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 예수그리스도의 일생
1. 세례자 요한을 만나시다
2. 세례 받으시다
3. 시험받으시다
4. 회당에서 사역을 시작하시다
Ⅲ.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적 배경
1.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
2. 마카비 혁명
3. 로마의 지배 : 헤롯왕가
4. 총독 통치기(주후 6-66)
Ⅳ. 예수그리스도의 사상
1. 왕국시민의 특징(마 5:1-16)
1) 하나님과 관련된 특징들(마 5:3-6)
2) 사람과 관련된 특징들(마 5:7-12)
3) 세상과 관련된 특징들(마 5:13-16)
2. 왕국시민의 율례(마 5:17-48)
3. 왕국시민의 행위(마 6:1-7:12)
4. 왕국시민에 대한 경고(마 7:13-29)
Ⅴ. 예수그리스도의 족보
Ⅵ.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사역
Ⅶ. 예수그리스도의 칭호
Ⅷ. 예수그리스도의 치유
Ⅸ. 결론
참고문헌
Ⅱ. 예수그리스도의 일생
1. 세례자 요한을 만나시다
2. 세례 받으시다
3. 시험받으시다
4. 회당에서 사역을 시작하시다
Ⅲ. 예수그리스도의 역사적 배경
1. 바벨론으로부터의 귀환
2. 마카비 혁명
3. 로마의 지배 : 헤롯왕가
4. 총독 통치기(주후 6-66)
Ⅳ. 예수그리스도의 사상
1. 왕국시민의 특징(마 5:1-16)
1) 하나님과 관련된 특징들(마 5:3-6)
2) 사람과 관련된 특징들(마 5:7-12)
3) 세상과 관련된 특징들(마 5:13-16)
2. 왕국시민의 율례(마 5:17-48)
3. 왕국시민의 행위(마 6:1-7:12)
4. 왕국시민에 대한 경고(마 7:13-29)
Ⅴ. 예수그리스도의 족보
Ⅵ.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사역
Ⅶ. 예수그리스도의 칭호
Ⅷ. 예수그리스도의 치유
Ⅸ. 결론
참고문헌
본문내용
모세가 품꾼이다. 신18:25 메시야가 모세와 같은 선지자이다. 탈굼 사53장의 탈굼판에 보면 메시야가 모세 율법을 잘 가르쳐서 백성으로 하여금 의롭게 하는 자이다. 모세 율법을 가르치는 자이다. 그러니까 메시야도 모세 밑에 있다. 그런데 예수는 무엇을 주장하는가? 예수가 모세보다 훨씬 우월하다고 주장해야 한다. 예수가 하나님 나라를 선포함에 있어서 자기가 바로 하나님 나라를 들여오는 분으로 나타내고 있을 뿐만 아니라 그렇기 때문에 지금 자기와의 관계에 의해서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못 들어가고 하는 걸로 표시한다. 그러니까 예수가 인간의 운명의 결정자라고 스스로를 지금 나기를 믿고 받아들이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그렇지 못하는 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바로 하나님 나라를 들여오는 분으로 하나님 나라를 실현시킨 분으로 인간이 그와의 관계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 혹은 못 들어가고 한다. 그런데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그의 제자가 되어야 한다. 이런 엄청난 권위 주장을 했다. 그를 믿고 이런 엄청난 권위 주장을 하는 예수를 제자들이 따라 다니면서 그 주장에 걸맞게 부르려면 어떻게 불러야겠어요? 주라고 부르지 않겠어요?
그래서 그것과 동의어인 랍비란 말과 똑같은 말이다. 그래서 주여란 뜻도 되고 선생이라고 제자들이 보통 불렀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3개의 예수의 말씀 가운데 ‘주’라는 칭호가 지금 보통 아랍어로 사람들의 지체 높은 자에게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 썼던 랍비 이상으로 더 의미 있게 쓰인 경우가 다음과 같은 3개가 있다.
