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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고 다시 들러보았다. 그리고 열하일기의 성경잡식에다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산업 사회로 가는 길은 또 물자의 집산과 유통에 대한 원리를 알아야 하며 허생전 및 열하일기에서 그 신속한 운반을 위하여 수레, 다리, 배를 개량해야 하며 점포를 잘 꾸며야 한다고 하였다. 또 중국과 공식적으로나 뒷거래 방식으로 무역을 권장하되 무엇보다 은 관리를 잘해야 한다고 하였다. 지금으로 말하면 외환관리의 이론이다.
산업 사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공업을 진흥시켜 각종 이용에 편리토록 기기를 만들어 내야 하며 농기구를 개발해야 하며 후생을 위하여 주거의 개량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연암은 벽돌에 대하여 관심이 컸는데 중국에 갔을 때 집 짓는 공사 현장에 직접 가서 벽돌을 바라보면서 재어보고 만져보고 굽는 방법을 묻고는 열하일기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중국의 점포와 주거용 주택을 소개한 장면은 마치 독자들이 그 집에 들어가서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과연 이래서 세상은 살 맛이 나는구나!’하는 기분과 환상에 잠기도록 쓰고 있으니 연암의 사실주의적 필치의 위력도 합쳐진 작품이라 하겠다.
연암은 주자학을 반대하고 신선 사상도 믿지 않았다. 주자의 성리학은 조선 전시대의 정신 세계를 휩쓸던 학문이며 이론이요, 규범이었는데 조선후기 실학파들의 경우처럼 연암도 본래의 공자, 맹자의 사상과 윤리관은 존중하였지만 주희의 윤리관은 본래의 정신을 왜곡 시켰으며, 그의 성리학은 공연히 공리공담을 일 삼는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내용은 열하일기의 곡정필담에 더욱 상세하다.
연암이 신선을 믿지 않는 이야기는 김신선전에서 이야기 되고 있다. 김홍기란 사람이 벽곡을 하면서 신선이 된다고 했지만 금강산까지 알아 보았지만 그는 일개 보통 사람이었다.
연암이 가장 아까워한 인물은 우상 이상조이다. 우상은 역관으로 일본으로 가는 사신을 다라 갔다가 일본에 우리의 시문으로 명성을 떨치고 온 사람이요, 일본의 예약과 학문이 천박하다고 힐난하고 온 인물인데 요절했다. 그래서 우상전을 지었다.
연암 박지원이 평생동안 저술한 글은 연암집 17권 6책 속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 연암집 17권 중 4권만 시이고, 1에서 7권까지는 각종 산문들이다.
다만 1권 말미에 전 1편이 있는데 이것이 열녀 함양박씨전으로 여성이 순장하는 악습을 없애고 그들의 수절하는 괴로움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역설한 연암의 소설이다. 또 그의 산문 중 특히 서에서는 북학의나 초정집의 서문으로 북학을 알수 있는 글과 홍대용의 회우록 서문 등은 당쟁을 개탄하는 명문장이다.
8권은 별집으로 방경각외전 이란 이름으로 이 속에 그의 소설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즉 자서에 이어 마장전, 예덕 선생전, 민옹전, 양반전, 김신선전, 광문전, 우상전과 불살라 없어졌다는 역학대도전과 봉산학자전이 목차에 실려 있다. 저자는 자서에서 이들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간명하면서도 주제 파악이 잘 되도록 쓰고 이싸.
그리고 연암의 걸작들인 호질 한편은 열하일기의 ‘관재정사’에 허생전은 열하일기의 옥갑야화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이 옥갑야화는 옥갑에 도착해 자면서 여러 비장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것을 기록한 내용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허생전을 말하기 직전에 벌써 금융질서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이다.
연암의 최고 걸작인 열하일기는 연암집의 11권에서 15권까지에 24편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어두웠던 18세기말과 19세기 초엽에 있어서 개화의 훤한 등불이 되었다.
16~17권은 정조 명찬으로 된 농서로서 과농소초와 한민명전의이다.
