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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1. 유교의 형성
2. 유교의 근본이념
- 우주관
- 인간관
- 윤리관
- 정치관
- 교육관
3. 유교의 전개
- 중국유학
- 한국유학
4. 유교사상
- 삼강오륜
5. 유교경전
- 사서삼경
6. 현대적 의미의 유교
7. 한국유교의 종교화
2. 유교의 근본이념
- 우주관
- 인간관
- 윤리관
- 정치관
- 교육관
3. 유교의 전개
- 중국유학
- 한국유학
4. 유교사상
- 삼강오륜
5. 유교경전
- 사서삼경
6. 현대적 의미의 유교
7. 한국유교의 종교화
본문내용
의 진유들에게서 심원한 종교성을 발견할 수 있듯이, 깊고 분명한 대화가 있다면, 성리학적 기초 위에서도 유교의 종교화를 그다지 반대할 만한 소지가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반발의 배경은, 세력으로서의 \'힘\'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통계청의 1995년도 인구주택총조사 보고서(1997)에 따르면 85년에 48만 3천명(1.2%)이던 \'유교 인구\'가, 10년 후인 95년에는 21만 1천명(0,5%)으로 줄어들었으며, 유교인들 중에 53.2%는 50세 이상이었다. 종교로서의 유교는 극히 미미한 세력인 것이다. 그러나 1995년의 한국종교연감에 나온 유교 자체 집계에 따르면 유교인은 1천 18만 1명(산정 근거-제사를 지내고 있는 한국인 수)이었다. 21만의 \'종교\' 보다는 1천만의 \'관습\'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 유림 지도자들의 바램이고, 그 때문에 종교화에 대한 반발 내지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국인의 생활, 문화, 관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유교라는 사실에 대해 자족한다면, 한국 유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이미 유교의 가치관과 관습으로부터 이탈했으며, 관습으로 지탱되어오던 제사, 차례, 성묘 등도 변형되거나 약화되었다. 다음 천년을 주도할 젊은 세대들을 지배하는 것은 서구 과학기술문명과 개인주의이다. 이대로라면, 생활문화로서의 유교는 머잖아 기록영상으로서나 남게 될 것이다.
8,90년대의 유교 종교화 논쟁은 현실적으로 유림의 다수가 유교의 종교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있지 않고, 구태여 종교로서 유교를 갱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물론, \'종교가 아닌\' 유교의 생활화라는 측면도 어느 정도 긍정적이지만, 그 의도가 현실적 힘의 논리에 이끌려 미래를 향해 닫혀있는 것이라면 時中에서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종교화는 유교의 미신화도 아니고, 다른 종교를 일방적으로 모방하는 것도 아니다. 한말 유교 종교화 운동도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유교의 그리스도교화\'라고 볼 수는 없으며, 또한 기복적이고, 열광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종교성을 추구한 것도 아니었다. 한말과 현대의 유교 종교화 운동은 유교의 내적 위기를 종교적 신념과 표현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시도이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종교화운동에 대한 유림의 시각이 전향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인구를 포섭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유교에 대한 정의를 종교에서 생활윤리로 바꾸려고 했던 제국주의자들의 치밀한 의도를 상기해볼 일이다.
세상속에서 초월하는 유교를 기대하며
종교는 그것이 속한 문화의 특성과 긴밀한 상호연관성을 가진다. 유교가 발생한 중국문화는 인간, 자연 현상에 대한 포괄적 이해, 그리고 추상적, 관념적 대상도 현실속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특성을 지녔다. 구보 노리타다의 표현을 빌자면, 중국에서의 종교는 독자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간 것이었다. Julia Ching도, 유교는 \'세속화된 종교\'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
이 세속적 종교성은 세속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 매우 적합한 종교성이다. 교회도, 사찰도 모두 세상에 내려와 있고, 종교 단체들은 지역문제, 환경문제, 신앙인들의 다양한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속화의 물결이 초월을 망각하게 하여, 종교의 근원적 요소를 상실할 수도 있다. 이 때, 내재와 초월의 경계를 넘나들며 양면을 모두 놓치지 않는 종교성을 유교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재적 초월을 현대성 속에서 실현할 유교의 주체는 누구인가. 현대에도 유림이 있다. 공개적 석상에서 유림 지도자들은 \'팔백만(일천만) 유림\'을 대표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사회적 지도력도, 정서적 감화력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깊은 수양을 통해 천입합일에 이르고, 그 힘으로 사회를 향도하는 도학적 삶을 실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의 대안적 발전방향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날 때 늘 수구적 입장의 대표자로 등장하고, 가족법 개정, 동성동본 혼인 문제, 호주법 개정 등 관습해체적 사안을 제외하고는 정치권력에 무척이나 우호적인 집단이 유림이다. 비판정신과 도학정신을 상실한 유림의 현실에서 유교의 미래는 없다.
