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과 항일무장투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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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항일유격대

2. 조국광복회

3. 보천보전투

4. 소련영으로의 이동

5. 조선 공산당 북조선 분국

본문내용

성은 미소 양국의 군대가 남북조선에 진주함으로써 지역적 특수성이 생겨났다는 이유로 분국의 설치를 주장하였으며 1945년 10월 13일 평양에서 서북 5도 당원 및 열성자 연합대회를 열어 서울의 당중앙과는 별개의 당기구로서 조선공산당 부조선 분국을 결성할 것을 결정하였다.
소련은 공산당과 민족주의 세력인 조만식의 조선민주당과의 통일전선 형성을 통해서 북한에 정부를 수립할 구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이러한 구상은 신탁통치 정국이 전개됨으로서 무산된다. 모스크바 3상회의의 결정의 내용을 이루는 신탁통치에 대해 조만식의 조선 민주당은 신탁통치 거부의 의사를 분명히 하였다. 그러나 김일성을 비롯한 북한 공산주의자들은 소련의 합의에 의거한 모스크바 3상결정을 수용하여야 하였고 3상결정의 내용 또한 조선에 민주적 임시정부의 수립을 내용으로 하는 것인 만큼 지지를 표명하였다. 조만식은 소련군과 공산당의 설득에도 3상결정을 받아들이기를 완강히 거부하였다. 조만식은 연금상태에 빠지고 조선민주당의 상당수 인사들이 월남하였으며 궁극적으로 조선민주당을 무력화시키는 작업이 진행되었다.
노동자출신의 민주당원은 공산당으로 이적되었으며 공산당행을 망설이는 인민들을 위해, 민주당과 경합하여 인민의 지지를 확보할 수 있는 정당으로 중도좌파의 이념을 지닌 조선신민당을 결성하였다. 1945년 12월 귀국하였던 연안의 독립동맹 세력들이 조선신민당을 발족하게 하였던 것이다.
1946년 2월 8일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결성하였으며 김일성은 그 위원장이 되었다. 이 조직은 사실상의 정부로서 북한 지역에서의 개혁적 과제들을 수행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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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11.21
  • 저작시기2002.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12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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