연암은 시보다 소설을 잘 쓴 문장가이다. 그러나 시도 한 권은 남겼다. 그가 일하는 농민을
산업 사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공업을 진흥시켜 각종 이용에 편리토록 기기를 만들어 내야 하며 농기구를 개발해야 하며 후생을 위하여 주거의 개량이 시급하다는 것이었다. 연암은 벽돌에 대하여 관심이 컸는데 중국에 갔을 때 집 짓는 공사 현장에 직접 가서 벽돌을 바라보면서 재어보고 만져보고 굽는 방법을 묻고는 열하일기에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중국의 점포와 주거용 주택을 소개한 장면은 마치 독자들이 그 집에 들어가서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로 실감나게 묘사하고 있다.‘과연 이래서 세상은 살 맛이 나는구나!’하는 기분과 환상에 잠기도록 쓰고 있으니 연암의 사실주의적 필치의 위력도 합쳐진 작품이라 하겠다.
연암은 주자학을 반대하고 신선 사상도 믿지 않았다. 주자의 성리학은 조선 전시대의 정신 세계를 휩쓸던 학문이며 이론이요, 규범이었는데 조선후기 실학파들의 경우처럼 연암도 본래의 공자, 맹자의 사상과 윤리관은 존중하였지만 주희의 윤리관은 본래의 정신을 왜곡 시켰으며, 그의 성리학은 공연히 공리공담을 일 삼는다고 비난했다. 이러한 내용은 열하일기의 곡정필담에 더욱 상세하다.
연암이 신선을 믿지 않는 이야기는 김신선전에서 이야기 되고 있다. 김홍기란 사람이 벽곡을 하면서 신선이 된다고 했지만 금강산까지 알아 보았지만 그는 일개 보통 사람이었다.
연암이 가장 아까워한 인물은 우상 이상조이다. 우상은 역관으로 일본으로 가는 사신을 다라 갔다가 일본에 우리의 시문으로 명성을 떨치고 온 사람이요, 일본의 예약과 학문이 천박하다고 힐난하고 온 인물인데 요절했다. 그래서 우상전을 지었다.
연암 박지원이 평생동안 저술한 글은 연암집 17권 6책 속에 모두 수록되어 있다.
이 연암집 17권 중 4권만 시이고, 1에서 7권까지는 각종 산문들이다.
다만 1권 말미에 전 1편이 있는데 이것이 열녀 함양박씨전으로 여성이 순장하는 악습을 없애고 그들의 수절하는 괴로움이 얼마나 비참한가를 역설한 연암의 소설이다. 또 그의 산문 중 특히 서에서는 북학의나 초정집의 서문으로 북학을 알수 있는 글과 홍대용의 회우록 서문 등은 당쟁을 개탄하는 명문장이다.
8권은 별집으로 방경각외전 이란 이름으로 이 속에 그의 소설 대부분이 수록되어 있다. 즉 자서에 이어 마장전, 예덕 선생전, 민옹전, 양반전, 김신선전, 광문전, 우상전과 불살라 없어졌다는 역학대도전과 봉산학자전이 목차에 실려 있다. 저자는 자서에서 이들 작품을 쓰게 된 동기를 간명하면서도 주제 파악이 잘 되도록 쓰고 이싸.
그리고 연암의 걸작들인 호질 한편은 열하일기의 ‘관재정사’에 허생전은 열하일기의 옥갑야화에 각각 수록되어 있다. 이 옥갑야화는 옥갑에 도착해 자면서 여러 비장들과 이야기를 나누던 것을 기록한 내용인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대목은 허생전을 말하기 직전에 벌써 금융질서를 생각하고 있었다는 거이다.
연암의 최고 걸작인 열하일기는 연암집의 11권에서 15권까지에 24편으로 수록되어 있다. 이 글은 어두웠던 18세기말과 19세기 초엽에 있어서 개화의 훤한 등불이 되었다.
16~17권은 정조 명찬으로 된 농서로서 과농소초와 한민명전의이다.
연암은 시보다 소설을 잘 쓴 문장가이다. 그러나 시도 한 권은 남겼다. 그가 일하는 농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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