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향가 제망매가(통일신라)
1. 제망매가의 원문
2. 제망매가의 작품이해
3. `제망매가`와 `님의 침묵`
4. `제망매가`와 `下棺`(박목월)
Ⅱ. 향가 도솔가(통일신라)
1. 도솔가의 원문
2. 도솔가의 배경설화와 이해
Ⅲ. 향가 처용가(통일신라)
1. 처용가의 원문
2. 처용가의 작품 해설
3. 처용가의 작품 해제
1) 작자
2) 연대
3) 갈래
4) 표현
5) 성격
6) 제재
7) 주제
8) 의의
9) 출전
4. 처용가의 시어 및 시구 풀이
5. 처용가의 요점
6. 처용가의 감상 길라잡이
7. 처용가의 설화
Ⅳ. 향가 모죽지랑가(통일신라)
1. 모죽지랑가의 원문과 해독
2. 모죽지랑가의 작품이해
Ⅴ. 향가 도천수관음가(도천수대비가)(통일신라)
1. 도천수관음가(도천수대비가)의 원문과 해독
2. 도천수관음가(도천수대비가)의 작품이해
Ⅵ. 향가 우적가(통일신라)
1. 우적가의 원문과 해독
1) 우적가 원문
2) 양주동 해독
3) 양주동 현대역
4) 김완진 해독
5) 김완진 현대역
2. 우적가의 배경 설화
참고문헌
1. 제망매가의 원문
2. 제망매가의 작품이해
3. `제망매가`와 `님의 침묵`
4. `제망매가`와 `下棺`(박목월)
Ⅱ. 향가 도솔가(통일신라)
1. 도솔가의 원문
2. 도솔가의 배경설화와 이해
Ⅲ. 향가 처용가(통일신라)
1. 처용가의 원문
2. 처용가의 작품 해설
3. 처용가의 작품 해제
1) 작자
2) 연대
3) 갈래
4) 표현
5) 성격
6) 제재
7) 주제
8) 의의
9) 출전
4. 처용가의 시어 및 시구 풀이
5. 처용가의 요점
6. 처용가의 감상 길라잡이
7. 처용가의 설화
Ⅳ. 향가 모죽지랑가(통일신라)
1. 모죽지랑가의 원문과 해독
2. 모죽지랑가의 작품이해
Ⅴ. 향가 도천수관음가(도천수대비가)(통일신라)
1. 도천수관음가(도천수대비가)의 원문과 해독
2. 도천수관음가(도천수대비가)의 작품이해
Ⅵ. 향가 우적가(통일신라)
1. 우적가의 원문과 해독
1) 우적가 원문
2) 양주동 해독
3) 양주동 현대역
4) 김완진 해독
5) 김완진 현대역
2. 우적가의 배경 설화
참고문헌
본문내용
으므로, 왕이 이를 가상히 여겨 좋은 차 한 봉과 수정염주 108개를 주었다. 이 때 갑자기 깨끗한 모습의 동자 하나가 차와 구슬을 꿇어 앉아 받들고 궁전 서쪽에 있는 작은 문으로 나왔다. 월명은 이 동자가 궐내의 사자인 줄로 알았고, 왕은 월명사의 종자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의 징표가 나타나고 보니, 둘 다 아니었다. 왕이 매우 이상히 여겨 사람을 시켜 뒤를 쫓게 했더니, 동자는 내원탑 속으로 들어가 숨어버리고, 차와 염주만 남쪽 벽화 미륵상 앞에 있었다. 이 일로 해서 월명의 지극한 덕과 정성이 미륵보살을 이같이 감동시켰음을 알게 되었다. 조정과 민간에서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게 되자, 왕이 더욱 그를 공경했다. 다시 비단 100필을 주어 큰 정성을 표시했다.
