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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침략할까 두려워 지지부진했다.
及見魏兵東西致敗, 乃放膽稱尊。
급견위병동서치패 내방담칭존
위나라가 동서로 패배당함을 보고 마음놓고 지존을 호칭했다.
吳臣勢獻諛, 謂有黃龍出現武昌, 因卽改黃武八年, 爲黃龍元年, 追尊父堅爲武烈皇帝, 兄策爲長沙桓王, 立子登爲太子, 進陸遜爲上大將軍, 諸葛恪爲太子左輔, 張休爲太子右弼。
오신진세헌유 위유황룡출현무창 인즉개황무팔년 위황룡원년 추존부견위무열황제 형책위장사환왕 입자등위태자 진육손위상대장군 제갈각위태자좌보 장휴위태자우필
黃武, 222년 ~ 229년 黃龍, 229년 ~ 232년
오나라 신하들은 기세를 몰아 아첨을 바쳐 황룡이 무창에서 출현하였으니 황무8년을 황룡원년으로 개원하자 하고 부친인 손견은 무열황제에 형인 손책을 장사환왕에 추존하며 자식인 손등을 태자로 삼고 육손은 상대장군으로 제갈각을 태자좌보로 장휴를 태자우필로 승진시켰다.
休爲張昭少子, 昭已年老, 入朝賀權, 褒贊功德。
휴위장소소자 소이년로 입조하권 포찬공덕
장휴는 장소의 막내 자식으로 장소가 이미 연로해 입조하여 손권에 경하하며 공덕을 칭찬했다.
褒贊:稱揚讚美
權笑說道:「假使如張公計, 早爲魏僕, 恐今已乞食了。」(指赤壁事。)
권소설도 가사여장공계 조위위복 공금이걸식료 지적벽사
손권이 웃으면서 말했다. “가령 장소공의 계책대로였다면 조기에 짐이 위나라 종이 되어 지금 이미 걸식하고 있을까 두렵습니다.” (적벽대전 전 항복 주장 사건을 지칭한다.)
說得張昭伏地慙汗, 謝罪而出。
설득장소복지참한 사죄이출
장소는 땅에 엎드려 부끄러워 땀을 흘리며 사죄하고 나갔다.
當卽上書乞休, 由權封爲婁侯, 食邑萬戶, 歸家不起, 又得享壽八年, 至八十一歲乃終。
당즉상서걸휴 유권봉위누후 식읍만호 귀가불기 우득향수팔년 지팔십일세내종
不起:병으로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죽음
응당 서신을 올려 휴직을 애걸해 손권은 장소를 누후에 봉하고 식읍 만호를 주나 집에 돌아가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또 향수 8년을 누려 81세에 사망했다.
權復還都建業, 留上大將軍陸遜, 輔太子登, 駐守武昌。
권부환도건업 류상대장군육손 보태자등 주수무창
손권은 다시 도읍을 건업으로 삼고 상대장군 육손을 남겨 태자 손등을 보필해 무창을 주둔하여 지키게 했다.
這消息傳入蜀都, 諸葛亮因權還江東, 更可免, 復欲北向討魏。
저소식전입촉도 제갈량인권환강동 경가면우 부욕북향토위
이 소식이 촉나라 도읍에 전해지니 제갈량은 손권이 강동에 도읍을 돌려 다시 근심을 면하고 다시 북쪽으로 위나라를 토벌하려고 했다.
部署了好幾月, 已是建興八年的夏季, 忽有警報傳入, 乃是魏將曹眞, 司馬懿兩路進兵, 來奪漢中。
부서료호기월 이시건흥팔년적하계 홀유경보전입 내시위장조진 사마의양로진병 래탈한중
부서를 몇 달 정비하고 이미 건흥 8년 여름으로 갑자기 놀라운 보고가 전달되길 위나라 장수인 조진과 사마의가 양로로 병사를 진격해 한중을 빼앗으러 온다는 것이었다.
正是:西方見三軍集, 北寇先聞兩道來。
정시 서수방견삼군집 북구선문양도래
바로 이와 같다. 서쪽 변경에 3군을 모집을 했는데 북쪽 위나라가 먼저 두 갈래길로 쳐들어온다.
