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민족시인 - 윤동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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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영원한 민족시인 - 윤동주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서 론

2. 민족시인의 사명 - 십자가를 짊어진 예수처럼

3. 미래 지향적 역사의식 - 신념과 기다림

4. 저항과 희생의 정신적 지향

5. 영원히 살아있는 민족시인

<참고자료>

<윤동주 연보>

본문내용

를 간행. 이 무렵 썼던 동요, 동시 등의 작품을 발표.
1931년 (15세) - 3월 25일, 명동 소학교를 졸업. 송몽규, 김정우와 명동에서 30리 남쪽에 있는 중국인 소학교 6학년에 편입.
1932년 (16세) - 4월, 캐나다 선교부가 경영하는 미션계 은진중학교에 입학.
1934년 (18세) - 12월 24일, '삶과 죽음', '초 한 대', '내일은 없다' 세 편의 시작품을 쓰다. 이날 이후 모든 작품에 시를 쓴 날자 명기.
1935년 (19세) - 은진중학교에서 평양 숭실중학교 3학년에 편입. 숭실중학 시절 '남쪽 하늘', '창공', '거리에서', '조개껍질' 등의 시를 씀.
1936년 (20세) - 숭실중학교 폐교, 용정 광명학원 중학부 4학년에 편입. 간도 연길지방에서 발행되던 카톨릭 소년지에 동시 '병아리', '빗자루' 발표.
1935년 (22세) - 2월 17일, 광명중학교 5학년 졸업. 연희전문 문과에 송몽규와 함께 입학.
1941년 (25세) - 연희전문 문과에서 발행한 문예지에 '자화상', '새로운 길'을 발표. 12월 27일, 연희전문 문과를 졸업. 19편으로 된 자선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졸업 기념으로 출간하려 했으나 미간.
1942년 (26세) - 도쿄 릿쿄 대학 영문과에 입학. 가을(10월 1일)에는 교토 도지사 대학 영문과에 편입.
1943년 (27세) - 7월, 첫학기를 마치고 귀향길에 오르기 직전 교토대학에 재학중인 송몽규와 사상범으로 체포되어 교토 키모가와 경찰서에 구금됨(7월 14일).
1944년 (28세) - 2월 22일 기소되고, 3월 31일, 일제 당국의 재판 결과 '독립운동'의 죄목으로 2년형(3년 구형) 언도받아 큐슈의 후쿠오카 형무소에 수감.
1945년 (29세) - "2월 16일, 윤동주 사망. 시체 가져가라"라는 전보가 윤동주의 옥사 사실을 알려옴. 부친 윤영석과 당숙 윤일춘이 일본으로 건너감. 송몽규도 윤동주가 죽은 뒤 23일 만인 3월 10일 옥사. 3월 초, 용정 동산에 안장.
1948년 1월 유고 31편을 모아 정지용의 서문으로 시집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를 간행.
1955년 2월 10주기 기념으로 유고를 보완, 88편의 시와 5편의 산문을 묶어 다시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로 간행.
1968년 11월 2일 연세대학교 학생회 및 문단, 친지 등이 모금한 돈으로 연희전문 시절에 지내던 기숙사 앞에 시비 건립.

키워드

윤동주,   평론,   시인 연구,   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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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05.08.24
  • 저작시기2005.08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310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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