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서론
1-1. 문제제기와 선행연구검토
1-2. 연구범위와 방법
2. 본론
2-1. 고전시가의 율격
2-2. 속요의 율격
3. 결론
1-1. 문제제기와 선행연구검토
1-2. 연구범위와 방법
2. 본론
2-1. 고전시가의 율격
2-2. 속요의 율격
3. 결론
본문내용
달님이시여 높이 높이 돋으시어
어기야 멀리 멀리 비취시옵소서
어기야 어강조리
아으 다롱디리.
저자에 가신 그대여
어기야 진 데를 디디면 어쩌나
어기야 어강조리
아으 다롱디리.
어디다 놓고 계신고요
어기야 내 가는데 저물면 어쩌나
어기야 어강조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의 묘미는 간절한 여인의 하소연이 노래 가운데에서 스며나는 흡인력에 있다. 비록 등짐 장수의 아내일망정 그의 소박한 입김에 서린 사랑의 시운은 모름지기 살랑거리는 파장까지 자아낸다.
이 「정읍사」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속악에다 가사를 맞춘 노래로, 조선시대에는 섣달 그믐날 대궐에서 베푼 나례(儺禮) 후에 연주된 가창이었다. 그 음수율은 233과 335조임을 위에서 알아보았다.
다음은 ‘곡’에 관한 노래로서 「사모곡」을 살펴보겠다. ‘곡’은 사연이 구구절절하며 가사의 반복으로서 흥을 풍기고, 여음과 추임새가 곁들어서 청중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다.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같이 들 리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둥셩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리 없어라
아소 님이시어
어머니같이 사랑하실 리 없어라.
노래의 내용부터가 평범한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장단에 맞춰, 부르기 쉽고 외우기 싶고 전달하기 쉬운 말로 꾸며졌다. 호미도 날은 날이지만 낫처럼 들 리가 없다는 비흥은 부르기도 외우기도 전하기도 쉬운 실상이 너무도 예사스런 비유이다.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특별한 음수율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곡’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대중에게 매우 호응을 받았다.
다음은 ‘가’에서 골라 더불어 읽기로 한다. 사실 속요라지만, ‘요’라는 이름으로 전함이 드물다. 신라가요의 「서동요」나 「풍요」처럼 노래 자체가 남지는 않고, 다만 이제현의 『익재소악부』에 「탐라요」가 있을 따름이니, 비록 민요라는 이름으로 전하지는 않더라도 ‘사’나 ‘곡’이나 ‘가’나 ‘요’의 유형이 아닌 노래가 ‘요’의 성격을 띠었을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가곡이란 이름의 노래에도 민요에 해당하는 노래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속요라면 유명한 「처용가」가 제일이다. 신라가요의 「처용가」가 있어 더욱 많이 불리었고, 그로 말미암아 의식에도 필수의 놀이가 되어 한말에까지 전하여 내려온 악무(樂舞)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라가요의 「처용가」, 속요의 「처용가」, 또 그 변형의 「잡쳐용」이 있고, 「나례가」도 전한다.
「처용가」는 비연시로서 다른 시가와는 달리 율격이 있음을 유념했었다. 이것은 악무로서 전해져 내려온 그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334조 음수율을 가진 징과 돌의 노래, 「정석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징아 돌아 당금(當今)에 계샤이다
징아 돌아 당금에 계샤이다
선왕(先王) 성대(聖代)에 노니사와지이다.
삭삭기 가는 모래 벼랑에
삭삭기 가는 모래 벼랑에
구은 밤 닷되를 심었습니다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
옥으로 연꽃을 새기옵니다
옥으로 연꽃을 새기옵니다
바위 위에 접주(接株)합니다
그 꽃이 석동이 피고서야
그 꽃이 석동이 피고서야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
무쇠로 군복을 말라서
무쇠로 군복을 말라서
철사로 주름을 박습니다.
그 옷이 다 헐어서야
그 옷이 다 헐어서야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
무쇠로 큰 소를 주조해다가
무쇠로 큰 소를 주조해다가
철수산(鐵樹山)에 놓았습니다.
그 소가 철초(鐵草)를 다 먹어야
그 소가 철초(鐵草)를 다 먹어야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오리까
천년을 외로이 간들
천년을 외로이 간들
신(信)이야 끊어지오리까.
