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제 혹은 성경 해석의 문제로 교회가 싸울 때 노회나 총회 차원에서 결정하되 말씀과 성령을 따라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의미에서 칼빈은 위의 회의등의 존재 이유와 존재 의미를 인정하였고, 아타나시우스 등 많은 고대 교회의 교부들의 역할을 칭찬하였다.
제 10 장
교황은 그를 지지하는 감독들과 더불어 법을 제정하는 권한을 가졌는데 이로 말미암아 뭇 영혼들이 야비한 폭정과 유린 하에 억눌리고 신음하고 있다.
제 11 장
칼빈은 교회의 권한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특징지우면서 국가가 지닌 칼의 권한과 구별한다. 그리고 교회의 치리는 한 사람의 결정을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합법적인 회중의 결정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의 출교는 구형이니 투옥과 같은 것이 아니다. 칼빈은 카톨릭 교직자들의 경우 영적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 국가권력의 일까지 했다고 지적한다.
제 12 장
치리는 왜 필요하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칼빈은 한 가정이나 사회가 살아가는데도 치리(Discipline)가 반드시 필요한데 교회가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더욱 이 치리회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 이 치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칼빈은 세가지 목적을 제시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더럽혀지지 않기 위함 둘째로 고전 5:6,11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 중 악한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온 그리스도의 몸이 더럽혀지므로 이 치리가 필요하다. 셋째로 결국 최종의 목표는 악한 자들을 회개시키는 데 있다. 치리의 의도와 목적이 죄인을 회개시키는 데 있기 때문에 이것이 죄인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고 한다.
금식과 기도에 대해서 논한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어거하기 위하여 금식해야 하는데, 이는 공적인 금식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체적인 조건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로 개인이든 교회 공동체 전체이든 이 금식은 기도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필요하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자기를 낮추어 참회하기 위하여 금식이 필요한데 이는 기독교인 개인으로서 교회나 국가의 차원에서까지 타당하다. 왜냐하면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때에 모두 금식하며 통회 자복해야 하기 문이다.
제 13 장
서원 : 누구든지 무모하게 서원하면 비참한 자승자박에 말려든다. 서원에 있어서 오류를 피하려면 3 가지 점에서 유의해야 한다. 1. 우리는 누구에게 서원을 해야 하나 2. 이 서원을 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다. 3.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는 서원을 하는가?
1. 하나님이 그의 말씀 안에서 인정하는 서원 이외에 다른 서원을 감히 하나님께 올리는 방종스러운 일을 행하지 말자. 2. 우리는 우리의 능력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명을 항상 염두에 두고 명심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능력 한계를 벗어나서 혹은 그의 소명에 배치하여 서원을 일삼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다.그로 하여금 만물의 영장이 되도록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멸하는 사람은 배은망덕하다. 3. 서원하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도가 중요하다. 만약에 여러분이 술을 끊는 서원 그 행동 자체가 거룩한 것인양 생각한다면 그것은 미신적이다.
제 14 장
성례란 정부문서나 다른 공문에 찍힌 도장이라고 하면서 도장 그 자체보다 그 문서에 기록된 글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한다. 내용인 즉 아브라함의 은혜의 언약을 신앙함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나서 받은 할례는 저 언약을 인치는 도장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성례를 언약들의 보증이어서 하나님의 복음 말씀의 신빙성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보이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성례전은 풍요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연상케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떡과 즙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 우리의 능력에 알맞는 매체를 통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제 15 장
세례는 물 자체가 깨끗케 하고, 중생시키며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속의 피가 우리 인간의 죄를 깨끗이 씻었는데, “ 복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고 성화시키는 메시지가 위리에게 와닿는다. 이 때에 세례는 이 메시지가 와닿았다는 것을 인치는 것이다.
제 17 장
그리스도의 거룩한 만찬 :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란 무엇인가? 성만찬의 중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떡과 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듯 그리고 손으로 만져지듯 제시된다. 에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회적으로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 떡과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류 혹은 그리스도에 참여함으로 영혼이 생기를 얻는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먹고 마심이라는 표현으로 이 관계를 나타내셨다. 마치 떡을 보는 것만으로는 몸에 유익이 없고 먹어야 유익이 있듯이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깊은 영적 교류를 나누어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영생에로의 생기를 얻게된다.
칼빈은 루터와 달리 성만찬 교리에서 성화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제 18 장
교황주의 교회의 미사 :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속되게 할 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것으로 만든다.
제 19 장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5 개의 성례(저들은 세례와 성만찬을 더해 7 성례전을 사용한다.) : 이것을 성례라 함은 성경적이 아니다.
제 20 장
국가와 정부 (교회와의 관계) 칼빈은 물과 태양과 공기가 필요하듯이 국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국가는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각 개인이 재산 소유의 권리를 갖도록 하며, 인간 상호간에 사귐을 갖게 하고, 덕망과 근엄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지되게 한다. 즉 인간성의 확립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 중 둘째 돌판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첫째 돌판에 속하는 의미도 수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공직자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요 모든 국가의 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선행을 한 사람들에게는 상급을 주고, 악행을 범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제 10 장
교황은 그를 지지하는 감독들과 더불어 법을 제정하는 권한을 가졌는데 이로 말미암아 뭇 영혼들이 야비한 폭정과 유린 하에 억눌리고 신음하고 있다.
제 11 장
칼빈은 교회의 권한은 전적으로 영적인 것으로 특징지우면서 국가가 지닌 칼의 권한과 구별한다. 그리고 교회의 치리는 한 사람의 결정을 따라 이루어지지 않고 합법적인 회중의 결정을 따라 이루어져야 한다. 교회의 출교는 구형이니 투옥과 같은 것이 아니다. 칼빈은 카톨릭 교직자들의 경우 영적 권한의 한계를 넘어서 국가권력의 일까지 했다고 지적한다.
