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설화의 기록전승
Ⅱ. 서울지역의 설화 사례
1. 국사당(國師堂)의 유래 - 중요민속자료 제28호
2. 북한산 형제봉(北漢山 兄弟峰)
3. 종침교(琮沈橋)
Ⅲ. 안성지역의 설화 사례
1. 안성의 유명인물 바우덕이
2. 트집 잘 잡는 안성 도기머리
1) 한국구비문학대계
2) 안성군지 및 애향
3) 여드레 팔십리의 유래
4) 안성 진살미의 유래
Ⅳ. 전라남도의 설화 사례
1. 덕진다리(德津橋)의 유래
2. 영산강 유래
3. 삼학도(三鶴島)의 내력
참고문헌
Ⅱ. 서울지역의 설화 사례
1. 국사당(國師堂)의 유래 - 중요민속자료 제28호
2. 북한산 형제봉(北漢山 兄弟峰)
3. 종침교(琮沈橋)
Ⅲ. 안성지역의 설화 사례
1. 안성의 유명인물 바우덕이
2. 트집 잘 잡는 안성 도기머리
1) 한국구비문학대계
2) 안성군지 및 애향
3) 여드레 팔십리의 유래
4) 안성 진살미의 유래
Ⅳ. 전라남도의 설화 사례
1. 덕진다리(德津橋)의 유래
2. 영산강 유래
3. 삼학도(三鶴島)의 내력
참고문헌
본문내용
라도 잇게 하려고 그 불구아들을 피난시켰는데, 이 사람이 여드레 밤낮을 도망쳤어도 겨우 팔십리 밖에 못가 결국은 음죽골에서 잡혀 죽었다. 여기에서 기원하여 여드레 팔십 리라는 말이 생겼다.
4) 안성 진살미의 유래
삼죽면 내장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진살미라는 곳이 있다. 여기에서는 지금도 덜 익은 곡식을 진살미라 하고 있는데, 이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고려시대에 어떤 임금님이 피난을 갈 때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가난하여 식사시간이 되어도 임금님께 대접할 것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덜 익은 수수를 따서 대접을 하였더니 임금님은 매우 맛있게 드셨다. 후일 임금님이 그 음식이 생각나 다시 해 오라 하여 이것을 진상했는데, 전에 먹던 맛이 아니었다. 그 때 임금이 별 수 없이 진살미로구나 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이 마을을 진살미라 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이곳에서는 덜 익은 곡식을 진살미라 하고 있다.
Ⅳ. 전라남도의 설화 사례
1. 덕진다리(德津橋)의 유래
덕진(德津)을 사람들은 옛날 이곳의 주모(酒母) 이름이라 하지만 사실은 덕(德)이 있는 주모가 살던 나룻터라 해서 덕진이란 지명이 생겼을 것이다. 사실이야 어쨌든 이 다리목에서 2백m 거리에 있는 덕진면(德津面)사무소 앞에 대석교창립덕진지비(大石橋創立德津之碑)가 서 있고 덕진이 지명이 아니라 인명(人命)인 것처럼 되어 있다. 옛날 이 나루터에 주막(酒幕)이 있었다. 이 주막의 주모는 매우 착한 여인이었다. 옛날 손님들은 먼 길을 걸어다녔기 때문에 노자가 없는 사람들은 한 줌의 쌀을 내어 놓고 밥을 해달라 청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손님들에게 인심을 베풀었다.
여행에 시장할 터인데 겨우 이것을 먹고 배가 부르겠오.
자기 집 쌀을 보태어 듬뿍 밥을 지어주니 지나는 사람마다 덕 있는 여인이라 칭송을 했다. 어느 해 영암(靈岩)에는 젊고 교만한 군수(郡守)가 부임했으나 갑자기 급사를 당했다. 군수는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끌려갔다. 그는 염라대왕에게 하소연하였다.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이 억울하니 다시 세상에 나가 일할 기회를 주십시오
염라대왕은 인심 좋게 그의 소원을 들어 다시 세상에 나가도록 허락했으나 저승을 나오려 하자마자 그를 잡아 갔던 저승사자(使者)들이 붙잡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살아 나가는 판에 인사가 없어서야 되겠소. 나가는 길을 인도 할 테니 수고비를 내놓으시오
갑자기 끌려온 놈이 수중에 무슨 돈이 있겠소. 후일 내 후사하리라.
