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저향 윤리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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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일제강점기 우리나라 저향 윤리교육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일제강점기 저항윤리 교육의 사상적 배경
2, 일제강점기 저항윤리 교과서의 편찬동기
3, 일제강점기 저항윤리 교과서의 내용분석
1) <대동소학>의 체제
2) 저항윤리 교육의 교육내용 및 방법


Ⅲ. 맺는말

본문내용

는 것을 골라서 중국과 남송 때의 주자 <소학>의 체제를 분원으로 삼아 8책으로 저술하였다, 김형재는 <대동소학>의 법례에서 주자 <소학>을 근본을 삼아 입교, 명륜, 경신, 계고, 가언, 그리고 선해의 6편으로 편성되었다, <대동소학>의 편찬목적에 대해 송기식은 고금이 다르고, 지혜가 다르고, 모순되고 통하지 않는 곳이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지극하신 하늘이 떳떳한 도를 지키는 자는 어찌 동서고금에 다른 것이 있겟는가? 하물며 우리나라가 먼저 조도와 제행을 바로 잡는 것은 천지의 조화에 참여할 수 있게 했으며, 효친 총군의 도리는 가히 일월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게 하였다, 어찌하여 밖을 숭상하고 먼곳에서 구하여 어린이로 하여금 방향을 잃어 버리게 하겠는가?고 하였다, 중국남송시대 주자와 그 문인들이 편찬한 <소학>은 시대와 지역과 전통이 다른 점을 지적하면서 우리나라 선조들의 도를 가르치기 위해서 저술된 <대동소학>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김형재도 우리나라 선현의 가언과 선행과 유명한 명원의 일을 종지로 삼아 사람과 사람으로 하여금 어려서 익히고 어른이 되어 행하고 조종의 지난 행적을 가르치는데 있다고 하여 주자<소학>에 이어서 세상에 이익이 되고 아름답게 빛나는 인재양성의 길을 바로 잡는데 있다고 하였다,
<대동소학>의 체제는 6편 683장으로 되어 있다, 김형재가 당시 조선유교회 중앙 선교사로 있었기에 전국 유림과 우편이나 순회하면서 찬성록을 작성한 것으로 본다, 이런 점에서 <대동소학>은 일제의 민족말살정책이 극에 달하던 시기에 조선유교회 산하 유림이 경영하는 서당에서 수양서로 가르치기 위해 저술한 것으로 본다, 그러나 김형재가 1937년에 <대동소학>을 완편하여 간행하려는 중에 일제에 체포되어 금단되어 간행되지 못하였다, <대동소학>이 간행된 것은 1987년 작성하여 두었던 10개의 원고 중 하나를 1975년에 와서 편찬한 저자와 후손에 의하여 일청서실에 의해 간행되었다, 김형재의 <대동소학>이 일제에 의한 금서가 된 것은 우리 조상과 철인들의 일을 담아 놓은 국수의 정수로 민족 문화의 계승과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는데 가치가 있다고 본 것이다,
2) 저항윤리 교육의 교육내용 및 방법
김형재의 <대동소학>은 우리나라의 민족 문화의 국수를 가르치기 위해 저술하였다, 김형재의 천성에 근본하면 인은 둥글고 의는 바른 것이다, 바른 것을 가슴에 쌓아 두고 만 가지 일에 흩어 쓰니 그 쓰임이 끝이 없다, 그런데 천년의 일을 보건대 잠꼬대 하면서 생사에 대한 것을 판결하고 입과 귀를 규제해 놓았다, 당과 송이 저 노비의 성질을 길러서 우리 생민들에게 해를 주었다, 또한 권리를 다투어 성인의 도가 물속에 잠기고 왕왕 어진 철인들고 손을 댈 수 없게 되었다, 큰 나라와 변방섬 (중국과 일본)이 머리를 숙이고 몰려들도록 사람의 안목을 흐리게 하고 해를 가려서 사슴과 말을 분별 못하게 만들었다, 향교와 서원에는 한낱 헛된 글만이 있게 되었다고 조선조 5백년 의 낙후함이 유교를 비롯된 것임을 비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망하게 