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전후사회의 인식 - 김성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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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해방전후사회의 인식 - 김성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김성수를 바라보는 두가지 시각.
하지만 김성수를 다른 측면에서도 생각해 볼수 있다.
나의 생각과 그 당시의 나

본문내용

“문약의 기질을 버리고 상무의 정신을 찬양하라”라는 논설을 쓴 것뿐입니다. 그러나 이 논설도 매일신보 기자가 대필했다는 증언이 나오는 등 그 신빙성에도 의문이 많습니다. 그리고 정말로 친일 할 사람 같으면 좀 더 앞장서서 나설 것이지,-만약 그랬다면 당시 김성수란 인물의 비중을 놓고 볼 때, 일제는 왠 종일 이것 가지고 선전 했을 겁니다- 왜 있는지 없는지 그 근거 조차도 빈약한 논설 한 두 점을 가지고 일제에 충성을 맹세했겠습니까?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당시의 사람들은 모두가 김성수를 민족지도자로 보앗지, 친일파로 본사람은 없었습니다. 김구선생이,여운형선생이, 이승만박사가, 아니 북한의 김일성이 김성수를 친일파라 했습니까? 이들이 당대 누구나 보았던 매일신보를 안 보아서 그랬을까요? 좌파들도 김성수를 지주로는 보았어도 친일파로서 보지는 않았습니다. 이들은 김성수의 사람됨을 익히 알고 있었던 것이고 김성수가 한 일을 알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당대 사람들은 , 가까이서 지켜 보았던 사람들은 모두 민족지도자로 보았는데, 이제와서 친일파라고 보기는 힘들 것입니다. 이제까지의 기존 관념을 무너뜨리려면 그 근거가 확고해야 하는데, 최근 김성수의 친일 행적이라고 하여 마치 무슨 대단한 것 발견한 것 인양 발표한 것을 보면 친일의 근거로 삼기에는 너무 빈약하기 이르데 없습니다. 이들은 억지로 죄를 뒤집어 씌우기 위해 발광하는 사람처럼 보이기까지 합니다. 왜 국가에서 인촌 김성수에게 오히려 한 두편의 친일논설이 있었다는 외양보다는, 당대에서나 이제까지도 일제에 굴하지 않았던, 의연한 민족지도자로서 이미지도 김성수는 가질수가 있습니다.
최근에 김성수 동상을 허물어 버린다는 이야기가 고려대 사이에서 오고가고 있다고 합니다.지금까지 인촌 김성수의 친일 행각에 대해 밝혔고, 이를 전제로 했을 때에 고려 대학교에 세워진 인촌 김성수 조각상을 없애자는 건 일종의 친일 청산이라고 보여집니다.
제가 고려 대학교 학생은 아닙니다만, 개인적 생각으론 대학교 명예 훼손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대학교 입장에선 그래도 설립자의 조각상이라고 해서 없애는 것에 대해서 반대를 하는 모양인데요. 그렇게 따진다면 이화여대의 김활란(이 여인도 과거 민족 지도자였지만 친일파로 변절했죠.)은 뭘까요?
오히려 인촌 김성수의 조각상을 그대로 유지하는 게 더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친일파의 조각상이 그대로 남아있는 것, 어쩌면 아직까지도 친일 청산을 하지 못한
고려대학교 동상 철거 사건이 우리나라의 축소판을 보는 듯 하네요.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볼때 부끄럽지만 인촌 김성수의 이와같은 친일횅위는 어느정도는 공감이 간다. 일제 강점기라는 상황을 주목해서 봐야할 필요가 우리에게는 있다. 그 당시 조선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던 거물들은 항상 일본의 감사와 주시를 언제나 받게 되어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본에 대한 나쁜 행동이나 거슬리는 행동을 할 경우에는 그 사람에게 있어서는 피해가 가는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당장 자기가 위험한데 먼 미래를 바라보고 독립을 위해 싸우고 독립을 쟁취하려는 행위는 정말 엄청난 정신력이 없으면 불가능할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도 이 때 당시 김성수의 입장이었다면 친일 행위는 안할수 없을 것같다. 그래서 우리나라의 독립운동가들이 정말 위대한 분들이고 칭송 받아야 한다는 나는 생각한다.
일제 강점기 조선의 민중은 너무나도 가혹한 삶을 살았다. 일제에 의해서 강행된 토지조사사업은 농민적 토지소유제를 강화하는 것이 아니라 이른바 식민지 지주제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루어졌다.
그리고 식민지 지주제 아래서 자본주의적 이윤추구를 하는 지주경영 때문에 조선 농민들은
토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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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8페이지
  • 등록일2013.10.01
  • 저작시기2013.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883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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