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 기간은 달 공전의 삼분의 일에 해당하는 기간이다.
17절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고대의 모든 나라들은 꿈을 인간에게 미래를 계시하는 방편으로서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베벨론 사람들과 같이 해몽을 조직적으로 연구한 나라는 없었다.
< 제 2 장 >
10절 이런 것으로…물은. Kidnah(키드나)는 “이와 같은”(like this)이란 뜻이다. 대신에 (h)로 끝이 나는 지시형용사의 이러한 형식은 탈굼의 형식보다도 더 오래된 것으로 간주된다.
11절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다. 이 구절의 70인역은 “오 왕이시여, 당신이 물으시는 것은 어렵고도 이상하니이다”이다. 마지막 두 단어가 이중어-같은 아람어 yakkirah(야키라)의 두 가지 다른 번역-인 것 같다.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무겁다”(heavy)이고, 그것을 다른 말로 옭기면 “어렵다”이며, 그 다음에는 “기이하다” 나 “희귀하다” 가 된다. 현재의 문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호격을 취하는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번역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13절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이 구절의 70인역은 약간 의역이 되어서, “그리고 다니엘과 그와 같이 있는 사람들을 다 찾았으니 죽이기 위함이라”이다. 동사의 주격에 해당하는 선행사가 없는 것은 현재의 모양을 나타내는 문장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다”(all)라는 뜻에 해당되는 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18절 하늘에 계신 하나님. 70인역은 이곳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것과 같이 Ψισο 라고 번역하였다. 이곳에서 우리는 번역의 차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방 신에게 사용하는 칭호가 하나님에게 사용된 것에 대한 이의의 제기를 말한다. 이 칭호는 다니엘과 같이 점성가로서 교육을 받고, 일월성신을 신들로 취급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운 사람들이 입술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20절 하나님의 이름 후기 유대주의는 신성한 언약의 하나님의 이름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런 의미에서 “이름”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습관이 붙었다.
21절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느부갓네살은 꿈으로 전해준 정보를 유리하게 이용할 시간이 지나가지 않도록, 열려하고 새 “때”가 도래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였다. 느부갓네살은 대부분의 이방인들과 같이, 희랍의 페이트신(Fate)(운명의 여신:역주)과 같은 불가시적인 어떤 힘에 의해서 그들의신들이 제한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21절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느도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말은 더 계속된다. 다니엘은 인간의 능력과 정신적인 학식에서 하나님의 현시를 본다. 총명을 주시는 것은 전능자의 영감에 의한다. 인간의 모든 힘은 지식을 얻도록 되어 있고, 인간의 모든 능력은 그러한 올바른 지식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니님에게서 나온다.
23절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시고. 다니엘은 기도의 응답을 그 자신이 기도한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세 친구가 합심하여 같이 기도한 때문으로 설명한다. 그들의 간절한 간구가 하나님이 응답으 fqke는 일에 있어서 그의 기도를 도왔다. 다니엘은 그에게 주신 지식에 감사를 하는 한편 그의 친구들이 제공해 준 도움을 인정한다.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다니엘은 이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감사를 드리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님은 왕이 요구하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셨다.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희랍어역들은 의미상 필수불가결하게 여겨지는 것-“산에서”-에 해당하는 구절을 부연하였다. 이러한 부연은 뒷구절(45절)에서부터 따온 것임이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 필연성이 이러한 부연을 촉구하였을 것이다.
44절 이 열왕의 때에. 이것은 마지막 왕조를 구성한 왕들, 특히 열 발가락으로 제시된 부속 왕조들의 왕들을 지시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전통적인 해석이 옳다면, 이 때는 아직 미래다.
45절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느부갓네살이 이 모든 것-이나랑의 성장, 즉 그것이 다른 모든 나라를 파괴하는 방법-을 본 이유가 이제 밝혀질 찰나이다.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하신 것이라.” 또는 그것은 “크신 신”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장래 일 문자적으로는 “이 일들 후에 있을 일을”이다. 이것은 임박한 미래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사태 이후를 뜻한다-세계적인 대제국들이 제도 이후 큰 세력들에 의한 세계 지배가 지나간 다음 주의 나라가 설 것이다.
〈제 3 장〉
1절 주라 평지에. 바벨론에는 이와 동일한 곳으로 보이는 여러 장소가 있다. 두라는 성벽 바깥에 있을지 모르나 성벽 내부에 있을 수도 있다. 70인역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6절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이 단어는 아람어의 두 가지 방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위(僞) 요나단의 탈굼(Targum)에서, 또 하란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보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데, 여기에 관련된 사건들에서 모방했음이분명하다.