된 것도 사슴과 말을 분별하게 못한것도 헛된 글만 가르친 데 있다고 보았다, 조선조 5백년은 여러 어진 이들이 몸을 보존하고 마음을 조심하느라 임천에 숨어서 도를 감추고 글이나 읊어서 이것이 입으로 전하고 마음으로 주어 책에 담아 놓았다고 하여 조선조 유학자들의 행동거지를 비판하였다, 우리가 이를 버리고 우리가 배워야 할 것은 무엇인가 이다, 이는 우리 조상과 우리 집에 근본이 서고 도가 생겨 옆으로 일관하여 동서가 같은 길을 가고 백과에 전문하고 갖가지 가르침에는 종이 많다, 그런데 우리가 중도에서 방황하고 가르침의 결정이나 잘못된 것을 변통으로 이리 저리 꾸며 대며 그 중심을 가리지 않으면 후인들이 혼몽하여 질 것이다고 하여 선현의 근본이 되는 것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대동소학>의 편찬동기는 우리나라 선현의 가언과 행식과 유명한 여인의 일을 종지로 삼아 사람들로 하여금 어려서 익히고 어른이 되어 행하고 조종의 지난 행적을 가르쳐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김형재는 <대동소학>의 입교, 명륜, 경신, 계교, 가인 그리고 선행 6편의 내용의 특징을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첫째로 입교 편에서는 태교와 모교와 같은 것을 주자 <소학>에서 이미 상세히 말하였기에 입교 편에서는 동방 교육제도 변화의 강령으로 삼는다고 하였다, 입교 편 첫장 고사편에서 단군이 백성들이 머리 땋는 법을 가르치면서부터 비로소 군신, 남녀 사이의 분별과 의복, 음식의 절차가 생기고 이로부터 교육이 시작되었다고 하여 단군 또는 단군조선의 업적을 강조하고 있다, 고려 광종 9년에 과거법이 시행된 이후 선비들이 시부와 공령의 글만 숭상하고 정학을 하는 자가 드물었다, 이에 문종 대에 최충의 구재를 설치하고 가르치니 문교가 크게 일어나 해동공자라 일컬었다고 하여 과거시험의 폐단과 최충의 학력과 교육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세종은 집현전을 설치하여 문사 20명을 뽑아 10명을 경연을, 10명은 서연을 맡게 해서 수십년동안 배양하고, 나이가 어리고 재행이 있는 자를 선발하여 관비로 공부만 전력하게 하니 인재가 이때처럼 성한 때가 없었다고 하여 세종의 문흥정책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이황은 국가에서 학교를 설치하여 선비를 기르는 것은 그 뜻이 높다, 스승과 학생사이에 마땅히 서로 예의를 앞세워서 스승은 사랑하고 학생은 공경하며 그 도리를 다하게 하라, 그리고 부형의 미음 쓰는 것을 섬기고 어른들을 예의안에서 섬기고 안으로는 충성을 밖으로는 겸손과 우애를 행하고 국가는 학문을 숭상하고 학교를 세워 교육을 펴서 선비를 기르는 뜻에 보답게 하라고 하여 국가의 인재양성의 중요성을 강조하였다, 아이도 자식을 낳거든 유아 때부터 착한 일로 인도하여야 한다 해서 가르치치 않으면 자란 뒤에 습관이 굳어져서 가르치기 어려우니 가르치는 순서는 마땅히 소학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소아주지>에 쓰고 있다, 또한 잘못을 범했을 때 그 죄가 무거우면 한번 범했어도 벌을 의논하고 경하면 세 번 범했을 때 벌을 의논해야 한다고 하여 <격몽요결>에 쓰고 있다, 유아교육은 마땅히 어려서부터 하고 습관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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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10.13
  • 저작시기2015.10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84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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