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조선(대한제국)과 청나라(중화인민) 시대기
후말기의 조선의 대한제국과 청의 정치외교관계
조선과 청의 傳統的 冊封朝貢關係에 대한 國際的 論難
壬午軍亂과 청조선 宗屬關係의 强化와 變質
甲申政變과 傳統的 冊封朝貢關係의 崩壞
淸日戰爭과 傳統的 韓中關係의 終結
조선과 청의 國境紛爭
조선말 대한제국청말의 韓中經濟文化交流
朝淸常民水陸貿易章程의 締結과 傳統的 經濟關係의 終焉
開化思想과 近代化情報의 共有
후말기의 조선의 대한제국과 청의 정치외교관계
조선과 청의 傳統的 冊封朝貢關係에 대한 國際的 論難
壬午軍亂과 청조선 宗屬關係의 强化와 變質
甲申政變과 傳統的 冊封朝貢關係의 崩壞
淸日戰爭과 傳統的 韓中關係의 終結
조선과 청의 國境紛爭
조선말 대한제국청말의 韓中經濟文化交流
朝淸常民水陸貿易章程의 締結과 傳統的 經濟關係의 終焉
開化思想과 近代化情報의 共有
본문내용
목은 소미. 고양, 등 양두, 면화. 두유. 연엽 등 농산물, 광물, 방직물 등이 있으며 그 가운데서도 곡물이 대종을 이루었고 구미에서 수입해 온 물품도 다수 포함되었다. 한국이 중구에 수출한 품목은 인삼 당, 해산물, 등이 대종을 이루었다. 한청시대의 한중무역은 주로 한성과 인천에 주재한 화교들에 의해 주도되었다.
開化思想과 近代化情報의 共有
이 시기에도 북경과 한양을 이은 事(사)행로가 주요한 문화도관의 하나였으며 주요한 정보통로의 하나로도 작용하였다. 명. 청대의 중국에 다녀온 조선의 사행원들의 자의로 기로학 수백의 燕行錄(연행록)이나 귀국구두보고 및 書狀官(서장관)들이 공적으로 기록한 聞見別單(문견별단)은 중국과 세계로 열린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어느 때를 막록하고 중국을 다녀오는 사행원들의 기행록과 問情別單이라는 경로를 통해, 조선은 대륙의 정세를 감득하고 문화적 견문을 넓혀 왔다. 조청시대 후기까지는 이 경로를 통해 얻어진 정보는 거의 모두가 韓滿關係(한만관계)에 관한 일이나 儒敎文化에 관한 것이었으나, 18세기 중엽부터는 西勢의 동점과 전통적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붕괴에 관한 충격적 정보가 전해졌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는 한역 서학서가 禁斷되고 天主敎徒(천주교도)가 단죄된 반면, 中體西用의 사상과 방법을 기술한 洋務書들이 다량 조선으로 유입되어 한국의 학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이 세계의 사정을 좀더 상세히 알게 된 것은 高宗 17년(1880)에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다온 뒤였다. 그는 귀국할 때에 청 삼찬관, 황준헌으로부터 「조선책략」과「易言」을 얻어가지고 왔다. 조선책략은 황준헌이 직접 지은 책으로 국가가 부강하려면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것과 러시아의 남침을 막으려면 친중국, 결일본, 聯美邦하여 自强을 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고종은 대신들로 하여금 이 책을 검토하게하게 하였고, 대신들은 개화에 반대하는 유학자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이룰 복사하여 배포하기도 하였다. 역언은 청의 정관응이 지은 책으로, 그 내용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려면 서양의 기술만 중요시해서는 안 되고 기술 뒤에 있는 서양의 정치제도등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인이 저술한 이들 책들은 조선의 관료와 지식인들로 하여금 개화와 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청의 권고에 따라 김윤식을 領選使로 삼아 양반 출신의 학도와 工匠(공장) 수십 명을 데리고 청의 天律機器局(천률기계국)에 가서 신식무기의 제조법과 군사관계의 기초과학을 배우게 하였다. 또한 청의 제도를 참작하여 統理機務衙門이라는 행정기구를 설치하고 12司 두어,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여 富國强兵을 도모하였다.
이 시기의 문화교류는 주로 書籍의 流傳에 의한 사상의 전입으로 이루어졌다. 한중 양국이 모두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을 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금 앞서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하고 이로 인한 사상적 대응을 마련하고 있던 중국의 지식인들이 저술한 저서가 한국으로 유입되어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예가 梁啓超였다. 1889년에 강유위와 함께 戊戌變法을 주도하였던 양계초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의 중국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당시의 세계사적 대겨변에 대한 나름대로의 사상적 대응책을 제시한 양계초의 많은 논설들은 「飮永室文集(음영실문집)」에 수록되어 중국의 신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뿐만아니라, 한국에까지 전입되어 愛國啓蒙運動을 전개하던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뚜렷한 행동방향을 제시하였다.
