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수정의 성서 번역과 배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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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이수정의 성서 번역과 배포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론
2. 이수정의 삶
3. 이수정 번역본과 그 배포
1) 성경번역 동기
2) 한국판 마게도냐인
3) 번역과 배포
4. 결론
- 참고문헌 -

본문내용

정은 언더우드 선교사가 한국에 올 때에 일본에서 어학선생으로 도움을 주기도 하였다. 그는 그곳 감리교 선교사 맥클레이의 요청에 의하여 감리교 요리문답서도 번역하여 천부가 출간되어 국내에서 널리 읽혀졌다. 국내에서는 1884년 12월 갑신정변의 주모자 중의 하나인 김옥균이 일본으로 망명하자 조정에서는 그 주모자들과 동조자들에게 소환령을 내리고 자객을 보내어 암살을 시도했다. 이에 이수정은 김옥균과 관계를 멀리하면서 과거 민영익과의 관계도 있고 해서 일본에 더 머물지 않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고 4년간의 일본 생활을 마치고 1886년 5월 28일 귀국하였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보수파의 질토와 원한을 사서 그들의 손에 순교하였다고 전해지고 있다. 일부 역사가들은 그가 기독교 신앙을 버렸다고 말하고 있지만 이수정이 세례를 받았던 일본 시바 교회(현, 긴자센 도라몬역 근처) 담임목사인 이나가끼 목사는 순교했다고 자랑스럽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는 이수정에 대하여 말하기를 ”기독교사에 남긴 업적과 그를 통해서 일어난 복음의 역사는 조선의 마게도냐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다만 우리 인생에 있어서 최후까지 한 점 부끄럼 없이 생을 마친다는 것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는 것을 말해 주기도 한다. 김수진, 노남도(2007),『어둠을 밝힌 한국교회와 대각성운동』, (서울 : 쿰란출판사), pp.110-115.
3. 이수정 번역복과 그 배포
1876년의 한-일 조약 후에 수많은 한국인 관리들이 서양의 제도와 기술에 의하여 영향을 받았던 일본의 문명과 발전을 보기 위해 일본을 방문했다. 1881년부터 ‘신사 유람단’이란 상류 계급의 자제들로 구성된 일단의 한국인들이 교육, 농업, 상업, 과학, 군사 등의 분야에서의 일본의 근대 기술을 관찰하기 위해 건너갔다. 적어도 30명의 젊은 한국인들이 일본, 영국 기타 서구국가들의 예술과 기수 문명을 연구하기 위해 일본으로 보내졌다. 이들 중 일부는 영어를 공부하기 위해 장로교 선교부가 지원하는 미션 스쿨에 입학하여 기독교에 대한 깊은 관심을 표명했다.
이 유람단의 일원이었던 이수정은 존 로스에 이어서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담당한 두 번째 사람이 되었다. 이수정은 만주에서 로스의 감독하에 진행되고 있었던 성경번역을 일본에서 담당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가 1882년-1886년 일본에 체류하는 동안 그는 기독교인이 되었고 성경을 한국어로 번역했으며 동경에 있는 한국인 학생들을 위한 기독교 공동체를 창설했다. 미국에 있는 선교사들로 하여금 한국에 오도록 한 그의 호소는 초기 한국장로교회의 발전에 크게 기여했다.
1) 성경번역 동기
한국정부의 고위 관리로서 왕의 친척이었던 이수정은 1882년 여름에 일본에 도착했다. 다음은 그의 회심 기사이다. 중국 고전에 대한 그의 박학다식에도 불구하고 그는 다른 한국인들과는 달리 개방적 정신을 소유했다. 그는 도착하자마자 기독교 지도자들과 선교사들을 만나 기독교 교리에 대한 공부를 시작했다. 1882년 가을에 미국 장로교회로부터 일본에 파송된 선교사인 존 녹스와 성경공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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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7페이지
  • 등록일2011.03.22
  • 저작시기20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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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6585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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