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복 음 서 전 승 의 기 원
제 2 장 교사와 제자들
제 3 장 구두 전승
제 4 장 신약성경에서 토라 전승에 대한 암시들
제 5 장 초대 기독교에서의 전승
제 6 장 전승의 전달자로서의 바울
제 7 장 바울과 예수 전승
제 8 장 초대 기독교와 과거
제 9 장 \"유일한 교사\"에 대한 집중
제 10 장 예수라는 관점에서의 연속성
제 11 장 초대 기독교에서의 인격적인 연속성
제 12 장 예수에서 복음서까지
제 13 장 \"모든 진리\"
제 2 장 교사와 제자들
제 3 장 구두 전승
제 4 장 신약성경에서 토라 전승에 대한 암시들
제 5 장 초대 기독교에서의 전승
제 6 장 전승의 전달자로서의 바울
제 7 장 바울과 예수 전승
제 8 장 초대 기독교와 과거
제 9 장 \"유일한 교사\"에 대한 집중
제 10 장 예수라는 관점에서의 연속성
제 11 장 초대 기독교에서의 인격적인 연속성
제 12 장 예수에서 복음서까지
제 13 장 \"모든 진리\"
본문내용
면, 비공식적인 기록집(notes)을 포함하였음에 틀림없다. 랍비들은 이들을 "비밀 두루마기"(secret scrolls)로 불렀으묘, 헬라 교사들은 이들에 대해 "비망록"(memoranda)으로 말하기도 하였으나 완전한 책의 형태는 아니었다. 그러나 바울은 이들 구절 에서 구두 전달에 대해 언급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만일 우리가 공관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씀들-말씀과 비유들을 살펴본다면, 이들의 예술적인 형태에 놀랄 것이다. 공관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말씀들은 평소에 하신 말씀들이 설교나 교리적 담화들 중에서 제멋대로 취사선택한 것일 수도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예수의 말씀들은 간결하고, 함축성이 있으며, 본문이 잘 계획되어 있고, 내용상 풍부하고 형식상 시적적인 분명한 윤곽을 갖추고 있는 주목할 만한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적으로 계획되어 있다는 것은 생생한 내용, 연으로 된 구성, 댓구법, 축어적인 반복 등의 헬라 전승 형식의 이러한 본문들을 아람어로 역번역해보면 이를 훨씬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리듬, 유운법, 그리고 두운법과 같은 특징들을 예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된 것과 그리고 의도적으로 구성한 진술들을 다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예수가 순전히 옛잘 형태의 대중적인 지혜교사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내용으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때때로 전승적인 지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내적인 비밀들, 그 통치의 "신비함" 뿐만 아니라 외적이며 분명한 특징들까지 자기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그는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으며-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케뤼그마-그는 이를 비유와 속담(행동까지도_의 도움을 받아 표현하였다. 아울러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일이 선지자적 영감으로 그리고 메시야적 권위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청중들에게 비유들(meshalim)을 설명하셨으며 제자들은 무엇보다도 그 비유들을 암기하고, 이들을 깊이 묵상하고, 아울러 이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함께 존의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보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예수에 대한 담화본문들이 비유들을 보충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담화 전승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디벨리우스가 "이야기"로 언급하는 자세한 기록들은 이 문맥에서 특별한 문제들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담화 전승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말씀 자료들을 보충하게 되었는지를 매우 쉽게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자신을 말씀으로만 드러내시지 않았다. 그는 도한 수 많은 특징적인 행위들을 하였다. 수난 이야기에 관해서는, 이 담화의 기초 작업이 분명히 부활 이후 얼마 안되어 일어 났는데, 왜냐하면 초기 기독교는 수난 이야기라는 가장 수수께끼 같은 비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초대교회가 예수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에 대하여 분명히 알게된 것은 예수의 메시야로서의 신분과 독특한 지위에 대한 명백한 이해가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관복음서 전승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균형잡힌 이해를 하길 원하다면, 이러한 견해들은 우리들의 세밀한 관심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전승에서의 개별적인 요소들이 자료들을 모으는데 사용된 편집 형태 이전이라는 견해에 각자의 관점을 제한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관복음서 전승의 기원에 대한 역사는 여러 다양한 부분들이 어떻게 생겨나서 결합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일 뿐만 아니라, 전체와 부분 사이의 상호관계의 역사이며, 또한 전체적인 견해와 구체적인 내용의 형성 사이의 역사이기도 한데, 이는 전체 전승의 형성과정 동안에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제 13 장 "모든 진리"
공관복음서에서 어떤 후대의 "발달한 기독론"이 지상적 예수의 특징적인 묘사를 삭제할 수는 없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나타나신 전형적인 특징들이 보존되어 있다. 즉 예수는 신비하지만 하나님의 도래하는 통치를 권위있게 나타내시는 분으로서 권능을 가지시고 나타나셨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했던 것이다(비유의 형태로).
