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플루타르크 영웅전 - 테세우스, 로물루스‘ 와 ‘동명왕편-병서’ 비교
2. ‘고려사절요‘ 논평
3. ‘정도전-불씨 잡변’, ‘변계량-지극한 정치에 이르는 길’을 통한 조선 초 성리학의 불교 비판
4. ‘퇴계집-무진육조소’, ‘율곡집-동호문답’을 통해 본 조선 성리학의 흐름
5. 봉사, 예송변을 통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국가질서의 확립 양상 고찰
6. ‘목민관은 무엇인가’, ‘선인문’에서 보는 실학 사상의 도입과 전개
7. ‘국가빈궁지고’, ‘서유견문’에서 보는 개화기 지식인의 국가관과 국가발전전략
8. ‘조선 유학의 하늘 개념에 담긴 관념성과 인격성’, ‘조선 성리학의 자연관’에서 나타나는 조선 유학의 하늘 개념에 담긴 관념성과 인격성
9.‘중추계급과 사회‘, ‘조선민족 갱생의 도‘에서 나타나는 일제강점기 상반된 지식인의 시각
10.‘경국제민’과 한국자본주의 및 유교자본주의론의 반유교적 성격
2. ‘고려사절요‘ 논평
3. ‘정도전-불씨 잡변’, ‘변계량-지극한 정치에 이르는 길’을 통한 조선 초 성리학의 불교 비판
4. ‘퇴계집-무진육조소’, ‘율곡집-동호문답’을 통해 본 조선 성리학의 흐름
5. 봉사, 예송변을 통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국가질서의 확립 양상 고찰
6. ‘목민관은 무엇인가’, ‘선인문’에서 보는 실학 사상의 도입과 전개
7. ‘국가빈궁지고’, ‘서유견문’에서 보는 개화기 지식인의 국가관과 국가발전전략
8. ‘조선 유학의 하늘 개념에 담긴 관념성과 인격성’, ‘조선 성리학의 자연관’에서 나타나는 조선 유학의 하늘 개념에 담긴 관념성과 인격성
9.‘중추계급과 사회‘, ‘조선민족 갱생의 도‘에서 나타나는 일제강점기 상반된 지식인의 시각
10.‘경국제민’과 한국자본주의 및 유교자본주의론의 반유교적 성격
본문내용
…오늘날에는 저들이 화려한 전당과 큰 집에 사치스러운 옷과 좋은 음식으로 편안히 앉아서 향락하기를 왕자 받듦과 같이 하고…\' 정도전의 관점에서 불교는 (상하)관계를 부정하는 것이었고, 개국 초기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 중앙집권체제를 마련하는데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과거 권문세족의 후원으로 세력을 키워온 불교를 억압함으로써 민심을 얻고자 하는 목적도 있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불씨잡변은 서술 목적 자체가 불교를 비판하고 성리학을 국가의 중심사상으로 확립하게 하는데 있다. 정도전의 목적은 성공해 조선 초기 숭유억불 정책이 수립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일부 부분에서 논리의 비약이 많이 보이지만 불씨잡변은 불교가 몰락하고 성리학이 떠오르는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준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변계량의 \'지극한 정치에 이르는 길\'은 성리학이 조선의 정치사상으로 확립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저술이다. 당시 시험 감독은 정도전과 함께 조선을 건국한 1등 공신인 권근이었다. 고위관료 선발 자체가 국가 통치 이념에 적합한 인재들을 선발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변계량이야 말로 성리학적 이념에 적합한 인재였다고 할 수 있다. 책문에서 태조는 유교의 원리와 함께 요역, 전제, 부역, 조전 등에서 구체적인 정부 시책에 대해 답변을 요구한다.
변계량은 정치의 요점은 집중에 있으며, 집중의 요점은 정일(중용지도)에 있음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 오로지 마음을 정밀하게 하고 학문에 힘을 써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후 관리 선발과 관련해서는 순 임금의 삼고출척지법을 언급하며 능력에 따라 관리를 선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제, 부역 등에 있어서도 개혁을 요구하는데 공통적으로 중국의 제도를 받아 들여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뒷부분에서도 계속 되는데 여성의 복식뿐만 아니라 관혼상제 모두에 있어 중국의 제도를 따라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왕에 대한 당부가 담겨있다. 올바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고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왕을 절대 군주인 동시에 도덕의 근원으로 보는 조선 유교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변계량의 \'지극한 정치에 이르는 길\'은 정치사상의 암흑기를 벗어나서 합리성을 갖춰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중국 중심의 사고와, 민생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대책에 대해 도외시 한 점은 아쉽다.
