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건축의 역사 4장 고대 규범을 벗어나는 신라말, 고려초기건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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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한국건축의 역사 4장 고대 규범을 벗어나는 신라말, 고려초기건축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불교 사찰건축의 고대 규범 탈피
Ⅱ. 9세기의 석탑과 부도
Ⅲ. 지역성의 대두
Ⅳ. 풍수지리설의 유행

본문내용

사탑은 10세기
여주 지역의 수준 높은 조형예술의 경지를 보여준다.
* 청주: 흥덕사지
- 세계최초 금속활자본 『불조직지심체요절』을 만들고 개간한 곳으로 유명하다.
- 소규모의 일탑식 가람배치를 이루었다고 추측되며, 발굴이 절터 일부만 되어
일탑식 가람으로 추정하는데 다소 많은 무리가 따르고 있다.
* 그 외
- 경남 합천: 영암사지는 지방 산골짜기에 수준 높은 건축물들이 확산 되어 있다.
- 황해산: 영암사는 경사진 지형에 맞추어 여러 단의 축대를 조성하고 몇 개의 예불 공간을
구성하였던 듯하다.
* 지역 특성은 10세기 외에도 11세기로 이어지며 꾸준히 지속되었다고 할 수 있다.
- 충북 중원: 미륵리사지는 고려초기에 세운 석굴사원의 흔적이 있으며
인공적으로 방형의 석실을 축조하였다.
- 충청남도: 석조 오층탑은 부여 정림사를 모델로 해서 만들어졌으나 전체 조형은 정림사와
다른 독특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으며, 기단이 축소되어 일부러 불안정한
분위기를 만들고, 제2층부터 갑자기 크게 작아져 허약한 모습을 나타낸다.
- 부여: 장하리 석탑은 한층더 불안정한 느낌이 강하며, 특징으로 아침 햇살을 받을 때의
모습과, 한낮의 자태, 저녁 나절의 느낌이 다르다는 것이다.
* 석재 표면에 반사되는 표면질감이나, 처마의 그림자, 배경을 이루는 숲은
다양한 그림을 만들어준다.
3. 건축 인력의 분산 : 지역적 차이로 인한 고대 건축규범을 벗어난 것은 10세기 건축의 중요한 특징이다.
* 『동국여지승람』 개성부조에 의하면, 고려의 반도 통일 전 연안성을 축조하게 되었는데,
개경 주변과 강화, 교동에서 한정해서 인력을 동원하였다고 전하고 있다.
* 건축 생산인력의 지방 분산은, 지방 건축의 수준 향상을 가져 왔으며, 우수한 기술인력은
항상 중앙으로 차출되어 한동안 지방의 기술 공백을 초래하였었다.
- 지방의 독자적 지배력 강화로 인하여, 지방은 우수한 기술 인력을 확보하였고,
경주의 기술력을 익힌 인력들은 지방에 남아 기술을 보습하고, 건축조영에 종사하면서
우수한 건축물을 만들어내는데 그 한몫을 하였다.
* 이와 같은 경우로 『삼국사기』에서는 927년 경주를 일시 함락시킨 후백제 견훤은 전주로
철수하면서 기술이 뛰어난 자들을 데려갔다고 전하고 있다.
Ⅳ. 풍수지리설의 유행
1. 풍수지리설 : 건축이 지방에 확산되며 산천이 갖는 지리적인 이점을 살리고자 하는 생각은 곧이어
‘풍수지리설’이라는 사상체계로 이론화되고 쳬계화 되기에 이르렀다.
* 풍수설 : 산과 물의 관계를 중요시 하는 설
- 음양과 오행이 서로 작용하여 땅에 좋은 기(氣)를 탄생시키고, 좋은 기가 모인곳을
명당으로 파악하여 집이나 마을, 무덤을 조성할 것을 주장한 설이다.
- 중국 동진에서 기원전 200년경에 시작 되었으며, 산의 형세나 토질, 물의 흐름, 방위를
요체로 하여 여러 가지 이론이 만들어졌다.
* 풍수설의 개념은 삼국시대부터 조금씩 퍼져나갔으며, 10세기경 삶과 건축에 큰영향을 미쳤다.
- 승려 도선(道銑)은 풍수지리설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한 대표적 인물로 꼽힌다.
* 도선의 비보사탑설(裨褓寺塔設)
- 지세가 약하고 쓸모없는 땅에 절이나 탑을 세워 땅을 이로운 곳으로 바꾼다는 설
- 경주를 벗어난 지방 각지의 사찰 건립을 뒷받침해 주는 사상적 배경으로 작용하였으며,
한반도 중심부에서 새로운 세력이 형성되어야 할 것을 암시하는 정치적 의도가 엿보인다.
* 풍수의 주요점
- 간룡: 산을 용에 견주어 산맥의 흐름이나 형세를 보는 것
- 장풍, 득수: 산이 둘러싸이고 주변에 물리 흐르는 형세를 보아 바람을 막고 물을 얻는다
- 정혈, 좌향: 좌청룡, 우백호, 전주작, 후현무로 산이 둘러싸는 형세를 이상으로 치고
그 안에 생기가 집중되는 자리를 혈(穴), 혈의 위치에서 방위를 봄으로서
좌향을 결정한다.
- 형국: 종합적인 판단으로, 금계포란형, 연화부수형등의 유형을 분류하는 것
* 고려의 10개 사찰 및 대흥사, 개태사등의 지방 사찰들은 이런 풍수설을 바탕으로 위치가
선정되었다고 한다.
* 풍수설은 군사적인 전술에서부터 일상사에 광범위하게 수용되었으며, 비보설의 경우 산을 양으로
보아 집을 높게 지어 양과 양이 서로 출동하는 것을 꺼리고, 집을 낮게 지어 양과 음이 조화를
이루는 것을 중시하였다.
* 풍수지리설은 고려시대 전 기간을 거치며 지배계층 사이에 널리 신봉되었으며, 10세기를 지나
고려 왕실의 전국적 지배를 해 나가는 과정에 풍수 도참사상에 입각한 건축 활동은 하나의 큰
줄기를 이루면서 전개되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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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3.09.23
  • 저작시기20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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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880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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