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반(反)성장으로의 성장소설
1) 이중적 자아로 분열된 주체
2) 세계와 분리된 주체의 성장과정
2-1) 낭만적 사랑의 이면 바라보기
2-2) 여성적 삶의 이면 바라보기
2-3) 독서를 통한 삶의 이면 바라보기
3) 성장 거부와 반성장
1) 이중적 자아로 분열된 주체
2) 세계와 분리된 주체의 성장과정
2-1) 낭만적 사랑의 이면 바라보기
2-2) 여성적 삶의 이면 바라보기
2-3) 독서를 통한 삶의 이면 바라보기
3) 성장 거부와 반성장
본문내용
다. 그리고 아버지와 심리적으로 결별함으로써 진희는 당당한 고아로서 상처 주는 삶으로부터 결연히 달아날 수 있는 계기를 얻는다.
액자 안의 이야기는 진희가 “아버지라는 발음”을 극복하고 농담으로 무화시키는 것으로 끝나지만 에필로그는 그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떠난 ‘진희’는 새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가족 관계를 형성하며 진짜 성인으로 자라고 여전히 ‘바라보는 나’의 감시 행위가 원형을 유지한 채 세상 속에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껏 발휘해 온 그의 통찰력은 지난날 자신이 외면해 온 성장의 지점을 세밀하게 돌이켜 보게 함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새 삶에 대한 기대” 없이 “주어진 모든 것에 대체로 적응”하며 살아온 진희가 서른여덟 현재에 와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그려진 주인공의 현재 모습은 전통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으로 규정지어진 순결, 모성, 아내 등의 삶에서 놀라울 정도로 이탈해 있다. 열두 살에 여성의 삶을 제약하는 사랑, 결혼, 성의 이면을 통찰하고 금기를 부정했던 열두 살 진희의 삶의 태도가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의 선물』은 1990년대의 “무궁화호 발사 성공”과 1960년대의 “아폴로 11호 달 기착” 소식을 사실적으로 병치하면서 끝을 맺는다.
지금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90년대가 되었어도 세상은 내가 열두 살이었던 60년대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나는 아폴로 11호를 보고 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수채 구멍과 변소 구덩이를 오가는 쥐의 태연하고 번들번들 한 작은 눈, 긴 꼬리의 유영, 그리고 그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회색의 일과들을.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 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은희경, 앞의 책, p.387.
아폴로 11호 달 기착과 무궁화호 발사 성공 그리고 열두 살 때와 다름없이 쥐를 바라보는 서른여덟의 나의 병치는 예나 지금이나 삶에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는 변화하지 않았으며, 변화하지 않은 세계를 살아가는 진희의 삶의 태도 또한 변함없이 지속된다.
또한 진희는 열두 살 때와 변함없이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한 후에도 “하지만 상관없다”고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후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상관없다”라는 말은 ‘상관하지 않겠다’라는 의지의 표명이기보다는 ‘상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무관심과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라는 처절한 냉소로 읽힌다. 신수정, 「유쾌한 환멸, 우울한 농담」,『문학동네』10, 1997, 봄호, p.46.
이처럼 진희는 세계와 갈등하지도 조화를 꿈꾸지도 않으며, 세계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냉소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진희의 세상에 대한 냉소는 세계에 대한 부정 정신의 다름 아닌 것이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의 미성숙한 주인공은 행복한 유년의 시절을 보내다가 세계와 갈등하고, 분리의 경험을 한다. 그리고 세계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세계와 조화를 이루어나간다. 이들 주인공들은 세계를 비판하고 갈등하지만 이것은 진실, 역사의 발전, 사랑 등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며, 비록 지금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주체의 노력에 따라 복원될 수 있으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류보선, 앞의 글, p.421.
그리고 세계 안에서 교섭하고 자아 정체성을 추구하며 세계와의 화해를 지향함으로써 성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러한 일반적인 성장소설에 비추어 봤을 때『새의 선물』의 성장과정은 대단히 낯설다. 우선 지금까지의 성장소설의 미성숙한 주인공과 달리 진희는 자신의 성장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며, 세계와의 교섭 자체를 부정한다. 그리고 세계 혹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숙해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타인들의 삶은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대상일 뿐이다. 진실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곳에서도 잠재적 가능성을 찾지 못하며, 공동체와의 화해 또한 모색하지 않는다. 열두 살에 결정한 삶의 방식을 서른여덟까지 유지하기 때문에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진입하였는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결국 진희의 성장과정에는 성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진희의 성장담이 의미 있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구성하고, 내면적 성장의 욕구를 가진 개성적 주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성장소설에서의 성장은 주인공이 거부하고 싶었던 세계를 수용하고, 어른 되기(특히 아버지 되기)를 받아들이는 보편적이고 타협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진희는 ‘부정한 세계에서의 성장은 무엇인가?’, ‘세계와의 화해는 가능한가?’ 등의 성장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 진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하여 주변의 여성들의 삶을 관찰하고, 독서를 통하여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는 억압과 모순 그리고 금기를 강요하고 주체를 억압하는 부정적 공간일 뿐이다. 요컨대 진희는 세계에서 자신의 내면적 성장과 발전을 유도할 그 어떤 긍정적 가치도 발견하지 못하며, 어른들의 세계는 그 이면을 뒤에 숨기고 있는 함정 혹은 음모라는 결론을 내린다. 성장이 불가능한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서 성장의 과정을 보내야만 했던 진희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를 즐기는 일만 되풀이 할 뿐이다.