이 작품은 모두 열한 연으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서는 6연만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이름부터 ‘가’라 역시 ‘곡’과는 다르게 가사가 매우 과갈스러워 사연보다는 여럿이 제창하는 노래답다. 이를 보아 고려의 사회가 얼마나 어수선했던가를 보여주는 그림과 같은 노래다.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는 이별이 강요되는 순간에 이별을 거부하는 절망을 반어적으로 나타낸다. ‘신(信)이야 끊어지오리까’ 역시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이며 이별하여도 임과의 관계를 심리적으로 지속하겠다는 의지와 결심을 나타낸다. 이는 한편으로 체념을 나타낸다. 임과의 관계를 심리적으로 지속한다고 하여도, 이러한 관계를 현실적으로 결핍된,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각 연의 안과 각 연 사이에 여러 겹으로 후렴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후렴은 의미 단위의 시작이나 끝을 암시하기도 하고, 의미나 어조를 강화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후렴은 강요되는 이별을 강력하게 부정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고, 이에 대해 다시 이별을 체념하게 되는 부분에서는 어조가 약화되는 것을 확인 이대규, 「고려가요 ‘정석가’해석」, 국어국문학 제35호, 1998, p.62.
할 수 있다.
이밖에 월령체가의 비롯인 「동동」이 있다. 구체적인 몇몇 연을 들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월 음력의 냇물을
아으 얼고 녹고 하는데
누리 가운데에 나온
몸아 홀로 녑니다
아으 동동다리
이러한 진솔한 하소연은 노래의 맛을 살린다고 볼 수 있다. 냇물도 어울려 합쳐져 얼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렇듯 독수공방하다니 외로운 삶이다. 요는 헤어져 바라보기나 하는 임이고 보니, 자기의 삶은 강물만도 못한 신세였다.
사월 아니 잊고서
아으 왔네요 꾀꼬리새여
무엇 때문이냐 녹사(綠事)님은
옛 나를 잊고 계신고
아으 동동다리.
꽃피는 봄이면 온다는 임의 다짐을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는 마음을 나타냈다. 하다못해 꾀꼬리도 옛 가지에 다시 찾아와 노니는데, 온다는 기약이나 없었으면 덜 야속하련만, 기약조차 저버린 녹사님을 미워하고 있다. 이 사월령은 실로 시정이 다북해서 상승에 값하는 사무침이다.
십일월이라
봉당자리에
아으 한삼 덮어 누워
슬프옵니다
고운 임을 시새우며 갑니다
아으 동동다리
동짓달에 한삼을, 그것도 방도 아닌 봉당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꿈에나마 임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원노래에 ‘고우닐 스
어기야 멀리 멀리 비취시옵소서
어기야 어강조리
아으 다롱디리.
저자에 가신 그대여
어기야 진 데를 디디면 어쩌나
어기야 어강조리
아으 다롱디리.
어디다 놓고 계신고요
어기야 내 가는데 저물면 어쩌나
어기야 어강조리
아으 다롱디리.
「정읍사」의 묘미는 간절한 여인의 하소연이 노래 가운데에서 스며나는 흡인력에 있다. 비록 등짐 장수의 아내일망정 그의 소박한 입김에 서린 사랑의 시운은 모름지기 살랑거리는 파장까지 자아낸다.
이 「정읍사」는 옛날부터 전해 오는 속악에다 가사를 맞춘 노래로, 조선시대에는 섣달 그믐날 대궐에서 베푼 나례(儺禮) 후에 연주된 가창이었다. 그 음수율은 233과 335조임을 위에서 알아보았다.
다음은 ‘곡’에 관한 노래로서 「사모곡」을 살펴보겠다. ‘곡’은 사연이 구구절절하며 가사의 반복으로서 흥을 풍기고, 여음과 추임새가 곁들어서 청중에게 매우 인기가 많았다.
호미도 날이지마는
낫같이 들 리도 없습니다.
아버님도 어버이시지마는
위 덩더둥셩
어머님같이 사랑하실 리 없어라
아소 님이시어
어머니같이 사랑하실 리 없어라.
노래의 내용부터가 평범한 생활 주변의 이야기를 장단에 맞춰, 부르기 쉽고 외우기 싶고 전달하기 쉬운 말로 꾸며졌다. 호미도 날은 날이지만 낫처럼 들 리가 없다는 비흥은 부르기도 외우기도 전하기도 쉬운 실상이 너무도 예사스런 비유이다.
위에서도 살펴보았듯이 특별한 음수율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렇지만 ‘곡’이라는 점에서 당시의 대중에게 매우 호응을 받았다.
다음은 ‘가’에서 골라 더불어 읽기로 한다. 사실 속요라지만, ‘요’라는 이름으로 전함이 드물다. 신라가요의 「서동요」나 「풍요」처럼 노래 자체가 남지는 않고, 다만 이제현의 『익재소악부』에 「탐라요」가 있을 따름이니, 비록 민요라는 이름으로 전하지는 않더라도 ‘사’나 ‘곡’이나 ‘가’나 ‘요’의 유형이 아닌 노래가 ‘요’의 성격을 띠었을 것은 익히 짐작할 수 있다. 따라서, 가곡이란 이름의 노래에도 민요에 해당하는 노래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
속요라면 유명한 「처용가」가 제일이다. 신라가요의 「처용가」가 있어 더욱 많이 불리었고, 그로 말미암아 의식에도 필수의 놀이가 되어 한말에까지 전하여 내려온 악무(樂舞)이기도 하다. 그래서 신라가요의 「처용가」, 속요의 「처용가」, 또 그 변형의 「잡쳐용」이 있고, 「나례가」도 전한다.
