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과 여성 달의 축제 줄거리 요약, 내용 요약, 감상문, 독후감, 느낀점, 나의 소감, 나의 견해 총체적 조사분석
본 자료는 3페이지 의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이미지를 클릭하여 주세요.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해당 자료는 3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3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용과 여성 달의 축제 줄거리 요약, 내용 요약, 감상문, 독후감, 느낀점, 나의 소감, 나의 견해 총체적 조사분석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연구의 개관
(1) 영덕의 인문지리적 환경
(2) 조사방법과 연구의 방향

2. 동제의 전승기반과 실현, 그 변화의 양상
(1) 이념적 기반
(2) 조직적 기반
(3) 경제적 기반
(4) 동제의 실현
(5) 동제의 변화와 남은 문제들

3. 줄당기기 : 용과 함께 하는 대동의 축제놀이
(1) 축제와 줄당기기
(2) 줄당기기의 전승양상
(3) 줄당기기의 의미

4. 월월이청청: 여성해방의 집단적 가무놀이
(1) 월월이청청에 대한 관심과 문제
(2) 월월이청청의 전승맥락
(3) 월월이청청의 의미

4. 달봉뛰기: 농민들의 달축제
(1) 달축제의 구성
(2) 달봉뛰기의 위상

5. 대동놀이의 복원과 전승방안
(1) 줄당기기의 복원과 전승
(2) 월월이청청의 복원과 전승
(3) 달봉뛰기의 복원과 전승

감상과 질문

본문내용

에서 제수를 장만하고 제물을 조리하는 것은 도가라고 부르는 제관의 영역이다. 제관의 확보가 어려워지면서 도가를 별도로 설정하는 마을은 줄어들어 지금은 창포리를 비롯한 10개 마을에 불과하고 나머지 마을은 제관이 도가를 겸하고 있으며 또 다른 변화는 여성들이 음식을 장만하는데 적극적으로 참여한다는 것이다.
제물의 변화는 제사상의 축소 오보리의 경우 동신께 올리는 제사상 이외의 ‘받침상’ 33개를 차렸지만 11개로 축소되었고 2006년부터는 받침상을 아예 생략하였다.
를 통해서도 나타나며 해촌의 경우 동제에 쓰는 어물을 그들이 잡은 것 중 최상품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점차 시장에서 구입하는 것을 쓰는 마을이 늘어나고 있다.
영덕 지역의 동제는 술을 세 번 올리는 독축고사형이 일반적이다. 점차 한자로 된 축문을 알아보는 이가 없어 한글로 음만 옮겨 적어 읽는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 기존의 축문과 관계없이 한글로 새로 지어 쓰기도 하는데 창포리가 대표적인 사례이다. 몇몇 마을은 ‘축문을 읽을 사람이 없어서’ 아예 축문을 없애고 독축을 생략하기도 한다.(삼화1리등 5개마을)
또한 영덕의 동제에서는 풍물이 함께하는 ‘풍물굿형’의 동제나 무당들이 주재하는 ‘무당굿형’의 동제는 찾아볼수 없고 창포리와 오보리의 경우 거리메기기에 한하여 무당이 관여하기도 한다. 이 거리메기기는 이 지역 동제와 별신굿의 상관성을 보여주는 것 가운데 하나이다.
(5) 동제의 변화와 남은 문제들
영덕 지역 동제의 기반과 실현에 대한 변화양상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현재 영덕 지역 동제의 이념적 기반의 약화로 동제 전승의 기반이 전체적으로 약화되었음을 알수 있다. 제관의 소임을 맡는 것이 영광스러운 것이 아니라 귀찮고 번거로운 일로 여겨지면서 제관 선정의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제관에 대한 수고비를 지불함으로써 경비에 대한 부담을 가중시키는 것은 마을공동재산과 찬조에 의존하게 된 경제적 기반에 대하여 이중의 부담을 가중시키게 되었다.
동제를 전승하는 기반이 변화한 만큼 동제 실현에도 변화가 일어났다. 특히 신격의 문제는 대부분의 마을에서 기존에 섬기던 신격을 유지하고 있지만 몇몇 마을에서는 동제의 전승을 중단하거나 신격의 수를 축소하였고 제사의 주체가 특정 종교집단으로 바뀐 사례도 나타난다. 가장 큰 변화는 제관의 금기 수행과 정화, 그리고 제물에서 나타난다.