이제 종교화를 통한 개혁 주체로서 등장해야 할 집단은 시민이다. 과거 유림은, 신분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서 학문적 소양을 겸비한 식자층만의 독점적인 집단이었다. 그러나 신분질서의 해체를 전제로 한 민주주의 시대에, 유림의 주체는 유교적 이상에 동의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유교는 민중의 현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민주주의의 덕목들과, 현대 평등주의의 기본적 요소들을 포함한 종교성을 획득해야 한다.
이러한 세속적 종교, 대중적 유교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학자와 유교 지도자들의 긴밀한 연대가 필요하다. 유교는 본질적으로 \'學\'과 \'敎\'를 구분하지 않았다. 이병헌의 주장처럼, 유교는 종교와 철학을 합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를 새롭게 하기 위한 학문적, 종교적 성찰이 동시에 심도있게 제시되고, 그 내용을 시민의 정신과 행동에 바르게 공급할 수 있다면, 시민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새로운 주체, 곧 개방적 \'시민 유림\'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隨時處中하는 주체의 형성이 유교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종교는 역사적이며, 전개되어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종교로서의 유교는 특정 시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유산이 아니다. 비록 현재 그 활동상이 미미하다 할지라도 유교의 건강한 덕목들은 현대의 종교들에게 많은 영감과 正行의 방향을 제공한다. 그것은 하늘과 하나되면서도 세상을 떠나지 않는 사회성, 종교인의 청빈한 생활, 가까이에서부터 사랑하는(親親) 구체적 仁의 실천과 확장, 후손에 대한 책임성 등과 같은 덕목들이다. 이처럼, 大同의 이상을 가지고 天理를 사회적으로 실현하려는 창조적 소수자들이 남아 있고, 세상속에서 초월하는 유교의 종교성이 현실과 미래에 발언하고 행동하고 있다면, 유교는 우리의 \'뒤\'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옆\'과 \'앞\'에 있다.
그렇다면, 그 반발의 배경은, 세력으로서의 \'힘\'에 대한 욕구가 아닐까? 통계청의 1995년도 인구주택총조사 보고서(1997)에 따르면 85년에 48만 3천명(1.2%)이던 \'유교 인구\'가, 10년 후인 95년에는 21만 1천명(0,5%)으로 줄어들었으며, 유교인들 중에 53.2%는 50세 이상이었다. 종교로서의 유교는 극히 미미한 세력인 것이다. 그러나 1995년의 한국종교연감에 나온 유교 자체 집계에 따르면 유교인은 1천 18만 1명(산정 근거-제사를 지내고 있는 한국인 수)이었다. 21만의 \'종교\' 보다는 1천만의 \'관습\'을 현실로 받아들이고 싶은 것이 유림 지도자들의 바램이고, 그 때문에 종교화에 대한 반발 내지 소극적 태도를 취한 것은 아닐까.
그러나 한국인의 생활, 문화, 관습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 유교라는 사실에 대해 자족한다면, 한국 유교의 미래는 어두울 수밖에 없다. 급격하게 변화하는 현대사회는 이미 유교의 가치관과 관습으로부터 이탈했으며, 관습으로 지탱되어오던 제사, 차례, 성묘 등도 변형되거나 약화되었다. 다음 천년을 주도할 젊은 세대들을 지배하는 것은 서구 과학기술문명과 개인주의이다. 이대로라면, 생활문화로서의 유교는 머잖아 기록영상으로서나 남게 될 것이다.
8,90년대의 유교 종교화 논쟁은 현실적으로 유림의 다수가 유교의 종교성에 대해서 관심을 갖고있지 않고, 구태여 종교로서 유교를 갱신해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 물론, \'종교가 아닌\' 유교의 생활화라는 측면도 어느 정도 긍정적이지만, 그 의도가 현실적 힘의 논리에 이끌려 미래를 향해 닫혀있는 것이라면 時中에서 어긋나고 있는 것이다.
종교화는 유교의 미신화도 아니고, 다른 종교를 일방적으로 모방하는 것도 아니다. 한말 유교 종교화 운동도 그리스도교의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지만, \'유교의 그리스도교화\'라고 볼 수는 없으며, 또한 기복적이고, 열광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종교성을 추구한 것도 아니었다. 한말과 현대의 유교 종교화 운동은 유교의 내적 위기를 종교적 신념과 표현으로 극복하려고 했던 시도이다. 그런 점에서 유교의 종교화운동에 대한 유림의 시각이 전향적으로 바뀔 필요가 있다.
