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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연금술사
2. 이기적 유전자
3. 이기적 유전자
4. 장정일의 공부
5. 엔트로피
6.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7.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8. 집행자
9. 화학 혁명과 폴링
10. 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
11.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12. 화학이 화끈화끈
13. 다윈의 블랙박스
14. 덕혜옹주
15. 즐거운 나의 집
16. 도가니
17. 밀리언 달러 티켓
18. 이기적 유전자
19. 바보 빅터
20. 집행자
21. 3일만에 읽는 과학사
22.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23. 죽은 시인의 사회
24. 생물학카페
25. 마르지 않는 창의성
26. 도가니
27. 바보처럼 일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28. 도가니
29. 인류 이야기 현대편
30.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이야기
31. 향수
32. 집행자
33.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34. 사랑과 교육
35. 세상을 바꾼 수레
36. 인형의 집
37. 열일곱살의 인생론
38.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39. 마지막 한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40. 기자, 편집된 진실을 말하다
2. 이기적 유전자
3. 이기적 유전자
4. 장정일의 공부
5. 엔트로피
6.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7. 지도 밖으로 행군하라
8. 집행자
9. 화학 혁명과 폴링
10. 하리하라의 생물학카페
11.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
12. 화학이 화끈화끈
13. 다윈의 블랙박스
14. 덕혜옹주
15. 즐거운 나의 집
16. 도가니
17. 밀리언 달러 티켓
18. 이기적 유전자
19. 바보 빅터
20. 집행자
21. 3일만에 읽는 과학사
22.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23. 죽은 시인의 사회
24. 생물학카페
25. 마르지 않는 창의성
26. 도가니
27. 바보처럼 일하고 천재처럼 꿈꿔라
28. 도가니
29. 인류 이야기 현대편
30. 역사를 바꾼 17가지 화학이야기
31. 향수
32. 집행자
33. 여자라면 힐러리처럼
34. 사랑과 교육
35. 세상을 바꾼 수레
36. 인형의 집
37. 열일곱살의 인생론
38. 신데렐라 천년의 여행
39. 마지막 한번을 더 용서하는 마음
40. 기자, 편집된 진실을 말하다
본문내용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사람들은 이를 고치려 하지 않았을까? 이 물음에 대해 장정일씨는 ‘이는 곧 형법이 시행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나는 잡히지 않겠지” 라며 끊임없이 범죄를 저지른다’라고 하며 법이 시행됨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이 정부에게, 또한 어른들에게 순종하지 않는 이유를 설명하지만 과연 그의 주장처럼 ‘옳지 못한 법이 시행’되면 그 법의 희생자들은 ‘순응함으로써 그 법을 소멸케’ 해야 하는 것일까?
만약 법의 내용과 의도가 살인죄나 강도죄와 같은 모든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 인정하는, 또한 도덕적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범죄에 한정되는 내용이라면 두말 할 필요 없이 ‘범죄자’들은 ‘범죄’를 그만 둠으로써 법의 시행을 종결시켜야 한다. 그러나, BR법과 같은 의도, 즉 학생들을 극한으로 몰아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주어 후에 집단으로 국가체제에 반대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은 인권, 관습, 도덕 등 어떠한 방면에서 보아도 타당하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에 ‘순종’한다는 것이야 말로 현재 부정한 체제에 대한 맹목적 순응일 뿐 아니라 미래에 자신에게 주어질 저항권에 대한 부정이다.