사자(使者)들은 그런 것은 염려할 필요 없다는 듯이 자기들을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이승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창고가 있고 이승에서 적선(積善)을 하면 적선한 만큼 그 창고에 쌓이는 법이니 네 몫의 창고에 가자
군수와 사자가 군수 몫의 창고를 가보니 짚 한 단이 있을 뿐이었다. 군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승에 살면서 적선한 일이라곤 어렸을 때 산고(産苦)드는 여인에게 깔개가 없는 것을 보고 급히 짚 한 단을 갖다 준 일이 있을 뿐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사자(使者)들은 눈을 부라리며 군수의 덜미를 잡고 호령하는 것이었다.
이 놈이 이승에서 남 도울 줄 모르는 불한당 노릇만 했구나, 네 창고는 비었으니 네 고을 덕진(德津)이란 사람의 것을 빌려 쓰고 세상에 나가서 갚아라.
그는 사자들이 시키는 대로 덕진의 창고에서 쌀 3백 섬을 빌어주고 가까스로 풀려났다. 이렇게 해서 죽었다가 살아난 군수는 고을 안에 정말로 덕진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알아보았다. 나졸로부터 나루터 주모(酒母)라는 것을 알게 된 군수는 그녀를 찾아가 저승에서의 일을 얘기하고 쌀 3백 섬을 갚아 주었다. 생각지도 않은 쌀 3백 섬을 고을 원님으로부터 받은 덕진 주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분명 착한 일을 더 많이 하라는 부처님의 뜻이다.
그녀는 궁리 끝에 그 쌀을 팔아 나루터에 큰 석교(石橋)를 놓았다는 전설이다.
2. 영산강 유래
어느 날 나주골 원님이 영을 내렸다. 근심 걱정이 없이 산다는 정영감을 당장 불러들이라는 것이다. 원님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근심이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자식이 다섯이 있었다. 모두 출가를 시켰고 아들은 모두 효자요, 며느리들도 모두 효부였다. 딸도 그랬고 사위도 그러했다. 큰아들은 집에만 계시기를 원하고 조석으로 아버님의 안부에 유의하여 잡수시는 음식과 의복에 대해서까지 잘 살폈다. 비단 이것은 큰아들뿐만이 아니었다. 둘째, 셋째 모두가 아버님이 자기네 집에 와 계시기를 원했다. 정노인은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으니 그저 흡족하고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러한 소문은 널리 퍼져 원님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한 고을의 수령인 자신도 근심과 걱정으로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편할 날이 하루도 없는데 평민으로서 근심이 없다니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정노인을 부르게 한 것이다.
그래 참으로 그대는 근심이 없는가?
황공하오나 그러하오이다.
이 고을 원인 나에게도 근심이 있는데 감히 그대에게 근심이 없을 수 있는가?
그러하오나 소인에게는 아직까지 근심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말을 하여 보아라.
정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까지 지내온 자초지종을 쭉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원은 진실로 탄복하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과연 기특한 일이로다. 내가 기념으로 소중히 여기는 여의주를 줄 것이니 잘 보관할지어다.
황공하옵니다.
이 여의주는 단 하나로서 내가 보고 싶을 때에는 그대를 부를 것이니 가지고 오기를 바란다.
이리하여 정노인은 원님에게서 구슬을 선물 받고 물러 나왔다. 정노인을 내보낸 후 원님은 즉시 종자를 불러서 이러이러 하라고 분부했다. 정노인은 얼마를 가다가 나루를 건너게 됐다. 정노인의 뒤를 따라온 종자는 뱃사공의 귀에다 대고 무엇인가 소근거리고 나서 돈을 쥐어주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정노인이 배에 오르자 사공은 삿대로 배를 밀면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노인장 얼마나 기쁘시오?
