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신을 쫓는 처용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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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역신을 쫓는 처용가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Ⅰ. 서론

Ⅱ. 본론
1. 작품연구
1) 원문-악학궤범
2) 현대역
3) 어구풀이
4) 구조와 내용
2. 처용가의 변화양상
1)봉황음
2)처용희
3) 처용무
3. 현대의 처용가
1) 희곡 - ‘처용의 웃음소리’
2) 시- 처용단장
3) 가요

Ⅲ. 결론

본문내용

주리여 處容아바 七寶를 주리여 處容아바~
처용: 千金 七寶도 말오 熱病神를 날 자바 주쇼셔!
음악 높아지고 처용은 춤추며 퇴장.
역신: 山이여 밑히여 千里外예 處容아비링 어여려거져(두려움에 떨며 객석을 돌며 뛰어 나간다)
진행자: 아으 熱病大神의 發願이샷다!
2. 처용가의 변화양상
1)봉황음
처용의 가무는 벽사의 의식에 통합되어 처용무(處容舞)로 발전하고, 이 무곡에 맞추어 불리어질 가사가 고려조에 지어져 불리던 것이 조선도 세종대에 윤회가 그 가사를 개찬하여 봉황음<鳳凰吟>이라 하고 따라서 처용무곡도 <봉황음>이라 하여 "벽사진경"의 의미가 "송축"의 의미로 바뀌게 되었다. <봉황음>은 그 곡이나 가사가 <처용가>의 절반밖에 되지 않는다. 이는 <처용가>가 그 완결된 가사를 담기 위하여 그 곡을 반복하는 방법을 택했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기도 한다. 이러한 방법은 매우 특이한 것이다. 곡의 반복에 따라 가사가 반복되는 <정석가>나 가사가 진전되는 <청산별곡>과는 달리, 곡의 몇 번의 반복으로 가사를 완결 짓게 되는 <서경별곡>의 방법과 같다.
2)처용희
조선시대의 처용가는 궁중에서 섣달 그믐에 구나 의식을 행한 뒤,내당에서지당구(池塘具)를 설치하고 노는 놀이 중에 불렀다. 또 구나 의식무이면서 연극으로서의 성격도 지니고 있는 처용희의 형태가 발전하였다. 처용희는 가면을 쓰고 잡귀를 물리치는 의식의 보편적인 방식의 하나이며, 부락 굿에서도 그러한 예를 흔히 찾을 수 있다. 처용은 신(神)인 동시에 인간이며, 인간적인 감정을 지니고 역신(疫神)과 대결한다는 점에서는 처용희를 연극이라고 말한다.
굿에서 연극으로 이행하는 과정을 엿볼 수 있다. 이와 같은 것이 처용희의 근본적 성격이겠으나, 여러 가지 다른 요소들이 복합되어 실제 공연하던 처용희를 이루었다.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의 처용희는 용신(龍神), 산신, 불교 의식의 복합이고, <악학궤범>에 전하는 처용희는 처용이 오방(五方) 처용으로 되어 연화무학무(蓮花舞鶴舞)와 복합되어 있으며, 여기(女妓)가 처용가에 있어서 봉황음, 삼진작(鳳凰吟三眞勺) 등의 다른 노래를 하도록 되어 있다.
고려와 조선의 처용희는 주로 궁중에서 거행되는 세말(歲末)의 나례(儺禮)에서 공연되었으나, 민간의 처용희도 있었다. 의식무(儀式舞)로서의 기능이 유지되기는 했으나, 놀이로서의 성격이 확대되었다. 영조 이후에는 중단되었다가 1920년대에 <악학궤범>에 의거해서 다시 시작해 오늘날에 전한다.
3) 처용무
처용무는 궁중무용의 하나로 나라 안에 중요한 행사나 경사가 있을 때 궁중 안에서 추었던 춤이다. 궁중무용 가운데 유일하게 사람 형상의 가면을 쓰고 춘다. 벽사( 邪), 곧 요사스러운 귀신을 물리친다는 뜻을 갖고 있기 때문에 중요하게 여겼던 춤이다. 혼자서 추는 1인 처용무가 고려말까지 이어지다가 조선시대로 넘어와 2인이 추는 쌍처용무로 변형됐다. 그 후 세종 때(재위 1418 1450) 5인이 추는 오방처용무(五方處容舞)로 확대되었고, 성종 때(재위 1469 1494) 더욱 발전하여 궁중의식에 사용하게 되었다. 그 후 조선후기까지 노래의 가사나 음악을 바꾸어가면서 전승되었다. 1910년 국권을 빼앗기면서 중단되었던 것을 1920년대 말 이왕직 아악부가 창덕궁에서 공연하기 위해 재현한 것을 계기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화려하고 당당한 춤사위가 인상적이며 가면과 의상, 음악, 춤이 어우러진 수준 높은 무용예술이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9호이다.
