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시인 백석, 그의 대표작품 <통영>, <북방에서>, <오리 망아지 토끼>,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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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현대시인 백석, 그의 대표작품 <통영>, <북방에서>, <오리 망아지 토끼>,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목차
Ⅰ. 서론
1. 시인 백석, 그는 어떠한가? …………………………………… 2

Ⅱ. 본론
1. 백석의 생애 ……………………………………………………2~3
2. 여성관련 시 <통영> ……………………………………………3~4
3. 만주 체류기의 시 <북방에서> ……………………………4~5
4. 순수한 동심의 세계를 그려낸 <오리 망아지 토끼> ……………6~7
5. 낙원을 지향하는 <나와 나타샤와 힌당나귀> ………………7~8

Ⅲ. 결 론
1. 마무리 ……………………………………………………………8~9

참고문헌 및 참고자료 …………………………………………… 10

본문내용

간직했던 시인으로 현학적이며 외래적인 시풍을 배격했다고 한다.송준, http://blog.daum.net/pogny0001/8748409, 2009.03.31.
이것은 전통적이고 향토적인 시풍의 시들이 많은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래서 그의 시는 관념에만 사로잡혀 있고, 그와 같은 시대의 실속 없는 시들을 부끄럽게 했다고 볼 수 있다.
그는 감수성이 풍부하게 드러나는 시들과, 서민의 입장에서 솔직한 시들을 썼다. 그리고 대표적으로 <오리 망아지 토끼>를 보면 어린아이의 마음에서 쓴 것을 보아 쉽고 아름다운 시를 썼다고 할 수 있고, 자연을 소재로 한 시를 많이 썼다. 그리고 백석은 정치적인 면 보다는 일상적이며, 서민적인 시를 썼고, 외래의 낭만적인 시들을 거부하고 솔직하고 동심의 세계에 나타나는 아름다운 시를 썼다.
처음에 만나본 백석의 시는 그대로 드러난 낯선 향토적 방언과 긴 호흡에 바탕을 둔 수식구조로 인해 글의 표현이 세련되지 못하고 어색하지만 백석 시 문장들의 독특함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또 유년의 동심과 고향의 포근함이, 그리고 그 속에 그리움과 서러움 같은 것이 은근하게 배어있어 그윽한 향기와 맛에 젖어들게 하였다. 나는 이러한 백석의 시를 생애와 작품분석을 통해 시인 백석에 대해 고찰해보고자 한다.
Ⅱ. 본론
1. 백석의 생애
백석은 1912년 7월 1일 평안북도 정주군 갈산면 익석동에서 부친 백시박과 모친 이봉우의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백석의 본명은 백기행이고, 본관은 수원이다. 그는 익성동 오산마을에서는 친구들과 잘 사귀지 않는 아이였다고 한다. 활동적인 장난꾸러기이기는 커녕, 내성적인 성격으로 동네 아이들이 산에 올라가서 놀 때에도 마지못해 따라오는 아이였다고 하는데, 이러한 내향성은 그의 시세계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비추어 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백석은 1918년 오산소학교에 입학하여 1924년에 졸업한 뒤 다시 오산고보에 입학하였다. 오산고보 시절의 백석은 문학과 불교에 관심이 있었다고 하며, 결벽증이 있어 학교 급우들로부터 오해를 받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는 1929년 오산고보를 졸업한 뒤 집안 형편상 대학에 진학을 못하고 오산마을에 체류했다고 한다. 오산고보는 그의 문학관 형성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주게 된 김소월의 모교이기도 하다고 했다. 김영익,『백석 시문학 연구』, 충남대학교, 2000, pp.30~32.
이로 볼 때 김소월의 고향에 대한 그리움, 인정과 사랑에 토대를 둔 유대 관계의 동경 등은 백석의 문학관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준 것으로 보인다.
또 그는 1935년 6월 허준의 결혼식 피로연에서 경남 통영 출신의 박경련을 만나 호감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8월 31자 『조선일보』에서 시 「정주성」을 발표하여 시인으로의 전환을 꾀하였다. 이후 『조광』지에 6편의 시를 발표하였고, 1936년 1월 8일 신현중과 통영을 방문하였다. 그 후 1월 20일에『사슴』을 간행하였고, 23일에는 『조선일보』에 시 「통영」을 발표하였다. 1936년 말 겨울방학 때는 허준과 통영으로 가서 박경련과 결혼할 뜻을 비쳤으나 완곡한 거절의 의사를 듣고 돌아왔다고 한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1937년 4월 7일 신현중과 박경련이 결혼하였다고 했다. 이숭원,『백석 시의 심층적 탐구』, 태학사, 2006, p.23.
이를 보면 자신이 믿었던 친구 신현중에게 배신감을 느꼈을 것이라 생각된다. 그래서 더 외로움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이러한 외로움과 막막함 때문에 그가 김자야를 만났을 것이라 생각된다.
김자야의 회고에 의하면, 백석은 가족의 강권에 의해 두 차례의 혼례를 치르지만 김자야에게 다시 돌아왔다고 한다. 그는 갈등과 번민을 계속 하다가 1940년 1월 만주의 신경으로 이주하였다. 이렇게 유랑 생활을 하다가 1945년 해방을 맞이하여 신의주를 거쳐 고향에 돌아왔다. 그는 1959년부터 다시 시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는데, 1962년 10월 북한 문화계 전반에 내려진 복고주의 비판과 연관되어 일체의 창작이 중단되었다. 1995년 1월 84세의 나이로 타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숭원, 위의 책, p.24.
나는 여기에서 알아본 그의 내성적인 성격, 김자야와 박경련을 중심으로 한 백석의 여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이 시에 어떻게 표현되어 있는지, 만주로 이주하면서 어떻게 시를 썼는지 등을 토대로, 또 그 외에 어떠한 소재로 시를 쓰고 있는지 등에 대한 그의 시 경향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2. 여성관련 시 <통영>
통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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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9페이지
  • 등록일2009.11.18
  • 저작시기20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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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5617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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