뭐가 말이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노인장이 원님으로부터 상을 받은 것을 누가 모를 줄 아시오.
참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야 어디 생각이나 할 일이었소.
참, 그런데 그 구슬을 구경이나 좀 합시다.
정노인은 가슴이 섬
4) 안성 진살미의 유래
삼죽면 내장리에서 으뜸가는 마을로 진살미라는 곳이 있다. 여기에서는 지금도 덜 익은 곡식을 진살미라 하고 있는데, 이 유래는 다음과 같다. 옛날 고려시대에 어떤 임금님이 피난을 갈 때 이 마을을 지나게 되었다. 마을 사람들이 너무나도 가난하여 식사시간이 되어도 임금님께 대접할 것이 없어 하는 수 없이 덜 익은 수수를 따서 대접을 하였더니 임금님은 매우 맛있게 드셨다. 후일 임금님이 그 음식이 생각나 다시 해 오라 하여 이것을 진상했는데, 전에 먹던 맛이 아니었다. 그 때 임금이 별 수 없이 진살미로구나 했기 때문에 이로 인해 이 마을을 진살미라 하게 되었는데, 지금도 이곳에서는 덜 익은 곡식을 진살미라 하고 있다.
Ⅳ. 전라남도의 설화 사례
1. 덕진다리(德津橋)의 유래
덕진(德津)을 사람들은 옛날 이곳의 주모(酒母) 이름이라 하지만 사실은 덕(德)이 있는 주모가 살던 나룻터라 해서 덕진이란 지명이 생겼을 것이다. 사실이야 어쨌든 이 다리목에서 2백m 거리에 있는 덕진면(德津面)사무소 앞에 대석교창립덕진지비(大石橋創立德津之碑)가 서 있고 덕진이 지명이 아니라 인명(人命)인 것처럼 되어 있다. 옛날 이 나루터에 주막(酒幕)이 있었다. 이 주막의 주모는 매우 착한 여인이었다. 옛날 손님들은 먼 길을 걸어다녔기 때문에 노자가 없는 사람들은 한 줌의 쌀을 내어 놓고 밥을 해달라 청했다. 그녀는 그럴 때마다 손님들에게 인심을 베풀었다.
여행에 시장할 터인데 겨우 이것을 먹고 배가 부르겠오.
자기 집 쌀을 보태어 듬뿍 밥을 지어주니 지나는 사람마다 덕 있는 여인이라 칭송을 했다. 어느 해 영암(靈岩)에는 젊고 교만한 군수(郡守)가 부임했으나 갑자기 급사를 당했다. 군수는 죽어 저승의 염라대왕 앞에 끌려갔다. 그는 염라대왕에게 하소연하였다.
젊은 나이에 죽는 것이 억울하니 다시 세상에 나가 일할 기회를 주십시오
염라대왕은 인심 좋게 그의 소원을 들어 다시 세상에 나가도록 허락했으나 저승을 나오려 하자마자 그를 잡아 갔던 저승사자(使者)들이 붙잡고 협박하는 것이었다.
살아 나가는 판에 인사가 없어서야 되겠소. 나가는 길을 인도 할 테니 수고비를 내놓으시오
갑자기 끌려온 놈이 수중에 무슨 돈이 있겠소. 후일 내 후사하리라.
사자(使者)들은 그런 것은 염려할 필요 없다는 듯이 자기들을 따라오라는 것이었다.
이승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이곳에 창고가 있고 이승에서 적선(積善)을 하면 적선한 만큼 그 창고에 쌓이는 법이니 네 몫의 창고에 가자
군수와 사자가 군수 몫의 창고를 가보니 짚 한 단이 있을 뿐이었다. 군수가 곰곰이 생각해보니 이승에 살면서 적선한 일이라곤 어렸을 때 산고(産苦)드는 여인에게 깔개가 없는 것을 보고 급히 짚 한 단을 갖다 준 일이 있을 뿐임을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사자(使者)들은 눈을 부라리며 군수의 덜미를 잡고 호령하는 것이었다.