3. 현대의 처용가
1) 희곡 - '처용의 웃음소리'
이 시나리오는 현대인들의 '의처증'을 다룬 것으로서 신라시대 <처용설화>를 상징적 주제로 한 작품이다.
'처용의 웃음소리'는 제목자체부터 작가의 주제의식을 암시하고 있다. 처용설화를 모티브로 한 이 소설은 의처증과 한국 사람만이 느낄 수 있는 한국적인 정신병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 맥락에서 모티브가 된 처용설화는 소설의 주제와 중심 소재를 효과적으로 부각시키는데 큰 공헌을 한다. 특히 고대 그리스나 로마 신화가 아닌 우리의 처용설화를 끌어들인 것은 우리에게 더 깊고 넓은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국 사람 중 특히 한국 남자의 입지는 예나 지금이나 무척 단단하고 견고하다. 처용 아내의 간통을 묻기 전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다. 처용설화에서 볼 수 있듯이 처용은 한창 젊고 아름다운 아내를 두고 달구경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늦은 밤 들어와서 아내의 간통현장을 목격한 그는 태연히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춘다.
2) 시- 처용단장
처용단장
김춘수
3월에도 눈이 오고 있었다
눈은
라일락의 새순을 적시고
피어나는 산다화를 적시고 있었다.
미처 벗지 못한 겨울 털옷 속의
일찍 눈을 뜨는 남쪽 바다,
그 날 밤 잠들기 전에
물개의 수컷이 우는 소리를 나는 들었다.
3월에 오는 눈은 송이가 크고,
깊은 수렁에서처럼
피어나는 산다화의
보얀 목덜미를 적시고 있었다.
'처용단장'은 '처용이 노래한 짤막한 시'라는 뜻이다. 고대 설화 속 인물인 처용을 제목으로 빌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처용에 대한 구체적 언급이 없는 대신, 암울하면서도 몽환(夢幻)에 가득 찬 시인의 어린 시절이 깊숙이 자리 잡고 있다.
3) 가요
신처용가-GMASTER, 송골매-처용가(처용의 슬픔), 어울림-처용가, 장사익-처용가
Ⅲ. 결론
단순히 문헌상이 아닌 보고 듣고 참여할 수 있는 처용가를 공부해 보고 싶었다. 신라 때부터 오늘날의 이르기 까지 처용가는 많은 변화를 겪었지만 오늘날까지 이어오고 또한 널리 불리워진다는 것에 옛 조상들과 잠깐이나마 동시대인으로서 공유할 수 있는 무언가를 느낄 수 있었다.
<참고자료, 참고 사이트>
윤영옥,『한국의 고시가』, 문창사, 2001.
김수경, 「고려 처용가의 미학적 전승」, 보고사, 2004
금기창, 「처용가에 대하여」, 어문학회(통권 제54호), 1993
한국학중앙연구원 http://www.aks.ac.kr/
문화관광부 문화포털 http://www.culture.go.kr
네이버 http://www.naver.com
국립국악원
http://www.ncktpa.go.kr
국가지식포털 http://www.knowledge.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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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등록일2006.06.29
  • 저작시기200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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