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건국과 조선 초기의 한문학에 대한 이해와 고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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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조선 건국과 조선 초기의 한문학에 대한 이해와 고찰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 목차 -

1. 서론

2. 조선 건국 과정과 초기 한문학의 배경론

3. 정도전과 권근의 작품 세계
1) 정도전
ㄱ. 작품 원문
ㄴ. 작품 해설
2) 권근
ㄱ. 작품 원문
ㄴ. 작품 해설
4. 조선 건국 초기 한문학의 문학사적 특징

5. 조선 전기 한문학의 갈래
1) 관각문학 - 서거정
ㄱ. 작품 원문
ㄴ. 작품 해설
2) 사림문학 - 김종직
ㄱ. 작품 원문
ㄴ. 작품 해설

6. 결론

※ 참고문헌

본문내용

전하였다. 관각문학의 대표 격인 서거정의 <독좌(獨坐)>라는 작품을 가지고 관각문학의 특징을 논하고자 한다. 그리고 지방 호족인 사림파들의 도학(道學)을 중심으로 자기성찰과 도덕적 경향이 짖은 사림문학이 발생하였다. 사림문학의 대가 김종식의 <보천탄에서(寶泉灘卽事)>라는 작품으로 사림문학이 가지는 특징을 설명하겠다.
이를 통해 조선 초기 한문학을 전반적으로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2. 조선 건국 과정과 초기 한문학의 배경론
고려 말 당시 권문세족의 횡포가 극도에 달했고 권력을 마음대로 휘둘러 사회와 정치기반의 모순이 심화 되었다. 이에 중소 지주출신으로 조정에 진출한 신진사대부들은 신흥무인인 이성계를 중심으로 새 시대를 지향하게 되었다. 이성계는 위화도에서 원정을 떠난 병사를 이끌고 회군하여 혁명을 단행하고 고려를 폐하고 1392년 조선을 건국한다. 조선의 건국으로 인해 신진사대부는 신흥무인세력을 등에 업고 고려 후기에 신진사대부가 모색하고 주장하던 문학의 방향이 조선 전기에 와서 구현되고 정착되었다.
비록 고려 말 당시 권력이 타락하고 부패했다고 하지만 아직도 고려를 지키고 회복시키려는 세력이 존재했다. 왕조 교체기의 문학은 고려를 위해서 충절을 지키려는 쪽과 조선왕조의 건국사업에 가담하는 쪽으로 노선이 분열되었는데, 둘 다 조선시대 문학의 기본 성격을 결정하는 데 긴요한 구실을 했다. 결국 조선을 건국한 신진사대부와 신흥무인들은 건국의 정당성과 필연성을 역설하고 민심이 동요하지 않도록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제도와 사상의 개편이 필요했다. 조동일,『한국문학통사』2, 지식산업사, 1999, 254-255쪽.
따라서 신진사대부를 비롯한 집권층을 중심으로 건국의 정당성을 역설한 작품이나 태조의 업적을 찬양하는 작품이 등장하였을 것이다.
3. 정도전과 권근의 작품세계
1) 정도전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학자로 호는 삼봉(三峰)이다. 이색의 문하에서 수학하였으며 친원배명(親元排明)정책을 반대하다가 회진현(會津縣)에 유배되었다. 1392년 한때 풀렸으나 정몽주의 탄핵으로 투옥되었고 정몽주가 살해된 뒤 풀려나와 조준 남은(南誾) 등과 함께 이성계를 추대, 조선 건국의 주역이 되었다. 제l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李芳遠)에게 참수되었다. 임형택/고미숙,『한국고전시가전』, 창비, 2003, 277쪽.
조선건국의 명분을 민심의 귀의에서 찾았던 정도전은 時가 지닌 풍자성을 더 중요시 하였다. 고려 말에는 왜구의 침략과 先政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이 극에 달하여 백성이 생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민심은 일정치 않다고 인식하고 있던 정도전은 올바른 정치만이 민심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여겨 현실을 비판하고 정치적 폐단을 시정할 것을 요구하는 시를 지었다. 이는 정도전이 시의 주요한 기능을 정치적 효용에 있다고 파악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문덕곡이라는 작품을 통해 그 특징을 설명하겠다.
