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눈을 감고 귀를 열라
2. 듣기의 세 가지 장애물
1) 인쇄의 등장
2) 배움을 교실수업으로의 대치
3) 소비자 사회에서 우리는 소비자들이라는 사실
3. 이러한 장애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4. 말씀이 보여주는 새 질서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라
1) ‘렉치오’
2) ‘메디타티오’
2. 듣기의 세 가지 장애물
1) 인쇄의 등장
2) 배움을 교실수업으로의 대치
3) 소비자 사회에서 우리는 소비자들이라는 사실
3. 이러한 장애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4. 말씀이 보여주는 새 질서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라
1) ‘렉치오’
2) ‘메디타티오’
본문내용
목회사역의 중요한 토대인 성경
목차
1. 눈을 감고 귀를 열라
2. 듣기의 세 가지 장애물
1) 인쇄의 등장
2) 배움을 교실수업으로의 대치
3) 소비자 사회에서 우리는 소비자들이라는 사실
3. 이러한 장애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4. 말씀이 보여주는 새 질서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라
1) ‘렉치오’
2) ‘메디타티오’
1. 눈을 감고 귀를 열라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설교하는데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듣는 것을 멈추어 버렸다. 성경을 읽는 것이 하나님께 듣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둘을 동일시해버리면서, 하나님께로 듣는 것을 멈추어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읽는 것으로 슬쩍 내려가 버렸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열린 귀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우선적인 관심은 성경을 분석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얻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듣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훈련은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듣는 훈련이다. 페이지를 차갑게 읽기 보다는 말씀을 열정적으로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듣는 것과 읽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두개의 다른 감각들이 포함된다. 들음에 우리의 귀가 포함되고, 읽음에 우리의 눈이 포함된다. 한 목소리의 음성을 듣는다. 페이지에 표시된 것을 읽는다. 이 차이점들은 중요하며, 심오한 결과를 가져온다. 듣는다는 것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의 행위이며, 이것은 두 세 사람 이상이 근접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읽기는 오랜 세월이 지났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누군가에 의해서 쓰여진 한 책과 한 사람이 포함되는 것이다.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지만,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집중하는지 안하는지 책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들을 때 상대방은 내가 집중하지 않는지 하는지를 안다. 내가 읽을 때, 나는 그 진행을 주도해 나간다. 내가 들을 때, 말하는 자가 주도해 나간다. 들음에서 말하는 자가 주도권이 있고, 읽음에서는 읽는 자가 주도권을 쥔다. 아침에 남편이 아내로부터 들으며 대화하기 보다는 신문을 읽으면서 신문 읽기에만 전념하는 것--사랑의 교제가 상실되고, 소망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린다.
성경을 읽는 의도는 말씀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에게 듣는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 즉 여러 시간과 장소들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방식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이며, 그가 말씀하실 때 백성들이 반응하는 방식들과 친숙해지기 위해서이다. 기독교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실재를 존재에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창조를 형성에로, 구원을 행위에로 말이다. 우리는 창조 형성과 구원 행위에로 말씀되어진 것이다.(that which is spoken into a creation shape and a salvation action). 말씀이 발해질 때 되어지는 것은 우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듣는다.
그러나 읽기가 듣기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설교를 하고 가르침에 있어서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 거래의 한 도구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성경은 방해를 받는다.
2. 듣기의 세 가지 장애물
3가지 조건들이 들려지는 말씀을 프린트되어진 말씀으로 넘어가는데 공헌한다.
1) 인쇄의 등장
1437년에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이다. 이전에는 성경이 매우 귀해서 평민들이 소유할 수가 없었다. 성경이 손으로 직접
목차
1. 눈을 감고 귀를 열라
2. 듣기의 세 가지 장애물
1) 인쇄의 등장
2) 배움을 교실수업으로의 대치
3) 소비자 사회에서 우리는 소비자들이라는 사실
3. 이러한 장애물에서 벗어날 수 있는가?
