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문화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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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본문화론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없음.

본문내용

설로 인정받게 되었다. 단적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일본인의 집단 및 조직원리에 종적 성격이 두드러진다는 것인데, 그 결정 요인은 첫째, 바의 강조. 즉 개인의 자격보다 사회적인 집단 구성을 중시한다는 것이고, 둘째, 집단에 따른 전면적 참가, 셋째로 종적 조직에 따른 인간관계이다. 이렇게 종적 구성을 이룸으로써 한 테두리의 구성원에게는 일체감을 가지게 하며, 개개인의 연결을 강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특징이 나타나는 사례로는 우선 ‘우리의~(うちの)’라는 공동체적 인식과 표현이 사회 전반에 깔려있다는 점, 우리(うち)와 남(そと)을 구별하는 의식과 그에 따른 정서적인 결속감을 공유한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이러한 사회구조를 끄집어냄으로써 나카네는 지금까지의 이데올로기적인 집단주의론이나, 전근대적이라고 여겨져 왔던 가족적 구성론을 피하고 사회구성에 있어서의 다테 원리를 밝혀냈다. 서양이 계약관계에 기반한 조직이라면, 일본은 공동관계에 기반하고 있다. 일견 이러한 집단적 일체감의 강조가 배외주의와 비판정신의 결여를 가져온다는 문제점도 있으나, 다테의 집단원리는 일본의 근대화에 분명히 공헌했으며, 이는 일본인의 내면에 뿌리 깊게 잠재하고 있다고 그는 주장한다.
1964년은 오다카 쿠니오의 『日本の經營』가 출판된 해이기도 하다. 오다카는 기업이나 공장 등의 조직체를 가족과 같은 인간관계에 빗대어 생각하려는 이념이, 수입된 서양의 생산기술과 결합되어 놀랄만한 효과를 낳았다고 보았는데, 여기에는 서양의 척도로 ‘전근대적’이라든가 ‘봉건적’이라는 가치가 개입되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를 폈다. 그 후 일본적 경영론은 일본문화론의 변형으로서 무수히 등장하게 되었다. 고도 경제 성장기를 정점으로 안정된 발전을 향유하게 된 일본 사회는 점차 대국 의식을 키우기 시작했고, 선진 대국의 대열에 들어섰다는 자각은 일본 문화론이 한층 더 긍정적 성격을 띠게 되었다.
인접한 68년에는 미시마 유키오의 ‘문화 방위론’이 등장해 떠들썩한 논의를 불러일으켰다. 미시마는 일본의 문화란 하나의 형태이고, 국민정신이 투영되는 일종의 투명한 결정체이며, 예술 작품일 뿐만 아니라 행동 및 양식을 포함한다고 보았다. 그의 문화 방위론은 일반적으로 허망한 전후 민주주의의 형태에 그러한 문화개념을 대입함으로써 관료와 이데올로기가 지배하는 문화주의의 근본적 비판을 시험한 시국론이다. 그는 문화 공동체로서의 천황제가 입체적 구조를 가진 자유와 우아함의 원천이라는 점에서 문화의 전체성을 나타낸다고 강하게 주장했는데, 물론 그의 주장에는 언론 자유와 대의제를 부정하는 反상대주의가 녹아있긴 하나 지금의 시점에서 그의 논의가 60년대 말과 70년대에 걸쳐 ‘긍정적 특수성의 인식’이 깊어가는 모습을 선명하게 제시했음을 부정할 수는 없다.
1970년대의 일본연구는 그 이전의 연구에서 보였던 서구의 근대사회를 준거점으로 하던 것에서 벗어나 ‘근대화=서구화’는 아니라는 시각에서 새로운 연구가 제기되었다. 고도성장으로 인한 경제대국으로서의 지위향상과 더불어 이 시기에 일본에서는 한층 더 강하게 ‘일본인은 무엇인가, 그 가능성은’이라는 아이덴티티에 대한 물음이 행해졌는데, 거기에 대한 해답으로서 근대화-민주화의 선진모델로서 서구를 보던 시각에서 벗어나 일본의 독자성을 추구하고자 하는 시각이 대두되게 되었다.
이런 배경 하에서 획기적인 일본문화론이 등장해서 커다란 사회적 반향을 불러일으켰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도이 다케오의 아마에(甘え)론일 것이다. 그는 1971년에 『甘えの構造』라는 책을 출판하여 일대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다. 이 책은 베네딕트가 일본인의 성장과정에서 분석한 일본문화와 퍼스낼리티에 대한 재고이고 재평가라고 할 수 있다. 도이는 정신의학자인데, 일본인의 육아양식을 관찰하고 분석해서 거기에서 독특한 사회화 과정을 발견하였다. 그에 따르면, 일본인의 모자관계는 아이의 엄마에 대한 의존이 그 핵심이 되고, 일본인은 성인이 된 다음에도 가정 내외에서 모친의존과 같은 정서적인 안정을 추구하게 된다. 사회집단 속에 있어도 이 모자관계의 인간관계 모델은 강하게 작용해서 일본인에게 모친은 언제까지고 정신적인 안정의 근원이며 양육의 근원이다. 사회집단 내의 상하관계도 이것과 비슷하게 형성되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관계는 정서적인 안정과 감정을 형성하게 된다.
이처럼 아마에는 일본인의 심성과 인간관계의 기본에 있는데, 그것은 수동적 애정 희구이며, 의존성이며, 유아적인 것이다. 그러나 이 유아적인 것은 무가치한 것이 아니라 문화적 가치의 원동력으로 작용해 왔으며, 의리도 인정도 바로 이 아마에에 기반하고 있다. 아마에는 일본문화의 기조를 이루고 있으며 일본인의 성격의 기본에 있다. 아마에는 서양인의 자립과 대비되는 것이며 일본인의 심리에 특이한 것이다. 이것이 도이의 아마에론의 핵심이다. 도이는 아마에의 심리를 비논리적이고 폐쇄적인 것, 사적인 것이라고 비판하지만 동시에 무차별평등을 존중하고 매우 관용적이기조차 하다고 평가하고 있다. 즉 일본인의 사회관계와 집단에 있어 아마에는 윤활유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으며, 성인들 사이에서도 정신생활의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이라고 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타인의존성은 근대일본에 있어 정신적 결여라고 비판되어온 부분이기도 하다. 이것이 이 시기에 와서 도이의 논의를 통해 긍정적인 것으로 평가되고 있는데, 도이는 일본인의 근대적 자아의 결여를 지적하는 비판론을 다시 비판하면서 아마에에 의해 타인에 의존하는 일본인의 자기(自分)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는 것이다.
이 시기에 기무라 번은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를 통해 ‘자기’에 대한 성질해명을 시도하였다. 일본인이 자기를 가리키는 自分이라는 말은 개인주체의 자아가 아니고, 본래 자기를 초월한 무엇인가에 대해서 그때마다 가지는 ‘자기의 몫’이다. 다시 말해, 항시적인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그 공유 관계에 스스로 배분하는 부분이라는 것이다. 기무라는 자아와 지분의 차이를 주장하면서 서구 개인주의의 우위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인의 ‘지분’에 대해 적극적으로 평가하였다.
긍정적인 평가는 계속 이어져, 77년 『일본다움의 재발견』에서 하마구치 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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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3.13
  • 저작시기20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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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337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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