〈제 4 장〉
10절 땅의 중앙에. 이것은 각 나라마다자기들 나라가 세상의 중아지점이거나 omphalos라고 여기는 개념과 관계된다. (gav)는 본래 중앙이 아니고 “뒤”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앞장에서는 풀무불에 사용되었고 탈굼(Targums)에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상실되었다.
16절 일곱 때. “때”란 뜻의 iddanun이란 말은 다소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실제로 탈굼, 전3:2과 탈굼 옹켈로스(Targum Onkelos) 장38:1, “그 후에” 나 “때”에서와 같이 “절기” 나 “시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의 이 “때”가 70인역이나 허다한 주석 학자들의 말대로 “연수”란 뜻으로 규정한다면 순전한 독단이다.
〈제 5 장〉
12절 은밀한 말을 밝히며. 어느 누구도 읽을 수 없는 수수께끼를 제시하는 것은 동양 어디에서나 지혜로운 증거였다(요세푸스 8:5,3을 보라. 그 외에도 솔로몬에 관한 탈무드의 이야기를 보라). 그러나 이것은 수수께끼로 시합하는 경우가아니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에게 수수께끼를 제사할 기회같은 거
17절 다니엘은 또 모든 이상과 몽조를 깨달아. 고대의 모든 나라들은 꿈을 인간에게 미래를 계시하는 방편으로서 중요시하였다. 그러나 베벨론 사람들과 같이 해몽을 조직적으로 연구한 나라는 없었다.
< 제 2 장 >
10절 이런 것으로…물은. Kidnah(키드나)는 “이와 같은”(like this)이란 뜻이다. 대신에 (h)로 끝이 나는 지시형용사의 이러한 형식은 탈굼의 형식보다도 더 오래된 것으로 간주된다.
11절 왕의 물으신 것은 희한한 일이다. 이 구절의 70인역은 “오 왕이시여, 당신이 물으시는 것은 어렵고도 이상하니이다”이다. 마지막 두 단어가 이중어-같은 아람어 yakkirah(야키라)의 두 가지 다른 번역-인 것 같다. 이 단어의 기본 의미는 “무겁다”(heavy)이고, 그것을 다른 말로 옭기면 “어렵다”이며, 그 다음에는 “기이하다” 나 “희귀하다” 가 된다. 현재의 문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호격을 취하는 문장을 설명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번역상 차이가 있을 수도 있는 일이다.
13절 다니엘과 그 동무도 죽이려고 찾았더라. 이 구절의 70인역은 약간 의역이 되어서, “그리고 다니엘과 그와 같이 있는 사람들을 다 찾았으니 죽이기 위함이라”이다. 동사의 주격에 해당하는 선행사가 없는 것은 현재의 모양을 나타내는 문장을 만들기 위함일 것이다. 그러나 “다”(all)라는 뜻에 해당되는 말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 같다.
18절 하늘에 계신 하나님. 70인역은 이곳에서 일반적으로 하는 것과 같이 Ψισο 라고 번역하였다. 이곳에서 우리는 번역의 차이를 다루는 것이 아니라 이방 신에게 사용하는 칭호가 하나님에게 사용된 것에 대한 이의의 제기를 말한다. 이 칭호는 다니엘과 같이 점성가로서 교육을 받고, 일월성신을 신들로 취급하는 사람들에게서 배운 사람들이 입술에서 나온 것이기에 더욱 의미가 깊다.
20절 하나님의 이름 후기 유대주의는 신성한 언약의 하나님의 이름을 회피하는 경향이 있었는데, 이런 의미에서 “이름”이란 단어를 사용하는 습관이 붙었다.
21절 때와 기한을 변하시며. 느부갓네살은 꿈으로 전해준 정보를 유리하게 이용할 시간이 지나가지 않도록, 열려하고 새 “때”가 도래하지 않을까 걱정을 하였다. 느부갓네살은 대부분의 이방인들과 같이, 희랍의 페이트신(Fate)(운명의 여신:역주)과 같은 불가시적인 어떤 힘에 의해서 그들의신들이 제한을 받고 있다고 생각한 것 같다.
