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여성 문학의 흐름

목차

들어가는 말
1. 근세 이전의 문학과 여성

2. 신여성의 등장과 개화기 및 일제의 여성

3. 해방 이후의 여성 문학

4. 산업화시대와 탈 여류 문학

본문내용

적하고 싶다.
그렇다면 여성 작가들은 어떤가? 70년대를 여성 문학의 새로운 분기점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탈 여류 문학’의 면에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이는 물론 여류 문학 전성기로 불릴 수 있는 60년대 여성 문인들과 ‘여류’가 아니라는 찬사를 받아 온 몇몇 여성 문인들의 혁혁한 노작들이 밑거름이 된 것이겠지만(특히 소설에서 강경애박화성박경리이정호한말숙이규희, 시에서 홍윤숙김여정강계순임성숙김윤희노향림 등으로 이어지는), 70년대 초반 전문단에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몰고 온 강은교의 등장과, 소설에서 박완서오정희의 활약은 탈 여류 문학을 본격화한 중요한 성과로 평가되어 마땅한 것이다.
이들은 종래의 ‘여성의 감상성’ 혹은 ‘여성적 신비주의’라는 편견을 깨고 예리한 안테나에 포착된 시대적 경험을 보편적 공감대 안에 심화시킴으로써 자연스럽게 ‘여류’라는 프리미엄을 거부, 제거시켰다. 이들의 뒤를 이어 배출된 후진 여성 문인들은 70년대 중반까지 오랫동안 여성을 액세서리로 취급해 온 남성 전용의 문단 등용 관문(특히 신춘 문예)에서까지 ‘여성 파워’를 유감없이 과시한 시기였으며 다양한 양식과 소재로 80년대 문단을 풍요롭게 개척하고 있다. 이는 중요한 시대적 변화로서, ‘여성’이라 해서 한 자리 양념으로 끼워 주거나 따로 취급하여 안배당하는 시대는 지났다는, 능력 우선주의와 평등주의적 흐름의 반영일 수도 있다.
모든 예술 분야가 다 그러하겠지만 문학은 철저히 개인의 삶과 경험에 기초하며, 동시에 그 개인이 속한 공동체의 고통과 운명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전제주의 시대의 산물인 영웅시대의 종말과 더불어 평범한 인간의 창조적 시대로 향해 가고 있는 지금은 이 세계의 절반인 여성의 잠재력과 창조 의지를 부르고 있다. 여성 독자의 증가와 함께 이 시점에서 80년대 여성 문학은 진정한 여성을 위한 여성에 의한 여성의 문학이 형성될 만한 터전이 웬만큼 확보되어 가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한 시작으로써 일제치하 정신대 문제를 현대 여성의 자의식에로 확대시킨 「에미이름은 조센삐였다」의 윤정모, 역사적 소재를 현대 시각에서 재조명한 「혼불」의 최명희와 이남희, 기층 여성 문제와 현실을 산업사회 구조 속에서 파악하려는 「밤과 요람」의 강석경, 「겨울숲」의 김향숙, 「귀머거리 새」의 양귀자, 서영은 등이 현재 주목받는 소설가들이고 시에서는 강은교의 뒤를 이은 최승자김옥영김승희김혜순박경미천재순김경희한영옥 등이 탄탄한 자기 세계를 구축하고 있다.
그렇다면 80년대 여성 문학의 당면 과제는 무엇이며 그것은 여성 문화 운동과 어떤 연관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간단히 살펴보자.
우리는 최선의 이념으로서 참된 민주 공동체의 형성을 지향하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문학인들이 추구하는 궁극적 목표 중의 하나가 일차적으로는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 민주 문화 형성이라고 말할 수 있다면 여성 문학은 진정한 여성 문화 양식을 형성시켜 나가는 데 자기 자리를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때 여성 문화란 현재 우리가 직면해 있는 지배 문화 혹은 가부장제 부성 문화의 모순을 극복하려는 ‘대안 문화’를 의미한다. 즉 여성 문화 운동은 지금까지 주종의 관계로 일반화된 남녀를 동시에 구원하려는 해방적 차원을 지닌 동시에 새로운 사회의 비전을 제시하는 모성적 생명 문화의 차원이어야 한다고 본다. 이를 위해서는 두세 가지 구체적 과제가 요구된다.
첫째는 비평적 과제이다. 신문학 70년사를 포함한 한국 문학 전 유산을 계열별로 검토하고 여성 문화적 시각에서 이를 재해석하는 일이다. 여기에는 여성들의 비평계의 진출이 급선무로 보이며 남녀 평등적 시각이 보편화의 경지를 획득해야 함이 전제된다.
둘째는 창작적 과제이다. 오랜 가부장제 전통과 주종의 위계질서 속에서 고착된 지배 문화와의 결별을 선언하는 여성 문화 운동은 여성 문학 양식에서 크게 두 가지 관점으로 수용될 수 있다. 그 하나는 여성을 억압하고 비하시킨 사회 구조와 시대적 이데올로기가 지니고 있는 신비와 은폐성을 과감하게 폭로하는 한편 종속과 소외를 정당화해 왔던 관습과 제도를 인간해방적 차원에서
비판하는 고발문학적 차원이며, 다른 하나는 전혀 다른 시각과 다른 문화 의식을 창작에 수용하는 혁명주의적(혹은 이상주의적) 차원이다. 이때 ‘새로운 문화 감각’이란 비인간화된 현실로부터 창작의 모티브를 찾는 것이 아니라 작가 자신의 새로운 세계관으로부터 유토피아적 비전을 제시하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는 작품을 구성하려는 언어, 역할, 질서, 관습, 남녀 관계의 혁명이 불가피할 것이다. 또한 소설 양식 자체에서도 기존의 틀을 깨는 실험 정신이 다양하게 시도될 수 있다. 이는 작가 자신의 체험적 깊이, 창조적 상상력, 그리고 이 세계의 불행과 고통에 입맞추려는 작가적 진실에 따라 좌우될 문제이겠으나 다른 한편으로는 ‘이미 시작되었지만 아직 성취되지 못한’ 인간 해방의 역사에 대해 작가가 어떤 안테나를 세울 수 있느냐의 문제이기도 하다.
셋째는 공동체적 윤리 형성의 과제이다. ‘자매애는 강하다’는 연대 의식의 힘을 믿는 우리는 우선적으로 ‘누르는 자’와 ‘눌림받은 자’의 부조리한 정황을 개인의 사건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사건’으로 조망할 수 있는 혜안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못박고 싶다. 우리는 개인과 집단의 삶을 지배하는 일체의 이념 체계에 대해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어야 하며 그것이 빚어내는 부조리한 현실에 대해 형제애의 진실로 맞설 수 있어야 한다. 동시에 참된 인간의 해방과 진실을 추구하는 여성들의 다양한 실천 운동에 부지런히 귀를 기울이고 대화할 수 있어야 한다. 왜? 문학은 궁극적으로 ‘사람을 위하여 사람에 의하여 사람다운 세상’을 꿈꾸는 일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여성주의 문학은 ‘여성들이 하는 문학이다’는 성별 분업에 있는 것이 아니라 지배 문화를 극복하고 참된 인간해방 공동체를 추구하는 대안 문화로서 ‘모성 문학’ 혹은 ‘양성 문화’의 세계관을 보여주는 문학이어야 한다. 따라서 이 때의 여성 문학은 굳이 여성만이어야 할 필요는 없지만 이 문제를 자기 경험 속에서 아파하고 혹독하게 인식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형성될 것은 자명한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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