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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르는 신앙으로 바꾼다고 확신하였다. 그러므로 루터는 ‘오직 믿음’ 사상을 강조하였다.
또한 루터는 ‘오직 은혜’를 강조하였다. 성경은 아무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교훈한다. 마치 아무도 자신의 힘으로는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은 타락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율법에 의한 구원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루터의 ‘오직 은혜’사상은 은혜로만 구원받음을 주장하므로 사제와 같은 중보자를 통한 구원을 부인한다. 루터는 이러한 은혜의 전달 수단이 바로 설교라고 생각했다.
‘오직 성경’ 사상에 반대되는 사상은 로마 천주교회의 전승(傳承)사상이다. ‘오직 성경’ 사상은 로마 교회의 유전(Holy Tradition)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유일무이한 권위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유일한 권위를 백성에게 적용하려고 하였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수단은 그 말씀을 읽고 듣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따라서 루터는 1534년 바르트부르그(Wartburg)성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백성들에게 읽게하였는데, 그 책의 서문에서 그는 “만일 성경이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면 성경은 번역되어 읽혀져야한다”고 하였다.
(1)루터와 설교 / 루터는 무엇보다도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루터와 젊은 신학생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탁상담화”에서, 루터는 젊은 신학도들에게 공예배 때에는 말씀의 선포와 해석, 그리고 기도가 있어야한다고 말하면서 설교 중심적인 예배를 드릴 것을 권하였다. 그는 또한 예배 시간에 단순히 읽혀지던 성경 봉독보다는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를 더 중요하게 취급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29) 이와 같이 마틴 루터는 설교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거스틴파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수도원에서 수녀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하였고, 이와 같이 시작한 그의 설교 사역은 임종하기 사흘전 까지 계속되었다.30)
(2) 설교와 성경 해석 / 그러면 루터가 한편의 설교를 작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루터의 설교 작성에 있어서의 성경해석에 대하여 살펴보자. 루터는 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하면서 중세의 사중적인 의미를 따라 설교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수도승이었을때 나는 알레고리에 능통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알레고리화하였다”31)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1521년부터 스콜라 철학자들의 형식적인 설교를 떠나 아주 새로운 형태인 강해설교의 전통을 회복하였다. 루터는 이때로부터 중세의 사중적 해석을 배척하면서 성경 말씀에 대한 단순한 석의와 해석, 그리고 해석된 말씀을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개혁교회의 설교 전통을 세웠다. 루터는 중세신학이 부패해진 원인이 성경 본문의 우의적인 해석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의식적으로 성경 해석에서 알레고리를 피하고 문자적인 해석 방법을 추구했다. 이러한 루터의 전통은 멜랑톤에게 계승되었는데 멜랑톤은 말하기를 사중적 성경 해석은 형편 없는 것이며 문맹자들이나 의뢰하는 사악한 것이라고 하였다.
(3) 설교의 구성 / 루터는 본문의 말씀을 석의한 뒤 그것을 논리적으로 구성하였다. 그의 설교는 서론과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나누어지는데 서론과 결론 부분은 아주 간단하게 다루었다. 본론에서는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이 포함되었는데, 그의 성경 해석은 크게 세분화 되어 있는 연구로부터 고차원으로 일반화된 에세이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경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단지 한 구절의 뜻을 설명하거나, 그것을 설명하면서 우의적으로 빠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한 구절의 문맥이 본문의 의미에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성경 저자의 원래 의도를 찾기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는 현대적인 의미의 설교와 성경강해를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모든 설교는 강해를 포함하며 모든 강해에는 설교가 포함있다.
