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감상문] 라쇼몽을 통해 본 이야기의 재창조 가능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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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화감상문] 라쇼몽을 통해 본 이야기의 재창조 가능성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들어가는 말


Ⅱ. “나”라는 프리즘을 통해 바라본 진실

Ⅲ.『라쇼몽』을 통해 바라본 인간의 에고이즘

Ⅳ. 블록 조립하기

Ⅴ. 나오는 말

Ⅵ. 참고문헌

본문내용

신에 대해 정직해 질 수 없다. 자기 자신을 얘기할 때면 언제나 윤색하지 않고는 못 배긴다. 이 영화는 그러한 인간, 즉 자신을 실제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인간을 그리고 있다. 이기주의는 인간이 날 때부터 갖고 있는 죄악이다.” 정태일(199962028)님의 『라쇼몽』 관련 Paper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처럼 이 두 작품의 이음새로 작용하는 것이 바로 굴절성과 이기주의이다. 『덤불 속』에서 드러나는 진실의 굴절성이란 자기중심성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라쇼몽』의 주제인 인간의 이기주의로 흐를 수밖에 없으며, 때로는 이러한 이기심이 진실을 굴절시키기도 한다. 타조마루, 여인, 사무라이의 엇갈린 진술을 통해 이들 모두 거짓말을 하고 있다고 말할 수도 있으나 이들 모두 자신만의 프리즘으로 이 사건을 바라본 것으로 그 굴절도가 달라서 부각되는 국면이 다른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이 것이 전자의 경우에 해당되며 또 나무꾼의 경우에서와 같이 단도를 훔친 것을 감추기 위해서 의도적으로 거짓 증언을 한 경우는 후자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그 뿐만 아니라 우리는 두 작품의 연결고리를 이 작품이 만들어진 시대상황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자신이 불이익을 당할지도 몰라서 진실을 왜곡학 사건 현장에서 탐나는 물건을 슬쩍하는 나무꾼이나 버려진 아이의 담요까지 빼앗아 가는 사나이의 모습은 인간의 이기심과 욕망의 추한 단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그렇다면 감독은 왜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에 주목한 것일까? 『라쇼몽』이 만들어진 1950년대는 제 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로 사람들은 제 1차 세계대전의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한 상태에서 또 다시 전쟁을 경험해야만 했다. 연이어 터진 양차 대전은 사람들에게 인간의 이기심이 인류의 종말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사실을 자각시켜 주었다. 인류의 행복을 보장하리라 믿었던 이성과 과학이 인간의 이기심으로 인해 대량 살상 무기로 변질되고 또 그것이 많은 이들의 생명을 앗아가는 장면을 목도하며 그들에게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가 들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감독은 『덤불 속』의 엇갈린 진술을 해결하는 실마리로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을 들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라쇼몽』이 이 영화의 분위기를 형성하게 된 이유까지 알 수 있다. 이기주의에 관한 것은 더 이상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고 이 영화의 액자 밖 이야기가 진행되는 장소가 폐허가 된 라쇼몽인 것은 전쟁직후의 참상을 표현하려는 감독의 의도로 볼 수 있는 것이다. 영화 내에서 보여지던 인간의 이기적인 모습들은 결국 감독이 인간의 이기심을 비판하고 모든 문제의 원인을 인간의 이기심으로 보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그리하여 감독은 궁극적으로 인간의 이기심 속에서 과연 유일한 진실이란 것이 존재할 수 있는가를 관객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http://films.or.kr/fame/Rashomon.html
그러나 이 영화는 단순히 이 두 작품을 연결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영화를 만든 구로자와는 거기서 더 나아가 『덤불 속』과 『라쇼몽』이 지닌 아쿠타가와의 절대성에 대한 회의와 부정적인 인간관을 극복하기에 이르는데 이 점은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나무꾼의 사례를 통해 발견할 수 있다. 나무꾼은 이기적인 욕망으로 인해 단도를 훔치고 거짓 증언을 하는 등의 잘못을 저지르나 후에 행인과의 다툼 끝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자신이 버려진 아기를 키우겠다고 결심한다. 즉 나무꾼이 숲에서의 행동은 인간의 에고이즘을 드러내는 한 사례이나 그가 숲 속에서의 사건과 라쇼몽에서의 사건을 통해 변화됨으로써 영화는 이러한 인간의 이기심이 극복될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한 때, 나무꾼의 위증이 드러나는 광경에 행인의 냉정한 행위까지 목도하고 절망했던 행자승이 마지막에 나무꾼을 통해 인간에 대한 자신의 신념이 지켜질 수 있게 되어 감사하다고 말하는데서 이를 알 수 있다.
나무꾼 : I\'m... the one... who...should be shamed
행자승 : No... I\'m grateful... to you -(silent)- Thanks to you. I think I\'ll be able to keep my faith in man.
그러나 여기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아기의 등장이다. 아기라는 것은 근본적으로 새로운 세대를 상징하는 것으로 전후의 참상과 인간의 이기심, 거짓과 진실의 모호함 속에서도 변화의 가능성을 안고 있는 존재인 것이다. 즉, 판도라의 상자에 남아있던 마지막 희망과 같은 존재라고나 할까? 이 작품은 패전 직후의 침울한 시대를 그리면서도 한 올의 희망을 놓지 않고 있는데, 이러한 점이 끝내 회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자살한 염세주의자 아쿠타가와와 구로자와 감독을 구별 짓고 있는 것이다. 물론 이것이 두 사람의 우열을 평가하는 잣대라고는 생각지 않는다. 다만 구로자와 감독이 전달하고 있는 희망의 메시지는 아쿠타가와가 벗어나지 못했던 회의와 부정적인 인간관의 극복이라는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자살은 살아가는 동안 수없이 직면하게 되는 절망 가운데서도 인간이 생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 이러한 희망 때문임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두 작품의 주제에 의한 연결뿐만 아니라 단도에 관한 추리 역시 주목할 만하다. 나무꾼을 단도를 훔친 자로 지목한 것은 『덤불 속』에서는 혼령이 누군가 내게 꽂혀 있던 단도를 뽑았고, 그로 인해 영원한 어둠 속으로 가라앉게 되었다고 말한 마지막 부분을 바탕으로 유추해 낸 것으로 개연성 높은 추리라 할 수 있다. 사실 블록을 조립하는데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라 할 수 있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를 머릿속에 그리고 블록 조각들을 연결하듯이 이 영화는 작품의 공백을 상상력으로 채워 나가고 있다. 영화 마지막 부분에 나무꾼의 증언은 지금까지 증인들의 증언과 전혀 다른 사실을 이야기해 주고 있는데 이 부분 또한 상상력에 의해 창조된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택한 이유도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내가 처음 『덤불 속』이란 글을 읽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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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7.12.01
  • 저작시기2007.1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439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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