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1. 석기의 변화와 쇠퇴
1) 대구 연암산유적
2) 대구 월성동유적
2. 새로운 마을과 무덤의 등장
1) 합천 영창리유적
2) 청도 사촌리유적
3) 상주 이부곡토성
4) 하동 띠밭골유적
5) 김해 구산동유적
6) 김해 흥동유적
7) 영양 신원리유적
8) 부산 두구동 임석유적
3. 장신구
4. 대외교류의 흔적
5. 새로이 확인된 원형점토대토기 출토 유적
1) 보령 진죽리유적
2) 대전 궁동유적
6. 송국리형 주거지의 원형점토대토기
7. 성립기의 변진한
8. 삼각형점토대토기문화
1) 사천 늑도유적
2) 대구 팔달동유적
9. 전국계철기의 확산
10. 재정일치에서 제정분리로 - 다뉴세문경에 대하여-
1) 대구 연암산유적
2) 대구 월성동유적
2. 새로운 마을과 무덤의 등장
1) 합천 영창리유적
2) 청도 사촌리유적
3) 상주 이부곡토성
4) 하동 띠밭골유적
5) 김해 구산동유적
6) 김해 흥동유적
7) 영양 신원리유적
8) 부산 두구동 임석유적
3. 장신구
4. 대외교류의 흔적
5. 새로이 확인된 원형점토대토기 출토 유적
1) 보령 진죽리유적
2) 대전 궁동유적
6. 송국리형 주거지의 원형점토대토기
7. 성립기의 변진한
8. 삼각형점토대토기문화
1) 사천 늑도유적
2) 대구 팔달동유적
9. 전국계철기의 확산
10. 재정일치에서 제정분리로 - 다뉴세문경에 대하여-
본문내용
로 사용되었다. 주거지와 분묘에서 출토되며, 종류로는 곡옥, 관옥, 소옥이 있다. 곡옥은 C자형으로 휘어져 있으며 한쪽에 나 있는 구멍에 끈을 꿰게 되어 있다. 관옥은 원통형이며 장축을 관통하는 긴 구멍을 통해 여러 개를 연결하여 사용한다. 곡옥과 함께 출토되는 예가 많다. 소옥은 원반형이 많지만, 한쪽 면이 약간 부풀어 오른 것도 있는 등 모양이 일정하지 않고 출토량도 적다. 주로 곡옥은 귀걸이로, 관옥은 목걸이로 사용되었지만, 곡옥이나 소옥을 관옥과 함께 연결하여 사용하기도 한다.
옥으로 만든 장신구 외에 청도 사촌리유적에서는 흙으로 만든 토제 장신구도 출토된 바 있어, 드물게나마 토제품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옥으로 만든 장신구는 신체의 치장과 함께 주술적,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의기로도 사용되었다. 곡옥의 형태가 달숭배사상이나 난생을 반영한다는 설도 있었는데, 반달모양의 옥이 주술적인 의기로서도 사용되었다는 점과 상통한다. 이는 동검, 동경과 함께 출토되는 예가 많은 점에서도 그러하다.
4. 대외교류의 흔적
원형점토대토기는 일본의 북부큐슈를 중심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 남부에서도 일본의 야요이토기가 출토되는 등 당시 양국의 교류는 활발했었다. 사천 늑도유적은 당시 야요이인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창구로서 국제무역항과 같은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많은 야요이계토기가 출토된 점은 그만큼 교류가 많았고, 또 지속적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점토대토기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패총이 다시 축조되기 시작한다.
원형점토대토기단계의 야요이토기 자료는 김해패총의 옹관을 들 수 있다. 이 옹관은 한국의 무문토기적 요소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반도에 온 야요이인은 처음에는 본토의 야요이토기 제작기술 그대로 토기를 제작하였지만, 그 후손들이 만든 토기에는 무문토기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절충식의 토기도 제작된다. 일본에서 출토되는 원형점토대토기에도 무문토기를 충실히 모방한 것과 야요이토기의 수법과 정출된 것으로 나누어진다.
이와 같이 점토대토기단계, 즉 변진한의 여명기와 성립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한.일 양국의 교류는 어느 한쪽에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간에 인적, 물적으로 활발히 교류하였다. 교류의 본질적인 목적은 농경을 비롯한 기술 혹은 물적자원의 획득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토기문화라고 하는 인간활동의 부산물이 반드시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토기를 통해서 당시 교류의 흔적을 직.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중국 동북지방과의 교류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전국계의 철기를 들 수 있다.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국 ‘연’의 철기가 진개의 동침과 함께 점차 동으로 전해지면서 한반도에서도 기원전 4~3세기대에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전국계의 철기가 확인되며, 남부지방에서도 호서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철부, 철착 등이 확인된다. 이러한 철기들은 한반도에서 자체 제작한 것이라기보다 유입품일 가능성이 높다. 청동기에 있어서는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등지에서 확인되는 이형동기류들이 심양 정가와자 6512호묘에서 출토된 청동기들과 유사하여 그 지역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며, 재령 고산리, 완주 상림리, 함평 초포리에서 발견된 중국식동검은 초나라를 중심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이 지역과의 관계를 말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식 동검은 평양 석암리를 제외하고는 한반도에서 제작한 것으로 여겨져 문물의 교류가 아닌 정보의 교류로 추정된다. 전국 연의 중심지 연하도의 신상두묘구30호에서는 한반도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식동과가 출토되어 상호교류의 좋은 증거가 된다.