4. ‘퇴계집-무진육조소’, ‘율곡집-동호문답’을 통해 본 조선 성리학의 흐름
퇴계의 무진육조소와 율곡의 동호문답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두 성리학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 글이다. 17세기 당시는 사림이 득세를 해나가던 시기였으며, 두 사람의 글 모두에서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유교의 근본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퇴계의 무진육조소는 왕에게 간언하는 내용으로 6가지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적으로 유교의 근본을 되살려 유학으로서 정치를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첫 번째 항에서는 계통을 중시해 인효를 온전하게 할 것을 말하고 있다. 효는 백행의 근원이고, 인은 만 가지 선의 장이라고 말하며 이 둘을 모든 것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항에서는 특이하게도 환관과 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시 궁전 안에서 횡행하던 각종 모략이나 모함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 항에서는 성학을 돈독하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학과 중용을 언급하며 배움을 멀리하지 않을 수 없고, 물음을 자세히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생각을 삼가지 않을 수 없고, 변별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왕의 기본 되는 자세가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의 몸을 조심하는데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네 번째 항에서도 도술을 밝혀 인심을 바로 잡을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도는 유학을 말한다. 불교가 망한 사례를 언급하며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실천할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조선 중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불교의 모습을 잠깐 엿볼 수 있다. 다섯 번째 항에서는 왕과 신하와 대간을 신체에 비유해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왕이 독주할 수 없도록 견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는 마음 닦는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함을 말하고 있다.
동호문답은 주인과 손님이 대화를 주고 받는 형태로 무진육조소와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거의 일치를 보인다. 임금과 신하의 도를 논하며 각종 예시를 들어가며 어떤 임금이 좋은 임금인지, 그리고 어떤 신하가 좋은 신하인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항에서는 군신이 서로 만나기 힘듦을 말하며 과거 왕조의 임금이 제대로 도학을 실천하지 못했음을 비판한다. 여기서 율곡은 삼고초려를 예로 들며 좋은 신하를 얻기 위해서는 왕이 겸손한 자세로 부단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암시를 남기고 있다.
이어지는 4, 5, 6, 7, 8, 11항은 유학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기존에 봐왔던 유교적인 이상들과 이념들을 나열하며 유학 실천의 방법을 논하고 있다. 9, 10조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맹자가 왕도에 대해 설명하며 \'이미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으면 民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民心이 향하는 곳으로 정권이 돌아간다\'고 말했던 것처럼 율곡 역시 실용적인 면에서 백성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면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이 보인다.
두 글 모두 유교적인 관점에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당시 점차 정교해지고 있던 유교의 논리에 대해서 엿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있어서의 포괄적인 논의가 없음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5. 봉사, 예송변을 통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국가질서의 확립 양상 고찰
봉사(封事)는 비밀스러운 일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뜻한다. 송시열의 봉사에서는 주자학을 바탕으로 일단의 사회개혁과 북벌 정책을 실시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가 기축봉사를 작성한 시기는 1649년, 효종이 즉위하던 해이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불씨잡변은 서술 목적 자체가 불교를 비판하고 성리학을 국가의 중심사상으로 확립하게 하는데 있다. 정도전의 목적은 성공해 조선 초기 숭유억불 정책이 수립되는데 큰 영향을 미쳤다. 일부 부분에서 논리의 비약이 많이 보이지만 불씨잡변은 불교가 몰락하고 성리학이 떠오르는 당시 시대상을 잘 보여준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변계량의 \'지극한 정치에 이르는 길\'은 성리학이 조선의 정치사상으로 확립돼가는 과정을 보여주는 저술이다. 당시 시험 감독은 정도전과 함께 조선을 건국한 1등 공신인 권근이었다. 고위관료 선발 자체가 국가 통치 이념에 적합한 인재들을 선발하는 과정이라는 관점에서 볼 때, 변계량이야 말로 성리학적 이념에 적합한 인재였다고 할 수 있다. 책문에서 태조는 유교의 원리와 함께 요역, 전제, 부역, 조전 등에서 구체적인 정부 시책에 대해 답변을 요구한다.
변계량은 정치의 요점은 집중에 있으며, 집중의 요점은 정일(중용지도)에 있음을 역설한다. 그러면서 이를 위해서 오로지 마음을 정밀하게 하고 학문에 힘을 써야 한다고 덧붙인다. 이후 관리 선발과 관련해서는 순 임금의 삼고출척지법을 언급하며 능력에 따라 관리를 선발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전제, 부역 등에 있어서도 개혁을 요구하는데 공통적으로 중국의 제도를 받아 들여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이러한 주장은 뒷부분에서도 계속 되는데 여성의 복식뿐만 아니라 관혼상제 모두에 있어 중국의 제도를 따라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왕에 대한 당부가 담겨있다. 올바른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자신을 수련하고 학문에 정진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여기서 왕을 절대 군주인 동시에 도덕의 근원으로 보는 조선 유교의 단면을 느낄 수 있다.