欲知魏兵如何寇蜀, 且看下回再詳。
욕지위병여하구촉 차간하회재상
위나라 병사가 어찌 촉나라를 습격하는지 아래 94회에서 다시 자세히 보자.
甚矣哉, 知人之難也!
심의재 지인지난야
타인을 아는 어려움이 심각하구나!
以諸葛孔明之才識, 猶且失之馬謖, 況他人乎?
이제갈공명지재식 유차실지마속 황타인호
제갈공명의 재주와 식견으로도 오히려 마속에서 실수했는데 하물며 타인은 어떠하겠는가?
謖前進攻服南蠻之議, 爲孫吳兵法所未詳, 乃獨出己見, 卒如所言, 是謖固非不足行軍者;
속전진공복남만지의 위손오병법소미상 내독출기견 졸여소언 시속고비부족행군자
마속은 전진해 남만을 평정 복속한 논의가 있어 손자 오자병법에 아직 자세하지 않았는데 홀로 자기 견해를 내어 종내 말대로 해서 마속은 진실로 군사를 운행함에 족하다고 했다.
且在營參議, 語多扼要, 而於街亭一役, 偏不從孔明之節度, 王平之計議, 上山被困, 坐失要區, 論者幾目爲天命使然。
차재영참의 어다액요 이어가정일역 편부종공명지절도 왕평지계의 상산피곤 좌실요구 논자기목이천명사연
扼要 [eyao] ① 요충에 웅거하다 ② (글이나 말이) 요점을 찌르다
군영에서 논의에 말은 중요함을 찔렀지만 가정에서 전투는 제갈공명의 절도와 왕평의 계책 논의를 따르지 않아 산에 올라가 포위당해 앉아서 중요지구를 잃으니 논의하는 자가 거의 하늘명령으로 시켰다고 여긴다.
然劉先主嘗謂謖言過實, 不可大用;
연유선주상위속언과실 불가대용
유비 선주는 일찍이 마속이 말이 행실보다 더해 크게 쓸 수 없다고 말했다.
孔明誤用而事, 咎有攸歸, 固不能盡諸天也。
공명오용이분사 구유유귀 고불능진위제천야
事:실패하거나 잡쳐서 틀려 버린 일
(번거롭게 할, 핑계할 위; -총15획; wei)
제갈공명은 잘못 등용해 일을 망쳐버려 자기 탓을 해야하지 진실로 하늘에 핑계할 수 없다.
空城計一事, 史傳中列入小注, 疑爲未確。
공성계일사 사전중열입소주 의위미확
空城計:적을 빈 성으로 유인해 미궁에 빠뜨리는 계략
성을 비운 듯이 유인하는 계책은 역사에서 작은 주에만 들어가 있으니 아직 확실하지 않다.
但故老相傳已久, 不便略去, 果有此役, 諸葛其亦危矣哉。
단고노상전이구 불편략거 과유차역 제갈기역위의재
단지 오래된 재상이 전해짐이 이미 오래되어 곧 생략을 못하고 과연 이런 역할이 있고 제갈량은 또 위태롭다.
及再攻陳倉, 遇昭之善守, 累攻不下。
급재공진창 우학소지선수 루공불하
재차 진창을 공격하는데 학소가 수비를 잘해 자주 공격해도 함락을 못했다.
惟退兵之時, 得斬王雙。
유퇴병지시 득참왕쌍
유독 병사를 후퇴할 때 왕쌍을 참수했다.
魏將多才, 而蜀僅得一諸葛, 至鞠躬盡力而後已。
위장다재 이촉근득일제갈 지국궁진력이후이
위나라 장수는 재주 있는 자가 많지만 촉나라는 제갈량 한명만 겨우 있어서 온 힘을 다한 이후에 끝나게 되었다.
北伐, 北伐, 名稱雖正, 其如將佐之乏人何也?
북벌 북벌 명칭수정 기여장좌지폄인하야
북벌의 명분은 비록 바르지만 장수 보좌의 인재가 부족함은 어째서인가?
