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목차>
1. 서론
2. 진학문과 그의 소설
2.1. 식민지 지식인의 무력한 고뇌 「요조오한(四疊半)」
2.2. 강한 허무주의 색채 「부르짖음」
3. 양건식과 그의 소설
3.1. 사회진화론 극복 제시 「석사자상」
3.2. 식민지 지신인의 방황과 실천 문제 「슬픈 모순」
4. 백대진과 그의 소설
4.1. 가난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폐해 인식
4.2. 총체적 사유가 불가능해진 미완적 결말구조
5. 결론
1. 서론
2. 진학문과 그의 소설
2.1. 식민지 지식인의 무력한 고뇌 「요조오한(四疊半)」
2.2. 강한 허무주의 색채 「부르짖음」
3. 양건식과 그의 소설
3.1. 사회진화론 극복 제시 「석사자상」
3.2. 식민지 지신인의 방황과 실천 문제 「슬픈 모순」
4. 백대진과 그의 소설
4.1. 가난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폐해 인식
4.2. 총체적 사유가 불가능해진 미완적 결말구조
5. 결론
본문내용
백화의 죽음은 필연적인 장치 앞의 논문, p.312.
라고도 볼 수 있다. 백화 아버지의 유교적 이념과 돈이라면 딸까지도 서슴없이 주는, 즉 가족구조까지 간단히 해체하는 식민지 자본주의 모순을 통해 작가의 반봉건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인식이 드러난다.
4. 백대진과 그의 소설
백대진은 비평 분야에서 간헐적으로 언급되어졌고, 김억보다 앞서 『태서문예신보』에 상징주의 시론을 소개하는 등 외국 사조를 소개하였으며, 시, 소설, 수필 등을 창작하면서 문학이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1892년 서울 서부(西部) 인달방(仁達坊) 필운대(弼雲坮)에서 백규삼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인천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다가 『신문계』, 『반도시론』,『매일신보』의 기자와 간사(幹事)로 활동했고,『신천지』 주간으로 활동하였으며 홍익대 신문학과 강사를 역임하고 1967년 타계했다.
백대진이 가지고 있던 사상적 입지는 ‘일본 통치를 인정하는 전제하의 자치론’ 김복순, 위의 책, p.189.
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문명개화지상론의 입장이었으며, 일본이 우리를 문명개화시켜 잘살게 해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른바 몰주체적 입장의 개화론인 것이다. 그는 사회진화론의 법칙인 적자생존, 우승열패의 논리 즉 “우(優)한 자가 이기고, 열(劣)한 자 지는 것은 자연율(自然律)”이라고 믿었으며 “국민적 기예를 배워 적자생존의 생명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위의 책, p.193.
한편 백대진은 18편의 창작소설과 3편의 번역소설, 그리고 1편의 번안소설을 발표했던 소설기 백대진은 평론류의 글을 발표할 때는 거의 본명인 白大鎭을 사용한 반면, 소설을 발표할 때는 단 한번도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였다. 이에 白樂天子, 破( )生, D. C生, D. C. P生, 不知憂生, 不知憂子, 無憂生, 樂天生, 樂天子, 피生, P生, 白生, 徒手子, 險口子, 雪園, 雪園生이 모두 백대진 호임을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백대진의 필명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자세히 고증되어 있다. 주승택, 「백대진 문학연구서설」, 『한국현대시론사』, 모음사, 1992; 주승택, 「백대진 연구」, 『진단학보』, 1995, 12; 김복순, 『1910년대 한국문학과 근대성』, 소명출판, 1999.
이기도 하다. 백대진은 1915년과 1916년 『신문계』를 통해 ‘자연주의 문학론’을 제창하였다. 그가 말하는 자연주의문학이란 “현실을 노골적으로 진직(眞直)히 묘사한 문학”으로 현대 사조 개념의 자연주의가 아니라 ‘작가의 태도’ 문혜윤, 「백대진 단편소설 연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23호, 2004, p.148.
를 지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백대진은 당시 신소설이 통속적이고 퇴폐적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문학이 ‘생활과 유리되지 않고 현실을 핍진하게 묘사할 수’ 위의 논문, p.148.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대진의 작품 세계에 따라 크게 네 부분 김복순은 계몽적 성격과 문명개화 예찬, 가난의 원인인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폭로, 유학생의 타락상 고발, 천도교 입교와 문명개화로 구분하고 있다.