이처럼 영덕 지역의 동제는 제를 지낸다는 사실과 제사의 형식을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부면에서 변화가 일어났다. 주민들은 이러한 변화를 동제의 간소화로 설명하고 그 까닭을 대개 제관의 부족으로 돌리지만 비교적 인적 기반이 튼실한 마을에서도 이런 변화가 나타나는 걸 보면 그 원인을 인구의 감소와 제관의 부족이라기보다 동제의 이념이 갖는 현실적 효용성의 쇠퇴와 동신에 대한 신앙의 약화라는 요인이 함께 작용하였기 때문이라고 해석된다.
영덕지역의 동제가 크게 변화된 시점은 30년 전으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이며 이 시기는 한국사회의 자본주의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되었으며 농어촌의 해체가 급속도로 이루어졌던 시기이다. 이 시기에 동제의 급속한 변화가 된 것은 마을내의 요인과 함께 한국사회의 문화변동 및 이에 조응하는 전승주체의 가치관 변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저자는 생각한다.
3. 줄당기기 : 용과 함께 하는 대동의 축제놀이
(1) 축제와 줄당기기
공동체축제는 공동체의 운명에 영향을 미친다고 믿는 신에 대한 제사와 길놀이, 그리고 각종 대동놀이와 민속예술 등으로 구성된다. 대동놀이의 경우 두편의 겨루기로 진행하는 경쟁적인 놀이(줄당기기, 팔매싸움, 횃불싸움 등)와 경쟁 없이 자족적으로 진행하는 놀이(여성들의 집단적 가무놀이, 지신밟기, 탈놀이 등)가 있다. 이 가운데 한반도 중부이남 지역에서 가장 보편적인 축제놀이로 전승하였던 것은 줄당기기이다. 줄당기기가 축제놀이로서 보편성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편싸움 형식의 대동놀이 가운데 유일하게 남녀노소의 참여를 보장하는 개방성에 그 특징이 있다.
영덕지역에서의 조사대상인 24개 마을 모두 줄당기기를 전승하였거나 전승하고 있으며 새해맞이축제의 중심적 연행으로 자리 잡고 있다.
(2) 줄당기기의 전승양상
영덕지역의 줄당기기는 대부분 대보름 명절에 줄을 당겼으며 현지 조사한 24개 마을은 기본적으로 ‘닫힌마을형’의 줄을 당겼고 이 가운데 ‘열린 마을형’의 줄을 당긴 지역(병곡리, 오촌리, 인량리, 원구1리, 낙평리, 하저리, 창포리, 주응1리, 남정리, 장사리)도 있었다.
줄당기기에서 편을 가르는 방식은 남녀로 가르는 것과 공동체의 공간을 둘로 나누어 편을 가른다. 영덕지역에서도 일반적인 편구성 방식이 통용되었지만 몇사례는 남녀별 편구성과 지역별 편구성 방식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는 특이한 양상을 보여준다. 영해면 원구1리의 편구성방식은 성씨별 구성(영양남씨, 무안박씨, 대흥백씨)과 지역별 구성을 병행하였는데 그 세성씨가 마을의 권력을 분점해 온것에서 나온 것으로 짐작된다.
줄재료는 짚과 함께 칡을 이용하였고 삼으로 만든 줄인 ‘참바’를 줄의 보강제로 사용하였다. 또한 칡과 삼이외에도 로프를 이용해서 줄을 만든 사례도 적지 않다. 마닐라삼과 나일론으로 만든 로프가 줄의 재료로 이용된 것은 재료의 선택이 생업활동과 긴밀하게 연결되고 있으며 줄을 보다 간편하게 만들려고 하는 의지도 연관된 것을 보여준다.
줄의 형태는 쌍줄은 물론 외줄도 전승되었다. 조사 대상 마을 가운데 쌍줄을 당긴 지역은 19개 마을이고 외줄을 당긴 마을은 13개 마을이다. 외줄을 당긴 마을 가운데 노물리, 대탄리, 오보리, 대진2리, 백석2리, 금곡1리 등 여섯 개 마을은 원래 쌍줄을 당기다가 줄의 제작과 인력 확보의 어려움 등으로 외줄로 바꾼 경우이며 인량리와 상원리는 외줄과 쌍줄을 함께 전승한 마을이다.
쌍줄의 일반적인 제작과정은 세 가닥의 짚을 꼬아 만드는 데 영덕의 경우는 이와 같은 방식으로 쌍줄을 만드는 곳은 없었으며 해안지역의 생업인 바다 일과 관련이 있는 줄머리를 만드는 방식과 ‘사티미를 넣는’방식은 영덕지역의 특성이라고 볼 수 있다.
줄을 당기기 전에 앞놀이를 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앞놀이는 줄의 규모와 형태에 따라 구별된다. 광주 광산구

추천자료

  • 가격2,000
  • 페이지수11페이지
  • 등록일2012.07.13
  • 저작시기2012.7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765311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