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대한 자연의 지배의 미메시스이다.
“(예술이 대립각을 세우는 지점은) 자연을 지배하는 이성이 머무는 곳, 즉 그 작품들의 바깥쪽이며, 그래서 일종의 대자로 된다. 그런데 미적 이성은 이 자연을 지배하는 이성에서 발현해 나오는 것이다. 지배를 거스르는 예술작품의 적대는 지배에 대한 미메시스이다. 예술작품들은 지배의 세계와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자신을 지배적인 행동거지에 닮도록 한다. 존재자를 거스르는 예술작품의 내재적으로 논쟁적인 행동거지가 그 존재자를 지배하면서 그것을 단순히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질을 탈각시키는 원칙을 자기 속으로 흡수해 들이는 것이다. 미적 합리성은 저 밖에 있는 자연 지배의 합리성이 만들어 내 놓은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 한다.” T.W.아도르노, 1966, <부정변증법>
아도르노가 지향하는 미메시스적, 미적 이성은 도구적 이성, 헤겔에게 있어서는 오성과 대립하는 것이며 도구적 이성이 만들어내는 인간에 대한 지배에 대한 안티테제이자, 또한 그런 지배를 주도하는 이성에서 발현하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억압에 저항하는 이성의 모습을 모방하여 이성이라는 억압에 예술은 저항하는 것이며, 도구적 이성의 시스템과 다른 것을 산출하고자 예술은 지배 시스템, 현실을 닮으며 그곳에서 출발한다. 예술작품의 요소들은 현실에서 모방한 것들이며 현실의 반영이다. 이제 거기서 예술은 미메시스적으로 현실을 새롭게 보여주려 하고 억압의 시스템과 획일화에 반대하며 자유를 부르짖는다. 플라톤의 말처럼 예술은 현실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저항이다.
이러한 예술의 창조 뿐 만 아니라 감상에 있어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예술이라는 객체로의 다가섬이다. 주체를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객체를 주체화하는 것도 아닌, 자신을 잊고 객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주체, 나는 내가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미메시스적 태도가 가져오는 전율, 나를 잊고 그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대상에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일깨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 억압의 시스템을 넘어 자유를 향해 손을 뻗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에서 아도르노는 미메시스적 합리성을 통찰한다. 도구적 이성의 인간에 대한 억압은 바로 이 미메시스적 합리성의 힘으로 저지된다. 인간의 이성의 본성인 도구적 합리성은 계몽적 이성의 본 의도를 파괴한다. 타자를 주체화시키는 특수성의 사상이라는 폭력 아래 심지어 그 이성을 발효하는 인간마저 억압하는 도구적 이성의 야만을 주체의 타자에 대한 미메시스, 나와 상대를 동시에 긍정하는 것으로, 나를 완전히 상실하지도, 타자를 주체화하지도 않는 그 방식의 이성이 저지해 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미메시스적 합리성은 예술에 존재하는 그 미적 합리성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미메시스적 합리성을 통해 현실을 깨닫게 하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현실을 닮는 예술은 회색 현실을 회색으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그 감상은 폭력적이지 않은, 미메시스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타자를 긍정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고, 또한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 바로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참고 문헌
T.W.아도르노, M.호르크하이머 공저, 1944, <계몽의 변증법>
T.W.아도르노, 1966, <부정변증법>
T.W.아도르노, 1970, <미학이론>
G.W.F.헤겔, 1816, <논리학>
F.니체, 유저, <권력에의 의지>
F.니체, 1883,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D.오브라이언, 2011, <지식론 입문>
“(예술이 대립각을 세우는 지점은) 자연을 지배하는 이성이 머무는 곳, 즉 그 작품들의 바깥쪽이며, 그래서 일종의 대자로 된다. 그런데 미적 이성은 이 자연을 지배하는 이성에서 발현해 나오는 것이다. 지배를 거스르는 예술작품의 적대는 지배에 대한 미메시스이다. 예술작품들은 지배의 세계와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를 생산하기 위해 자신을 지배적인 행동거지에 닮도록 한다. 존재자를 거스르는 예술작품의 내재적으로 논쟁적인 행동거지가 그 존재자를 지배하면서 그것을 단순히 존재하는 것으로 만들어 질을 탈각시키는 원칙을 자기 속으로 흡수해 들이는 것이다. 미적 합리성은 저 밖에 있는 자연 지배의 합리성이 만들어 내 놓은 것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으려 한다.” T.W.아도르노, 1966, <부정변증법>
아도르노가 지향하는 미메시스적, 미적 이성은 도구적 이성, 헤겔에게 있어서는 오성과 대립하는 것이며 도구적 이성이 만들어내는 인간에 대한 지배에 대한 안티테제이자, 또한 그런 지배를 주도하는 이성에서 발현하는 것이다. 자연이라는 억압에 저항하는 이성의 모습을 모방하여 이성이라는 억압에 예술은 저항하는 것이며, 도구적 이성의 시스템과 다른 것을 산출하고자 예술은 지배 시스템, 현실을 닮으며 그곳에서 출발한다. 예술작품의 요소들은 현실에서 모방한 것들이며 현실의 반영이다. 이제 거기서 예술은 미메시스적으로 현실을 새롭게 보여주려 하고 억압의 시스템과 획일화에 반대하며 자유를 부르짖는다. 플라톤의 말처럼 예술은 현실을 단순히 모방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바로 저항이다.