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사회자본주의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중 네 작품을 택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작품의 분석을 통해 백대진이 당시 식민지 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인식을 했으며 그가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4.1. 가난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폐해 인식
백대진의 소설에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적 질서를 형성해가고 있던 사회 상황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그의 소설인 「오호박명」「황금?」「절교의 서한」「양인의 기도」에서는 가난으로 인하여 친구간의 의리를 저버리거나 가정이 파탄되는 상황을 주로 형상화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에서 비롯되는 빈부의 격차,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신음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발표된 「오호박명」(1915.8)은 남편이 병들어 죽음에 임박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동경고등여학원을 졸업한 일본유학생 출신 숙자(淑子)는 무남독녀로 장중보옥같이 자랐다. 이문환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이사람의 은혜, 저사람의 후의(厚意)로 살아오다가 숙자의 부모가 이문환을 아들 겸 데릴사위로 삼게 되어 숙자와 부부가 된다. 장인 덕에 경성에 있는 유수의 모모 학교를 졸업하고 가산까지 모두 상속받는다. 그러나 문환은 상업에 큰 실패를 하게 되고 폐병에 걸려 죽음에 임박하게 되었다. 숙자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부인잡지사 서기로 취직하여 십오원 박봉을 달달이 만지게 되지만 “셩 사은 굴머죽겟고, 病 든 사은 藥 못 먹어 죽게”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부유하던 숙자 부부가 먹고 살기조차 힘들게 된 것은 그들이 게으르거나 방탕해서가 아니었다. 숙자는 “부녀계(婦女界)에 對야 큰 모범(模範)”이 되었고 “틔마치도 시속(時俗) 부인(婦人)네와 치 부화(浮華)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이문환은 상속받은 재산을 “푼 두푼을 남용(濫用)이 업시 그 재산(財産)을 직혀가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숙자와 이문환은 도덕적으로 살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재산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시 일본의 대자본으로 인해 한국인의 상업이 무너진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 후 회사령(1910.12)을 발포하였는데 이는 한국인들의 회사설립 열기를 꺾고 한국인 토착자본이 민족자본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로인해 민족자본의 성장이 억제되었음은 물론이고 상공업 분야에서도 일제는 한국인들의 상업 활동을 억제하였다. 이에 따라 무역업, 도매업 등 규모가 큰 사업은 일본 상인들이 장악하였고 한국 상인들은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소규모 잡화상이나 객주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김복순, 『1910년대 한국문학과 근대성』, 소명출판, 1999.
「황금(黃金)?」(1915.12)은 가난한 부부의 모습을 통해 ‘돈’이 가지는 의미를 그리고 있다. 경자는 부잣집에서 자란 몸으로 평생 인생의 괴로움이 어떠한지 모르고 살았으나 동환과 결혼 후 동환이 “이 사업, 져 경영에 누만의, 산을 탕진고, 지금은 결현
라고도 볼 수 있다. 백화 아버지의 유교적 이념과 돈이라면 딸까지도 서슴없이 주는, 즉 가족구조까지 간단히 해체하는 식민지 자본주의 모순을 통해 작가의 반봉건적이고 반자본주의적인 인식이 드러난다.
4. 백대진과 그의 소설
백대진은 비평 분야에서 간헐적으로 언급되어졌고, 김억보다 앞서 『태서문예신보』에 상징주의 시론을 소개하는 등 외국 사조를 소개하였으며, 시, 소설, 수필 등을 창작하면서 문학이론을 제시하기도 하였다. 그는 1892년 서울 서부(西部) 인달방(仁達坊) 필운대(弼雲坮)에서 백규삼의 장남으로 출생하였으며, 인천공립보통학교 교원으로 재직하다가 『신문계』, 『반도시론』,『매일신보』의 기자와 간사(幹事)로 활동했고,『신천지』 주간으로 활동하였으며 홍익대 신문학과 강사를 역임하고 1967년 타계했다.
백대진이 가지고 있던 사상적 입지는 ‘일본 통치를 인정하는 전제하의 자치론’ 김복순, 위의 책, p.189.
이었다. 그는 기본적으로 사회진화론에 기초한 문명개화지상론의 입장이었으며, 일본이 우리를 문명개화시켜 잘살게 해줄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른바 몰주체적 입장의 개화론인 것이다. 그는 사회진화론의 법칙인 적자생존, 우승열패의 논리 즉 “우(優)한 자가 이기고, 열(劣)한 자 지는 것은 자연율(自然律)”이라고 믿었으며 “국민적 기예를 배워 적자생존의 생명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 위의 책, p.193.
한편 백대진은 18편의 창작소설과 3편의 번역소설, 그리고 1편의 번안소설을 발표했던 소설기 백대진은 평론류의 글을 발표할 때는 거의 본명인 白大鎭을 사용한 반면, 소설을 발표할 때는 단 한번도 본명을 사용하지 않고 다양한 필명을 사용하였다. 이에 白樂天子, 破( )生, D. C生, D. C. P生, 不知憂生, 不知憂子, 無憂生, 樂天生, 樂天子, 피生, P生, 白生, 徒手子, 險口子, 雪園, 雪園生이 모두 백대진 호임을 연구를 통해 밝혀졌다. 백대진의 필명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자세히 고증되어 있다. 주승택, 「백대진 문학연구서설」, 『한국현대시론사』, 모음사, 1992; 주승택, 「백대진 연구」, 『진단학보』, 1995, 12; 김복순, 『1910년대 한국문학과 근대성』, 소명출판, 1999.