제 12 장
치리는 왜 필요하며 그 목적은 무엇인가? 칼빈은 한 가정이나 사회가 살아가는데도 치리(Discipline)가 반드시 필요한데 교회가 질서를 유지해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더욱 이 치리회가 필요하지 않겠느냐고 말한다. 그러면 이 치리의 목적은 무엇인가? 칼빈은 세가지 목적을 제시한다. 첫째는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가 더럽혀지지 않기 위함 둘째로 고전 5:6,11에 근거하여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 중 악한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하면 온 그리스도의 몸이 더럽혀지므로 이 치리가 필요하다. 셋째로 결국 최종의 목표는 악한 자들을 회개시키는 데 있다. 치리의 의도와 목적이 죄인을 회개시키는 데 있기 때문에 이것이 죄인을 파멸시키는 결과를 가져와서는 안된다고 한다.
금식과 기도에 대해서 논한다. 첫째로 우리는 우리의 육체를 어거하기 위하여 금식해야 하는데, 이는 공적인 금식에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신체적인 조건이 개인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둘째로 개인이든 교회 공동체 전체이든 이 금식은 기도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필요하다. 셋째로는 하나님의 존전에서 자기를 낮추어 참회하기 위하여 금식이 필요한데 이는 기독교인 개인으로서 교회나 국가의 차원에서까지 타당하다. 왜냐하면 개인이나 교회나 국가가 하나님의 심판을 당할 때에 모두 금식하며 통회 자복해야 하기 문이다.
제 13 장
서원 : 누구든지 무모하게 서원하면 비참한 자승자박에 말려든다. 서원에 있어서 오류를 피하려면 3 가지 점에서 유의해야 한다. 1. 우리는 누구에게 서원을 해야 하나 2. 이 서원을 하고 있는 우리는 누구인다. 3.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우리는 서원을 하는가?
1. 하나님이 그의 말씀 안에서 인정하는 서원 이외에 다른 서원을 감히 하나님께 올리는 방종스러운 일을 행하지 말자. 2. 우리는 우리의 능력한계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소명을 항상 염두에 두고 명심함으로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자유를 소홀히 여겨서는 안된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의 능력 한계를 벗어나서 혹은 그의 소명에 배치하여 서원을 일삼는 사람은 무모한 사람이다.그로 하여금 만물의 영장이 되도록 축복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멸하는 사람은 배은망덕하다. 3. 서원하는 사람의 의도가 중요하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의도가 중요하다. 만약에 여러분이 술을 끊는 서원 그 행동 자체가 거룩한 것인양 생각한다면 그것은 미신적이다.
제 14 장
성례란 정부문서나 다른 공문에 찍힌 도장이라고 하면서 도장 그 자체보다 그 문서에 기록된 글의 의미가 중요하다고 한다. 내용인 즉 아브라함의 은혜의 언약을 신앙함으로 의롭다함을 얻고 나서 받은 할례는 저 언약을 인치는 도장에 해당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성례를 언약들의 보증이어서 하나님의 복음 말씀의 신빙성을 더 분명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보이는 말씀이다. 그래서 이 성례전은 풍요로운 하나님의 은혜를 연상케하는 거울이라고 한다. 떡과 즙을 통하여 은혜를 받는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이 자기를 낮추어 우리의 능력에 알맞는 매체를 통하여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사랑이다.
제 15 장
세례는 물 자체가 깨끗케 하고, 중생시키며 새롭게 하는 것이 아니라, 대속의 피가 우리 인간의 죄를 깨끗이 씻었는데, “ 복음을 통하여 우리의 죄를 깨끗이 씻고 성화시키는 메시지가 위리에게 와닿는다. 이 때에 세례는 이 메시지가 와닿았다는 것을 인치는 것이다.
제 17 장
그리스도의 거룩한 만찬 : 그것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란 무엇인가? 성만찬의 중심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이 떡과 즙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눈에 보이듯 그리고 손으로 만져지듯 제시된다. 에수 그리스도께서 유일회적으로 우리의 구속과 구원을 위하여 주어지지 않았다면 이 떡과즙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교류 혹은 그리스도에 참여함으로 영혼이 생기를 얻는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먹고 마심이라는 표현으로 이 관계를 나타내셨다. 마치 떡을 보는 것만으로는 몸에 유익이 없고 먹어야 유익이 있듯이 우리의 영혼은 그리스도와 깊은 영적 교류를 나누어야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영생에로의 생기를 얻게된다.
칼빈은 루터와 달리 성만찬 교리에서 성화의 측면을 강조하고 있다.
제 18 장
교황주의 교회의 미사 :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만찬을 속되게 할 뿐만 아니라 형편없는 것으로 만든다.
제 19 장
로마 카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5 개의 성례(저들은 세례와 성만찬을 더해 7 성례전을 사용한다.) : 이것을 성례라 함은 성경적이 아니다.
제 20 장
국가와 정부 (교회와의 관계) 칼빈은 물과 태양과 공기가 필요하듯이 국가가 필요하다고 한다. 국가는 공공질서를 유지하고 각 개인이 재산 소유의 권리를 갖도록 하며, 인간 상호간에 사귐을 갖게 하고, 덕망과 근엄이 사람들 사이에서 유지되게 한다. 즉 인간성의 확립을 도모하는 것이다. 이것은 십계명 중 둘째 돌판에 속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와 함께 첫째 돌판에 속하는 의미도 수행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칼빈은 공직자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이요 모든 국가의 권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라고 한다. 이들은 하나님의 봉사자로서 선행을 한 사람들에게는 상급을 주고, 악행을 범한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진노를 보이는 것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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