Ⅲ. 향가 처용가(통일신라)
1. 처용가의 원문
處 容 歌
東 京 明 期 月 良
夜 入 伊 遊 行 如 可
入 良 沙 寢 矣 見 昆
脚 烏 伊 四 是 良 羅 ⇒ 역신의 침범
二 隱 吾 下 於 叱 古
二 隱 誰 支 下 焉 古
本 矣 吾 下 是 如 馬 於 隱
奪 叱 良 乙 何 如 爲 理 古 ⇒ 처용의 관용
2. 처용가의 작품 해설
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마는(내 아내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양주동 해독)
3. 처용가의 작품 해제
1) 작자
처용(處容)
2) 연대
신라 헌강왕(875-885)
3) 갈래
8구체 향가(44조의 민요조로 됨)
4) 표현
향찰로 표기, 직서적(直敍的)인 표현
5) 성격
주술적 무가(巫歌), 축사(逐邪)의 노래
6) 제재
아내, 역신(疫神)
7) 주제
귀신을 쫓아냄[축사(逐邪)]
8) 의의
① 벽사 진경(邪進慶-간사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함)의 소박한 민요에서 형성된 무가이다.
② 의식무(儀式舞), 또는 연희의 성격을 띠고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계속 전승되었다.
9) 출전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4. 처용가의 시어 및 시구 풀이
- 서울. 여기서는 경주
긔 래 - 밝은 달(밤)에
밤 드리 - 밤 들게, 밤이 늦도록
노니다가 - 노닐다가, 놀며 지내다가
드러 - 들어와
가리 - 다리가, 가랑이가 가[脚] + 이(주격조사)
네히어라 - 넷이로구나.
아 - 빼앗겼음을, 빼앗긴 것을.
내해엇고 - 내 것이어니와, 내 아내의 것이어니와. ‘내 것’이라는 직접소유로 표현하여 강조함.
엇디릿고 - 어찌 할 수 있으리오?
드러 자리~가리 네히어라 - 역신이 아내를 범하고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아 엇디릿고 - 이미 다른 사람의 여인이 되어 버린 상황에 대한 체념으로 보기도 하며, 자신의 아내까지도 대상에게 바치는 관용적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5. 처용가의 요점
벽사 진경(邪進慶)의 민속에서 형성된 무가(巫歌)이다.(무가-처용은 무신으로 볼 수 있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의식무, 또는 연희로 계승되었다. 체념과 관용을 바탕으로 무가의 성격을 띠며, 무속적으로 전승되었다. 해가, 원가, 도솔가, 혜성가 등과 함께 주술성(呪術性)이 깃들어 있다. 귀신이 감복한 것은 처용의 관용적 태도 때문이다.
6. 처용가의 감상 길라잡이
이 노래는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처용랑이 역신(疫神)을 쫓기 위해 지어 부른 8구체 향가이다. 이 노래의 변형이 고려 시대 ‘처용가’로서,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실려 있으므로 향찰(鄕札)로 표기된 어려운 향가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를 얻은 것이다. 이 노래의 내용에 대해서 민속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지어 보려는 견해와 정치사의 관점에서 처용을 지방 호족(豪族)의 아들로 보려는 견해, 신라 시대에는 멀리 서역(西域) 지방과도 교역이 있었다고 보아 처용을 이슬람 상인으로 보려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민족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지어 보려는 견해가 우수하다. 그 까닭은 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고 있는 것을 보고도 노래를 부르며 춤추며 물러났다고 하는 것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무격(巫覡) 사회에만 있는 풍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악신(惡神)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낸다는 풍습에서 한국인의 여유에 찬 생활의 예지를 볼 수 있다.
이 노래의 절정은 7행과 8행이다. 이는 체념적인 주사(呪詞)로 볼 수 있으나 오히려 처용의 시황(초극적인 이미지)을 부각시킨 것으로 후대로 오면서 벽사(邪)의 위력으로 발전한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를 무가의 일종으로 보아 악신을 보내는 ‘뒷전풀이’로 이해하지 않고는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무속에서는 악신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내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7. 처용가의 설화
헌강왕 시대는 태평 세월이었다. 왕이 어느날 개운표에 나가 놀고 있는데, 구름과 안개가 끼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신하에게 물으니 이것은 동해(東海) 용(龍)의 조화이므로 좋은 일을 행할 것을 아뢰었다. 왕이 근처에 절을 세우라 하니, 구름과 안개가 개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을 개운포 (開雲浦)라 이름지었다.