성장소설의 인물은 성장을 거부하고나 중단해버리는 왜곡된 성장의 모습을 통하여 기존의 사회 제도나 세계의 모순을 폭로하기도 한다. 진희의 왜곡된 성장의 모습을 통하여 사회의 모순과 여성에게 강요되는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를 느낄 수 있다. 진희는 세계의 이중성을 통찰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부정과 전복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바로 이것이 반(反)성장이라 할 수 있는 진희의 성장에 내재된 가치이고 진정성인 것이다.
액자 안의 이야기는 진희가 “아버지라는 발음”을 극복하고 농담으로 무화시키는 것으로 끝나지만 에필로그는 그 이후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아버지와 함께 떠난 ‘진희’는 새 보금자리에서 새로운 가족 관계를 형성하며 진짜 성인으로 자라고 여전히 ‘바라보는 나’의 감시 행위가 원형을 유지한 채 세상 속에 진입하고 있다. 그리고 이제껏 발휘해 온 그의 통찰력은 지난날 자신이 외면해 온 성장의 지점을 세밀하게 돌이켜 보게 함으로써 자기 존재에 대한 성찰의 시간을 제공한다. “새 삶에 대한 기대” 없이 “주어진 모든 것에 대체로 적응”하며 살아온 진희가 서른여덟 현재에 와 있다. 프롤로그와 에필로그에 그려진 주인공의 현재 모습은 전통 사회가 요구하는 여성으로 규정지어진 순결, 모성, 아내 등의 삶에서 놀라울 정도로 이탈해 있다. 열두 살에 여성의 삶을 제약하는 사랑, 결혼, 성의 이면을 통찰하고 금기를 부정했던 열두 살 진희의 삶의 태도가 유지되고 있음을 의미한다.
『새의 선물』은 1990년대의 “무궁화호 발사 성공”과 1960년대의 “아폴로 11호 달 기착” 소식을 사실적으로 병치하면서 끝을 맺는다.
지금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90년대가 되었어도 세상은 내가 열두 살이었던 60년대와 똑같이 흘러간다. 열두 살 이후 나는 성장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무궁화호를 보고 있다.
나는 아폴로 11호를 보고 있다.
나는 쥐를 보고 있다. 수채 구멍과 변소 구덩이를 오가는 쥐의 태연하고 번들번들 한 작은 눈, 긴 꼬리의 유영, 그리고 그 심각하지도 비루하지도 않은 회색의 일과들을.
건조한 성격으로 살아왔지만 사실 나는 다혈질인지도 모른다. 집착 없이 살아오긴 했지만 사실은 집착으로써 얻지 못할 것들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짐짓 한걸음 비껴서 걸어온 것인지도 모른다. 고통 받지 않으려고 주변적인 고통을 견뎌왔으며 사랑하지 않으려고 내게 오는 사랑을 사소한 것으로 만드는 데에 정열을 다 바쳤는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상관없다. 은희경, 앞의 책, p.387.
아폴로 11호 달 기착과 무궁화호 발사 성공 그리고 열두 살 때와 다름없이 쥐를 바라보는 서른여덟의 나의 병치는 예나 지금이나 삶에는 별반 달라진 것이 없음을 의미한다. 세계는 변화하지 않았으며, 변화하지 않은 세계를 살아가는 진희의 삶의 태도 또한 변함없이 지속된다.
또한 진희는 열두 살 때와 변함없이 살아가는 자신에 대해 냉철하게 분석한 후에도 “하지만 상관없다”고 한다. 이는 자신에 대한 성찰이 이후의 삶에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못할 것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상관없다”라는 말은 ‘상관하지 않겠다’라는 의지의 표명이기보다는 ‘상관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라는 무관심과 ‘그러니 어쩌란 말인가’라는 처절한 냉소로 읽힌다. 신수정, 「유쾌한 환멸, 우울한 농담」,『문학동네』10, 1997, 봄호, p.46.
