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머리말
Ⅱ. 본문
1. 상대 문학(上代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2) 문학의 특징
(3) 주요 작품과 작가
2. 중고 문학(中古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2) 문학의 특징
(3)주요 작품과 작가
3. 중세문학(中世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2)문학의 특징
(3) 주요 작품과 장르
5. 근세문학(近世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2) 문학의 특징
(3) 주요 작품과 작가
Ⅲ. 맺음말
Ⅱ. 본문
1. 상대 문학(上代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2) 문학의 특징
(3) 주요 작품과 작가
2. 중고 문학(中古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2) 문학의 특징
(3)주요 작품과 작가
3. 중세문학(中世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2)문학의 특징
(3) 주요 작품과 장르
5. 근세문학(近世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2) 문학의 특징
(3) 주요 작품과 작가
Ⅲ. 맺음말
본문내용
을 합쳐서 기록하는 등, 객관적 사실에 충실하려고 한 역사서로서의 성격이 강하다.
③ 만요슈(萬葉集): 귀족과 지식인 사이에 개인의식이 싹트고 문학적 자각이 뚜렷해지는 한편, 한자가 보급되면서 한자의 음과 훈을 활용한 만요가나가 발달하여 개인의 심정을 단가(短歌) 음수율 57577의 정형시
와 장가(長歌) 음수율 5757……577의 정형시
에 담은 와카(和歌) 한시에 대해 일본 고유의 시로서 주로 단가를 말한다
가 발달하게 되었다. 마침내 와카의 특색인 웅대하고 힘찬 가풍의 이른바 만요초(萬葉調)가 형성되었고 6, 7세기경에는 57조 정형(定型)이 확립되었다. 고지키와 니혼쇼키 내에도 이러한 시가들이 기록되어 있지만『古事記』와 『日本書紀』에 수록되어 있는 古代歌謠를 기키 가요(記紀歌謠)라고 하는데, 『古事記』에는 약 110수, 『日本書紀』에는 약 130수가 보이지만, 양쪽에 중복되는 것을 빼면 약 190수 정도로 헤아릴 수 있다.
, 이 시대의 와카를 집성한 것이 일본 최고의 가집 ‘만요슈(萬葉集)’(759년 이후 성립)이다.
전20권으로 4,500여 수가 실려 있다. 정확한 성립연도는 알 수 없지만 대략 759년 이후, 즉 8세기 말에 성립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작자 층은 천황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며 지역도 전국에 걸쳐 있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작가(作歌)연대는 약 130여 년 간으로 629~759년, 즉 7, 8세기의 노래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보이나 오토모 야카모치(大伴家持)가 최종적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추정되어 진다. 수록된 와카는 소몬카(相聞歌-이성을 연모하는 노래), 반카(輓歌-죽은 이를 애도하는 노래), 조카(雜歌-주로 궁정의 공식행사와 관계가 있는 노래) 등으로 분류편찬되어 있다.
‘만요슈’는 시풍에 의해 크게 4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닌토쿠 천황대에서 672년의 임신(壬申)의 난 까지의 시기(645~672년)로서 아직 상대 가요의 소박함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 가인으로 죠메천황 덴지천황 덴무천황 아리마노미코 누카타노오키미를 들 수 있으며, 특히 왕실 시인이 많다.
제2기는 덴무(天武)지토(持統)몬무(文武) 3대 왕에 걸친 임신의 난 이후 헤이조쿄에 천도 할 때까지의 약 40년 간(672~ 710년)을 말한다. 이 시기는 개인의 의식이 두드러지고 표현기술도 진보하여 만요 시풍이 확립한 시기이다. 대표 시인인 가키노모토 히토마로(本人麻呂)는 특히 장가에 뛰어났으며 일본 와카 사상 최대의 시성(詩聖)으로 인정되는 시인이다.
