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서론
Ⅱ-ⅰ. 프로문학의 전개과정
1. 카프의 형성
1) 시대적 배경
2) 형성 과정
2. 제1차 방향 전환
1) 제1차 방향 전환의 계기
2) 내용 형식 논쟁
3) 제1차 방향 전환의 결과
3. 제2차 방향 전환
1) 제2차 방향 전환의 계기
2) 제2차 방향 전환의 내용
4. 카프의 해체
Ⅱ-ⅱ. 프로문학의 의의와 한계
1. 프로문학의 의의
2. 프로문학의 한계
Ⅲ. 결론
Ⅱ-ⅰ. 프로문학의 전개과정
1. 카프의 형성
1) 시대적 배경
2) 형성 과정
2. 제1차 방향 전환
1) 제1차 방향 전환의 계기
2) 내용 형식 논쟁
3) 제1차 방향 전환의 결과
3. 제2차 방향 전환
1) 제2차 방향 전환의 계기
2) 제2차 방향 전환의 내용
4. 카프의 해체
Ⅱ-ⅱ. 프로문학의 의의와 한계
1. 프로문학의 의의
2. 프로문학의 한계
Ⅲ. 결론
본문내용
1. 카프 형성기
1) 시대적 배경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강점이후 한국사회는 수많은 이권침탈을 당할 뿐만 아니라 1911년 발표한 조선학교령이나 1925년 발동한 치안유지법 등에 의해 교육 기회의 제한을 받음은 물론, 언론과 출판이 탄압 규제되기에 이르러 이전의 개화계몽시대에 추구했던 문명개화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채 핍박과 굴종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이때부터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 자체가 식민지 지배에 따라 왜곡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의 모든 산업이 식민지 지배에 종속된다. 특히 식민지 교육정책에 의한 일본어 교육의 강화로 인하여 한국인의 언어와 생활 속에 깊숙이 일본어가 침투한다. 그 결과로 일본 식민지 시대에 한국사회는 모방과 굴종, 창조와 저항이라는 양가적인 속성을 지니는 독특한 식민지 문화가 형성된다. 권영민, 같은 책, 1116쪽.
이와 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여 한국민족의 저항의식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은 1919년의 31운동이다. 31운동은 자주독립의 쟁취라는 민족적 숙원을 이루는 데까지 진전되지는 못했지만, 침략 세력의 정체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민족적 자기 인식을 확립할 수 있는 정신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특히 31운동을 통해 식민지 상황 속에서 민족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게 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31운동 이후 창간된 민간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한 각종의 계몽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계몽운동은 여러 가지 형태의 민족사회운동 단체를 통해 폭넓은 민족문화운동으로 확대되면서 한국 민족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로 한국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항하는 다양한 반식민주의적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 권영민, 같은 책, 1119쪽.
조선 물산장려 운동, 농촌계몽운동, 형평 운동 등이 그것인데 이런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전반의 운동들을 통해 사회 여러 계층의 단합이 가능해졌으며, 이에 사회주의 세력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고 나아가 문화적 측면에서의 문학과 사회운동과의 접맥이 시도되기 시작하였다. 김경훈,「카프와 左聯에 대한 비교 연구」,『한국어문교육』8집, 87쪽
2) 프로문학의 형성 과정
기미년의 3·1운동 이후 일본 유학파들에 의해 사회주의 사상이 조선에 처음 전파된다.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은 사회운동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노동계급과 농민계급이 급성장하게 되면서 문학 영역에도 변화를 가져와 마르크스주의 문예관이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김기진, 박영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시대적인 유행 속에서 많은 작가들이 프로문학 단체에 가입하거나 프로문학 운동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이 곧바로 조선내의 공산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문학인에게 있어서 사회주의는 조선의 국권을 회복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것은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움직임의 시작은 염군사(焰群社)부터였다.
