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 거리(distance)와 서술구조
§ 시와 난해성
§ 시와 난해성
본문내용
미 이전의 세계라고 하였고, 음악이란 무의미의 예술이라고 하였다. 이 시는 음이 만들어주는 분위기를 통해 정서를 환기시키는 세계를 표현 한 것이다.
이 시는 시인 김춘수의 표현에 의하면 이른바 탈이미지의 세계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소멸, 그러니까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이 아니라 한 이미지가 다른 한 이미지를 뭉개버릴 때 태어난다. 한 이미지를 다른 한 이미지로 하여금 소멸케 하는 동시에 그 스스로도 다음의 제3의 이미지에 의하여 꺼져가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이 시에서 강조되는 것은 시어의 되풀이가 낳는 리듬이다. 이것은 자유와 불안의 논리를 띤다. 시의 2연에서 ‘돌려다오’의 시어가 반복되는 것은 모든 대상이 소멸한 다음 우리가 겪게 되는 불안의 세계이다.
5연은 사바다라는 멕시코 혁명가가 나오는 부분이다. 멕시코라는 나라 이름이 주는 환기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실제 사바다가 아니고, 사바다를 빌어, 리듬만 가지고도 시가 되는가 하는 것을 시험한 것입니다. ‘사바다는 사바다’ 하면서 ‘사바다’가 자꾸 되풀이된다. 일종의 주문을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무의미시의 2단계이다. 의미를 없애려 하니까 그렇게 된 것이고, 언어가 얼마나 순수해질 수 있는가를 시험한 부분이다.
▶ 우리의 감상
이 시의 제목을 그대로 해석해보면 ‘처용에 대한 짧은 글’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이미 처용가를 배웠기 때문에 시의 내용을 처용가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보았다. 시는 여러 개의 연으로 되어 있었는데 각 연의 행의 끝은 어떤 단어로 반복되어 있어서 시인이 그 단어의 반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한다고 생각하였다. “돌려다오”라는 단어의 반복은 처용이 아내를 역신에게 빼앗겼기에 이를 돌려달라고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바닥”은 처용이 자기 부인과 역신이 한 방에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당시 발이 두 개씩 보인 것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고, “살려다오”는 처용의 아내가 바람피운 우리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멕시코 사바다”가 반복되는 연은 뜻을 이해하기 가장 힘들었던 부분으로 이 시가 난해시임을 분명히 해주었다. 이 부분은 처용이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말하는 의견을 고려하여,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보았다. 이렇게 각 연의 핵심 단어들이 강조하는 바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안, 이불 속의 아내의 발이 네 개라는 장난스런 말로 아내의 바람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관용을 보여준 처용과 한편으로는 아내를 빼앗겨 안타까웠을 처용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처용단장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용가를 적용시켜 많은 생각을 하는 도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시는 무의미시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이 시가 무의미 시였다는 것을 알았으면 이 시는 그냥 의미가 없는 것이다 라고만 생각하고 시를 치워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감상을 했을 때 이 시에 대해 더 깊은 감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고, 우리 나름의 해석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하기도 하였다.
◎ 토론거리
1) 시인과 시, 독자 간에는 거리가 존재한다. 시인과 시의 거리가 가깝다면 그만큼 시와 독자와의 거리는 멀어진다. 반대로 시와 독자의 거리가 가깝다면 그만큼 시인과 시와의 거리는 멀어지는데, 이 둘 중 어느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 우리는 앞에서 세 편의 난해시를 보았다. 이 시들을 한 번 보아서는 당최 시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앞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시의 기준을 말했을 때 나왔던 것처럼, 시는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때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왜 우리가 공감할 수 없는 이런 난해한 시를 쓰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3) 환생, 혹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이 시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어떠한 점을 보고 시라는 것을 파악해야 하는 것일까?
◎ 참고자료
幻生, 혹은 죽음에 이르는 병 - 성기완
……그러니 타락하라,
목숨은 목숨을 낳을 뿐.
-니체
虛 頭
목숨을 싣고 다니는 파장이 하늘에 亂舞한 거미줄을 쳐놓고 목숨들의 승천을 가로막고 있으니 모든 生은 죽음을 눈앞에 둔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複製를 눈앞에 둔 주형틀이라 다들 의미를 찾지 못하고 뜻 없는 거울에 되비친 자기 자신의 해골바가지에다 대고 웃고 울고 지랄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얼싸안고 울고불고 마치 가본 것처럼 좋드만 싫드만
이 시는 시인 김춘수의 표현에 의하면 이른바 탈이미지의 세계이다. 그것은 이미지의 소멸, 그러니까 이미지와 이미지의 연결이 아니라 한 이미지가 다른 한 이미지를 뭉개버릴 때 태어난다. 한 이미지를 다른 한 이미지로 하여금 소멸케 하는 동시에 그 스스로도 다음의 제3의 이미지에 의하여 꺼져가는 그런 세계인 것이다.