제3기는 나라 시대 전기(710~734년)로 만요가풍의 최 전성기이다. 서정적인 노래에서 객관적인 노래로 옮겨가는 시기로, 개성적인 시인이 배출되었다. 대표 시인으로서는 단카와 서경가(敍景歌)에 뛰어난 야마베 아카히토(山部赤人), 야마노우에 오쿠라(山上憶良), 오토모 다비토(大伴旅人) 등이 있다.
제4기는 나라 시대 후기로, 제 3기 이후 ‘만요슈’의 마지막 노래가 만들어진 759년 까지 이다. 시풍은 이지적기교적이어서 다음 헤이안 시대로 이행하는 징조가 보인다. 오토모 야카모치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각 시대에 따라 시풍의 변천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소박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남성적인 시풍이라 할 수 있다.
2. 중고 문학(中古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중고 시대는 나라 시대 말기에 간무 천황은 정치적 혼란을 타파하고 천황 중심의 율령체제를 재건하기 위해서 794년에 지금의 교토(京都)인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여, 그 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1192년 가마쿠라 막부(鎌倉 幕府)가 설치 할 때까지의 약 400년간을 가리킨다. 이 기간을 통해 교토는 일본 문회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고, 수도인 헤이안의 이름을 따 헤이안 시대라고도 부른다.
(2) 문학의 특징
이 시대 문학의 담당자는 궁정도시 헤이안쿄를 본거지로 하는 귀족계급이었으므로 이 시대를 궁정문학시대 또는 귀족문학시대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가장 일본적인 문화를 꽃피운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중고시대 전기(8세기 말엽~10세기 중엽)는 대륙문화의 모방시대이다. 도성(都城)의 규모를 비롯해 궁정의례 전반이 당풍(唐風)으로 장식되었으며 남성 관료들이 다투어 한시문을 씀에 따라 한시문이 크게 발달하게 된다. 8세기 초엽에는 왕명에 따라 한시문 3집인 료운슈 (凌雲集)(814), 분카슈레이슈 (文華秀麗集)(818), 게이코쿠슈(經國集)(827)가 잇달아 출판되었으며 이 칙찬(勅撰) 한시문집 이외에 개인 한시문집의 출현도 나타났다..
만엽집의 출판 이후 헤이안 시대 초엽의 약 100여 년 동안 와카는 한시문에 가려져 중앙 무대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며 민간 또는 사적인 세계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가나(假名) 문자의 보급, 발전에 힘입어 부활하게 되었고 이러한, 와카의 궁정사회 복귀는 가나 문자의 보급을 촉진시켰다. 이와 더불어 견당사(遣唐使) 파견이 중지되고 점차 당풍에서 벗어나려는 기운이 일면서 와카를 일본 고유의 시가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와카의 부흥 속에 마침내 10세기 초에 칙명에 의하여 고킨와카슈 (古今和歌集)(905)가 편찬되었다. 이후 세련된 기지와 취향을 추구하여 만요 와카와는 다른 헤이안 귀족의 취미나 정서에 맞는 75조의 유려한 시풍이 생겨났다. ‘고킨와카슈’의 시인으로는 편찬자인 기노 쓰라유키(紀貫之), 오시코우치 미쓰네(凡河內躬恒), 미부노 다다미네(壬生忠岑), 기노 도모노리(紀友則) 등이 유명하다. 와카는 약 1세기 동안 활기를 띠었으나 10세기 전후 산문문학이 융성함에 따라 부진한 상태를 보이다가 10세기 말엽 부활하여 잇달아 칙찬집이 출현했으며 대규모 우타아와세(歌合) 우타아와세는 좌우로 편을 갈라 주어진 주제 아래 와카를 지어서 우열을 겨루는 일종의 놀이였는데 심판을 맡은 판자(判者)의 평언(評言)을 통해 시론(詩論)으로 조직화되어갔다.