한편, 동해 용은 매우 기뻐하여 아들 일곱 명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서 인사를 하고, 그 중 한 아들을 두고 갔는데, 그가 처용으로서, 왕이 미녀를 아내로 삼아 같이 살게 하였다. 그 아내가 매우 아름다워서, 역신(疫神)이 탐을 내어 사람으로 변하여 처용이 없는 사이에 몰래 동침하였다. 밖에서 돌아온 처용이 이를 보고 처용가의 내용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처용이 역신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 것에 탄복한 역신은 그에 감격하여, 앞으로는 처용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이 때 처용이 처음 부른 노래를 ‘처용가’라 하고, 그 춤을 ‘처용무’라 한다.
Ⅳ. 향가 모죽지랑가(통일신라)
1. 모죽지랑가의 원문과 해독
慕竹旨郞歌
去隱春皆理米 (간 봄 그리매)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모 것 우리 시름)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아 나토샤온)
史年數就音墮支行齊 (즈 샬㈓ 디니져)
目煙廻於尸七史伊衣 (눈 돌칠 이예)
逢烏支惡知作乎下是 (맛보디 지리)
郞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 (郞이여 그릴 녀올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다
Ⅲ. 향가 처용가(통일신라)
1. 처용가의 원문
處 容 歌
東 京 明 期 月 良
夜 入 伊 遊 行 如 可
入 良 沙 寢 矣 見 昆
脚 烏 伊 四 是 良 羅 ⇒ 역신의 침범
二 隱 吾 下 於 叱 古
二 隱 誰 支 下 焉 古
本 矣 吾 下 是 如 馬 於 隱
奪 叱 良 乙 何 如 爲 理 古 ⇒ 처용의 관용
2. 처용가의 작품 해설
서울 밝은 달밤에 밤 늦도록 놀고 지내다가 들어와 자리를 보니 다리가 넷이로구나. 둘은 내 것이지만, 둘은 누구의 것인고? 본디 내 것이다마는(내 아내이지만) 빼앗긴 것을 어찌하리.(양주동 해독)
3. 처용가의 작품 해제
1) 작자
처용(處容)
2) 연대
신라 헌강왕(875-885)
3) 갈래
8구체 향가(44조의 민요조로 됨)
4) 표현
향찰로 표기, 직서적(直敍的)인 표현
5) 성격
주술적 무가(巫歌), 축사(逐邪)의 노래
6) 제재
아내, 역신(疫神)
7) 주제
귀신을 쫓아냄[축사(逐邪)]
8) 의의
① 벽사 진경(邪進慶-간사한 귀신을 물리치고 경사를 맞이함)의 소박한 민요에서 형성된 무가이다.
② 의식무(儀式舞), 또는 연희의 성격을 띠고 고려와 조선 시대까지 계속 전승되었다.
9) 출전
<삼국유사(三國遺事)> 권2
4. 처용가의 시어 및 시구 풀이
- 서울. 여기서는 경주
긔 래 - 밝은 달(밤)에
밤 드리 - 밤 들게, 밤이 늦도록
노니다가 - 노닐다가, 놀며 지내다가
드러 - 들어와
가리 - 다리가, 가랑이가 가[脚] + 이(주격조사)
네히어라 - 넷이로구나.
아 - 빼앗겼음을, 빼앗긴 것을.
내해엇고 - 내 것이어니와, 내 아내의 것이어니와. ‘내 것’이라는 직접소유로 표현하여 강조함.
엇디릿고 - 어찌 할 수 있으리오?
드러 자리~가리 네히어라 - 역신이 아내를 범하고 있음을 노래한 것이다.
아 엇디릿고 - 이미 다른 사람의 여인이 되어 버린 상황에 대한 체념으로 보기도 하며, 자신의 아내까지도 대상에게 바치는 관용적 표현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5. 처용가의 요점
벽사 진경(邪進慶)의 민속에서 형성된 무가(巫歌)이다.(무가-처용은 무신으로 볼 수 있다.)