이 시에서 강조되는 것은 시어의 되풀이가 낳는 리듬이다. 이것은 자유와 불안의 논리를 띤다. 시의 2연에서 ‘돌려다오’의 시어가 반복되는 것은 모든 대상이 소멸한 다음 우리가 겪게 되는 불안의 세계이다.
5연은 사바다라는 멕시코 혁명가가 나오는 부분이다. 멕시코라는 나라 이름이 주는 환기력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실제 사바다가 아니고, 사바다를 빌어, 리듬만 가지고도 시가 되는가 하는 것을 시험한 것입니다. ‘사바다는 사바다’ 하면서 ‘사바다’가 자꾸 되풀이된다. 일종의 주문을 만든 것입니다. 그것이 무의미시의 2단계이다. 의미를 없애려 하니까 그렇게 된 것이고, 언어가 얼마나 순수해질 수 있는가를 시험한 부분이다.
▶ 우리의 감상
이 시의 제목을 그대로 해석해보면 ‘처용에 대한 짧은 글’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모두 이미 처용가를 배웠기 때문에 시의 내용을 처용가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보았다. 시는 여러 개의 연으로 되어 있었는데 각 연의 행의 끝은 어떤 단어로 반복되어 있어서 시인이 그 단어의 반복을 통해 말하고자 하는 바를 강조한다고 생각하였다. “돌려다오”라는 단어의 반복은 처용이 아내를 역신에게 빼앗겼기에 이를 돌려달라고 강조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발바닥”은 처용이 자기 부인과 역신이 한 방에 있는 장면을 목격했을 때 당시 발이 두 개씩 보인 것을 표현한 것이라 생각했고, “살려다오”는 처용의 아내가 바람피운 우리를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멕시코 사바다”가 반복되는 연은 뜻을 이해하기 가장 힘들었던 부분으로 이 시가 난해시임을 분명히 해주었다. 이 부분은 처용이 외국에서 온 사람이라고도 말하는 의견을 고려하여, 그가 외국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부분으로 보았다. 이렇게 각 연의 핵심 단어들이 강조하는 바에 대하여 생각하는 동안, 이불 속의 아내의 발이 네 개라는 장난스런 말로 아내의 바람을 표현하면서 자신의 감정을 절제하고 관용을 보여준 처용과 한편으로는 아내를 빼앗겨 안타까웠을 처용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우리가 처용단장이라는 제목을 보고 처용가를 적용시켜 많은 생각을 하는 도중에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바로 이 시는 무의미시라는 점이다. 처음부터 이 시가 무의미 시였다는 것을 알았으면 이 시는 그냥 의미가 없는 것이다 라고만 생각하고 시를 치워버렸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 사실을 모르고 감상을 했을 때 이 시에 대해 더 깊은 감상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되고, 우리 나름의 해석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에 대해 뿌듯하기도 하였다.
◎ 토론거리
1) 시인과 시, 독자 간에는 거리가 존재한다. 시인과 시의 거리가 가깝다면 그만큼 시와 독자와의 거리는 멀어진다. 반대로 시와 독자의 거리가 가깝다면 그만큼 시인과 시와의 거리는 멀어지는데, 이 둘 중 어느 것이 좋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2) 우리는 앞에서 세 편의 난해시를 보았다. 이 시들을 한 번 보아서는 당최 시인이 무슨 말을 하고 싶어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앞에서 우리가 좋아하는 시의 기준을 말했을 때 나왔던 것처럼, 시는 그것을 읽는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을 때 좋은 시라고 생각했다. 그렇다면 시인들은 왜 우리가 공감할 수 없는 이런 난해한 시를 쓰는 것인지 생각해보자.
3) 환생, 혹은 죽음에 이르는 병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은 이 작품이 시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렇다면 이 작품의 어떠한 점을 보고 시라는 것을 파악해야 하는 것일까?
◎ 참고자료
幻生, 혹은 죽음에 이르는 병 - 성기완
……그러니 타락하라,
목숨은 목숨을 낳을 뿐.
-니체
虛 頭
목숨을 싣고 다니는 파장이 하늘에 亂舞한 거미줄을 쳐놓고 목숨들의 승천을 가로막고 있으니 모든 生은 죽음을 눈앞에 둔 단 한 번의 기회가 아니라 複製를 눈앞에 둔 주형틀이라 다들 의미를 찾지 못하고 뜻 없는 거울에 되비친 자기 자신의 해골바가지에다 대고 웃고 울고 지랄하다가 나중에는 서로 얼싸안고 울고불고 마치 가본 것처럼 좋드만 싫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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