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신화를 읽고 - 여러 신화의 분석과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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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의 신화를 읽고 - 여러 신화의 분석과 감상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시작하면서

2. 신화의 이해
(1) 신화의 성격 - 정의, 기능, 민담이나 전설과 다른 점
(2) 신화의 특징
(3) 신화의 기원과 전파
(4) 신화의 발전과 변화
(5) 신화의 분류
(6) 신화를 수록한 문헌

3. 문헌신화
단군, 해모수 등 신화의 자세한 소개.

본문내용

그를 사위로 맞았다.
그 뒤, 오래지 않아 졸본주의 왕은 죽고 주몽이 그 자리를 계승했다. 주몽은 그 졸본주 왕녀와의 사이에 두 아들을 낳았다. 맏아들이 비류요, 둘째 아들이 온조다.
이들 비류와 온조는 나중에 태자에게 용납되지 않을 것을 우려하여 마침내 오간과 마려등 열사람의 부하들과 함께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들을 따르는 백성들이 많았다.
비류와 온조 일행은 드디어 한산에 이르렀다. 그들은 부아악에 올라가 근거지가 될만한 땅이 있는가 바라보았다. 비류는 바닷가에서 근거지를 잡으려고 했다. 열사람의 그 부하들은 비류에게 간했다
\"이 하남의 땅은 북쪽으로 한수를 끼고 동쪽으로는 높은 멧부리에 의지하고, 남쪽으로 기름진 들이 펼쳐져 있고, 그리고 서쪽은 큰 바다로 막혀 있어 그 천연으로 이룩된 요새의 이로움으로 보아 얻기가 어려운 지세이온데 이곳에서 도읍을 일으키는 것이 역시 마땅하지 아니하겠습니까.\"
비류는 부하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다. 그리고 그는 따라온 백성들을 아우 온조와 나누어 미추홀(지금의 인천)로 가서 자리 잡았다. 온조는 하남 위례성에 도읍을 정하고서 그 열 사람의 신하들을 그의 보익으로 하여 국호를 <십제>라 했다. 그것은 한나라 성제 15년(BC 18)의 일이었다.
비류는 미추홀의 땅이 습하고 물이 짠 때문으로 하여 안거할 수가 없어 되돌아왔다. 돌아와, 위례에 도읍이 바야흐로 자리 잡히고 인민들이 편안히 살고 있는 것을 보고 그는 마침내 부끄러움과 후회로 하여 죽고 말았다. 그의 신하와 백성들은 모두 위례성으로 돌아왔다. 돌아올 때 백성들이 즐거워했다고 해서 그뒤 국호를 <백제>로 고쳤다. 백제의 세계는 고구려와 함께 다같이 부여에서 나왔으므로 <씨(氏)>를 <해(解)>라고 했다.
6. 김수로왕과 허화옥
천지가 개벽한 이후로 이곳에는 나라의 이름도 없었고, 단지 구간(九干)들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이 백성을 통솔하니 칠만 오천명의 백성들이 모여 살고 있었다. 후한의 세조 광무제 건무 18년 임인 3월 계욕일에 백석 2, 3백명이 구지봉에 모여 있었는데 하늘에서 말소리가 들렸다. 그 목소리는 자신은 하늘의 명을 받아 이곳을 다스리러 왔다면서, 구지가를 부르면서 산봉우리의 흙을 파라고 하였다. 구간들이 기뻐하면서 노래하고 춤을 추며 땅을 파다 보니 하늘에서 자주색 줄에 매인 상자가 내려오는 것이었다. 그 상자를 열어보니 해와 같이 둥근 황금알 여섯 개가 있었다. 사람들이 그 알들을 잘 모시고 마을로 돌아오니, 다음 날 그 알들에서 어린 아이들이 태어나 있었다. 여섯 알 중에서 제일 먼저 난 자를 ‘수로’라 하였으며, 십여 일이 지나니 9척의 건장한 남자가 되었다. 그를 그달 보름에 왕위에 올렸고, 나라 이름을 대가락, 또는 가야국이라고 하였다. 나머지 다섯 사람도 각각 다섯 가야의 왕이 되었다. 후에 백성들이 일하지 않는 때를 이용하여 궁궐들과 관청, 각 건물들을 지었다. 후에 완하국의 알에서 태어난 탈해란 자가 수로에게 왕을 자리를 뺏겠다고 찾아왔다. 술법으로 내기를 하였는데 왕의 술법은 탈해의 술법을 능가하였다. 탈해는 계림의 땅으로 도망하였다.