1922년 10월, “본사는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이라는 강령을 내걸고 이적효, 이호, 김홍파, 김두수, 최승일, 심대섭, 김영팔, 송영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최초의 프로문학 단체인 염군사는 결성 초기에는 순수문학 단체로 보기 어려운 사회주의 단체의 색깔이 농후한 단체였다. 이 당시 핵심 멤버인 이호는 토요회 발기인이었고, 홍파, 송영, 적효는 노동사 발기인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임화나 송영 등이 ‘문학잡지사 동인들이란 실에 있어서는 집필할 줄 모르는 동인이 더 많이 끼어있는 중간치기 단체’라 혹평했듯이 염군사의 초창기 구성원은 ‘사회운동을 문학으로 하려는 정치청년’들이 주축이었다면, 《염군》2호 발간금지 이후 이호와 송영 등이 염군사를 예술단체로 개조해 표면상 예술운동을 표방하는 단체로 변모한 후에는 ‘문학을 통해 사회운동을 하려는 문학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예술 자체에 더욱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제 1기의 염군사는 ‘비교적 높은 사회적 관심과 좀 옅은 문화적 관심’을 가진 획일화된 단체였으나 예술단체로 개조된 염군사는 오히려 문화적 관심이 훨씬 짙은 예술단체였던 것이다. 이런 염군사의 조직적인 면은 후일 카프의 조직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파스큐라(PASKYURA)는 1923년 말 경, 박영희, 안석영, 김동원, 이익상, 김기진, 김복진, 정학연 등의 이름의 머리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파스큐라의 결성에는 김기진의 영향이 가장 막대했다. 그는 일본에서 사회주의 문학론에 자극을 받아 서간문, 시, 수필, 소설, 평론 등의 장르를 빌어 프로의식을 고취하고 프로문학을 제출하였다. 파스큐라는 ‘인생을 위한 인생’, ‘현실과 싸우는 의지의 예술’이라는 취지를 내세운 사회주의적인 영향을 깊이 받은 문학 단체였다.
사회적 명성이나 문예적 역량이 빈약하며 유학을 통한 문학적인 수업에도 뒤늦었던 염군사와 비교해 볼 때, 파스큐라는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중견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있었고, 사회적 위치나 문학적 역량도 우위에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단체가 통합하여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를 결성하였던 것은 다음과 같은 시대적 요구가 따랐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그룹(염군사와 파스큐라)를 한 데 놓고 보면, 전자(염군사)는 관념이 앞서고 행동이 정 치적이기는 했으나 문학적으로 뒤떨어진 감이 있었으며, 후자(파스큐라)는 한 개의 작품을 가지고 새 로운 경향에 합류하느라고 노력들은 했으나 메데(노동절) 행사에 붓 대신에 붉은 깃발을 들고 나서겠 다는 기백들은 약하였었다.
그러나 그때 객관적 정세는 그들로 하여금 분산적으로 헤어져 있어서 약체가 되어 있는 부족을 용 납지 않았다. 그보다 한 줄기 역사의 거류는 동일 목적을 위해ㅓ 나아가는 그들로 하여금 통일된 큰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필연을 강요하였다. 이리하여 기어코 두 줄의 예술가들은 손을 맞잡고 한 개의 주체를 창건하게 되었으니...... 송영, 「조선푸로예술운동소사」,『예술운동』, 1945년.
1) 시대적 배경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일제강점이후 한국사회는 수많은 이권침탈을 당할 뿐만 아니라 1911년 발표한 조선학교령이나 1925년 발동한 치안유지법 등에 의해 교육 기회의 제한을 받음은 물론, 언론과 출판이 탄압 규제되기에 이르러 이전의 개화계몽시대에 추구했던 문명개화의 이상을 실현하지 못한 채 핍박과 굴종의 시대에 접어들게 된다. 이때부터 한국사회의 근대화 과정 자체가 식민지 지배에 따라 왜곡되기 시작하였으며, 한국의 모든 산업이 식민지 지배에 종속된다. 특히 식민지 교육정책에 의한 일본어 교육의 강화로 인하여 한국인의 언어와 생활 속에 깊숙이 일본어가 침투한다. 그 결과로 일본 식민지 시대에 한국사회는 모방과 굴종, 창조와 저항이라는 양가적인 속성을 지니는 독특한 식민지 문화가 형성된다. 권영민, 같은 책, 1116쪽.
이와 같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항하여 한국민족의 저항의식이 행동으로 표출된 것은 1919년의 31운동이다. 31운동은 자주독립의 쟁취라는 민족적 숙원을 이루는 데까지 진전되지는 못했지만, 침략 세력의 정체를 분명하게 인식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 주었으며, 민족적 자기 인식을 확립할 수 있는 정신 기반을 제공하게 된다. 특히 31운동을 통해 식민지 상황 속에서 민족운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새롭게 모색할 수 있게 했다. 한국의 지식인들은 31운동 이후 창간된 민간 신문과 잡지를 중심으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을 비판하고, 민족의식을 각성시키기 위한 각종의 계몽운동을 전개한다. 이러한 계몽운동은 여러 가지 형태의 민족사회운동 단체를 통해 폭넓은 민족문화운동으로 확대되면서 한국 민족문화에 대한 새로운 인식을 가능하게 한다. 그 결과로 한국사회의 여러 방면에서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책에 대항하는 다양한 반식민주의적 담론을 형성하게 된다. 권영민, 같은 책, 1119쪽.
