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시대구분의 의의와 기준
1. 시대구분의 의의
2. 시대구분의 기준
Ⅲ. 시대구분의 유형
Ⅳ. 시대구분의 전개
Ⅴ. 시대구분의 평가
Ⅵ. 시대구분에 대한 시사점
참고문헌
Ⅱ. 시대구분의 의의와 기준
1. 시대구분의 의의
2. 시대구분의 기준
Ⅲ. 시대구분의 유형
Ⅳ. 시대구분의 전개
Ⅴ. 시대구분의 평가
Ⅵ. 시대구분에 대한 시사점
참고문헌
본문내용
것이 민족적 과제로 제기되었다.
Ⅵ. 시대구분에 대한 시사점
21세기를 바로 눈앞에 두고 현재 한국인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인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예고 없이 국토를 기습하는 천재지변은 과거에도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되었지만, 현재 우리들은 바야흐로 자원 고갈의 위기,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의 오염, 더욱이 핵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한편 전 세계적 규모로 단일경제권이 형성되어 가는 추세 속에서 국경 개념은 차츰 희박해지고 있으며, 유럽대륙의 경우 비단 경제적 통합뿐 아니라 연방형태의 정치적 통합마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시대의 전환에 따라서 주권을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떠받쳐 온 근대 국민국가의 이념은 그 근저에서부터 동요하고 있다. 이 같은 위기상황이랄까 변화의 양상이랄까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역사인식을 촉발한다. 즉 지나간 시대에 대하여 각각의 시대적 특성을 명확히 할 것과 아울러 새로운 역사상을 모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표현을 달리 한다면 새로운 시대구분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20세기 한국의 사학사를 보면, 우리 사회가 크나큰 시대적 전환기에 처하여 새로운 진로와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을 때마다 시대구분을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곤 했었다. 1930년대 초두 전 세계를 휩쓴 경제공황으로 말미암아 자본주의체제가 일대 위기에 처한 반면 소련에서는 사회주의 국가건설이 한창이었을 무렵, ‘식민지’ 한국에서도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사적유물론에 입각한 한국사 시대구분이 진지하게 검토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소위 ‘해방공간’ 시기에 잠시 재연되기도 했으나, 멀지않아 탄압을 받고 퇴장했다.
그 뒤 다시금 시대구분논쟁이 활기를 띤 것은 실로 1960년대 후반이었다. 4월혁명과 군사쿠데타를 잇따라 체험하면서 눈뜨게 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강열한 시민적 욕구와 특히 ‘조국근대화’의 구호 아래 군사정부에 의해서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으로 추진된 공업화정책이 당시 시대구분론을 촉발한 시대적 배경이었다. 한국경제사학회가 ‘한국사의 시대구분 문제’를 주제로 하여 1967년 12월과 1968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한 심포지움은 당시의 역사학계 동향을 대표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주화의 달성과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떠안고 사회변혁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지난 1980년대 후반에는 소위 민중사학을 표방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사회구성체론의 입장에서 시대구분 문제에 대하여 매우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들은 역사 연구와 사회적 실천의 통일을 지향한다는 거창한 의욕을 보였으나, 때마침 1989년을 획기로 하여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정권이 일제히 몰락하는 예상치 않은 사태가 도래함에 따라 종전의 논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현재 한국 사학계가 여러 부문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시대구분 문제에 있어서만은 본래의 치열한 의미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Ⅵ. 시대구분에 대한 시사점
21세기를 바로 눈앞에 두고 현재 한국인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인류는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으로 가득 차 있다. 예고 없이 국토를 기습하는 천재지변은 과거에도 끊이지 않고 되풀이 되었지만, 현재 우리들은 바야흐로 자원 고갈의 위기, 자연환경 및 생활환경의 오염, 더욱이 핵전쟁의 위협에 직면해 있다. 한편 전 세계적 규모로 단일경제권이 형성되어 가는 추세 속에서 국경 개념은 차츰 희박해지고 있으며, 유럽대륙의 경우 비단 경제적 통합뿐 아니라 연방형태의 정치적 통합마저 논의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같은 시대의 전환에 따라서 주권을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떠받쳐 온 근대 국민국가의 이념은 그 근저에서부터 동요하고 있다. 이 같은 위기상황이랄까 변화의 양상이랄까는 우리들에게 새로운 역사인식을 촉발한다. 즉 지나간 시대에 대하여 각각의 시대적 특성을 명확히 할 것과 아울러 새로운 역사상을 모색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이는 표현을 달리 한다면 새로운 시대구분의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사실 20세기 한국의 사학사를 보면, 우리 사회가 크나큰 시대적 전환기에 처하여 새로운 진로와 방향을 모색할 필요가 있었을 때마다 시대구분을 둘러싼 논쟁이 제기되곤 했었다. 1930년대 초두 전 세계를 휩쓴 경제공황으로 말미암아 자본주의체제가 일대 위기에 처한 반면 소련에서는 사회주의 국가건설이 한창이었을 무렵, ‘식민지’ 한국에서도 일부 연구자들 사이에서 사적유물론에 입각한 한국사 시대구분이 진지하게 검토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소위 ‘해방공간’ 시기에 잠시 재연되기도 했으나, 멀지않아 탄압을 받고 퇴장했다.
그 뒤 다시금 시대구분논쟁이 활기를 띤 것은 실로 1960년대 후반이었다. 4월혁명과 군사쿠데타를 잇따라 체험하면서 눈뜨게 된 민주주의와 민족주의에 대한 강열한 시민적 욕구와 특히 ‘조국근대화’의 구호 아래 군사정부에 의해서 무모하리만큼 저돌적으로 추진된 공업화정책이 당시 시대구분론을 촉발한 시대적 배경이었다. 한국경제사학회가 ‘한국사의 시대구분 문제’를 주제로 하여 1967년 12월과 1968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개최한 심포지움은 당시의 역사학계 동향을 대표하는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또한 민주화의 달성과 분단체제의 극복이라는 시대적 과제를 떠안고 사회변혁의 분위기가 팽배해 있던 지난 1980년대 후반에는 소위 민중사학을 표방하는 젊은 연구자들이 대거 등장하여 사회구성체론의 입장에서 시대구분 문제에 대하여 매우 적극적인 관심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들은 역사 연구와 사회적 실천의 통일을 지향한다는 거창한 의욕을 보였으나, 때마침 1989년을 획기로 하여 동유럽과 소련의 사회주의 정권이 일제히 몰락하는 예상치 않은 사태가 도래함에 따라 종전의 논의를 전면적으로 재검토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었다.
현재 한국 사학계가 여러 부문에서 눈부신 성과를 거두고 있는 것은 누구라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다만 시대구분 문제에 있어서만은 본래의 치열한 의미를 충분히 자각하지 못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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