전반적으로 변계량의 \'지극한 정치에 이르는 길\'은 정치사상의 암흑기를 벗어나서 합리성을 갖춰가는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지나치게 중국 중심의 사고와, 민생을 위한 보다 구체적인 대책에 대해 도외시 한 점은 아쉽다.
4. ‘퇴계집-무진육조소’, ‘율곡집-동호문답’을 통해 본 조선 성리학의 흐름
퇴계의 무진육조소와 율곡의 동호문답은 조선 시대를 대표하는 두 성리학자가 어떻게 나라를 다스려야 할 것인가에 대해 논한 글이다. 17세기 당시는 사림이 득세를 해나가던 시기였으며, 두 사람의 글 모두에서 당시의 문제점에 대해서 지적하고 유교의 근본을 되돌리려는 노력을 느낄 수 있다.
퇴계의 무진육조소는 왕에게 간언하는 내용으로 6가지 조항으로 구성돼 있다. 전체적으로 유교의 근본을 되살려 유학으로서 정치를 행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첫 번째 항에서는 계통을 중시해 인효를 온전하게 할 것을 말하고 있다. 효는 백행의 근원이고, 인은 만 가지 선의 장이라고 말하며 이 둘을 모든 것의 근본으로 삼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두 번째 항에서는 특이하게도 환관과 여성에 대해 말하고 있다. 당시 궁전 안에서 횡행하던 각종 모략이나 모함 등을 염두에 둔 발언으로 생각된다. 세 번째 항에서는 성학을 돈독하게 할 것을 주장하고 있다. 특히 대학과 중용을 언급하며 배움을 멀리하지 않을 수 없고, 물음을 자세히 하지 않을 수 없으며, 생각을 삼가지 않을 수 없고, 변별을 분명히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왕의 기본 되는 자세가 끊임없이 배우고, 자신의 몸을 조심하는데 있음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어 네 번째 항에서도 도술을 밝혀 인심을 바로 잡을 것을 말하고 있다.
여기서 도는 유학을 말한다. 불교가 망한 사례를 언급하며 불교를 억누르고 유교를 실천할 것을 말하는데, 여기서 조선 중기까지 명맥을 유지하던 불교의 모습을 잠깐 엿볼 수 있다. 다섯 번째 항에서는 왕과 신하와 대간을 신체에 비유해 이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돼 있음을 말하고 있다. 이는 왕이 독주할 수 없도록 견제하는 것으로 보인다. 마지막으로는 마음 닦는 공부를 부지런히 해야함을 말하고 있다.
동호문답은 주인과 손님이 대화를 주고 받는 형태로 무진육조소와는 차이를 보인다. 그러나 내용에 있어서는 거의 일치를 보인다. 임금과 신하의 도를 논하며 각종 예시를 들어가며 어떤 임금이 좋은 임금인지, 그리고 어떤 신하가 좋은 신하인지에 대해 말한다. 그리고 그 다음 항에서는 군신이 서로 만나기 힘듦을 말하며 과거 왕조의 임금이 제대로 도학을 실천하지 못했음을 비판한다. 여기서 율곡은 삼고초려를 예로 들며 좋은 신하를 얻기 위해서는 왕이 겸손한 자세로 부단하게 노력해야 한다는 암시를 남기고 있다.
이어지는 4, 5, 6, 7, 8, 11항은 유학을 제대로 실천하기 위한 방법론이다. 기존에 봐왔던 유교적인 이상들과 이념들을 나열하며 유학 실천의 방법을 논하고 있다. 9, 10조는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맹자가 왕도에 대해 설명하며 \'이미 백성들이 배불리 먹고 따뜻하게 입을 수 있으면 民心을 얻을 수 있는 것이며 民心이 향하는 곳으로 정권이 돌아간다\'고 말했던 것처럼 율곡 역시 실용적인 면에서 백성을 잘 살게 할 수 있는 면에 대해 고민했던 흔적이 보인다.
두 글 모두 유교적인 관점에서 나라를 잘 다스리기 위한 방법에 대해 서술하고 있다. 당시 점차 정교해지고 있던 유교의 논리에 대해서 엿볼 수 있지만, 실질적으로 백성들을 다스리는데 있어서의 포괄적인 논의가 없음은 안타까운 부분이다.
5. 봉사, 예송변을 통한 주자학을 바탕으로 한 국가질서의 확립 양상 고찰
봉사(封事)는 비밀스러운 일로 임금에게 올리는 글을 뜻한다. 송시열의 봉사에서는 주자학을 바탕으로 일단의 사회개혁과 북벌 정책을 실시하고자 하는 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가 기축봉사를 작성한 시기는 1649년, 효종이 즉위하던 해이다. 당시 조선은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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