가 활발히 개최되고 사가집이 다수 출현했다. 이처럼 활발한 헤이안 후기의 시단(詩壇)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유현(幽玄)의 미 여운의 넘치는 섬세한 미적 경지
를 추구한 후지와라
③ 만요슈(萬葉集): 귀족과 지식인 사이에 개인의식이 싹트고 문학적 자각이 뚜렷해지는 한편, 한자가 보급되면서 한자의 음과 훈을 활용한 만요가나가 발달하여 개인의 심정을 단가(短歌) 음수율 57577의 정형시
와 장가(長歌) 음수율 5757……577의 정형시
에 담은 와카(和歌) 한시에 대해 일본 고유의 시로서 주로 단가를 말한다
가 발달하게 되었다. 마침내 와카의 특색인 웅대하고 힘찬 가풍의 이른바 만요초(萬葉調)가 형성되었고 6, 7세기경에는 57조 정형(定型)이 확립되었다. 고지키와 니혼쇼키 내에도 이러한 시가들이 기록되어 있지만『古事記』와 『日本書紀』에 수록되어 있는 古代歌謠를 기키 가요(記紀歌謠)라고 하는데, 『古事記』에는 약 110수, 『日本書紀』에는 약 130수가 보이지만, 양쪽에 중복되는 것을 빼면 약 190수 정도로 헤아릴 수 있다.
, 이 시대의 와카를 집성한 것이 일본 최고의 가집 ‘만요슈(萬葉集)’(759년 이후 성립)이다.
전20권으로 4,500여 수가 실려 있다. 정확한 성립연도는 알 수 없지만 대략 759년 이후, 즉 8세기 말에 성립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작자 층은 천황에서 서민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하며 지역도 전국에 걸쳐 있어 매우 복잡하고 다양하다. 작가(作歌)연대는 약 130여 년 간으로 629~759년, 즉 7, 8세기의 노래가 대부분이다. 아마도 여러 사람의 손에 의해 편집된 것으로 보이나 오토모 야카모치(大伴家持)가 최종적으로 집대성한 것으로 추정되어 진다. 수록된 와카는 소몬카(相聞歌-이성을 연모하는 노래), 반카(輓歌-죽은 이를 애도하는 노래), 조카(雜歌-주로 궁정의 공식행사와 관계가 있는 노래) 등으로 분류편찬되어 있다.
‘만요슈’는 시풍에 의해 크게 4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는 닌토쿠 천황대에서 672년의 임신(壬申)의 난 까지의 시기(645~672년)로서 아직 상대 가요의 소박함이 남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대표 가인으로 죠메천황 덴지천황 덴무천황 아리마노미코 누카타노오키미를 들 수 있으며, 특히 왕실 시인이 많다.
제2기는 덴무(天武)지토(持統)몬무(文武) 3대 왕에 걸친 임신의 난 이후 헤이조쿄에 천도 할 때까지의 약 40년 간(672~ 710년)을 말한다. 이 시기는 개인의 의식이 두드러지고 표현기술도 진보하여 만요 시풍이 확립한 시기이다. 대표 시인인 가키노모토 히토마로(本人麻呂)는 특히 장가에 뛰어났으며 일본 와카 사상 최대의 시성(詩聖)으로 인정되는 시인이다.
제3기는 나라 시대 전기(710~734년)로 만요가풍의 최 전성기이다. 서정적인 노래에서 객관적인 노래로 옮겨가는 시기로, 개성적인 시인이 배출되었다. 대표 시인으로서는 단카와 서경가(敍景歌)에 뛰어난 야마베 아카히토(山部赤人), 야마노우에 오쿠라(山上憶良), 오토모 다비토(大伴旅人) 등이 있다.
제4기는 나라 시대 후기로, 제 3기 이후 ‘만요슈’의 마지막 노래가 만들어진 759년 까지 이다. 시풍은 이지적기교적이어서 다음 헤이안 시대로 이행하는 징조가 보인다. 오토모 야카모치가 대표적인 시인이다. 각 시대에 따라 시풍의 변천은 있으나 전체적으로 일상생활에서 오는 소박한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한 남성적인 시풍이라 할 수 있다.