5. 새로이 확인된 원형점토대토기 출토 유적
1) 보령 진죽리유적
송국리형주거지에서 송국리형토기와 원형점토대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두형토기, 적색마연토기, 유경식석촉, 유구석부, 삼각형석도 등도 함께 출토되고 있어, 송국리형문화와 점토대문화가 서로 복합된 양상을 보이는 유적이다. 이같은 양상은 인근 관창리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2) 대전 궁동유적
A지역 1지구 1호토광묘에서 원형점토대토기가 출토되었다. 나무관을 사용하지않고 바로 시신을 안치한 순수 토광묘일 가능성이 높다. B지역에서도 원형점토대토기편, 우각형파수편, 석촉편 등이 채집되었으나,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6. 송국리형 주거지의 원형점토대토기
점토대토기문화는 이전과는 유물에서는 물론 유적의 입지나 유구에서도 재지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던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최근 평면 원형의 송국리형 주거지에서
옥으로 만든 장신구 외에 청도 사촌리유적에서는 흙으로 만든 토제 장신구도 출토된 바 있어, 드물게나마 토제품도 사용되었음을 알 수 있다.
이 시기의 옥으로 만든 장신구는 신체의 치장과 함께 주술적, 종교적인 의미를 가진 의기로도 사용되었다. 곡옥의 형태가 달숭배사상이나 난생을 반영한다는 설도 있었는데, 반달모양의 옥이 주술적인 의기로서도 사용되었다는 점과 상통한다. 이는 동검, 동경과 함께 출토되는 예가 많은 점에서도 그러하다.
4. 대외교류의 흔적
원형점토대토기는 일본의 북부큐슈를 중심으로 넓게 분포하고 있으며, 한반도 남부에서도 일본의 야요이토기가 출토되는 등 당시 양국의 교류는 활발했었다. 사천 늑도유적은 당시 야요이인이 한반도로 들어오는 창구로서 국제무역항과 같은 곳이었는데, 이곳에서 많은 야요이계토기가 출토된 점은 그만큼 교류가 많았고, 또 지속적이었음을 증명해주고 있다. 또한 점토대토기가 유행하던 시기에는 패총이 다시 축조되기 시작한다.
원형점토대토기단계의 야요이토기 자료는 김해패총의 옹관을 들 수 있다. 이 옹관은 한국의 무문토기적 요소가 전혀 포함되어 있지 않다. 한반도에 온 야요이인은 처음에는 본토의 야요이토기 제작기술 그대로 토기를 제작하였지만, 그 후손들이 만든 토기에는 무문토기적인 요소도 가미되어 절충식의 토기도 제작된다. 일본에서 출토되는 원형점토대토기에도 무문토기를 충실히 모방한 것과 야요이토기의 수법과 정출된 것으로 나누어진다.
이와 같이 점토대토기단계, 즉 변진한의 여명기와 성립기에 해당하는 시기의 한.일 양국의 교류는 어느 한쪽에 일방적인 관계가 아니라 상호간에 인적, 물적으로 활발히 교류하였다. 교류의 본질적인 목적은 농경을 비롯한 기술 혹은 물적자원의 획득이었지만, 그 이면에는 토기문화라고 하는 인간활동의 부산물이 반드시 동반하게 마련이다. 그러한 토기를 통해서 당시 교류의 흔적을 직.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한편, 중국 동북지방과의 교류에서 대표적인 것으로는 전국계의 철기를 들 수 있다. 북경지역을 중심으로 한 전국 ‘연’의 철기가 진개의 동침과 함께 점차 동으로 전해지면서 한반도에서도 기원전 4~3세기대에 서북지방을 중심으로 전국계의 철기가 확인되며, 남부지방에서도 호서지역을 중심으로 주로 철부, 철착 등이 확인된다. 이러한 철기들은 한반도에서 자체 제작한 것이라기보다 유입품일 가능성이 높다. 청동기에 있어서는 대전 괴정동, 아산 남성리, 예산 동서리 등지에서 확인되는 이형동기류들이 심양 정가와자 6512호묘에서 출토된 청동기들과 유사하여 그 지역과의 문화교류를 보여주며, 재령 고산리, 완주 상림리, 함평 초포리에서 발견된 중국식동검은 초나라를 중심으로 발견되는 것으로 이 지역과의 관계를 말해준다. 그러나 이러한 중국식 동검은 평양 석암리를 제외하고는 한반도에서 제작한 것으로 여겨져 문물의 교류가 아닌 정보의 교류로 추정된다. 전국 연의 중심지 연하도의 신상두묘구30호에서는 한반도에서 제작한 것으로 추정되는 한국식동과가 출토되어 상호교류의 좋은 증거가 된다.
5. 새로이 확인된 원형점토대토기 출토 유적
1) 보령 진죽리유적
송국리형주거지에서 송국리형토기와 원형점토대토기가 함께 출토되었다. 두형토기, 적색마연토기, 유경식석촉, 유구석부, 삼각형석도 등도 함께 출토되고 있어, 송국리형문화와 점토대문화가 서로 복합된 양상을 보이는 유적이다. 이같은 양상은 인근 관창리유적에서도 확인된 바 있다.
2) 대전 궁동유적
A지역 1지구 1호토광묘에서 원형점토대토기가 출토되었다. 나무관을 사용하지않고 바로 시신을 안치한 순수 토광묘일 가능성이 높다. B지역에서도 원형점토대토기편, 우각형파수편, 석촉편 등이 채집되었으나, 유구의 흔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6. 송국리형 주거지의 원형점토대토기
점토대토기문화는 이전과는 유물에서는 물론 유적의 입지나 유구에서도 재지의 문화와는 전혀 다른 양상이었던 것을 앞에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최근 평면 원형의 송국리형 주거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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