이 놈이 이승에서 남 도울 줄 모르는 불한당 노릇만 했구나, 네 창고는 비었으니 네 고을 덕진(德津)이란 사람의 것을 빌려 쓰고 세상에 나가서 갚아라.
그는 사자들이 시키는 대로 덕진의 창고에서 쌀 3백 섬을 빌어주고 가까스로 풀려났다. 이렇게 해서 죽었다가 살아난 군수는 고을 안에 정말로 덕진이라는 사람이 있는가 알아보았다. 나졸로부터 나루터 주모(酒母)라는 것을 알게 된 군수는 그녀를 찾아가 저승에서의 일을 얘기하고 쌀 3백 섬을 갚아 주었다. 생각지도 않은 쌀 3백 섬을 고을 원님으로부터 받은 덕진 주모는 이렇게 생각하였다.
이것은 분명 착한 일을 더 많이 하라는 부처님의 뜻이다.
그녀는 궁리 끝에 그 쌀을 팔아 나루터에 큰 석교(石橋)를 놓았다는 전설이다.
2. 영산강 유래
어느 날 나주골 원님이 영을 내렸다. 근심 걱정이 없이 산다는 정영감을 당장 불러들이라는 것이다. 원님은 사람이 살아가는 데 근심이 없는 것은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을 했기 때문이다. 그에게는 자식이 다섯이 있었다. 모두 출가를 시켰고 아들은 모두 효자요, 며느리들도 모두 효부였다. 딸도 그랬고 사위도 그러했다. 큰아들은 집에만 계시기를 원하고 조석으로 아버님의 안부에 유의하여 잡수시는 음식과 의복에 대해서까지 잘 살폈다. 비단 이것은 큰아들뿐만이 아니었다. 둘째, 셋째 모두가 아버님이 자기네 집에 와 계시기를 원했다. 정노인은 가는 곳마다 융숭한 대접을 받으니 그저 흡족하고 부러울 것이 없었다. 이러한 소문은 널리 퍼져 원님에게까지 전해진 것이다.
한 고을의 수령인 자신도 근심과 걱정으로 머리가 무겁고 마음이 편할 날이 하루도 없는데 평민으로서 근심이 없다니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 정노인을 부르게 한 것이다.
그래 참으로 그대는 근심이 없는가?
황공하오나 그러하오이다.
이 고을 원인 나에게도 근심이 있는데 감히 그대에게 근심이 없을 수 있는가?
그러하오나 소인에게는 아직까지 근심이라고는 없습니다.
그래 그럼 어디 말을 하여 보아라.
정노인은 떨리는 목소리로 지금까지 지내온 자초지종을 쭉 말했다. 이야기를 듣고 난 원은 진실로 탄복하고 칭찬해 마지않았다.
과연 기특한 일이로다. 내가 기념으로 소중히 여기는 여의주를 줄 것이니 잘 보관할지어다.
황공하옵니다.
이 여의주는 단 하나로서 내가 보고 싶을 때에는 그대를 부를 것이니 가지고 오기를 바란다.
이리하여 정노인은 원님에게서 구슬을 선물 받고 물러 나왔다. 정노인을 내보낸 후 원님은 즉시 종자를 불러서 이러이러 하라고 분부했다. 정노인은 얼마를 가다가 나루를 건너게 됐다. 정노인의 뒤를 따라온 종자는 뱃사공의 귀에다 대고 무엇인가 소근거리고 나서 돈을 쥐어주고 어디론지 사라져 버렸다. 정노인이 배에 오르자 사공은 삿대로 배를 밀면서 넌지시 말을 걸었다.
노인장 얼마나 기쁘시오?
뭐가 말이오?
발 없는 말이 천리 간다고 노인장이 원님으로부터 상을 받은 것을 누가 모를 줄 아시오.
참 말이 났으니 말이지 나야 어디 생각이나 할 일이었소.
참, 그런데 그 구슬을 구경이나 좀 합시다.
정노인은 가슴이 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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