①막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예수가 입성할 때에 그 제자들에게 가서 당나귀 하나를 붙들어 오라고 하는데 그 사람에게 가서 어디 가면 당나귀가 메어 있느냐? 당나귀를 풀어 오라. 누가 말을 하면 왜 그것을 풀어가느냐 하면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이것이 암호라고 할 수 있다. 성경마다 구구절절 기적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여기도 기적으로 보고 예수가 어디에 나귀가 묶어 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예수와 당나귀 주인과의 비밀이 약속이 되어 있다. 어느 곳에 나귀를 만들어 놓고 예수가 제자들을 보내어 주면 왜 가져가느냐 하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예수가 보낸 것으로 비밀리에 이루어 약속되었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예수가 아주 위험한 상황 속에 입성하고 있다. 모든 일은 비밀리에 예수의 최후의 만찬고 비밀리에 예약되어 있다. 그런 상황이다. 여기서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 이 주라는 말은 아마 ‘마리’보다 좀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느냐? 왜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것이 스가랴 9장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겸손한 평화의 왕으로서 입성은 그러니까 적어도 메시야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②막12:35-37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에 대한 시비이다. 왜 서기 고나들이 유대 신학자들이 메시야가 왜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느냐? 나단의 예언(삼하7:12) 나오는 메시야 전승에 의하면 메시야가 다윗의 아들이다. 예수가 거기에 시비를 건다. 왜 메시야가 하나님의 이들이라고 하느냐? 시110:1절에 다윗이 메시야를 무엇이라고 부르냐면 나의 주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메시야가 다윗보다 낮은 다윗의 아들이 되겠느냐고 시편 110;1절을 들어서 당시 주된 메시야 사상을 예수가 시비한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말이라고 아직도 주석가들의 논란이 많다. 여기서 예수가 당시 메시야 사상을 부인하는 것이냐 아니면 다윗의 아들 됨을 부인하는 것이냐? 아니면 다윗의 아들 됨이 부족하다는 것이냐? 메시야를 그는 인간적인 다윗의 아들로서 다윗과 같은 다윗 왕조를 재건하고 다윗과 같이 이방인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태평성대를 가져올 분, 그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우편에 높임 받은 자로서 만유의 주제,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시비하는 것이냐?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하여간 여기서 시 110:1절을 인용해서 다윗의 아들에 대한 대칭해서 ‘주’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다윗보다 권위 있는 하나님보다 더 높임 받은 인자로서 그의 ‘주’됨을 나타낸다. 은근히 예수가 다윗왕 쪽보다 더 하나님의 우편에 높임 받은(시110:1) 주 되심을 은근히 말한다.
③눅6:46을 읽어보라
제자들이 예수를 랍비, 마리라고 이렇게 불렀다. 그러면서도 시편 110:1절의 말은 순종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왜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가르치는 것을 듣지 않느냐? 이 말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제자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할 수 있는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의 ‘주’도 인간적인 스승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가 간접 기독론을 통해서 ‘주’라는 칭호의 의 미있는 사용으로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기와 제자들과의 관계를 나타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을 최소한대로 예수를 마리 또는 랍비 나의 주여 정도로 최소한도로 그 정도로 밖에 표시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 정도로는 표시해야 했다. 그래서 그에게 완전한 순종을 했었다. 그러면 예수가 κυριο라는 신앙고백을 어떻게 발생했느냐? W.Bousset가 그의 책 ‘크리스토스 큐리오사’란 책에서 예수가 하나님 우편에 높임을 받아서 지금 온 우주를 통치하는 ‘주’라는 신앙고백을 제일 처음 안디옥에서 헬라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예 종교에 간섭대로 예수를 예배하는 체험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원래 팔레스틴의 유대교에는 예수를 재림하는 인자로 기다리는 것을 그들의 신앙의 내용으로 삼았으나 안디옥에서 헬라 기독교인들이 보로서 예수를 예배하게 되고 예배의 대상으로서 신격화된 예수에게 자기들의 옛 종교를 이시스 등의 신비종교애서 신을 κυριο라 했듯이 이제 기독교에서 예수에게 예배하면서 예수를 κυριο라고 부르면서 그가 지금 주권을 행사하는 자라 믿고 고백하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 이론은 현대 20세기에 자유주의자들이 신약 기독론 이해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됐다. 불트만에 의해서 완전히 수용이 되었고 크라머 한은 계속해서 부
그래서 그것과 동의어인 랍비란 말과 똑같은 말이다. 그래서 주여란 뜻도 되고 선생이라고 제자들이 보통 불렀다.
그런데 다음과 같은 3개의 예수의 말씀 가운데 ‘주’라는 칭호가 지금 보통 아랍어로 사람들의 지체 높은 자에게 권위 있는 사람들에게 썼던 랍비 이상으로 더 의미 있게 쓰인 경우가 다음과 같은 3개가 있다.