중국역조통속연의 후한통속연의, 채동번 저, 중국 삼진출판사, 페이지 530-5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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及見魏兵東西致敗, 乃放膽稱尊。
급견위병동서치패 내방담칭존
위나라가 동서로 패배당함을 보고 마음놓고 지존을 호칭했다.
吳臣勢獻諛, 謂有黃龍出現武昌, 因卽改黃武八年, 爲黃龍元年, 追尊父堅爲武烈皇帝, 兄策爲長沙桓王, 立子登爲太子, 進陸遜爲上大將軍, 諸葛恪爲太子左輔, 張休爲太子右弼。
오신진세헌유 위유황룡출현무창 인즉개황무팔년 위황룡원년 추존부견위무열황제 형책위장사환왕 입자등위태자 진육손위상대장군 제갈각위태자좌보 장휴위태자우필
黃武, 222년 ~ 229년 黃龍, 229년 ~ 232년
오나라 신하들은 기세를 몰아 아첨을 바쳐 황룡이 무창에서 출현하였으니 황무8년을 황룡원년으로 개원하자 하고 부친인 손견은 무열황제에 형인 손책을 장사환왕에 추존하며 자식인 손등을 태자로 삼고 육손은 상대장군으로 제갈각을 태자좌보로 장휴를 태자우필로 승진시켰다.
休爲張昭少子, 昭已年老, 入朝賀權, 褒贊功德。
휴위장소소자 소이년로 입조하권 포찬공덕
장휴는 장소의 막내 자식으로 장소가 이미 연로해 입조하여 손권에 경하하며 공덕을 칭찬했다.
褒贊:稱揚讚美
權笑說道:「假使如張公計, 早爲魏僕, 恐今已乞食了。」(指赤壁事。)
권소설도 가사여장공계 조위위복 공금이걸식료 지적벽사
손권이 웃으면서 말했다. “가령 장소공의 계책대로였다면 조기에 짐이 위나라 종이 되어 지금 이미 걸식하고 있을까 두렵습니다.” (적벽대전 전 항복 주장 사건을 지칭한다.)
說得張昭伏地慙汗, 謝罪而出。
설득장소복지참한 사죄이출
장소는 땅에 엎드려 부끄러워 땀을 흘리며 사죄하고 나갔다.
當卽上書乞休, 由權封爲婁侯, 食邑萬戶, 歸家不起, 又得享壽八年, 至八十一歲乃終。
당즉상서걸휴 유권봉위누후 식읍만호 귀가불기 우득향수팔년 지팔십일세내종
不起:병으로 누워 다시 일어나지 못하고 죽음
응당 서신을 올려 휴직을 애걸해 손권은 장소를 누후에 봉하고 식읍 만호를 주나 집에 돌아가 병으로 일어나지 못하고 또 향수 8년을 누려 81세에 사망했다.
權復還都建業, 留上大將軍陸遜, 輔太子登, 駐守武昌。
권부환도건업 류상대장군육손 보태자등 주수무창
손권은 다시 도읍을 건업으로 삼고 상대장군 육손을 남겨 태자 손등을 보필해 무창을 주둔하여 지키게 했다.
這消息傳入蜀都, 諸葛亮因權還江東, 更可免, 復欲北向討魏。
저소식전입촉도 제갈량인권환강동 경가면우 부욕북향토위
이 소식이 촉나라 도읍에 전해지니 제갈량은 손권이 강동에 도읍을 돌려 다시 근심을 면하고 다시 북쪽으로 위나라를 토벌하려고 했다.
部署了好幾月, 已是建興八年的夏季, 忽有警報傳入, 乃是魏將曹眞, 司馬懿兩路進兵, 來奪漢中。
부서료호기월 이시건흥팔년적하계 홀유경보전입 내시위장조진 사마의양로진병 래탈한중
부서를 몇 달 정비하고 이미 건흥 8년 여름으로 갑자기 놀라운 보고가 전달되길 위나라 장수인 조진과 사마의가 양로로 병사를 진격해 한중을 빼앗으러 온다는 것이었다.
正是:西方見三軍集, 北寇先聞兩道來。
정시 서수방견삼군집 북구선문양도래
바로 이와 같다. 서쪽 변경에 3군을 모집을 했는데 북쪽 위나라가 먼저 두 갈래길로 쳐들어온다.