2. 중고 문학(中古 文學)
(1) 시대 구분과 배경
중고 시대는 나라 시대 말기에 간무 천황은 정치적 혼란을 타파하고 천황 중심의 율령체제를 재건하기 위해서 794년에 지금의 교토(京都)인 헤이안(平安)으로 천도하여, 그 후 미나모토노 요리토모에 의해 1192년 가마쿠라 막부(鎌倉 幕府)가 설치 할 때까지의 약 400년간을 가리킨다. 이 기간을 통해 교토는 일본 문회와 정치의 중심지가 되었고, 수도인 헤이안의 이름을 따 헤이안 시대라고도 부른다.
(2) 문학의 특징
이 시대 문학의 담당자는 궁정도시 헤이안쿄를 본거지로 하는 귀족계급이었으므로 이 시대를 궁정문학시대 또는 귀족문학시대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가장 일본적인 문화를 꽃피운 시기라고도 할 수 있다.
중고시대 전기(8세기 말엽~10세기 중엽)는 대륙문화의 모방시대이다. 도성(都城)의 규모를 비롯해 궁정의례 전반이 당풍(唐風)으로 장식되었으며 남성 관료들이 다투어 한시문을 씀에 따라 한시문이 크게 발달하게 된다. 8세기 초엽에는 왕명에 따라 한시문 3집인 료운슈 (凌雲集)(814), 분카슈레이슈 (文華秀麗集)(818), 게이코쿠슈(經國集)(827)가 잇달아 출판되었으며 이 칙찬(勅撰) 한시문집 이외에 개인 한시문집의 출현도 나타났다..
만엽집의 출판 이후 헤이안 시대 초엽의 약 100여 년 동안 와카는 한시문에 가려져 중앙 무대에서는 거의 자취를 감추었으며 민간 또는 사적인 세계에서 명맥을 유지해오다가 9세기 후반에 이르러서 가나(假名) 문자의 보급, 발전에 힘입어 부활하게 되었고 이러한, 와카의 궁정사회 복귀는 가나 문자의 보급을 촉진시켰다. 이와 더불어 견당사(遣唐使) 파견이 중지되고 점차 당풍에서 벗어나려는 기운이 일면서 와카를 일본 고유의 시가로 인정하게 되었다.
이러한 와카의 부흥 속에 마침내 10세기 초에 칙명에 의하여 고킨와카슈 (古今和歌集)(905)가 편찬되었다. 이후 세련된 기지와 취향을 추구하여 만요 와카와는 다른 헤이안 귀족의 취미나 정서에 맞는 75조의 유려한 시풍이 생겨났다. ‘고킨와카슈’의 시인으로는 편찬자인 기노 쓰라유키(紀貫之), 오시코우치 미쓰네(凡河內躬恒), 미부노 다다미네(壬生忠岑), 기노 도모노리(紀友則) 등이 유명하다. 와카는 약 1세기 동안 활기를 띠었으나 10세기 전후 산문문학이 융성함에 따라 부진한 상태를 보이다가 10세기 말엽 부활하여 잇달아 칙찬집이 출현했으며 대규모 우타아와세(歌合) 우타아와세는 좌우로 편을 갈라 주어진 주제 아래 와카를 지어서 우열을 겨루는 일종의 놀이였는데 심판을 맡은 판자(判者)의 평언(評言)을 통해 시론(詩論)으로 조직화되어갔다.
가 활발히 개최되고 사가집이 다수 출현했다. 이처럼 활발한 헤이안 후기의 시단(詩壇)에서 주목되는 인물은 유현(幽玄)의 미 여운의 넘치는 섬세한 미적 경지
를 추구한 후지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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