이처럼 진희는 세계와 갈등하지도 조화를 꿈꾸지도 않으며, 세계는 긍정도 부정도 아닌 냉소의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진희의 세상에 대한 냉소는 세계에 대한 부정 정신의 다름 아닌 것이다.
대부분의 성장소설의 미성숙한 주인공은 행복한 유년의 시절을 보내다가 세계와 갈등하고, 분리의 경험을 한다. 그리고 세계와의 갈등을 극복하고 세계와 조화를 이루어나간다. 이들 주인공들은 세계를 비판하고 갈등하지만 이것은 진실, 역사의 발전, 사랑 등의 가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며, 비록 지금은 그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주체의 노력에 따라 복원될 수 있으리라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류보선, 앞의 글, p.421.
그리고 세계 안에서 교섭하고 자아 정체성을 추구하며 세계와의 화해를 지향함으로써 성인의 세계에 입문하게 된다.
이러한 일반적인 성장소설에 비추어 봤을 때『새의 선물』의 성장과정은 대단히 낯설다. 우선 지금까지의 성장소설의 미성숙한 주인공과 달리 진희는 자신의 성장이 완성되었다고 선언하며, 세계와의 교섭 자체를 부정한다. 그리고 세계 혹은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성숙해 가는 것이 아니라 세계와 타인들의 삶은 거리를 두고 관찰하는 대상일 뿐이다. 진실 자체를 믿지 않기 때문에 어떠한 곳에서도 잠재적 가능성을 찾지 못하며, 공동체와의 화해 또한 모색하지 않는다. 열두 살에 결정한 삶의 방식을 서른여덟까지 유지하기 때문에 미성숙에서 성숙으로의 진입하였는가에 대해서도 알 수 없다. 결국 진희의 성장과정에는 성장이 없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진희의 성장담이 의미 있는 것은 자신의 삶을 자신이 구성하고, 내면적 성장의 욕구를 가진 개성적 주체가 등장하기 때문이다. 이전의 성장소설에서의 성장은 주인공이 거부하고 싶었던 세계를 수용하고, 어른 되기(특히 아버지 되기)를 받아들이는 보편적이고 타협적인 모습으로 그려진다. 하지만 진희는 ‘부정한 세계에서의 성장은 무엇인가?’, ‘세계와의 화해는 가능한가?’ 등의 성장에 대한 본질적인 의문을 던진다. 진희는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모습을 관찰하기 위하여 주변의 여성들의 삶을 관찰하고, 독서를 통하여 세계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하지만 그녀가 바라보는 세계는 억압과 모순 그리고 금기를 강요하고 주체를 억압하는 부정적 공간일 뿐이다. 요컨대 진희는 세계에서 자신의 내면적 성장과 발전을 유도할 그 어떤 긍정적 가치도 발견하지 못하며, 어른들의 세계는 그 이면을 뒤에 숨기고 있는 함정 혹은 음모라는 결론을 내린다. 성장이 불가능한 세계가 있고, 그 세계에서 성장의 과정을 보내야만 했던 진희는 자기만의 세계를 만들고, 그 세계를 즐기는 일만 되풀이 할 뿐이다.
성장소설의 인물은 성장을 거부하고나 중단해버리는 왜곡된 성장의 모습을 통하여 기존의 사회 제도나 세계의 모순을 폭로하기도 한다. 진희의 왜곡된 성장의 모습을 통하여 사회의 모순과 여성에게 강요되는 억압적인 이데올로기를 느낄 수 있다. 진희는 세계의 이중성을 통찰함과 동시에 그에 대한 부정과 전복의 계기를 마련하고자 한다. 바로 이것이 반(反)성장이라 할 수 있는 진희의 성장에 내재된 가치이고 진정성인 것이다.
추천자료
- 고전 소설의 형성 배경
- 90년대 여성소설 공지영, 공선옥을 중심으로
- 박완서 소설 연구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
- 박경리의 소설 토지 분석
- 박지원 소설 연구
- 小說敎育論- 소설장르의 본질과 小說敎育論
- 양귀자 소설 <숨은꽃>
- 1920년대 소설
- [현대소설] '절처봉생' 속에 드러난 근대전환기의 현실성
- [국어작문/고전소설] 서포 김만중(金萬重)의 문학사상 및 구운몽,사씨남정기 등 작품분석 및 ...
- 조선시대 애정소설에 나타난 사랑과 성
- 황순원 소설 읽기.. - <독짓는 늙은이>, <목넘이 마을의 개>, <학>을 중심으로
- 한국 고전소설 비평의 양상
- 페미니즘 소설 교육 -오정희 「중국인 거리」를 중심으로-
소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