건무 24년 무신 7월 27일에 구간 등이 조회할 때 왕에게 왕비를 맞이할 것을 건의하였다. 왕은 하늘이 자신에게 짝을 보내줄 것이라고 답하였다. 왕이 드디어 유천간에게 작은 배와 준마를 가지고 망산도에 가 서서 기다리게 하고, 신귀간에게 명령하여 승점으로 가게 하였더니 바다 서쪽에 홀연히 붉은 돛을 단 배가 나타났다. 유천간이 횃불을 올리니 사람들이 육지에 내려 뛰어오므로 신귀간이 대궐로 와서 왕에게 고하게 되었다. 왕이 기뻐하며 구간 등을 보내 맞이하게 하였다. 왕후가 이들에게 말하기를, 알지 못하는 이들을 경솔히 따라갈 수 없다고 하였으므로 왕이 나아가 장막을 치고 왕후를 맞이하였다. 이에 왕후는 자신이 입던 비단바지를 벗어 하늘에 폐백으로 바치고, 패물들을 가지고 임시 궁전으로 들어갔다. 왕이 일행을 후히 대접하고 왕후와 침소에 들자 왕후가 말하기를 자신은 아유타국의 공주인데 이름을 황옥이라고 한다 하였다. 부모가 꿈에서 상제를 뵈었는데 상제가 자신을 성왕의 배필로 정하였다 하므로, 자신이 이곳으로 오게 되었다고 말하였다. 8월 1일 왕과 왕후는 나란히 수레를 타고 돌아왔다. 환궁한 후 관직의 이름과 품계를 새로 하고 왕후와 나라를 다스리니, 나라가 더욱 평안하여졌다. 영제 중평 6년 기사 3월 1일에 왕후가 157세의 나이로 죽으니 모두가 땅이 꺼진 듯 슬퍼하였고, 구지봉 북쪽 언덕에 제사를 지내었다. 왕도 왕후가 죽은 지 10년만에 158세의 나이로 죽었다.
7. 혁거세와 알영
진한땅에 옛날에는 여섯 마을이 있었다. 그 첫째의 것이 알천 양산촌이고, 그 둘째의 것이 돌산 고허촌이다. 육촌의 그 셋째의 것은 무산 대수천이다. 그 넷째의 것은 취산 진지촌, 그 다섯째의 것은 금산 가리촌이며, 육촌의 그 여섯째의 것은 명활산 고야촌이다.
중국 전한의 선제 5년 3월 초하룻날에 있었던 일이다.
육부의 조상, 즉 육촌의 우두머리들은 각기 그 자제들을 데리고 알천 냇가 언덕에 모였다. 회의를 하기 위해서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우리에겐 위에 군림하여 백성을 다스려 갈 군주가 없다. 때문에 백성들은 각자 제 마음 내키는 대로들 행동하여 질서가 잡혀지지 않고 있다. 어찌 덕 있는 분을 찾아내어 군주로 맞이하지 않겠으며 나라를 세우고 도성을 갖추지 않을까 보냐.\"
그때다. 회의 장소인 알천 냇가에서 남쪽으로 그다지 말지 않은 양산 기슭에 이상한 서기가 보였다. 그들은 좀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바라보았다. 양산 기슭의 나정곁, 그 신비스러운 서기는 땅으로 드리워져 있었고, 그것은 마치 전광과 같았다. 그리고 그 서기가 드리워진 곳엔 흰 말 한 마리가 꿇어 절하는 모양을 하고 있었다. 그들은 그곳으로 몰려갔다. 그리고 흰말이 절하고 있는 곳을 찾았다. 그 흰말앞에는 자주빛 알이 하나 놓여 있었다. 말은 사람들을 보더니 길게 소리쳐 울고는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 알을 잘라 보았다. 알에선 한 사내아이가 나왔다. 생김새가 단정하고 아름다웠다. 모두들 놀랍고 신기해 했다. 아이를 동천에 데리고 가서 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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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13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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