21절 지혜자에게 지혜를 주시고 지식자에게 총명을 주시느도다. 하나님에 대한 이러한 말은 더 계속된다. 다니엘은 인간의 능력과 정신적인 학식에서 하나님의 현시를 본다. 총명을 주시는 것은 전능자의 영감에 의한다. 인간의 모든 힘은 지식을 얻도록 되어 있고, 인간의 모든 능력은 그러한 올바른 지식을 사용하도록 되어 있다. 이 모든 것들은 하니님에게서 나온다.
23절 우리가 주께 구한 바 일을 내게 알게 하시고. 다니엘은 기도의 응답을 그 자신이 기도한 탓으로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세 친구가 합심하여 같이 기도한 때문으로 설명한다. 그들의 간절한 간구가 하나님이 응답으 fqke는 일에 있어서 그의 기도를 도왔다. 다니엘은 그에게 주신 지식에 감사를 하는 한편 그의 친구들이 제공해 준 도움을 인정한다. 주께서 왕의 그 일을 내게 보이셨나이다. 다니엘은 이곳에서 더욱 분명하게 감사를 드리 이유를 제시한다. 하나님은 왕이 요구하는 것을 그에게 알려주셨다. 사람의 손으로 하지 아니하고 뜨인 돌이. 희랍어역들은 의미상 필수불가결하게 여겨지는 것-“산에서”-에 해당하는 구절을 부연하였다. 이러한 부연은 뒷구절(45절)에서부터 따온 것임이 확실할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 필연성이 이러한 부연을 촉구하였을 것이다.
44절 이 열왕의 때에. 이것은 마지막 왕조를 구성한 왕들, 특히 열 발가락으로 제시된 부속 왕조들의 왕들을 지시하는 것임에 틀림없다. 만약 전통적인 해석이 옳다면, 이 때는 아직 미래다.
45절 부숴뜨린 것을 보신 것은. 느부갓네살이 이 모든 것-이나랑의 성장, 즉 그것이 다른 모든 나라를 파괴하는 방법-을 본 이유가 이제 밝혀질 찰나이다. “크신 하나님이 장래 일을 왕께 알게하신 것이라.” 또는 그것은 “크신 신”으로 번역되어야 한다. 장래 일 문자적으로는 “이 일들 후에 있을 일을”이다. 이것은 임박한 미래를 뜻하는 것이 아니고 현재의 사태 이후를 뜻한다-세계적인 대제국들이 제도 이후 큰 세력들에 의한 세계 지배가 지나간 다음 주의 나라가 설 것이다.
〈제 3 장〉
1절 주라 평지에. 바벨론에는 이와 동일한 곳으로 보이는 여러 장소가 있다. 두라는 성벽 바깥에 있을지 모르나 성벽 내부에 있을 수도 있다. 70인역이 이 사실을 뒷받침해 주고 있다.
6절 극렬히 타는 풀무에 던져 넣으리라.
이 단어는 아람어의 두 가지 방언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위(僞) 요나단의 탈굼(Targum)에서, 또 하란의 죽음과 아브라함의 보호 이야기에서 등장하는데, 여기에 관련된 사건들에서 모방했음이분명하다.
〈제 4 장〉
10절 땅의 중앙에. 이것은 각 나라마다자기들 나라가 세상의 중아지점이거나 omphalos라고 여기는 개념과 관계된다. (gav)는 본래 중앙이 아니고 “뒤”라는 뜻이다. 그런데도 앞장에서는 풀무불에 사용되었고 탈굼(Targums)에서는 그 의미가 완전히 상실되었다.
16절 일곱 때. “때”란 뜻의 iddanun이란 말은 다소 어려운 문제이다. 그것은 실제로 탈굼, 전3:2과 탈굼 옹켈로스(Targum Onkelos) 장38:1, “그 후에” 나 “때”에서와 같이 “절기” 나 “시점”을 의미한다. 그러나 만약 여기서의 이 “때”가 70인역이나 허다한 주석 학자들의 말대로 “연수”란 뜻으로 규정한다면 순전한 독단이다.
〈제 5 장〉
12절 은밀한 말을 밝히며. 어느 누구도 읽을 수 없는 수수께끼를 제시하는 것은 동양 어디에서나 지혜로운 증거였다(요세푸스 8:5,3을 보라. 그 외에도 솔로몬에 관한 탈무드의 이야기를 보라). 그러나 이것은 수수께끼로 시합하는 경우가아니다. 무엇보다도 상대방에게 수수께끼를 제사할 기회같은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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