이 시기에 한국의 지식인이 직접 중국에 가서 문화적 활동을 전개한 경우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택영이다. 조선 말기의 저명한 시인이었던 그는 일제의 침략에 격분하여 1905년에 중국으로 이주하여 反日 문화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1909년 안중근이 이등반문을 저격한 사건을 접하고「聞義兵將安重根報國仇事」라는 시를 쓰고 안중근전을 집필, 출판하여 만여 권이나 인쇄하는 등, 중국 지식인에게 한중 양국 인민의 反帝 공동투쟁을 격려하였다. 이 시기에도 중국에서는 한국에 관한 중국인의 저술들이 간해되었다. 임오군란 때에 北洋艦隊(함대)의 道員으로 조선에 파견되 바 있는 마건충의 동행초록 1권, 續錄 1권이 광서 7년(1881)에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고려, 송시대 이래로 한국에 사신으로 파송된 문사들이 귀국한 뒤에 見聞錄을 간행하던 전통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진만. 한국의 풍토와 지리, 역사 등을 소개하는 책자들이 계속 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한중국계원가 대량으로 제장되고 한청 국경에 대한 저술들이 출간되어 당시의 국경분쟁에 관한 중국인들의 높아진 관심을 표현하고 한중 간의 전통적 외교관계가 전환되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였다.
전통시대가 막 문을 닫을 무렵, 한국의 문화계에서는 위대한 성과 하나가 성취되엇다. 西象醫學의 출현이 그것이다. 사상의학이란 한말에 조선의 일개 사대부 이제마가 그의 저서 東醫壽世保元(1894)에서 주창한 매우 창의적인 醫說인데, 현대의 韓醫들은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한국의학의 총결산으로, 世宗의 한글과 더불어 한민족문화의 쌍벽으로 지목하면서, 인간체질의 불가변의 진리로, 심리, 생리, 병리, 약리의 새로운 기원을 이루었다고 찬양하고 있다. 이제마는 중국 후한대의 (傷寒論) 저자인 長機와 황제의 신하로서 靈樞經과 素問을 지었다는 기백 등 양인의 소론을 자기의 진료 경험에 의해 검토, 시정하였지만, 자신의 서상의학이 중국이 의학과는 다른, 매우 독창적인 것임을 醫源論에서 밝혔다. 수 천년 동안 전래하는 韓醫學의 논거에 비판을 가하고 자기의 독자적인 논지와 治術을 발명하여 漢醫方에 신기원을 이룩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은 중국에서도 중간되어, 현대 中醫學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참고자료 :
한중관계사 : 김한규-아르케
조선시대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한국역사연구회:-청년사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 : 김대길-가람기획
이야기 중국사 : 김희영-청아출판사
www.empas.com 백과사전
www.yahoo.co.kr 두산동아세계백과사전
開化思想과 近代化情報의 共有
이 시기에도 북경과 한양을 이은 事(사)행로가 주요한 문화도관의 하나였으며 주요한 정보통로의 하나로도 작용하였다. 명. 청대의 중국에 다녀온 조선의 사행원들의 자의로 기로학 수백의 燕行錄(연행록)이나 귀국구두보고 및 書狀官(서장관)들이 공적으로 기록한 聞見別單(문견별단)은 중국과 세계로 열린 거의 유일한 창구였다. 어느 때를 막록하고 중국을 다녀오는 사행원들의 기행록과 問情別單이라는 경로를 통해, 조선은 대륙의 정세를 감득하고 문화적 견문을 넓혀 왔다. 조청시대 후기까지는 이 경로를 통해 얻어진 정보는 거의 모두가 韓滿關係(한만관계)에 관한 일이나 儒敎文化에 관한 것이었으나, 18세기 중엽부터는 西勢의 동점과 전통적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붕괴에 관한 충격적 정보가 전해졌다. 이로 인해 조선에서는 한역 서학서가 禁斷되고 天主敎徒(천주교도)가 단죄된 반면, 中體西用의 사상과 방법을 기술한 洋務書들이 다량 조선으로 유입되어 한국의 학인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조선이 세계의 사정을 좀더 상세히 알게 된 것은 高宗 17년(1880)에 김홍집이 수신사로 일본에 갔다온 뒤였다. 그는 귀국할 때에 청 삼찬관, 황준헌으로부터 「조선책략」과「易言」을 얻어가지고 왔다. 조선책략은 황준헌이 직접 지은 책으로 국가가 부강하려면 서양의 제도와 기술을 배워야 한다는 것과 러시아의 남침을 막으려면 친중국, 결일본, 聯美邦하여 自强을 꾀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고종은 대신들로 하여금 이 책을 검토하게하게 하였고, 대신들은 개화에 반대하는 유학자들을 계몽하기 위하여 이룰 복사하여 배포하기도 하였다. 역언은 청의 정관응이 지은 책으로, 그 내용은 국가를 부강하게 하려면 서양의 기술만 중요시해서는 안 되고 기술 뒤에 있는 서양의 정치제도등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것이었다. 중국인이 저술한 이들 책들은 조선의 관료와 지식인들로 하여금 개화와 개방의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자극을 주고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조선은 청의 권고에 따라 김윤식을 領選使로 삼아 양반 출신의 학도와 工匠(공장) 수십 명을 데리고 청의 天律機器局(천률기계국)에 가서 신식무기의 제조법과 군사관계의 기초과학을 배우게 하였다. 또한 청의 제도를 참작하여 統理機務衙門이라는 행정기구를 설치하고 12司 두어, 새로운 정세에 대처하여 富國强兵을 도모하였다.