예수는 자신을 성경과 연관지어서 가르치셨으며, 아울러 공관복음서 내용도 분명히 공관복음서가 최종적으로 기록되기까지의 전 기간을 이와 같은 동일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연관성은 픗성하지만 그러나 전승에 안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전승의 어법과 관련해서도 -그리고 또한 여기서는 주로 말씀 전승의 어법-복음서들은 그 내용이 존경과 관심으로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예수 전승의 내용에 변화가 일어난 수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명심해야할 한가지 중요한 요소는 아람어 및 히브리어에서부터 헬라어로 그 내용이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 언어 모두를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어떤 번역본도 없으며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번역본들이 축어적으로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시락서(the Book of Sirach)의 서문은 이러한 견해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각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의 가까운 제자들이 예수의 지상 사역 동안에도 예수를 상세하게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또한 부활절 이후에야 비로소 진리의 많은 측면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초대 교회의 인식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예수의 말씀과 또한 그에 대해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일이 거룩한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하다. 요한은 교회가 예수를 뷰활절 후에야 보다 완전하게 이해 있다는 사실을 그 나름대로의 설명으로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의 예수는 그의 초대 기독교 해석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같다. 그것을 랍비적 용어로 말하면, 우리는 초대 기독교 해석자들이 여기서 우리들과 함축성 있는 말씀을 하신 지상적 예수 사이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에는 역사적 근거 위에 굳게 서고자 하는 표현이 있다.
만일 우리가 공관복음서에서 예수의 말씀들-말씀과 비유들을 살펴본다면, 이들의 예술적인 형태에 놀랄 것이다. 공관복음서에 있는 예수의 말씀들은 평소에 하신 말씀들이 설교나 교리적 담화들 중에서 제멋대로 취사선택한 것일 수도 없다. 그 보다는 오히려 예수의 말씀들은 간결하고, 함축성이 있으며, 본문이 잘 계획되어 있고, 내용상 풍부하고 형식상 시적적인 분명한 윤곽을 갖추고 있는 주목할 만한 진술로 구성되어 있다. 예술적으로 계획되어 있다는 것은 생생한 내용, 연으로 된 구성, 댓구법, 축어적인 반복 등의 헬라 전승 형식의 이러한 본문들을 아람어로 역번역해보면 이를 훨씬 더 분명하게 알 수 있다. 그리하여 우리는 리듬, 유운법, 그리고 두운법과 같은 특징들을 예수의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다. 우리는 여기서 주의 깊게 생각된 것과 그리고 의도적으로 구성한 진술들을 다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이것은 예수가 순전히 옛잘 형태의 대중적인 지혜교사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내용으로부터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그가 때때로 전승적인 지혜를 사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그는 하나님의 통치에 대하여 내적인 비밀들, 그 통치의 "신비함" 뿐만 아니라 외적이며 분명한 특징들까지 자기 자신만의 독창적인 방식으로 말씀하신다. 그는 하나의 메시지를 가지고 있었으며-하나님의 통치에 대한 케뤼그마-그는 이를 비유와 속담(행동까지도_의 도움을 받아 표현하였다. 아울러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이 일이 선지자적 영감으로 그리고 메시야적 권위로 행해졌다는 것이다.
예수는 그의 청중들에게 비유들(meshalim)을 설명하셨으며 제자들은 무엇보다도 그 비유들을 암기하고, 이들을 깊이 묵상하고, 아울러 이들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를 함께 존의 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제자들이 예수의 가르침을 보존하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예수에 대한 담화본문들이 비유들을 보충하기 위해 나타났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다.