영화 속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서로를 죽이라’는 BR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그들의 친구를 아무도 죽이지 않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다. 장정일씨는 이에 대해 ‘법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만이 법을 바꾼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이 ‘법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과 ‘그들이 법을 바꾼 것’ 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서로를 죽이는 친구들을 만류하여 모두가 사는 것을 택하는 ‘적극적 저항’을 하지 못하고 단순히 ‘서로를 죽이는’법의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 것뿐인 ‘소극적 저항을’ 선택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의 행위는 불완전하고 ‘최후의 승자’라고 하기에는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장정일의 공부’의 한 예시로써 등장한 ‘배틀로얄’을 직접 본 후, 단순히 책을 읽고 작가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겪었다. 물론 장정일씨의 의견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의견과 나의 의견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었고, 그것은 내가 직접 그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영영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엔트로피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나는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내 생각을 제레미 리프킨이 과학적인 근거들과 함께 정리해서 책으로 펴 낸듯한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집이 새로 지어지는 것을 보고 있을 때면 전기배선이나 수도관 같은 것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것을 상상하게 되고 헌 집이 허물어짐으로 인해 생기는 쓰레기 같은 문제들에 괜스레 머리가 복잡해지고는 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은 책에 비해 아주 기초적이고 작은 것일 테지만 말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라는 책을 통해 열역학 제 2법칙이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독자들에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본질을 알려주고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엔트로피란 열역학 제 2법칙으로 자연현상의 변화가 자연적 방향을 따라 발생하는가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모든 것은 유용한 것에서 무용한 것으로 바뀌며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말하며 이 개념을 세상의 모든 분야에 적용시켜서 우리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를 사용하기 전과 후의 에너지 총량은 같아서 사라지는 에너지는 없지만 이미 사용한 에너지로 같은 일을 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사용이 불가능한 에너지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에너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과학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엔트로피의 증가를 의미하며 이것이 결국 최대에 달했을 때, 지구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엔트로피를 ‘환경오염’이라는 단어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미 엔트로피의 증가가 적정수준을 넘어섰고, 이대로 방치해 두었다가는 곧 무질서의 최대치에 이르러 자원의 고갈과 함께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태어난 것은 죽는다’와 같이 우리가 당연시 여겨왔던 자연적 진리를 법칙으로 서술 한듯하지만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왔던 ‘발전’이란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이란 것이 자연적이 아닌 것임에 따르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반대의 과정은 무질서에서 질서로 옮겨가는 과정이며 이것은 자발적인 아닌 인위적인 통제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른바 발전에 의해 더 질서 있는 물질적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한 편에 그보다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 낸다는 즉 자연세계에서의 인공적 변화가 회복할 새도 없이 엔트로피를 빠른 속도로 증가시킨 다는 것이다. 생산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을 무용으로 바꾸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제레미 리프킨의 생각을 통해 내가 평소에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정리해 보게 되었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이렇게 잘 적용시킨 제레미 리프킨이 존경스러워진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내일 죽는다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지내라’라는 말이 있다. 죽을것이라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살면 올바른 길 즉, 나의 꿈을 실현시킬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에서는 죽을 때 가서 내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열심히 살지 못했다는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후회 없이 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를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후회를 하지 않는 가람은 몇 안 될 것이다. 어떤일을 결정할 때, 사람 관계에서, 물건을 살대, 결정을 내린 후 에도 ‘그냥 저걸로 선택을 할껄’ ‘이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등 크고 작은 후회를 달고 산다. 내 생각에 후회를 하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라 생각한다. 더 좋아지고, 더 완벽해지려는 사람들의 욕심. 나쁜 의도의 욕심이 아니라 책에서도 나오듯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던지, 여행을 떠나고, 고행을 내려가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욕심이라던가, 자식을 결혼 시키려는 부모의 욕심, 나의 존재를 알 릴 수 있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하는 욕심등 말이다.
내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게
만약 법의 내용과 의도가 살인죄나 강도죄와 같은 모든 사회 공동체 구성원이 인정하는, 또한 도덕적 관습적으로 인정되는 범죄에 한정되는 내용이라면 두말 할 필요 없이 ‘범죄자’들은 ‘범죄’를 그만 둠으로써 법의 시행을 종결시켜야 한다. 그러나, BR법과 같은 의도, 즉 학생들을 극한으로 몰아서 서로에 대한 적대감을 심어주어 후에 집단으로 국가체제에 반대하지 못하게끔 하는 것은 인권, 관습, 도덕 등 어떠한 방면에서 보아도 타당하지 못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에 ‘순종’한다는 것이야 말로 현재 부정한 체제에 대한 맹목적 순응일 뿐 아니라 미래에 자신에게 주어질 저항권에 대한 부정이다.
영화 속에서, 두 남녀 주인공은 ‘서로를 죽이라’는 BR법의 취지와는 다르게 그들의 친구를 아무도 죽이지 않지만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된다. 장정일씨는 이에 대해 ‘법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들만이 법을 바꾼다’고 말한다. 물론 그들이 ‘법에 오염되지 않은 사람’이라는 것과 ‘그들이 법을 바꾼 것’ 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주인공들은 서로를 죽이는 친구들을 만류하여 모두가 사는 것을 택하는 ‘적극적 저항’을 하지 못하고 단순히 ‘서로를 죽이는’법의 규칙에 순응하지 않는 것뿐인 ‘소극적 저항을’ 선택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들의 행위는 불완전하고 ‘최후의 승자’라고 하기에는 안타까운 면이 없지 않아 있다.