「처용가」는 비연시로서 다른 시가와는 달리 율격이 있음을 유념했었다. 이것은 악무로서 전해져 내려온 그만의 특징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334조 음수율을 가진 징과 돌의 노래, 「정석가」를 살펴보도록 하겠다.
징아 돌아 당금(當今)에 계샤이다
징아 돌아 당금에 계샤이다
선왕(先王) 성대(聖代)에 노니사와지이다.
삭삭기 가는 모래 벼랑에
삭삭기 가는 모래 벼랑에
구은 밤 닷되를 심었습니다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
그 밤이 움이 돋아 싹이 나야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
옥으로 연꽃을 새기옵니다
옥으로 연꽃을 새기옵니다
바위 위에 접주(接株)합니다
그 꽃이 석동이 피고서야
그 꽃이 석동이 피고서야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
무쇠로 군복을 말라서
무쇠로 군복을 말라서
철사로 주름을 박습니다.
그 옷이 다 헐어서야
그 옷이 다 헐어서야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
무쇠로 큰 소를 주조해다가
무쇠로 큰 소를 주조해다가
철수산(鐵樹山)에 놓았습니다.
그 소가 철초(鐵草)를 다 먹어야
그 소가 철초(鐵草)를 다 먹어야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구슬이 바위에 떨어진들
끈이야 끊어지오리까
천년을 외로이 간들
천년을 외로이 간들
신(信)이야 끊어지오리까.
이 작품은 모두 열한 연으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서는 6연만 다루어보도록 하겠다. 이름부터 ‘가’라 역시 ‘곡’과는 다르게 가사가 매우 과갈스러워 사연보다는 여럿이 제창하는 노래답다. 이를 보아 고려의 사회가 얼마나 어수선했던가를 보여주는 그림과 같은 노래다.
‘유덕(有德)하신 임 여희였으면 합니다’는 이별이 강요되는 순간에 이별을 거부하는 절망을 반어적으로 나타낸다. ‘신(信)이야 끊어지오리까’ 역시 피할 수 없는 이별을 받아들이며 이별하여도 임과의 관계를 심리적으로 지속하겠다는 의지와 결심을 나타낸다. 이는 한편으로 체념을 나타낸다. 임과의 관계를 심리적으로 지속한다고 하여도, 이러한 관계를 현실적으로 결핍된, 바람직하지 않은 관계이다.
그리고 이 작품의 각 연의 안과 각 연 사이에 여러 겹으로 후렴이 이루어짐을 알 수 있다. 후렴은 의미 단위의 시작이나 끝을 암시하기도 하고, 의미나 어조를 강화하기도 한다. 이 작품에서 후렴은 강요되는 이별을 강력하게 부정하는 기능을 하기도 하고, 이에 대해 다시 이별을 체념하게 되는 부분에서는 어조가 약화되는 것을 확인 이대규, 「고려가요 ‘정석가’해석」, 국어국문학 제35호, 1998, p.62.
할 수 있다.
이밖에 월령체가의 비롯인 「동동」이 있다. 구체적인 몇몇 연을 들어 살펴보도록 하겠다.
정월 음력의 냇물을
아으 얼고 녹고 하는데
누리 가운데에 나온
몸아 홀로 녑니다
아으 동동다리
이러한 진솔한 하소연은 노래의 맛을 살린다고 볼 수 있다. 냇물도 어울려 합쳐져 얼기도 하고 풀어지기도 하는데, 하물며 만물의 영장이라는 인간이 이렇듯 독수공방하다니 외로운 삶이다. 요는 헤어져 바라보기나 하는 임이고 보니, 자기의 삶은 강물만도 못한 신세였다.
사월 아니 잊고서
아으 왔네요 꾀꼬리새여
무엇 때문이냐 녹사(綠事)님은
옛 나를 잊고 계신고
아으 동동다리.
꽃피는 봄이면 온다는 임의 다짐을 속절없이 기다리고 있는 마음을 나타냈다. 하다못해 꾀꼬리도 옛 가지에 다시 찾아와 노니는데, 온다는 기약이나 없었으면 덜 야속하련만, 기약조차 저버린 녹사님을 미워하고 있다. 이 사월령은 실로 시정이 다북해서 상승에 값하는 사무침이다.
십일월이라
봉당자리에
아으 한삼 덮어 누워
슬프옵니다
고운 임을 시새우며 갑니다
아으 동동다리
동짓달에 한삼을, 그것도 방도 아닌 봉당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꿈에나마 임을 기다리겠다는 것이다. 다만 원노래에 ‘고우닐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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