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음악사]한국록의 시작과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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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내용

애초부터 '지고 들어가는 싸움'이 었다. 당시의 프로듀 싱이나 레코딩 기술의 저열함으로 인해, 연주 이전에 사운드의 질에서부터 이미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외국의 모 밴드와 '똑같다 , '비슷하다' 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칭찬이었다. 이 말은 국내 뮤지션들이 파렴치한 표절 행위를 했다거나 모방을 넘어서 는 창작에 게을렀다는 이야기가 결코 아니다. 그들은 음악을 체화시키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기울였다. 하지만 록 발라드를 제외하곤 대중의 광범위한 호응을 얻은 음악적 스타일을 보여주지 못했다
메탈은 청중 내부에서 독특한 하
위 문화를 형성하게 만드는 힘
이 있다. 1980년대 수많은 국내외 메탈 밴드들이 소개되었을 때,
그들의 공연에 열광하며 음반을 구입했던 주요 수용층은 고등
학생이었다. 이들은 단순히 음악을 듣는 것에 그치지 않고 실
제로 밴드를 결성하여 음악 경력을 쌓았다. 지금은 영화 상영
극장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라이브 무대였던 파고다 극장은
자생적인 하이스쿨 메탈 밴드들의 메카였다. 그 외에도 여
러 군소 소극장들과 고교 축제가 이들의 주무대였다. 이 시
기에 고등학교를 다녔던 이들은 익히 아는 사실이지만, 거
의 모든 학교에 하나 이상의 밴드가 있었고, 그 밴드들은 하
나같이 메탈을 연주했다.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고등학생
들이 메탈의 정서를 쉽게 수용할 수 있었던 요인은 그들의
존재 조건에 있다. 일상적인 매맞기와 체벌, 입시 제도의
중압으로 인해 반항심, 공격성, 성적 욕망을 순치당할 수
밖에 없었던 남자 고등학생들의 불만이 메탈의 폭발적인
사운드와 오토바이 폭주족 풍의 의상, 성적이고 도발적
인 가사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지금도 잔존하는 하이스
쿨 밴드들의 원형은 1980년대 말에 정립 되었다. 프로를
꿈꾸면서 그 준비 단계로 밴드 활동을 한 경우도 있었지
만, 대부분은 참을 수 없이 답답한 학교 생활을 메탈 연
주를 통해 상상적으로 파괴해 버림으로써 쾌락을 느끼
려는 것이었다. 아마추어 밴드의 한계인 탓도 있지만,
이들에게 창작은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았다. 연습용만
이 아니라 공연용으로 이들은 외국 곡들을 커버했다. 연
주 기량 면에서 중시된 것도 음이 주는 느낌이 아니라 스피
드와 파워였다. 결국 이들 대다수 아마추어 메탈밴드들은 음
악으로 메탈을 연주했다기보다 연주를 하기 위해 메탈이라는 음악
을 택한 것이었다. 고등학교 메탈 하위 문화는 그런 면에서 일시적일 수
밖에 없었다. 하이스쿨 밴드의 멤버들은 대학에 진학하거나 재수 생활을 하면서 음
악을 그만두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재수생은 음악을 하기에는 너무 불안정한 위치였고,
당시 대학에는 메탈과 상극의 정서가 지배적이었기 때문이다. 프로를 지향하던 이들도
군대에 다녀오면서 테크노 댄스 뮤직의 유혹에 넘어가거나 '록 발라드' 라는 낯간지러운
수식어가 붙은 발라드 가요에 투신하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고고장이 디스코텍이란 이름
으로 바뀌면서 댄스 문화의 저변은 보다 젊은층으로 확대된다. 그에 따라 점차 테크노, 힙합,
하우스 등 다양한 댄스 장르가 소개되었다. 록 음악은 중고생이 마련하기 쉽지 않은 악기와
장비,연습 공간을 요구하지만, 댄스 음악은 카세트 한 대만 있으면 얼마든지 즐길 수 있다.
댄스 음악은 점차 중고생 하위 문화의 중심으로 자리한다. 음악에 맞추어 흔들어대던 격렬한
춤은 교육 제도의 억압과 통제에 찌든 중고생들의 스트레스를 풀어주는 데 메탈보다도 더욱
효과적이었을지 모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중고생
문화에서 메탈은 댄스 음악에 의해 주변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었다.
본래헤비메탈은영미권 하층노동계급의하위문화로
본래 헤비메탈은 영미권 하층 노동 계급의 하위 문화로
시작되었다. 귀를멍멍하게 만드는 사운드, 끊임없이 질러대는
괴성에 가까운 보컬, 폭주족이나 악마의 분장을 한 채 공포 영화를
연상시키는 퍼포먼스를 하거나 노골적으로 성적 유혹을 가사와 몸짓으
표현하는 것. 그 속에는 천대받는 하층계급의 울분과 자기 표현있었지만
로 표현하는 것. 그 속에는 천대받는 하층계급의 울분과 자기 표현도 있었지만
가식과 쇼맨십도 포함되어 있었다. 아울러 1980년대라는상황 속에서 극도로증폭
된제도적 폭력과 억압이 알게모르게 청소년들의 심리를 폭발 직전의 상태로 만들
었다는 점도이 '저 주받은' 장르가 호소력 을 갖는 이유이다. 당
시 청소년 문화의 폭력 지향성은 만화 나 영화 등에 서도
확인할수 있는데 이는 '출구 없는 억 압압압압' 에 대한 반
작용이 었다. 이 러한 반작용으로 출발한 한국의 메탈
하위문화는 전례 를 찾아 보기 힘들 정도로 아래 로부터
의 자생적인 폭발적 증식 을 보여주 었지 만, 부정적인 측면도
결코 적지 않았다. 한편으론 1990년대 서태지의 '교실 이데아' 사건에서 나타났
듯이, 메탈의 위악성을 최대한 부각시키면서 기성 사회의 '건전성' 을 옹호하는
도덕론자들의 공격을 받았으며, 다른 한편으론 영미 헤비메탈의 무분별한 베
끼기에 지나지 않는다는 차가운 시선을 뛰어넘지 못했다. 그 결과 메탈은소
수 열광적 추종자들의 컬트 문화가 되었다.하지만 메탈 씬의 의의는 그 자
체의 흥망과는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우선 메탈 음악의 보급은 '팝송' 이
라는 범주로 주류팝과 한데 묶여있던록음악의 차별성을 드러내주었다
. 더욱 중요한 것은 메탈 뮤지션들, 특히 하이스쿨 밴드나 아마추어
밴드의 경우 '원초적인 청년 반항' 이라는 록
음악이 지닌 에너지의 [ [ [ 한 원천을 명확히 드
러냈다는 점이다. 이 는 1980년대 언더
그라운드의 또다른 축인 소극장 포크 음악이 '예술적' 실
험의 일환으로 록 음악에 접근한 것과 좋은 대조를 이
룬다. 더욱이 1980년대 메탈씬 출신의 베테랑들과 그
후예들은 1990년대 록의 여러 경향들 속에 당당하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씬은 1990년대
록 씬의 주요한 '물리적'기반이었다. 현재 록에 관
심을 기울이는 많은 사람들이 직간접적으로 이 씬
의 경험을 갖고 있다는 것 또한 그 영향력을 간과
할 수 없게 만든다.
개관 1960 1970 1980-1 1980-2 1990-1 1990-2 19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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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2.09.22
  • 저작시기2002.09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20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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