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문화재에 관한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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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불교 문화재 개관(1) - 불상(佛像)
1) 불상
2) 불상의 종류와 특징
3) 우리나라의 불상

불교 문화재 개관(2) - 탑(塔婆, Stupa)
1)탑의 시작
2)백제탑
3)신라탑
4)통일 신라탑
4)고려탑
5)조선시대
6)우리 탑의 특징

불교 문화재 개관(3) -부도(浮屠)
1. 팔각형(八角形) 부도
2.종형(鐘形) 부도
3.이형(異形) 부도

불교 문화재 개관(4) - 범종(梵鐘)
1. 우리나라 종의 전형적인 형태 - 통일 신라 시대의 종 2. 고려시대 종
3. 조선시대 종

본문내용

고 낮은 네모난 받침 위에 간결해진 몸체에 상륜이 올려지기도 하고, 후기에 가서는 짜임새가 간략해진 낮은 8각 받침 위에 종형 몸체가 놓이기도 하며 몸체에 탑명이 들어가고 상륜과 하나의 돌로 이루어지기도 한다. 나아가 위 아래 양끝은 잘라버린 대추꼴 같은 몸체도 나타나고, 그 위에 8각이나 4각 또는 8작 지붕이 얹혀 8각형 부도 같은 느낌마저 주게 된다.
3.이형(異形) 부도
석탑과 같이 방형 이층 기단 위에 몸체가 올려진 진전사 승탑(9c 중엽)이 있고 대리석으로 몸체를 둥글게 만들고 도드라진 띠줄로 감싼 정토사 홍법국사 실상탑(1017)이 있다. 높이 6.1m의 법천사 지광국사 현묘탑(1085)은 2층의 석탑과 같은 꼴로 원의 영향으로 온갖 무늬가 새겨져 있다.
불교 문화재 개관(4) - 범종(梵鐘)
절에서 사람을 모으게 하거나 시각을 알리기 위하여 치는 종으로 경종(鯨鐘)당종(撞鐘) 또는 조종(釣鐘)이라고도 한다. 범종의 신앙적인 의미는 종소리를 듣는 순간만이라도 번뇌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는 데 있다. 따라서 ㅇ종소리를 듣고 법문(法門)을 듣는 자는 오래도록 생사(生死)의 고해(苦海)를 넘어 불과(佛果)를 얻을 수 있다고 한다.
범종은 불교적인 금속 공예품 가운데에서도 으뜸의 자리를 차지하는 특수한 종류이다. 여러 불교 국가에서는 예로부터 크고 작은 종들이 숱하게 조성되어 왔는데 그 재료는 주로 구리를 사용하였다. 고대종(古代鐘)의 화학성분을 분석해 보면 대개 구리 가 80%에 주석이 13%정도의 조성(組成)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종의 강도와 경도(硬度)의 최적상태는 주석이 15% 내외로 함유되었을 때라는 사실이 밝혀지고 있으니 선인들의 지혜에 새삼 놀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1. 우리나라 종의 전형적인 형태 - 통일 신라 시대의 종
우리나라 鐘은 형태면에서 그 기원을 대체로 용종(甬鐘)이라는 중국 古銅器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의 범종은 중국이나 일본종과는 달리 매우 독특한 형태와 의장을 지니고 있다.
즉 종의 정상부에는 한 마리의 용이 목을 구부리고 입을 벌려 마치 종을 물어 올리는 듯한 형상을 하고 있다. 이것을 용뉴(龍)라 부르며 이 용뉴는 종을 매달기 위한 고리를 장식적으로 고안한 것이다. 그 옆으로는 대롱 형태의 용통(龍筒;音筒, 音管)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용통은 속이 버었고 그 하부가 종신 내부와 관통되도록 구멍이 뚫린 점으로 미루어 종의 울림소리(共鳴)에 어떠한 역할을 하도록 특별히 고안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우리나라 종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형식이다. 그리고 종신의 상대(上帶)와 종구부분에는 동일한 문양대를 두었는데 이것을 상대와 하대라 부른다. 이곳에는 당초문이나 보상화문, 연화문 등의 장식 문양을 새겨놓았다. 상대의 바로 아래로는 방형(方形)의 유곽(乳廓)을 네 방향에 배치하였다. 이 유곽마다에는 각각 9개씩의 유두(乳頭)가 돌출되어 있는데 그 형상이 마치 연꽃이 피어나기 직전의 봉우리 모습으로 표현된다. 그리고 유곽 아래로 종신의 중간쯤에는 원형의 당좌(撞座)를 두곳에 만들었고 그 사이의 여백에는 비천상(飛天像)이나 주악천인상(奏樂天人像), 공양상(供養像을 장식하였다.