루터는 설교의 구성에 있어서의 설교자의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적이 있다. “첫째로, 설교자는 논리학자와 수사학자가 되어야한다. 이 말은 그가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그가 어떠한 주제에 대하여 설교할 때, 그는 먼저 그것을 구분하고, 그 다음 정의하고, 묘사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세째로, 그는 그것을 증명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성경의 구절을 제시하여야 한다. 네째로, 그는 그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다섯째로, 유사한 것들을 들어 꾸미고, 마지막으로, 나태한 자를 권면하고 깨우며, 불순종하는 자를 교정하고, 그릇된 교리를 주장하는 자를 책망하여야 한다”32)
(4) 설교의 내용 / 루터는, 이와 같이 한 편의 설교를 작성하곤 하였는데, 대부분의 설교에서 인간이 행하여야 할 도덕적인 의무를 다루었다. 특히 그는 인간의 영적인 본성에 대하여 많이 강조하였는데, 그 본성이란 한 개인으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하도록 하는 의무를 이해토록 자극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내적인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나 행위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를 피하였다. 왜냐하면 행위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는 로마 천주교회와 마찬가지로 율법주의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내적인 빛’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주장하는 재침례교도들의 극단적인 입장을 반대하였다. 오히려 루터의 설교 요점은 언제나 “정결한 마음, 선한 양심, 신실한 믿음”(pure heart, good conscience, sincere faith)이었고, 신실한 믿음은 그의 신학의 중심이었다.
(5) 설교 일지 / 비텐베르그에 있는 동안 루터는 주일 아침 5-6시에는 바울 서신을, 9-10시에는 복음서를, 오후에는 오전의 교리나 요리문답을 중심으로 설교하였다. 또한 주중에도 설교하였는데,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요리문답을 풀어 강해하였고, 수요일에는 마태복음을,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사도들의 서신을 강해하였고, 토요일은 요한복음을 설교하기도 하였다.33) 또한 루터는 주일에 가정예배를 포함하여 4번 이상 설교하였고, 분기별로 2주에 걸쳐 한 주간에 나흘씩 요리문답을 가르쳤다. 루터는 교회력에
또한 루터는 ‘오직 은혜’를 강조하였다. 성경은 아무도 자신을 구원할 수 없음을 교훈한다. 마치 아무도 자신의 힘으로는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인간은 타락함과 동시에 하나님께 나아갈 수 없으므로 율법에 의한 구원은 불가능하다. 그러므로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만 하나님께 나아가게 된다. 따라서 루터의 ‘오직 은혜’사상은 은혜로만 구원받음을 주장하므로 사제와 같은 중보자를 통한 구원을 부인한다. 루터는 이러한 은혜의 전달 수단이 바로 설교라고 생각했다.
‘오직 성경’ 사상에 반대되는 사상은 로마 천주교회의 전승(傳承)사상이다. ‘오직 성경’ 사상은 로마 교회의 유전(Holy Tradition)을 배척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종교개혁자들은 성경의 유일무이한 권위를 강조하면서, 이러한 유일한 권위를 백성에게 적용하려고 하였다.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적용하는 수단은 그 말씀을 읽고 듣는 가운데 이루어진다. 따라서 루터는 1534년 바르트부르그(Wartburg)성에서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하여 백성들에게 읽게하였는데, 그 책의 서문에서 그는 “만일 성경이 유일하고 최종적인 권위를 갖는다면 성경은 번역되어 읽혀져야한다”고 하였다.
(1)루터와 설교 / 루터는 무엇보다도 설교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루터와 젊은 신학생들과의 대화를 기록한 “탁상담화”에서, 루터는 젊은 신학도들에게 공예배 때에는 말씀의 선포와 해석, 그리고 기도가 있어야한다고 말하면서 설교 중심적인 예배를 드릴 것을 권하였다. 그는 또한 예배 시간에 단순히 읽혀지던 성경 봉독보다는 영혼을 구원하는 설교를 더 중요하게 취급할 것을 권하기도 하였다.29) 이와 같이 마틴 루터는 설교의 중요성을 인식한 사람이었다. 그는 어거스틴파 수도원에 들어가면서 수도원에서 수녀들에게 설교하기 시작하였고, 이와 같이 시작한 그의 설교 사역은 임종하기 사흘전 까지 계속되었다.30)
(2) 설교와 성경 해석 / 그러면 루터가 한편의 설교를 작성하기까지의 과정을 살펴보자. 먼저 루터의 설교 작성에 있어서의 성경해석에 대하여 살펴보자. 루터는 종교개혁 운동을 전개하면서 중세의 사중적인 의미를 따라 설교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수도승이었을때 나는 알레고리에 능통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알레고리화하였다”31)고 말한 적이 있다. 그러나 1521년부터 스콜라 철학자들의 형식적인 설교를 떠나 아주 새로운 형태인 강해설교의 전통을 회복하였다. 루터는 이때로부터 중세의 사중적 해석을 배척하면서 성경 말씀에 대한 단순한 석의와 해석, 그리고 해석된 말씀을 삶의 현장에 적용하는 개혁교회의 설교 전통을 세웠다. 루터는 중세신학이 부패해진 원인이 성경 본문의 우의적인 해석에 기인한다고 생각하였으므로 의식적으로 성경 해석에서 알레고리를 피하고 문자적인 해석 방법을 추구했다. 이러한 루터의 전통은 멜랑톤에게 계승되었는데 멜랑톤은 말하기를 사중적 성경 해석은 형편 없는 것이며 문맹자들이나 의뢰하는 사악한 것이라고 하였다.