이러한 예술의 창조 뿐 만 아니라 감상에 있어서 역시 마찬가지이다. 예술을 감상하는 것은 예술이라는 객체로의 다가섬이다. 주체를 파괴하는 것도 아니고 객체를 주체화하는 것도 아닌, 자신을 잊고 객체를 경험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때 주체, 나는 내가 어디인가, 나는 누구인가, 나는 무엇인가에 대해 깨닫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미메시스적 태도가 가져오는 전율, 나를 잊고 그 속으로 사라지는 것이다. 이것은 나를 대상에 굴복시키는 것이 아니라 나를 일깨우는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 이 억압의 시스템을 넘어 자유를 향해 손을 뻗게 해 주는 것이다.
이러한 요소에서 아도르노는 미메시스적 합리성을 통찰한다. 도구적 이성의 인간에 대한 억압은 바로 이 미메시스적 합리성의 힘으로 저지된다. 인간의 이성의 본성인 도구적 합리성은 계몽적 이성의 본 의도를 파괴한다. 타자를 주체화시키는 특수성의 사상이라는 폭력 아래 심지어 그 이성을 발효하는 인간마저 억압하는 도구적 이성의 야만을 주체의 타자에 대한 미메시스, 나와 상대를 동시에 긍정하는 것으로, 나를 완전히 상실하지도, 타자를 주체화하지도 않는 그 방식의 이성이 저지해 낼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미메시스적 합리성은 예술에 존재하는 그 미적 합리성에서 나타난다. 그리고 미메시스적 합리성을 통해 현실을 깨닫게 하고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이 되는 것이다. 현실을 닮는 예술은 회색 현실을 회색으로 그리고, 그것을 통해 자신의 시대를 인식하게 한다. 그리고 그 감상은 폭력적이지 않은, 미메시스적 방향으로 나아가게 한다. 타자를 긍정하면서도 나를 잃지 않고, 또한 세계를 변혁시킬 수 있는 힘. 바로 이것이 예술의 힘이다.
참고 문헌
T.W.아도르노, M.호르크하이머 공저, 1944, <계몽의 변증법>
T.W.아도르노, 1966, <부정변증법>
T.W.아도르노, 1970, <미학이론>
G.W.F.헤겔, 1816, <논리학>
F.니체, 유저, <권력에의 의지>
F.니체, 1883, <짜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D.오브라이언, 2011, <지식론 입문>
키워드
추천자료
동시를 대상으로 한 교육과정 및 교과서 수록작품에 관한 연구
뚜르게네프의 첫사랑을 읽고
현실 속의 영화, 영화 속의 현실
예술의 본질에 대한 시대적고찰
이상화 '나의 침실로'의 諸(제) 批評(비평)
[문학사]황지우 시세계 연구-1980년대를 중심으로
근대의 미의식과 역사의식에 대한 가다머의 비판
예술과 현실의 괴리감 해소
[독서감상문] 『배드민턴 치는 여자』 신경숙
[독일문학][독일][문학수용]독일(독일문학) 하우프트만 문학수용, 독일(독일문학) 슈니츨러 ...
고전시가론 중간과제 - <모죽지랑가>, <정석가> 파헤치기
김지하 연구
최명익 소설 연구
원왕생가 문학적해독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