4. 말씀이 보여주는 새 질서의 세계 안으로 들어가라
1) ‘렉치오’
2) ‘메디타티오’
1. 눈을 감고 귀를 열라
성경을 읽고, 가르치고, 설교하는데서 우리는 성경 말씀을 듣는 것을 멈추어 버렸다. 성경을 읽는 것이 하나님께 듣는 것과 같은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이 둘을 동일시해버리면서, 하나님께로 듣는 것을 멈추어 버렸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읽는 것으로 슬쩍 내려가 버렸다. 우리는 이러한 차이점을 분명히 인식하면서, 열린 귀가 회복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우선적인 관심은 성경을 분석하고, 도덕적인 교훈을 얻기 위해 읽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께 듣는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훈련은 말씀을 주님으로부터 듣는 훈련이다. 페이지를 차갑게 읽기 보다는 말씀을 열정적으로 듣는 훈련이 필요하다.
듣는 것과 읽는 것은 같은 일이 아니다. 두개의 다른 감각들이 포함된다. 들음에 우리의 귀가 포함되고, 읽음에 우리의 눈이 포함된다. 한 목소리의 음성을 듣는다. 페이지에 표시된 것을 읽는다. 이 차이점들은 중요하며, 심오한 결과를 가져온다. 듣는다는 것은 인격과 인격의 만남의 행위이며, 이것은 두 세 사람 이상이 근접한 관계에서 이루어진다.
읽기는 오랜 세월이 지났거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의 누군가에 의해서 쓰여진 한 책과 한 사람이 포함되는 것이다. 듣는 사람은 말하는 사람에게 집중해야 하지만, 읽는 사람은 그렇지 않아도 된다. 내가 집중하는지 안하는지 책은 알지 못한다. 그러나 들을 때 상대방은 내가 집중하지 않는지 하는지를 안다. 내가 읽을 때, 나는 그 진행을 주도해 나간다. 내가 들을 때, 말하는 자가 주도해 나간다. 들음에서 말하는 자가 주도권이 있고, 읽음에서는 읽는 자가 주도권을 쥔다. 아침에 남편이 아내로부터 들으며 대화하기 보다는 신문을 읽으면서 신문 읽기에만 전념하는 것--사랑의 교제가 상실되고, 소망의 아름다움이 사라져 버린다.
성경을 읽는 의도는 말씀에서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에게 듣는 영역을 확장시키기 위한 것, 즉 여러 시간과 장소들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 방식들에 익숙해지기 위해서이며, 그가 말씀하실 때 백성들이 반응하는 방식들과 친숙해지기 위해서이다. 기독교의 확신은 하나님께서 실재를 존재에로 말씀하신다는 것이다. 창조를 형성에로, 구원을 행위에로 말이다. 우리는 창조 형성과 구원 행위에로 말씀되어진 것이다.(that which is spoken into a creation shape and a salvation action). 말씀이 발해질 때 되어지는 것은 우리이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무엇이 일어나고 있는가를 알기 위해서 듣는다.
그러나 읽기가 듣기에 도달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설교를 하고 가르침에 있어서 말씀을 듣지 않았을 때, 거래의 한 도구로 전락해 버릴 것이다. 성경은 방해를 받는다.
2. 듣기의 세 가지 장애물
3가지 조건들이 들려지는 말씀을 프린트되어진 말씀으로 넘어가는데 공헌한다.
1) 인쇄의 등장
1437년에 구텐베르크의 인쇄기 발명이다. 이전에는 성경이 매우 귀해서 평민들이 소유할 수가 없었다. 성경이 손으로 직접
추천자료
한국 교회 목회의 문제
여성사역자에 관하여
노인사역
[사회과학] 디지털 시대 청소년 목회
[독서보고]교육목회의 회복
청소년문화사역에관한고찰 - 청소년 문화사역을 중심으로
나의 미래의 목회
21세기와 영성 목회
21세기 미래 교회의 목회와 예배
[교회지도자론요약] 나는 한 교회에서 40년간 이렇게 목회했다 - 부록 : 교회 지도자론
《칼빈의 기독교강요》교회론 (목회론)
[독후감, 서평, 요약] <껍데기 목회자는 가라> _ 저자 : 유진 피터슨 & 마르바 던
[한국기독교]한국교회의 7대 신학적 과제 - 목회 현장을 위한 신학교육, 선교 지향적 신학의 ...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