‘장정일의 공부’의 한 예시로써 등장한 ‘배틀로얄’을 직접 본 후, 단순히 책을 읽고 작가의 의견을 수용하는 것과는 많은 차이를 겪었다. 물론 장정일씨의 의견을 무조건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의 의견과 나의 의견에는 작지 않은 차이가 있었고, 그것은 내가 직접 그 영화를 보지 않았더라면 영영 느끼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엔트로피
이 책을 읽기 시작할 때 나는 조금 놀랐다. 왜냐하면 내가 평소에 생각하던 것과 너무나 비슷했기 때문이다. 정리되지 않은 내 생각을 제레미 리프킨이 과학적인 근거들과 함께 정리해서 책으로 펴 낸듯한 느낌이었다. 예를 들어 집이 새로 지어지는 것을 보고 있을 때면 전기배선이나 수도관 같은 것이 복잡하게 엉켜있는 것을 상상하게 되고 헌 집이 허물어짐으로 인해 생기는 쓰레기 같은 문제들에 괜스레 머리가 복잡해지고는 했다. 아무래도 내 생각은 책에 비해 아주 기초적이고 작은 것일 테지만 말이다. 제레미 리프킨은 엔트로피라는 책을 통해 열역학 제 2법칙이라는 생소한 개념으로 독자들에게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의 본질을 알려주고 그에 따른 의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다.
엔트로피란 열역학 제 2법칙으로 자연현상의 변화가 자연적 방향을 따라 발생하는가를 나타내는 척도이다. 모든 것은 유용한 것에서 무용한 것으로 바뀌며 그것을 되돌릴 수는 없다고 말하며 이 개념을 세상의 모든 분야에 적용시켜서 우리가 변화해야 할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에너지를 사용하기 전과 후의 에너지 총량은 같아서 사라지는 에너지는 없지만 이미 사용한 에너지로 같은 일을 하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즉 엔트로피가 증가한다는 것은 사용이 불가능한 에너지가 증가한다는 것을 의미하게 되는 것이다. 모든 것을 ‘에너지’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과학기술의 발전은 엄청난 엔트로피의 증가를 의미하며 이것이 결국 최대에 달했을 때, 지구는 멸망하게 되는 것이다. 엔트로피를 ‘환경오염’이라는 단어로 생각해 볼 때 우리는 이미 엔트로피의 증가가 적정수준을 넘어섰고, 이대로 방치해 두었다가는 곧 무질서의 최대치에 이르러 자원의 고갈과 함께 지구가 멸망하게 된다는 것이다.
‘태어난 것은 죽는다’와 같이 우리가 당연시 여겨왔던 자연적 진리를 법칙으로 서술 한듯하지만 인간을 위한 것이라고 믿어왔던 ‘발전’이란 것에 대해서는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것이다. 발전이란 것이 자연적이 아닌 것임에 따르는 것이다. 자연에 대한 반대의 과정은 무질서에서 질서로 옮겨가는 과정이며 이것은 자발적인 아닌 인위적인 통제에 의해 이루어진다. 이른바 발전에 의해 더 질서 있는 물질적 환경을 만든다는 것은 동시에 다른 한 편에 그보다 더 큰 무질서를 만들어 낸다는 즉 자연세계에서의 인공적 변화가 회복할 새도 없이 엔트로피를 빠른 속도로 증가시킨 다는 것이다. 생산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을 무용으로 바꾸는 것이라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제레미 리프킨의 생각을 통해 내가 평소에 막연하게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다시 정리해 보게 되었다. 엔트로피의 법칙을 이렇게 잘 적용시킨 제레미 리프킨이 존경스러워진다.
죽을 때 후회하는 스물다섯 가지
‘내일 죽는다 생각하고 하루하루를 지내라’라는 말이 있다. 죽을것이라 생각하고 더욱 열심히 살면 올바른 길 즉, 나의 꿈을 실현시킬수 있다는 말이다.
이 말에서는 죽을 때 가서 내 꿈을 실현하지 못했다는, 열심히 살지 못했다는 후회하지 말고 지금부터라도 후회 없이 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나는 후회를 많이 하는 편이다. 이글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후회를 하고 있다. 이 세상에서 후회를 하지 않는 가람은 몇 안 될 것이다. 어떤일을 결정할 때, 사람 관계에서, 물건을 살대, 결정을 내린 후 에도 ‘그냥 저걸로 선택을 할껄’ ‘이런 말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등 크고 작은 후회를 달고 산다. 내 생각에 후회를 하는 이유는 욕심 때문이라 생각한다. 더 좋아지고, 더 완벽해지려는 사람들의 욕심. 나쁜 의도의 욕심이 아니라 책에서도 나오듯이 만나고 싶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라던지, 여행을 떠나고, 고행을 내려가 마음의 안정을 찾으려는 욕심이라던가, 자식을 결혼 시키려는 부모의 욕심, 나의 존재를 알 릴 수 있는 증거를 남기고 싶어하는 욕심등 말이다.
내가 살아갈 날이 얼마 남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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