생(百結先生)의 《대악(樂)》인 듯하다.
● 오관산
木頭雕作小唐鷄
箸子拈來壁上棲
此鳥膠膠報時節
慈顔始似日平西
목도조작소당계
저자념래벽상서
차조교교보시절
자안시사일평서
<현대어풀이>
나무로 작은 닭을 다듬어
벽에 보금자리 주어 살게 하였네,
이 닭이 꼬꼬 울 때까지
어머님 오래도록 사시기를
① 오관산의 배경설화
고려시대에 문충(文忠)이 지은 가요. 원가는 전하지 않으나, 다만 노래의 내력과 이제현(李齊賢)의 칠언절구 한해시(漢解詩)가 ≪고려사≫ 악지 속악조(俗樂條)에 전한다.
그 내용에 따르면, 문충은 오관산 아래에 살면서, 어머니 봉양을 위하여 30리나 되는 개성까지 매일 벼슬살이를 갈 정도로 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였다고 한다. 그러면서 자기 어머니가 늙은 것을 개탄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이제현의 해시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나무토막으로 조그마한 당닭을 새겨/젓가락으로 집어다가 벽에 앉히고/이 닭이 꼬끼오 하고 때를 알리면/그제사 어머님 얼굴 늙으시옵소서(木頭雕作小唐鷄 非子拈來壁上栖 此鳥膠膠報時節 慈顔始似日平西).”≪참고문헌≫ 高麗史.(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② 오관산의 이해
고려시대에 문충이 지은 가요로 <목계가>라고도 한다. 효자인 문충은 오관산 밑에 살았는데, 홀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다. 집에서 삼십리나 되는 서울을 아침 저녁으로 왕복하여 통근하면서도 어머니에 대한 효성은 변함없이 극진하였으나, 어머니가 날로 노쇠하여 감을 보고 슬퍼하여 이 노래를 지었다고 한다. 가사는 전하지 않고 제목과 그 유래만 <고려사><악지>에 전하며, 이제현의 한역가가 <익재해시>에 수록되어 있다.
(2) 주 술
「처용가」는 신라때부터 있었던 작품으로 주술성이 강조되는 노래이다. 동해용왕의 아들이었던 처용이 자신의 부인을 범한 역신을 물리쳐서 문신이 되었다는 것이 처용설화인데, 역신과 부인의 동침 광경을 본 처용이 부른 노래가 바로 향가 「처용가」이다. 창칼 같은 무기로 역신을 물리친 것이 아니라 춤과 노래로 물리쳤으니 춤과 노래에는 주술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처용설화는 신의 형상을 그리거나 형상을 그리거나 형상을 만드는 행위로 이어졌는데, 그림이나 주문을 문 위에 붙이는 것은 지금도 전해지는 민속이고, 형상을 만들고 그것을 상용해서 춤을 추는 것은 탈춤으로 전해지고 있다. 탈놀이에서 쓰는 탈바가지는 신의 모양을 형상화하는 것이 많고, 춤 동작은 주로 성행위와 관련된 것이 중심을 이루니 바로 처용설화의 내용과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탈놀이를 할 때 재담을 섞은 노래를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 역시 신을 즐겁게 하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춤과 노래로써 신을 즐겁게 하여 인간이 바라는 대로 일을 만들고자 하는 것은 무속행위도 마찬가지인데, 모두 연관성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이런 점 때문에 처용을 신라시대 무당의 일종으로 보고, 향가「처용가」를 무가로 보는 견해도 있다. 어느 것과 관련을 가지든 처용설화와 「처용가」는 민속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처용이 나라를 지키는 기능을 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민간신앙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보이는 처용은 고려시대를 지나면서 나라의 신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렇게 되면서 노래도 향가를 바탕으로 하면서도 그 시대에 맞는 것으로 재창작된다.
● 처용가
前腔 新羅盛代 昭聖代
天下大平 羅候德
處容 아바
以是人生애 相不語시란 
以是人生애 相不語시란 
附葉 三災八難이 一時消滅샷다
中葉 어와 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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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18페이지
  • 등록일2019.03.19
  • 저작시기2019.3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1092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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