이상은 통일 신라종의 전형적인 양식으로서 한국의 범종은 이러한 통일 신라종을 모본(母本)으로하여 각 시대마다 조금씩 변모되어 간 것임을 알 수 있다.
국내에 남아있는 통일 신라 범종으로는 오대산 상원사 소장의 725年銘 종이 가장 오래된 것이며, 성덕대왕신종(771년)은 그 높이가 3.3m에 달하는 동양 최대의 종이다. 그 밖에도 일본에도 天復四年銘鐘(904년)을 비롯한 여러 점의 통일 신라종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2. 고려시대 종
고려시대의 범종은 통일 신라의 전형적인 종 양식에서 조금씩 변화를 가져와 전체적인 형태에 담긴 긴장감이라든지 세련된 선은 오히려 둔화된 듯한 느낌을 주게 된다.
세부적으로는 종견 위에 입화(立花) 장식이 마련되며 종구가 넓어지는 경향을 띠고 있다. 종신에는 특히 비천이나 주악천인상 대신에 연화좌 위에 앉은 여래상, 보살상 또는 삼존상을 장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용통은 형식적인 면만이 강조되고 용두 부분이 천판에서 떨어져 앞을 바라보게 된다. 고려 중기 이후에는 네 당좌를 가진 종이 제작되기도 하며 유곽이 원형으로 표현한 독특한 예도 등장한다. 고려 후기에 이르러서는 종의 규모가 축소되어 그 크기가 30cm 내외의 실내용으로 추정되는 소종이 다량으로 제작되었다.
국립 박물관 소장의 천흥사종(1010년), 1222년에 제작된 부안 내소사종이나 1233년의 탑산사종 등이 대표적인 고려 종이다.
3. 조선시대 종
조선시대의 종은 고려 말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中國鐘化 경향이 완전히 정착되었다. 즉 조선시대 초기의 종의 경우 크기는 통일 신라종과 같이 대형화되었으나 용통은 없어지고 한 마리의 용뉴가 쌍용으로 바뀌었다 종신의 중간쯤에는 두세 줄의 횡대(橫帶)가 융기선으로 장식되었다. 또한 상대와 하대의 구별이 없어지는 대신 범자문(梵字文), 용문(龍文), 파도문(波濤文)등이 필요 이상으로 빽빽히 시문되어 번잡해진 느낌을 준다. 유곽은 상대에서보다 밑으로 내려오며, 조선 후기의 경우 유곽과 유두가 완전히 사라진 예도 볼 수 있다. 뿐만 아니라 당좌가 소멸되며 있다 해도 지극히 형식적인 도안화 문양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종신에 장식되는 합장한 모습의 보살입상이나 지장보살 등은 아직까지 한국 전통 범종 양식이 잔존한 예임을 알 수 있다.
한편 임란 이후 사찰의 중건이 많아짐에 따라 범종의 제작도 증가하였다. 이 시기에는 오히려 통일 신라나 고려시대의 범종 양식을 일부 답습한 복고적인 경향의 작품도 만들어졌다. 음통과 용뉴가 생겨나고 당좌와 유곽까지 만들어지지만 그 자체가 지극히 형식적이고 문양 역시 치졸하여 주조 기술의 급격한 퇴락을 살펴볼 수 있다.
조선 전기에 제작된 대표적인 범종으로는 해인사종(1491년), 갑사종(1584년)을 들 수 있다. 후기의 종으로는 현재까지 사찰에서 사용되고 있는 대부분의 종들로서 쌍계사종(1641년), 대흥사종(1703년) 등 한국종 가운데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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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3.06
  • 저작시기2006.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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