더 많은 인구를 포섭할 가능성이 있는데도, 유교에 대한 정의를 종교에서 생활윤리로 바꾸려고 했던 제국주의자들의 치밀한 의도를 상기해볼 일이다.
세상속에서 초월하는 유교를 기대하며
종교는 그것이 속한 문화의 특성과 긴밀한 상호연관성을 가진다. 유교가 발생한 중국문화는 인간, 자연 현상에 대한 포괄적 이해, 그리고 추상적, 관념적 대상도 현실속에서 구체적으로 설명하려는 특성을 지녔다. 구보 노리타다의 표현을 빌자면, 중국에서의 종교는 독자적 가치를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세속으로 용해되어 들어간 것이었다. Julia Ching도, 유교는 \'세속화된 종교\'로서의 새로운 가능성을 담고 있다고 보았다.
이 세속적 종교성은 세속화를 특징으로 하는 현대 사회에 매우 적합한 종교성이다. 교회도, 사찰도 모두 세상에 내려와 있고, 종교 단체들은 지역문제, 환경문제, 신앙인들의 다양한 삶에 대해 관심을 기울일 수 밖에 없다. 그러나 한편으로, 세속화의 물결이 초월을 망각하게 하여, 종교의 근원적 요소를 상실할 수도 있다. 이 때, 내재와 초월의 경계를 넘나들며 양면을 모두 놓치지 않는 종교성을 유교에서 배울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내재적 초월을 현대성 속에서 실현할 유교의 주체는 누구인가. 현대에도 유림이 있다. 공개적 석상에서 유림 지도자들은 \'팔백만(일천만) 유림\'을 대표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그러나 과거와 같은 사회적 지도력도, 정서적 감화력도 담보하고 있지 못하다. 그들은 깊은 수양을 통해 천입합일에 이르고, 그 힘으로 사회를 향도하는 도학적 삶을 실천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다만, 사회의 대안적 발전방향을 둘러싼 논란이 일어날 때 늘 수구적 입장의 대표자로 등장하고, 가족법 개정, 동성동본 혼인 문제, 호주법 개정 등 관습해체적 사안을 제외하고는 정치권력에 무척이나 우호적인 집단이 유림이다. 비판정신과 도학정신을 상실한 유림의 현실에서 유교의 미래는 없다.
이제 종교화를 통한 개혁 주체로서 등장해야 할 집단은 시민이다. 과거 유림은, 신분적 기반을 가지고 있으면서 학문적 소양을 겸비한 식자층만의 독점적인 집단이었다. 그러나 신분질서의 해체를 전제로 한 민주주의 시대에, 유림의 주체는 유교적 이상에 동의하는 시민이 되어야 한다. 그것을 위해 유교는 민중의 현안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며, 민주주의의 덕목들과, 현대 평등주의의 기본적 요소들을 포함한 종교성을 획득해야 한다.
이러한 세속적 종교, 대중적 유교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유학자와 유교 지도자들의 긴밀한 연대가 필요하다. 유교는 본질적으로 \'學\'과 \'敎\'를 구분하지 않았다. 이병헌의 주장처럼, 유교는 종교와 철학을 합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유교를 새롭게 하기 위한 학문적, 종교적 성찰이 동시에 심도있게 제시되고, 그 내용을 시민의 정신과 행동에 바르게 공급할 수 있다면, 시민적 지향을 분명히 하는 새로운 주체, 곧 개방적 \'시민 유림\'을 형성할 수 있을 것이다. 隨時處中하는 주체의 형성이 유교의 지속과 발전을 위한 필수 조건이다.
종교는 역사적이며, 전개되어가고 있는 과정 중에 있다. 종교로서의 유교는 특정 시대에 나타났다가 사라진 유산이 아니다. 비록 현재 그 활동상이 미미하다 할지라도 유교의 건강한 덕목들은 현대의 종교들에게 많은 영감과 正行의 방향을 제공한다. 그것은 하늘과 하나되면서도 세상을 떠나지 않는 사회성, 종교인의 청빈한 생활, 가까이에서부터 사랑하는(親親) 구체적 仁의 실천과 확장, 후손에 대한 책임성 등과 같은 덕목들이다. 이처럼, 大同의 이상을 가지고 天理를 사회적으로 실현하려는 창조적 소수자들이 남아 있고, 세상속에서 초월하는 유교의 종교성이 현실과 미래에 발언하고 행동하고 있다면, 유교는 우리의 \'뒤\'가 아니라 여전히 우리 \'옆\'과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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