모든 담화 전승들을 동일한 방식으로 다루는 것은 가능한 일이 아니다. 디벨리우스가 "이야기"로 언급하는 자세한 기록들은 이 문맥에서 특별한 문제들을 제공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어떻게 담화 전승들이 매우 자연스럽게 말씀 자료들을 보충하게 되었는지를 매우 쉽게 상상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예수는 자신을 말씀으로만 드러내시지 않았다. 그는 도한 수 많은 특징적인 행위들을 하였다. 수난 이야기에 관해서는, 이 담화의 기초 작업이 분명히 부활 이후 얼마 안되어 일어 났는데, 왜냐하면 초기 기독교는 수난 이야기라는 가장 수수께끼 같은 비유를 받았기 때문이었다.
초대교회가 예수의 고난, 죽음, 그리고 부활의 의미에 대하여 분명히 알게된 것은 예수의 메시야로서의 신분과 독특한 지위에 대한 명백한 이해가 수반되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공관복음서 전승의 기원과 역사에 대해 균형잡힌 이해를 하길 원하다면, 이러한 견해들은 우리들의 세밀한 관심을 받을만한 가치가 있다. 전승에서의 개별적인 요소들이 자료들을 모으는데 사용된 편집 형태 이전이라는 견해에 각자의 관점을 제한시키는 일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공관복음서 전승의 기원에 대한 역사는 여러 다양한 부분들이 어떻게 생겨나서 결합되었는지에 대한 역사일 뿐만 아니라, 전체와 부분 사이의 상호관계의 역사이며, 또한 전체적인 견해와 구체적인 내용의 형성 사이의 역사이기도 한데, 이는 전체 전승의 형성과정 동안에 일어났음이 분명하다.
제 13 장 "모든 진리"
공관복음서에서 어떤 후대의 "발달한 기독론"이 지상적 예수의 특징적인 묘사를 삭제할 수는 없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나타나신 전형적인 특징들이 보존되어 있다. 즉 예수는 신비하지만 하나님의 도래하는 통치를 권위있게 나타내시는 분으로서 권능을 가지시고 나타나셨다. 그는 하나님의 통치를 선포했던 것이다(비유의 형태로).
예수는 자신을 성경과 연관지어서 가르치셨으며, 아울러 공관복음서 내용도 분명히 공관복음서가 최종적으로 기록되기까지의 전 기간을 이와 같은 동일한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이 연관성은 픗성하지만 그러나 전승에 안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이 분명하다.
예수전승의 어법과 관련해서도 -그리고 또한 여기서는 주로 말씀 전승의 어법-복음서들은 그 내용이 존경과 관심으로 보존되어 왔다는 사실을 반영하고 있다.
예수 전승의 내용에 변화가 일어난 수 많은 요인들이 있지만, 명심해야할 한가지 중요한 요소는 아람어 및 히브리어에서부터 헬라어로 그 내용이 번역되었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두 언어 모두를 알고 있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본과 완전히 동일한 어떤 번역본도 없으며 두 개 혹은 그 이상의 번역본들이 축어적으로 결코 동일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시락서(the Book of Sirach)의 서문은 이러한 견해가 새로운 것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다.
각 복음서에서 우리는 예수의 가까운 제자들이 예수의 지상 사역 동안에도 예수를 상세하게 잘 이해하지 못했으며 또한 부활절 이후에야 비로소 진리의 많은 측면들을 알게 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초대 교회의 인식이 반영되고 있음을 알고 있다. 더 나아가서 우리는 예수의 말씀과 또한 그에 대해 일어난 일을 설명하는 일이 거룩한 성경을 해석하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주목해야 하다. 요한은 교회가 예수를 뷰활절 후에야 보다 완전하게 이해 있다는 사실을 그 나름대로의 설명으로 우리에게 하고 있는 것이다.
요한의 예수는 그의 초대 기독교 해석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하고 있는 것같다. 그것을 랍비적 용어로 말하면, 우리는 초대 기독교 해석자들이 여기서 우리들과 함축성 있는 말씀을 하신 지상적 예수 사이에 서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복음에는 역사적 근거 위에 굳게 서고자 하는 표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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