(3) 설교의 구성 / 루터는 본문의 말씀을 석의한 뒤 그것을 논리적으로 구성하였다. 그의 설교는 서론과 본론 그리고 결론으로 나누어지는데 서론과 결론 부분은 아주 간단하게 다루었다. 본론에서는 성경 본문에 대한 해석이 포함되었는데, 그의 성경 해석은 크게 세분화 되어 있는 연구로부터 고차원으로 일반화된 에세이까지 다양한 내용을 포함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경 본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단지 한 구절의 뜻을 설명하거나, 그것을 설명하면서 우의적으로 빠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는 한 구절의 문맥이 본문의 의미에 중요하다고 생각했으므로 성경 저자의 원래 의도를 찾기에 온 정성을 쏟았다. 그는 현대적인 의미의 설교와 성경강해를 구별하지는 않았지만 그의 모든 설교는 강해를 포함하며 모든 강해에는 설교가 포함있다.
루터는 설교의 구성에 있어서의 설교자의 역할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한적이 있다. “첫째로, 설교자는 논리학자와 수사학자가 되어야한다. 이 말은 그가 가르칠 수 있어야 하고 권면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둘째로, 그가 어떠한 주제에 대하여 설교할 때, 그는 먼저 그것을 구분하고, 그 다음 정의하고, 묘사하여 그것이 무엇인지 보여주어야 한다. 세째로, 그는 그것을 증명하고 강화시킬 수 있는 성경의 구절을 제시하여야 한다. 네째로, 그는 그것을 예를 들어 설명하고, 다섯째로, 유사한 것들을 들어 꾸미고, 마지막으로, 나태한 자를 권면하고 깨우며, 불순종하는 자를 교정하고, 그릇된 교리를 주장하는 자를 책망하여야 한다”32)
(4) 설교의 내용 / 루터는, 이와 같이 한 편의 설교를 작성하곤 하였는데, 대부분의 설교에서 인간이 행하여야 할 도덕적인 의무를 다루었다. 특히 그는 인간의 영적인 본성에 대하여 많이 강조하였는데, 그 본성이란 한 개인으로 하여금 도덕적으로 행하도록 하는 의무를 이해토록 자극하는 것이었다. 루터는 내적인 믿음에서 우러나오는 행위의 필요성을 강조하였으나 행위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를 피하였다. 왜냐하면 행위에 대한 극단적인 강조는 로마 천주교회와 마찬가지로 율법주의로 인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그는 ‘내적인 빛’을 강조하면서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교통을 주장하는 재침례교도들의 극단적인 입장을 반대하였다. 오히려 루터의 설교 요점은 언제나 “정결한 마음, 선한 양심, 신실한 믿음”(pure heart, good conscience, sincere faith)이었고, 신실한 믿음은 그의 신학의 중심이었다.
(5) 설교 일지 / 비텐베르그에 있는 동안 루터는 주일 아침 5-6시에는 바울 서신을, 9-10시에는 복음서를, 오후에는 오전의 교리나 요리문답을 중심으로 설교하였다. 또한 주중에도 설교하였는데, 월요일과 화요일에는 요리문답을 풀어 강해하였고, 수요일에는 마태복음을, 목요일과 금요일에는 사도들의 서신을 강해하였고, 토요일은 요한복음을 설교하기도 하였다.33) 또한 루터는 주일에 가정예배를 포함하여 4번 이상 설교하였고, 분기별로 2주에 걸쳐 한 주간에 나흘씩 요리문답을 가르쳤다. 루터는 교회력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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