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기원에 관한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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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냉전의 기원에 관한 고찰 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머리말 5. 후기수정주의 학파
2. 전통주의 학파 6. 결합주의 학파
3. 현실주의 학파 7. 내가 본 냉전의 기원
4. 수정주의 학파 8. 맺음말
-참고문헌

본문내용

말할 수 있다. 또한 결합주의는 미국의 대내정책과 대외정책의 전반적인 경향과 방향을 이해하기 위한 유용한 분석의 틀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다.
7. 내가 본 냉전의 기원
제 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의 영토확장과 동부유럽의 공산화, 그에 대응한 트루먼 주의는 1946년 그리스의 공산주의자 반란과 터키에서의 소련의 압력에서 초래되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었던 트루먼은 공산주의 세력의 확대를 저지한다는 방침 아래, 그리스를 원조하여 공산 반란을 진압시킴과 동시에 터키에도 원조를 제공하였다. 미국은 공산주의 세력 팽창 저지에 노력하였고 이러한 트루먼 독트린은 냉전의 가속화와 심화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1947년 마샬 계획으로 미국이 자유주의 국가에 대한 경제를 원조하자 소련을 코민포름을 결성하여 체코를 공산화하였다. 소련이 서독의 통화개혁을 구실로 베를린을 봉쇄하자 소련의 베를린 봉쇄에 대항하여 NATO는 서독에 민주연방공화국을 세우고, 이에 대응해 소련역시 COMECON을 성립시켜 동부유럽 공산국가간 경제 원조 협의를 실현시켰다.
냉전은 유럽과 미국 경제의 붕괴를 막기 위해 시작되었다고 생각한다. 일본에 원자폭탄투여에서부터 폴란드, 베를린 문제, 그리스, 터키 등에서 한국전쟁까지 미국이 일관되게 추진해온 것은 소련과의 공존을 거부하고 자신의 세력을 공고히 하려는 것이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당연한 이유는 미국이 '자본주의 국가'이기 때문이다.
즉, 공산주의 세력이 확산되게 되면 그것은 세계 시장의 축소로 귀결될 것이고, 이것은 '이윤추구'를 목적으로 하는 자본주의국가에게는 불이익이 될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이런 이유로 미국은 냉전체계의 구축을 통해서 소련의 팽창을 막는 것이 필요했다. 그러나 그것은 경제 원조만으로는 부족했고 군사원조가 뒷받침 될 때만이 안정된 것이었다. 따라서 군사적인 원조의 성격은 자본주의의 이윤추구의 '자유'를 공산주의로부터 지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지, 미국이 진정한 '자유'의 수호자였기 때문이 아니었다.
실제 냉전체제의 형성을 통해서 누구보다도 이익을 본 것은 미국이었다.
만일 2차 대전 후에 자본주의와의 체제대결 상대인 공산주의 국가가 없었다면 유럽 국가들을 경제적, 군사적으로 호락호락 자신의 질서 속에 편입시킬 수 있었을까?
오히려 냉전 구도로 인해 큰 피해를 본 것은 소련이라고 할 수 있다.
2차 대전 후 가장 큰 피해 국가인 소련은 전후 복구라는 문제 해결을 해야 했는데, 냉전구도로 인해 서구로부터 외자 역시 들여올 수 없었다. 또한 경제적으로 훨씬 더 우월한 미국을 상대로 군비경쟁에 들어가게 되어 , 거대한 국방비 지출 등으로 경제적인 어려움은 더욱 가중 될 수밖에 없었고, 이러한 어려움은 결국 소련의 국민들이 짊어지게 될 것이라는 것은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이다.
냉전 체제의 기원은 얼핏 보아 공산주의와 자본주의를 앞세워 새로 개편된 국제 사회의 지배권을 장악하려는 소련과 미국의 패권주의에서 비롯되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러한 주장에도 어느 정도의 타당성이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언급한 몇 가지의 이유들로 인해서 미국에 냉전의 책임이 보다 더 있었다고 생각한다.
8. 맺음말
한국 전쟁의 휴전과 스탈린의 사망으로 국제긴장이 차츰 완화되어 가고 있을 무렵, 스탈린의 뒤를 이어 등장한 후루시초프는 평화공존정책을 추진하였다. 이에 미국과 소련의 관계에는 긴장완화, 즉 데탕트의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또한, 1970년대 들어와서 서독이 소련과 상호 불가침 조약을 체결하고, 1975년 동, 서 유럽을 망라한 35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헬싱키 협정이 조인되어 유럽의 안정이 보장되는 등 세계질서는 냉정의 대립과 갈등에서 벗어나고 있었다. 여기에 미국의 닉슨 대통령이 닉슨 독트린을 발표하여, 국제분쟁에 대한 개입을 억제하고 공산 국가에 대하여 융통성 있는 전략을 추진한다는 방침아래 베트남 전쟁에서 철수하고 중국과의 국교수립을 추지하였으며, 미국과 소련 간에 전략무기 제한 협정(SALT) 등 군축 협상이 진전되면서 세계는 화해와 평화공존의 분위기로 나아갔다. 한편 중국과 유고슬라비아를 비롯한 알바니아, 루마니아 등이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 독자노선을 취한 데다 프랑스의 북대서양 조약기구 탈퇴, 유럽 공동체의 확대, 독일과 미국의 경제 대국화 등으로 세계는 미소 중심의 냉전체제에서 다극체제로 변화되어 갔다. 특히 소비에트연방의 해체로 소비에트는 러시아로 국호가 원상태로 돌아가면서 국력이 약해졌다. 그러나 푸틴이 정권을 잡으면서 막대한 천연가스와 원유를 수출하여 얻은 자본을 바탕으로 제2의 영광을 꿈꾸며 최근에는 시리아 사태에 적극 개입하면서 새로운 냉전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중국은 막강한 외환보유고와 미국과 비슷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남중국해에서 주변의 약소국(필리핀, 베트남, 타이완 등)들의 격렬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영유권을 주장하면서 실질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고 일본과는 센카쿠열도를 분쟁화 시켜 자기의 영유권을 주장하여 미국과 새로운 냉전의 발판의 빌미를 제공하고 있다. 이렇듯 냉전은 완화되었지만 냉전의 기원에 관한 논쟁은 아직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앞으로 다시 냉전과 같은 체제가 오지 않도록, 국제적인 긴장과 대립의 상황이 지속되지 않도록 하는 것은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냉전의 기원에 대한 폭넓은 이해와 다양한 해석, 시각이 공존할 수 있도록 앞으로도 계속적인 연구가 있어야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단순히 미국과 소련 중심의 논의를 벗어나서, 특히 미국 중심주의적인 경향을 벗어나 체계적이고 비교론적 접근방법에 기초한 국제주의적 시각을 통하여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과 해석을 지향해야 할 것이다.
참고문헌
김용구박상섭,〈냉전의 기원과 수정주의 - 수정주의 주장의 비판적 검토〉,《논문집》10, 서울대학교 부설 국제문제 연구소, 1986
김정배, 〈냉전의 기원 : 공존과 지배의 전략〉,《미국사연구》5, 한국미국사학회, 1997
김진웅, 〈냉전의 기원론에 대한 일고찰〉,《역사교육론집》6, 경북대학교 사범대학, 1984
차상철, 〈냉전의 기원론〉,《북미주학연구》6, 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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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15.11.14
  • 저작시기20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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