①막11: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리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예수가 입성할 때에 그 제자들에게 가서 당나귀 하나를 붙들어 오라고 하는데 그 사람에게 가서 어디 가면 당나귀가 메어 있느냐? 당나귀를 풀어 오라. 누가 말을 하면 왜 그것을 풀어가느냐 하면 “주께서 쓰시겠다 하라” 이것이 암호라고 할 수 있다. 성경마다 구구절절 기적을 보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여기도 기적으로 보고 예수가 어디에 나귀가 묶어 있는 것을 보고 제자들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것이 아니고 예수와 당나귀 주인과의 비밀이 약속이 되어 있다. 어느 곳에 나귀를 만들어 놓고 예수가 제자들을 보내어 주면 왜 가져가느냐 하면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면 예수가 보낸 것으로 비밀리에 이루어 약속되었다. 그리고 이루어졌다. 예수가 아주 위험한 상황 속에 입성하고 있다. 모든 일은 비밀리에 예수의 최후의 만찬고 비밀리에 예약되어 있다. 그런 상황이다. 여기서 “주께서 쓰시겠다.”고 하라. 이 주라는 말은 아마 ‘마리’보다 좀더 깊은 의미가 있지 않느냐? 왜 나귀를 타고 입성하는 것이 스가랴 9장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한 것이다. 겸손한 평화의 왕으로서 입성은 그러니까 적어도 메시야적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②막12:35-37
유대교의 메시야 사상에 대한 시비이다. 왜 서기 고나들이 유대 신학자들이 메시야가 왜 다윗의 아들이라고 하느냐? 나단의 예언(삼하7:12) 나오는 메시야 전승에 의하면 메시야가 다윗의 아들이다. 예수가 거기에 시비를 건다. 왜 메시야가 하나님의 이들이라고 하느냐? 시110:1절에 다윗이 메시야를 무엇이라고 부르냐면 나의 주라고 부르는데 어떻게 메시야가 다윗보다 낮은 다윗의 아들이 되겠느냐고 시편 110;1절을 들어서 당시 주된 메시야 사상을 예수가 시비한다. 이것이 아주 중요한 말이라고 아직도 주석가들의 논란이 많다. 여기서 예수가 당시 메시야 사상을 부인하는 것이냐 아니면 다윗의 아들 됨을 부인하는 것이냐? 아니면 다윗의 아들 됨이 부족하다는 것이냐? 메시야를 그는 인간적인 다윗의 아들로서 다윗과 같은 다윗 왕조를 재건하고 다윗과 같이 이방인을 정복하고 이스라엘의 태평성대를 가져올 분, 그 정도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우편에 높임 받은 자로서 만유의 주제, 그렇게 말하기 위해서 시비하는 것이냐? 여러 가지 해석의 가능성이 많다. 그런데 하여간 여기서 시 110:1절을 인용해서 다윗의 아들에 대한 대칭해서 ‘주’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다윗보다 권위 있는 하나님보다 더 높임 받은 인자로서 그의 ‘주’됨을 나타낸다. 은근히 예수가 다윗왕 쪽보다 더 하나님의 우편에 높임 받은(시110:1) 주 되심을 은근히 말한다.
③눅6:46을 읽어보라
제자들이 예수를 랍비, 마리라고 이렇게 불렀다. 그러면서도 시편 110:1절의 말은 순종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왜 주여 주여 하면서 내가 가르치는 것을 듣지 않느냐? 이 말은 예수가 제자들에게 절대적인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제자들로 하여금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할 수 있는 권위를 주장하고 있다. 여기서의 ‘주’도 인간적인 스승 이상의 의미를 담고 있다. 이와 같이 예수가 간접 기독론을 통해서 ‘주’라는 칭호의 의 미있는 사용으로 자기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자기와 제자들과의 관계를 나타냈다. 그래서 그의 제자들을 최소한대로 예수를 마리 또는 랍비 나의 주여 정도로 최소한도로 그 정도로 밖에 표시할 수 없었다. 적어도 그 정도로는 표시해야 했다. 그래서 그에게 완전한 순종을 했었다. 그러면 예수가 κυριο라는 신앙고백을 어떻게 발생했느냐? W.Bousset가 그의 책 ‘크리스토스 큐리오사’란 책에서 예수가 하나님 우편에 높임을 받아서 지금 온 우주를 통치하는 ‘주’라는 신앙고백을 제일 처음 안디옥에서 헬라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의 예 종교에 간섭대로 예수를 예배하는 체험에서 발생했다고 주장한다. 원래 팔레스틴의 유대교에는 예수를 재림하는 인자로 기다리는 것을 그들의 신앙의 내용으로 삼았으나 안디옥에서 헬라 기독교인들이 보로서 예수를 예배하게 되고 예배의 대상으로서 신격화된 예수에게 자기들의 옛 종교를 이시스 등의 신비종교애서 신을 κυριο라 했듯이 이제 기독교에서 예수에게 예배하면서 예수를 κυριο라고 부르면서 그가 지금 주권을 행사하는 자라 믿고 고백하고 선포하기 시작했다. 이 이론은 현대 20세기에 자유주의자들이 신약 기독론 이해의 가장 중요한 주춧돌이 됐다. 불트만에 의해서 완전히 수용이 되었고 크라머 한은 계속해서 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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