이기도 하다. 백대진은 1915년과 1916년 『신문계』를 통해 ‘자연주의 문학론’을 제창하였다. 그가 말하는 자연주의문학이란 “현실을 노골적으로 진직(眞直)히 묘사한 문학”으로 현대 사조 개념의 자연주의가 아니라 ‘작가의 태도’ 문혜윤, 「백대진 단편소설 연구」, 『한국문학이론과 비평』23호, 2004, p.148.
를 지시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백대진은 당시 신소설이 통속적이고 퇴폐적이 되어가는 것에 대해 비판을 하면서 문학이 ‘생활과 유리되지 않고 현실을 핍진하게 묘사할 수’ 위의 논문, p.148.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대진의 작품 세계에 따라 크게 네 부분 김복순은 계몽적 성격과 문명개화 예찬, 가난의 원인인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폭로, 유학생의 타락상 고발, 천도교 입교와 문명개화로 구분하고 있다.
으로 구분할 수 있다. 여기에서는 사회자본주의의 모순을 사실적으로 그려낸 작품 중 네 작품을 택하여 분석하고자 한다. 작품의 분석을 통해 백대진이 당시 식민지 시대의 자본주의에 대해 어떻게 인식을 했으며 그가 가진 한계가 무엇인지 알아보고자 한다.
4.1. 가난으로 인한 자본주의의 폐해 인식
백대진의 소설에는 근대화 과정을 통해 자본주의적 질서를 형성해가고 있던 사회 상황을 비판적으로 그려낸다. 그의 소설인 「오호박명」「황금?」「절교의 서한」「양인의 기도」에서는 가난으로 인하여 친구간의 의리를 저버리거나 가정이 파탄되는 상황을 주로 형상화하고 있다. 즉 자본주의 사회의 폐해에서 비롯되는 빈부의 격차, 가난으로 인한 고통과 신음을 주인공이 처한 상황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가장 먼저 발표된 「오호박명」(1915.8)은 남편이 병들어 죽음에 임박하는 상황을 그리고 있다. 동경고등여학원을 졸업한 일본유학생 출신 숙자(淑子)는 무남독녀로 장중보옥같이 자랐다. 이문환은 일찍 부모를 여의고 이사람의 은혜, 저사람의 후의(厚意)로 살아오다가 숙자의 부모가 이문환을 아들 겸 데릴사위로 삼게 되어 숙자와 부부가 된다. 장인 덕에 경성에 있는 유수의 모모 학교를 졸업하고 가산까지 모두 상속받는다. 그러나 문환은 상업에 큰 실패를 하게 되고 폐병에 걸려 죽음에 임박하게 되었다. 숙자는 남편을 살리기 위해 부인잡지사 서기로 취직하여 십오원 박봉을 달달이 만지게 되지만 “셩 사은 굴머죽겟고, 病 든 사은 藥 못 먹어 죽게”되는 상황이다. 이렇게 부유하던 숙자 부부가 먹고 살기조차 힘들게 된 것은 그들이 게으르거나 방탕해서가 아니었다. 숙자는 “부녀계(婦女界)에 對야 큰 모범(模範)”이 되었고 “틔마치도 시속(時俗) 부인(婦人)네와 치 부화(浮華) 생각”이 없는 사람이었으며, 이문환은 상속받은 재산을 “푼 두푼을 남용(濫用)이 업시 그 재산(財産)을 직혀가면서” 살아온 사람이었다. 숙자와 이문환은 도덕적으로 살았지만 사회의 구조적 모순으로 인해 재산을 지킬 수 없게 된 것이다. 당시 일본의 대자본으로 인해 한국인의 상업이 무너진 사회를 보여주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은 한일합방 후 회사령(1910.12)을 발포하였는데 이는 한국인들의 회사설립 열기를 꺾고 한국인 토착자본이 민족자본으로 성장하는 것을 막기 위함이었다. 그로인해 민족자본의 성장이 억제되었음은 물론이고 상공업 분야에서도 일제는 한국인들의 상업 활동을 억제하였다. 이에 따라 무역업, 도매업 등 규모가 큰 사업은 일본 상인들이 장악하였고 한국 상인들은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경우 소규모 잡화상이나 객주업에 종사할 수밖에 없었다. 김복순, 『1910년대 한국문학과 근대성』, 소명출판, 1999.
「황금(黃金)?」(1915.12)은 가난한 부부의 모습을 통해 ‘돈’이 가지는 의미를 그리고 있다. 경자는 부잣집에서 자란 몸으로 평생 인생의 괴로움이 어떠한지 모르고 살았으나 동환과 결혼 후 동환이 “이 사업, 져 경영에 누만의, 산을 탕진고, 지금은 결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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