조선 물산장려 운동, 농촌계몽운동, 형평 운동 등이 그것인데 이런 정치 경제 군사 사회 전반의 운동들을 통해 사회 여러 계층의 단합이 가능해졌으며, 이에 사회주의 세력이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토양이 마련되었고 나아가 문화적 측면에서의 문학과 사회운동과의 접맥이 시도되기 시작하였다. 김경훈,「카프와 左聯에 대한 비교 연구」,『한국어문교육』8집, 87쪽
2) 프로문학의 형성 과정
기미년의 3·1운동 이후 일본 유학파들에 의해 사회주의 사상이 조선에 처음 전파된다.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은 사회운동의 급격한 발전을 가져왔고 이에 따라 노동계급과 농민계급이 급성장하게 되면서 문학 영역에도 변화를 가져와 마르크스주의 문예관이 진보적인 지식인들에 의해 전파되기 시작하였다(김기진, 박영희 등이 대표적이다). 이런 시대적인 유행 속에서 많은 작가들이 프로문학 단체에 가입하거나 프로문학 운동에 동조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런 사회주의 사상의 유입이 곧바로 조선내의 공산화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었다. 특히 문학인에게 있어서 사회주의는 조선의 국권을 회복시킬 수 있는 하나의 도구에 지나지 않았으며, 그것은 민족을 위한 것이었다. 이런 움직임의 시작은 염군사(焰群社)부터였다.
1922년 10월, “본사는 연구 및 운동을 목적으로 함”이라는 강령을 내걸고 이적효, 이호, 김홍파, 김두수, 최승일, 심대섭, 김영팔, 송영 등이 중심이 되어 조직한 최초의 프로문학 단체인 염군사는 결성 초기에는 순수문학 단체로 보기 어려운 사회주의 단체의 색깔이 농후한 단체였다. 이 당시 핵심 멤버인 이호는 토요회 발기인이었고, 홍파, 송영, 적효는 노동사 발기인이 되어 활동하고 있었던 시기였다.
임화나 송영 등이 ‘문학잡지사 동인들이란 실에 있어서는 집필할 줄 모르는 동인이 더 많이 끼어있는 중간치기 단체’라 혹평했듯이 염군사의 초창기 구성원은 ‘사회운동을 문학으로 하려는 정치청년’들이 주축이었다면, 《염군》2호 발간금지 이후 이호와 송영 등이 염군사를 예술단체로 개조해 표면상 예술운동을 표방하는 단체로 변모한 후에는 ‘문학을 통해 사회운동을 하려는 문학청년’들이 중심이 되어 예술 자체에 더욱 관심을 가졌음을 알 수 있다.
즉 제 1기의 염군사는 ‘비교적 높은 사회적 관심과 좀 옅은 문화적 관심’을 가진 획일화된 단체였으나 예술단체로 개조된 염군사는 오히려 문화적 관심이 훨씬 짙은 예술단체였던 것이다. 이런 염군사의 조직적인 면은 후일 카프의 조직 구성에도 영향을 미쳤다.
파스큐라(PASKYURA)는 1923년 말 경, 박영희, 안석영, 김동원, 이익상, 김기진, 김복진, 정학연 등의 이름의 머리자를 따서 지은 이름으로 파스큐라의 결성에는 김기진의 영향이 가장 막대했다. 그는 일본에서 사회주의 문학론에 자극을 받아 서간문, 시, 수필, 소설, 평론 등의 장르를 빌어 프로의식을 고취하고 프로문학을 제출하였다. 파스큐라는 ‘인생을 위한 인생’, ‘현실과 싸우는 의지의 예술’이라는 취지를 내세운 사회주의적인 영향을 깊이 받은 문학 단체였다.
사회적 명성이나 문예적 역량이 빈약하며 유학을 통한 문학적인 수업에도 뒤늦었던 염군사와 비교해 볼 때, 파스큐라는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중견 문인들이 주축이 되어 있었고, 사회적 위치나 문학적 역량도 우위에 있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두 단체가 통합하여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동맹(KAPF)’를 결성하였던 것은 다음과 같은 시대적 요구가 따랐기 때문이다.
이 두 가지 그룹(염군사와 파스큐라)를 한 데 놓고 보면, 전자(염군사)는 관념이 앞서고 행동이 정 치적이기는 했으나 문학적으로 뒤떨어진 감이 있었으며, 후자(파스큐라)는 한 개의 작품을 가지고 새 로운 경향에 합류하느라고 노력들은 했으나 메데(노동절) 행사에 붓 대신에 붉은 깃발을 들고 나서겠 다는 기백들은 약하였었다.
그러나 그때 객관적 정세는 그들로 하여금 분산적으로 헤어져 있어서 약체가 되어 있는 부족을 용 납지 않았다. 그보다 한 줄기 역사의 거류는 동일 목적을 위해ㅓ 나아가는 그들로 하여금 통일된 큰 힘을 가지지 않으면 안 될 필연을 강요하였다. 이리하여 기어코 두 줄의 예술가들은 손을 맞잡고 한 개의 주체를 창건하게 되었으니...... 송영, 「조선푸로예술운동소사」,『예술운동』, 194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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