이 시기의 문화교류는 주로 書籍의 流傳에 의한 사상의 전입으로 이루어졌다. 한중 양국이 모두 제국주의 열강의 침입을 받던 시기였기 때문에, 조금 앞서 제국주의 침략을 경험하고 이로 인한 사상적 대응을 마련하고 있던 중국의 지식인들이 저술한 저서가 한국으로 유입되어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일정한 영향을 미쳤다. 그 대표적인 예가 梁啓超였다. 1889년에 강유위와 함께 戊戌變法을 주도하였던 양계초는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 넘어가는 시기의 중국을 대표하는 지성이었다. 당시의 세계사적 대겨변에 대한 나름대로의 사상적 대응책을 제시한 양계초의 많은 논설들은 「飮永室文集(음영실문집)」에 수록되어 중국의 신지식인들에게 커다란 영향을 미쳤을 뿐만아니라, 한국에까지 전입되어 愛國啓蒙運動을 전개하던 한국의 지식인들에게 뚜렷한 행동방향을 제시하였다.
이 시기에 한국의 지식인이 직접 중국에 가서 문화적 활동을 전개한 경우도 있었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김택영이다. 조선 말기의 저명한 시인이었던 그는 일제의 침략에 격분하여 1905년에 중국으로 이주하여 反日 문화활동에 전념하였다. 그는 1909년 안중근이 이등반문을 저격한 사건을 접하고「聞義兵將安重根報國仇事」라는 시를 쓰고 안중근전을 집필, 출판하여 만여 권이나 인쇄하는 등, 중국 지식인에게 한중 양국 인민의 反帝 공동투쟁을 격려하였다. 이 시기에도 중국에서는 한국에 관한 중국인의 저술들이 간해되었다. 임오군란 때에 北洋艦隊(함대)의 道員으로 조선에 파견되 바 있는 마건충의 동행초록 1권, 續錄 1권이 광서 7년(1881)에 간행되었다. 그러나 이 시기에는 고려, 송시대 이래로 한국에 사신으로 파송된 문사들이 귀국한 뒤에 見聞錄을 간행하던 전통은 더 이상 지속되지 않았진만. 한국의 풍토와 지리, 역사 등을 소개하는 책자들이 계속 간행되었을 뿐만 아니라. 특히 한중국계원가 대량으로 제장되고 한청 국경에 대한 저술들이 출간되어 당시의 국경분쟁에 관한 중국인들의 높아진 관심을 표현하고 한중 간의 전통적 외교관계가 전환되는 특수한 상황을 반영하였다.
전통시대가 막 문을 닫을 무렵, 한국의 문화계에서는 위대한 성과 하나가 성취되엇다. 西象醫學의 출현이 그것이다. 사상의학이란 한말에 조선의 일개 사대부 이제마가 그의 저서 東醫壽世保元(1894)에서 주창한 매우 창의적인 醫說인데, 현대의 韓醫들은 이제마의 사상의학을 한국의학의 총결산으로, 世宗의 한글과 더불어 한민족문화의 쌍벽으로 지목하면서, 인간체질의 불가변의 진리로, 심리, 생리, 병리, 약리의 새로운 기원을 이루었다고 찬양하고 있다. 이제마는 중국 후한대의 (傷寒論) 저자인 長機와 황제의 신하로서 靈樞經과 素問을 지었다는 기백 등 양인의 소론을 자기의 진료 경험에 의해 검토, 시정하였지만, 자신의 서상의학이 중국이 의학과는 다른, 매우 독창적인 것임을 醫源論에서 밝혔다. 수 천년 동안 전래하는 韓醫學의 논거에 비판을 가하고 자기의 독자적인 논지와 治術을 발명하여 漢醫方에 신기원을 이룩한 것으로 높이 평가된다. 이제마의 동의수세보원은 중국에서도 중간되어, 현대 中醫學의 발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참고자료 :
한중관계사 : 김한규-아르케
조선시대사람들은 어떻게 살았을까? : 한국역사연구회:-청년사
시장을 열지 못하게 하라 : 김대길-가람기획
이야기 중국사 : 김희영-청아출판사
www.empas.com 백과사전
www.yahoo.co.kr 두산동아세계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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