. 작품 원문
문덕곡(文德曲) 김영수,『조선시가연구』, 새문사, 2004.
法弓이 有嚴深九重 하시니
日日萬機粉其叢 하샷다
君王이 要得民情通하야
大開路達四聰하시다
開言路君不見가
아으 我后之德이 與舜興하샷다. 개언로(開言路)장
. 내용 분석
<문덕곡> 은 1393년(태조 2) 정도전(鄭道傳)이 지은 송도가(頌禱歌)로 칠언한시에 토가 달린 4장 6행의 현토체이다. 개언로(開言路)·보공신(保功臣)·정경계(正經界)·정례악(定禮樂)의 4장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태조의 문덕을 찬양하는 내용을 주제로 담고 있다.
≪태조실록≫ 권4 태조 2년 7월조와 ≪삼봉집 三峯集≫에 한시가 전하며, ≪악학궤범≫에는 현토(懸吐)된 가사가 전하며 그 뒤 악장으로 불렸다.
개언로 장에서는 태조가 민정을 파악하고자 언로를 크게 열고 널리 여론을 청취함으로써 그 덕이 순(舜)임금과 같다고 하였다. 보공신장에서는 꾀와 힘을 다하여 조선창업에 공을 세운 신하들을 잘 보살피는 무궁한 덕을 읊었다.
정경계장에서는 고려시대에 무너진 토지의 경계를 바로잡고 널리 골라 창고가 꽉 차게 되어 백성들이 편안히 지내게 된 치덕을 노래했다. 정예악장에서는 정치의 요체가 되는 예악을 새로 정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질서 바르고 화평하게 한 덕을 읊고 있다.
각 장의 6행 중 제1~4행은 전대절(前大節), 제5행은 후소절(後小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제6행 앞에는 ‘아으’라는 감탄구가 오는 것이 특징이다.
〈문덕곡〉은 처음에는 한시였다가 후에 무악화(舞樂化)되어 춤과 함께 노래되면서 무악에 맞추기 위하여 현토를 수반하게 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이 춤은 춤이라기보다 노래를 부르기 위한 정재(呈才)라 할 수 있다.
2) 권근
권근은 고려 말 조선 초의 문신 학자로 호는 양촌(陽村)이다. 고려가 망하자 조선건국에 참여 하였으며 주요 요직을 거치면서 조선초기의 문병을 잡았다. 그는 성리학자이면서도 문학을 존중하였고, 시부사장(詩賦詞章)의 학을 실용면에서 중시하여 이를 장려하였으며, 경학(經學)과 문학(文學)의 양면을 조화시켰다. 전수연,『권근의 시문학 연구』, 태학사, 1998.
명문대가에서 자라나, 立身과 立功을 중시하고, 현실에서 부귀영화를 누리는 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 않았던 권근은 임금의 덕을 찬양하는 송시적 기능을 더욱더 중요시 하였다. 권근은 조선이 고려 말의 폐단을 극복하고 민심의 지지를 얻어서 세워진 나라이기 때문에 당시는 이미 어느 정도 안정을 찾은 시기라고 파악하였다. 따라서 통치자의 잘못을 들춰내기보다는 그들의 덕을 찬양하는 시를 지어 혁명으로 무너진 등급간의 분별을 재확립하고자 하였고 외교문서와 응제시, 사신간의 창화시 등을 통해서 조선이 나라가 작아 중국과 사대관계를 맺고 있지만 문화면에서는 중국에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과시하는 문화적 자존감을 드러내었다.
. 작품원문
상대별곡(霜臺別曲) 임형택/고미숙,『한국고전시가선』, 창비, 2003.
제1장
華山南 漢水北 千年勝地
廣通橋 雲鐘街 건나드러
落落長松 亭亭古栢 秋霜烏府
위 萬古淸風ㅅ景 긔 엇더니잇고
(葉) 英雄豪傑 一時人才 英雄豪傑 一時人才
위 날조차 몃부니잇고
제2장
鷄旣鳴 天欲曉 紫陌長堤
大司憲 老執義 臺長御史
駕鶴 鸞 前呵後擁  除左右
위 上臺ㅅ景 긔 엇더니잇고
(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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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5.12.08
  • 저작시기20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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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료번호#3255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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