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진이 한시 연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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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황진이 한시 연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머리말

Ⅱ. 황진이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1 황진이의 생애
2 시대적 배경

Ⅲ. 황진이의 문학
1 예술로 승화된 여심
:반달, 소판서를 보내며, 그리는 꿈
(2) 은유된 기녀의 삶
:작은 잣나무배, 만월대에 옛일을 생각하며, 송도

Ⅳ. 황진이 문학의 한계

Ⅴ.맺음말

본문내용

1. 황진이의 생애
(1) 황진이의 생애
황진이(黃眞伊)의 본명은 진(眞)이고, 진이(眞伊)또는 진랑(眞)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그리고 기녀가 되어서는 자를 명월(明月)이라 하였다. 황진이의 생애에 관한 기록은 확실한 것이 없으나 조선 중기의 개성 명기로만 알려져 있다. 그녀의 문집이나 연보 등으로 전해지는 것이 없으며 야사나 개인 문집 등 일부 고문헌에 그녀에 관한 일화가 나타나므로 이들을 종합하여 막연히 짐작할 뿐이다.
그 중 출생에 관한 기록은 송도기이, 어우야담, 식소록, 금계필담 등 여러 곳에 나타나는데 대부분 과장 되었거나 전설화되어 있다.
황진이는 황진사의 서녀로 태어났는데, 그녀의 어머니 진현금은 매우 아름다웠다. 그녀가 18세 때 송도의 병부교 아래에서 삼베를 빨고 있는데, 다리 위에서 인물이 좋고 옷을 잘 차려 입은 한 남자가 자기를 눈여겨 바라보며 웃기도 하고 손짓도 하여 현금 역시 마음이 통했다. 그런데 그 사람이 갑자기 보이지 않다가 해질 무렵이 되어 여느 아낙네들이 다 가버리자 다시 나타났다. 그는 교각에 기대어 긴 노래를 부르더니 현금에게 다가와 물을 달라고 하였다. 현금이 표주박에 물을 떠서 주자 반쯤 마시더니 미소를 지으며 현금에게도 마셔보라고 하였다. 현금이 마셔보니 그것은 물이 아니고 술이었다. 그녀는 매우 놀라 이상하게 여겼다. 이러한 인연으로 진이가 출생했다.
- 송도기이
진이의 어머니는 진현금으로 병부교 아래에서 빨래를 하고 있는데, 한 소년이 놀린 후 가버렸다. 날이 저물자 다시 찾아와 물을 청하니 현금이 떠서 주었다. 물이 술로 변하여 마침내 인연을 맺게 되었는데, 그는 이름도 알리지 않고 떠나갔다. 진이를 해산할 때 이상한 향기가 방을 가득 채우니 이는 곧 선녀라, 어찌 황이란 성을 가질 것인가?
-중경지
황진이는 중종 때 사람으로 황진사의 서녀이다. 어머니 진현금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시고 마음이 통해 진이를 잉태했는데, 해산 때 이상한 향기가 3일 동안 가득 찼었다.
-소호당집
진이는 황진사의 서녀인데, 진사의 첩은 진현금이다. 진현금은 병부교 아래에서 물을 마시고 마음이 통해 진이를 잉태했는데, 해산 때 이상한 향기가 3일이나 방을 채웠다.
- 숭양기구전
이상 살펴 본 바와 같이 황진이의 출생에 관한 부분은 그녀의 비범함을 알리기 위하여 과장 또는 미화되어 있다. 어디까지가 진실인지 알 수 없고 기이하기만 하다. 그러나 이들은 다음과 같이 두 가지 양상으로 정리된다. 하나는 황진사의 서녀설이며, 다른 하나는 맹인의 자식이라는 설이다.
또한 생존년대 역시 불확실하다. 황진이는 자신의 기록을 남기지 않았고, 양반들은 기생에 관련된 자신의 이야기를 기록으로 남기는 것을 꺼려 했었는지 현재까지 그녀의 생존년대에 관한 정확한 기록은 없다. 그러나 다음의 두 문헌을 살펴보면 황진이의 생존년대를 추정할 수 있다.
첫째, 유몽인의 어우야담을 보면 가정초설이 등장한다.
“가정초 송도에 명기 진이라는 자가 있었다”
‘가정’이란 중국 명나라의 연호인데, 가정 1년은 조선 중종 17년(1522)에 해당한다.