欲知魏兵如何寇蜀, 且看下回再詳。
욕지위병여하구촉 차간하회재상
위나라 병사가 어찌 촉나라를 습격하는지 아래 94회에서 다시 자세히 보자.
甚矣哉, 知人之難也!
심의재 지인지난야
타인을 아는 어려움이 심각하구나!
以諸葛孔明之才識, 猶且失之馬謖, 況他人乎?
이제갈공명지재식 유차실지마속 황타인호
제갈공명의 재주와 식견으로도 오히려 마속에서 실수했는데 하물며 타인은 어떠하겠는가?
謖前進攻服南蠻之議, 爲孫吳兵法所未詳, 乃獨出己見, 卒如所言, 是謖固非不足行軍者;
속전진공복남만지의 위손오병법소미상 내독출기견 졸여소언 시속고비부족행군자
마속은 전진해 남만을 평정 복속한 논의가 있어 손자 오자병법에 아직 자세하지 않았는데 홀로 자기 견해를 내어 종내 말대로 해서 마속은 진실로 군사를 운행함에 족하다고 했다.
且在營參議, 語多扼要, 而於街亭一役, 偏不從孔明之節度, 王平之計議, 上山被困, 坐失要區, 論者幾目爲天命使然。
차재영참의 어다액요 이어가정일역 편부종공명지절도 왕평지계의 상산피곤 좌실요구 논자기목이천명사연
扼要 [eyao] ① 요충에 웅거하다 ② (글이나 말이) 요점을 찌르다
군영에서 논의에 말은 중요함을 찔렀지만 가정에서 전투는 제갈공명의 절도와 왕평의 계책 논의를 따르지 않아 산에 올라가 포위당해 앉아서 중요지구를 잃으니 논의하는 자가 거의 하늘명령으로 시켰다고 여긴다.
然劉先主嘗謂謖言過實, 不可大用;
연유선주상위속언과실 불가대용
유비 선주는 일찍이 마속이 말이 행실보다 더해 크게 쓸 수 없다고 말했다.
孔明誤用而事, 咎有攸歸, 固不能盡諸天也。
공명오용이분사 구유유귀 고불능진위제천야
事:실패하거나 잡쳐서 틀려 버린 일
(번거롭게 할, 핑계할 위; -총15획; wei)
제갈공명은 잘못 등용해 일을 망쳐버려 자기 탓을 해야하지 진실로 하늘에 핑계할 수 없다.
空城計一事, 史傳中列入小注, 疑爲未確。
공성계일사 사전중열입소주 의위미확
空城計:적을 빈 성으로 유인해 미궁에 빠뜨리는 계략
성을 비운 듯이 유인하는 계책은 역사에서 작은 주에만 들어가 있으니 아직 확실하지 않다.
但故老相傳已久, 不便略去, 果有此役, 諸葛其亦危矣哉。
단고노상전이구 불편략거 과유차역 제갈기역위의재
단지 오래된 재상이 전해짐이 이미 오래되어 곧 생략을 못하고 과연 이런 역할이 있고 제갈량은 또 위태롭다.
及再攻陳倉, 遇昭之善守, 累攻不下。
급재공진창 우학소지선수 루공불하
재차 진창을 공격하는데 학소가 수비를 잘해 자주 공격해도 함락을 못했다.
惟退兵之時, 得斬王雙。
유퇴병지시 득참왕쌍
유독 병사를 후퇴할 때 왕쌍을 참수했다.
魏將多才, 而蜀僅得一諸葛, 至鞠躬盡力而後已。
위장다재 이촉근득일제갈 지국궁진력이후이
위나라 장수는 재주 있는 자가 많지만 촉나라는 제갈량 한명만 겨우 있어서 온 힘을 다한 이후에 끝나게 되었다.
北伐, 北伐, 名稱雖正, 其如將佐之乏人何也?
북벌 북벌 명칭수정 기여장좌지폄인하야
북벌의 명분은 비록 바르지만 장수 보좌의 인재가 부족함은 어째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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