고려와 조선조에 걸쳐 의식무, 또는 연희로 계승되었다. 체념과 관용을 바탕으로 무가의 성격을 띠며, 무속적으로 전승되었다. 해가, 원가, 도솔가, 혜성가 등과 함께 주술성(呪術性)이 깃들어 있다. 귀신이 감복한 것은 처용의 관용적 태도 때문이다.
6. 처용가의 감상 길라잡이
이 노래는 신라 제49대 헌강왕 때 처용랑이 역신(疫神)을 쫓기 위해 지어 부른 8구체 향가이다. 이 노래의 변형이 고려 시대 ‘처용가’로서, <악학궤범(樂學軌範)>과 <악장가사(樂章歌詞)>에 실려 있으므로 향찰(鄕札)로 표기된 어려운 향가를 해독할 수 있는 열쇠를 얻은 것이다. 이 노래의 내용에 대해서 민속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지어 보려는 견해와 정치사의 관점에서 처용을 지방 호족(豪族)의 아들로 보려는 견해, 신라 시대에는 멀리 서역(西域) 지방과도 교역이 있었다고 보아 처용을 이슬람 상인으로 보려는 견해 등이 있다. 그러나 민족학적 관점에서 처용을 무속과 관련지어 보려는 견해가 우수하다. 그 까닭은 제 아내가 다른 남자와 자고 있는 것을 보고도 노래를 부르며 춤추며 물러났다고 하는 것은 상식의 범주를 벗어난 무격(巫覡) 사회에만 있는 풍습이기 때문이다. 또한 악신(惡神)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낸다는 풍습에서 한국인의 여유에 찬 생활의 예지를 볼 수 있다.
이 노래의 절정은 7행과 8행이다. 이는 체념적인 주사(呪詞)로 볼 수 있으나 오히려 처용의 시황(초극적인 이미지)을 부각시킨 것으로 후대로 오면서 벽사(邪)의 위력으로 발전한 것을 이해할 만하다. 이를 무가의 일종으로 보아 악신을 보내는 ‘뒷전풀이’로 이해하지 않고는 해석의 실마리를 찾을 수 없을 것이다. 무속에서는 악신이라도 즐겁게 하여 보내는 것이 통례이기 때문이다.
7. 처용가의 설화
헌강왕 시대는 태평 세월이었다. 왕이 어느날 개운표에 나가 놀고 있는데, 구름과 안개가 끼어 앞이 보이지 않았다. 이상하게 여겨 신하에게 물으니 이것은 동해(東海) 용(龍)의 조화이므로 좋은 일을 행할 것을 아뢰었다. 왕이 근처에 절을 세우라 하니, 구름과 안개가 개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곳을 개운포 (開雲浦)라 이름지었다.
한편, 동해 용은 매우 기뻐하여 아들 일곱 명을 데리고 임금 앞에 나타나서 인사를 하고, 그 중 한 아들을 두고 갔는데, 그가 처용으로서, 왕이 미녀를 아내로 삼아 같이 살게 하였다. 그 아내가 매우 아름다워서, 역신(疫神)이 탐을 내어 사람으로 변하여 처용이 없는 사이에 몰래 동침하였다. 밖에서 돌아온 처용이 이를 보고 처용가의 내용으로 노래를 부르며 춤을 추었다. 처용이 역신의 잘못을 탓하지 않는 것에 탄복한 역신은 그에 감격하여, 앞으로는 처용의 형상을 그린 그림만 보아도 그 문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였는데, 이 때 처용이 처음 부른 노래를 ‘처용가’라 하고, 그 춤을 ‘처용무’라 한다.
Ⅳ. 향가 모죽지랑가(통일신라)
1. 모죽지랑가의 원문과 해독
慕竹旨郞歌
去隱春皆理米 (간 봄 그리매)
毛冬居叱沙哭屋尸以憂音 (모 것 우리 시름)
阿冬音乃叱好支賜烏隱 (아 나토샤온)
史年數就音墮支行齊 (즈 샬㈓ 디니져)
目煙廻於尸七史伊衣 (눈 돌칠 이예)
逢烏支惡知作乎下是 (맛보디 지리)
郞也慕理尸心未行乎尸道尸 (郞이여 그릴 녀올길)
蓬次叱巷中宿尸夜音有叱下是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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