둘째, 허균의 식소록을 보면 공헌왕조설이 나온다.
“공헌왕조에 선비 이언방이란 자가 있었는데……송도의 기생 진랑이 노래를 잘 부른다는 소리를 듣고 그 집을 방문하였다”
공헌왕조는 역시 중종조를 가리키는 말이다. 그러나 이 두 책자는 가정초나 공헌왕조 때 보다 50여년 늦은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졌으므로 신빙성이 떨어진다. 그나마 이 두 가지설이 황진이의 생존년대를 구체적으로 알려주고 있다.
이런 비밀스런 출생이 황진이 문학을 더 신비스럽게 만들고 있지만 그보다 황진이의 문학을 말하는데 그녀와 교유했던 남자들이 빠질 수 없다. 그녀는 당대의 유명한 시인묵객들과 교육하고 자유분방한 애정행각도 벌였다. 기생으로의 필수 조건인 용모는 물론이고 시와 그림과 창과 일품인 거문고 연주 실력에 사서삼경도 읽고 국가 관리나 양반들을 대하는 처세술까지도 갖춘 것으로 사료된다. 그러니 당시 많은 남성들이 황진이를 탐한 것은 당연한 일이라 여겨진다.
황진이가 15세가 되던 해, 미모에 반한 옆집 총각이 그녀를 짝사랑하다가 상사병으로 죽는 일이 있었다. 그 총각의 장례를 치르던 날, 장지로 향하던 상여가 황진이의 집 앞에서 꼼짝하지 않았다. 이 이야기를 들은 진이는 한번 입고 벗어둔 치마저고리를 내주었으며 그것을 죽은 총각의 관 위에 덮어주자 상여가 서서히 움직였다고 한다. 이 일은 황진이가 기녀의 길로 든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고 하나 사실 여부는 알 수 없다.
후에 황진이가 자연을 사랑하며 탈속의 인간 세계를 맴돌다 만난 사람이 선전관 이사종이었다.
선전관 이사종이 노래를 잘해서 황진이와 같이 놀고자 천수원 냇가에서 말에서 내려, 갓을 벗어 배를 덮고 누워 몇 곡조를 소리 높여 부르니, 진이가 놀라 천수원에 말을 매어 놓고 귀 기울여 들으며 “드문 노래 소리이다. 서울에 이사종이가 있다더니 그 사람인가 보다.” 하고 누구를 보내서 알아보니, 정말 사종 그 사람이었다. 자리를 옮겨 서로 가까이 해서 즐기다가 진이 그녀의 집으로 끌어 들여 며칠을 같이 지내고, “여섯 해만 같이 살아 보자”고 진이 쪽에서 사정했다. 그리고 이튿날 바로 삼년 살만한 재산을 몽땅 사종의 집으로 옮기고 그것으로만 삼년 동안 꾸려 나갔다. 그 뒤는 사종이 또 진이네 식구를 먹였는데, 꼭 진이가 사종이네 집을 먹이던 것 같이 하여 이번에도 삼년 동안을 지냈다. 그러고는 진이의 말이 “일은 다 약속대로 마쳤으니 잘 되었소”하고 그만 하직하고 떠나버렸다.
-어우야담
이 기록을 보면 황진이야말로 오늘 날 말하는 계약 결혼의 선구자인 셈이다. 그리고 생활비를 반씩 부담한 것을 보면 비굴하지 않으려는 황진이의 자존심과 당당한 생활 자세를 알 수 있다.
양곡 소세양과의 일화 역시 빼놓을 수 없다.
소세양은 강장한 사나이로 소시에 항상 말하기를 ‘남자가 여색에 혹함은 남자가 아니다’라고 장담하면서 황진이를 만나 한 달 30일만 같이 살면 미련없이 헤어질 수 있다고 하였다. 그런데 예약된 이별의 마지막 날, 황진이가 남루에 올라 주연을 베푼 자리에서 ‘송별소양곡’이라는 한시를 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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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8.05.24
  • 저작시기200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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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4659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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