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개요
Ⅱ. 조선시대 시조의 역사
Ⅲ. 조선시대 시조의 변이
1. 사대부 시조의 재정비
1) 고응척(1531-1605)
2) 장경세(1547-1615)
3) 이신의(1511-1627)
4) 조존성(1533-1627)
5) 박선강(1555-1617)
2. 사대부 시조의 변이
1) 김광욱(1580-1656)
2) 이휘일(1619-1672)<전가팔곡> 8수
3) 위백규(1727-1798)<농가구장>
4) 안서우(1664-1735)
5) 신헌조(1752-1809)의<봉래악부>
Ⅳ. 조선시대 시조의 내용
Ⅴ. 조선시대 시조와 사설시조
Ⅵ. 조선시대 시조와 주요 시조작가
참고문헌
Ⅱ. 조선시대 시조의 역사
Ⅲ. 조선시대 시조의 변이
1. 사대부 시조의 재정비
1) 고응척(1531-1605)
2) 장경세(1547-1615)
3) 이신의(1511-1627)
4) 조존성(1533-1627)
5) 박선강(1555-1617)
2. 사대부 시조의 변이
1) 김광욱(1580-1656)
2) 이휘일(1619-1672)<전가팔곡> 8수
3) 위백규(1727-1798)<농가구장>
4) 안서우(1664-1735)
5) 신헌조(1752-1809)의<봉래악부>
Ⅳ. 조선시대 시조의 내용
Ⅴ. 조선시대 시조와 사설시조
Ⅵ. 조선시대 시조와 주요 시조작가
참고문헌
본문내용
데 이는 음악의 분류나 그 향유계층 또는 방식으로 볼 때 실상에 부합하지 않는다. 다만 조선 후기로 일컬어지는 18,9세기로 오면서 신분의 이동과 계층의 변화가 심하게 일어났다는 역사적 변화와 마찬가지로 음악문화에도 여러 가지 변화가 오면서 다양한 계층이 시조를 공유하는 변화를 보였음은 사실이다. 시조 작품 가운데 민속악인 잡기류에서 보이는 노랫말들이 나타나는가 하면 판소리의 단가 노랫말이 그대로 시조집에 실리기도 하고 민요에서나 볼 수 있는 노랫말까지 나타나는 것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조선후기 사회에서 나타난 작자층의 변모다.
Ⅱ. 조선시대 시조의 역사
여말선초(여말선초)에 생성된 시조(시절가요 혹은 시절단가)는 창으로도 불리고 창작되어 읽히기도 하는 오랜 역사의 시가 갈래이다. 문학적 접근으로는 크게 평시조와 사설시조로 나뉘는데 평시조의 경우는 양반 사대부 작가를 중심으로 일부 기녀가 소수 참여하였다. 내용은 회고(회고), 충의(충의), 절개(절개), 산수자연(산수자연) 등이 주조를 이루며, 소수의 기녀시조는 신분적 특성상 남녀의 사랑을 자유롭게 읊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형태적으로는 3장(삼장)의 정형시를 유지하였다.
한편 사설시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민족적 국치(국치)를 겪은 17세기 이후(조선조 후기에 해당함) 서서히 싹텄는데, 작가층은 중인 이하 서민층을 중심으로 한 무명씨(무명씨) 작품이 대부분이다. 내용은 생활현실, 남녀의 사랑과 이별 등 당대의 사회상을 담고 있으며, 형태적 특성으로는 3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장(중장)이 자유롭게 길어지고 서사적인 내용을 담는 것처럼 큰 변화를 보여준다.
Ⅲ. 조선시대 시조의 변이
1. 사대부 시조의 재정비
1) 고응척(1531-1605)
<대학곡> 28수에서부터 연시조 지향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권 대학책이 엇디 야 됴 글고
2) 장경세(1547-1615)
<강호연군가>13수를 지난연군가의 선례와는 다르게 애절한 심정으로 탄식의 사설을 장황하게 표현함
3) 이신의(1511-1627)
<사우가> 松, 菊, 梅, 竹을 차례로 읊어 일시적인 시련에 흔들리지 않는 의연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4) 조존성(1533-1627)
<호아곡>4수로 전원생활의 흥취를 그렸다.
5) 박선강(1555-1617)
훈민시조의 전통을 이어 <오륜가> 8수를 지었다. 임란이후, 사대부시조의 다양한 모습이 재현되며 조동일은 사대부시조가 재정비된다고 본다.
2. 사대부 시조의 변이
1) 김광욱(1580-1656)
전원시조인 <율리유곡> 17수 사대부가 전원생활을 하면서 농민의 처지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에서 나오는 작품들.
뒷집의 술 니 거츤 보리 말 못 다
즈는 것 마고 허 쥐비저 괴아내니
여러날 주렷 입이니 나 나 어이리
2) 이휘일(1619-1672)<전가팔곡> 8수
새배빗 나쟈 나셔 白舌이 소다.
일러라 아들아 밧 보러 가쟈스라
밤이 이슬 긔운에 얼마나 기런고 노라
3) 위백규(1727-1798)<농가구장>
은 든 대로 듯고 볏슨 대로 다.
Ⅱ. 조선시대 시조의 역사
여말선초(여말선초)에 생성된 시조(시절가요 혹은 시절단가)는 창으로도 불리고 창작되어 읽히기도 하는 오랜 역사의 시가 갈래이다. 문학적 접근으로는 크게 평시조와 사설시조로 나뉘는데 평시조의 경우는 양반 사대부 작가를 중심으로 일부 기녀가 소수 참여하였다. 내용은 회고(회고), 충의(충의), 절개(절개), 산수자연(산수자연) 등이 주조를 이루며, 소수의 기녀시조는 신분적 특성상 남녀의 사랑을 자유롭게 읊어 주목할 필요가 있다. 형태적으로는 3장(삼장)의 정형시를 유지하였다.
한편 사설시조는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민족적 국치(국치)를 겪은 17세기 이후(조선조 후기에 해당함) 서서히 싹텄는데, 작가층은 중인 이하 서민층을 중심으로 한 무명씨(무명씨) 작품이 대부분이다. 내용은 생활현실, 남녀의 사랑과 이별 등 당대의 사회상을 담고 있으며, 형태적 특성으로는 3장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지만 중장(중장)이 자유롭게 길어지고 서사적인 내용을 담는 것처럼 큰 변화를 보여준다.
Ⅲ. 조선시대 시조의 변이
1. 사대부 시조의 재정비
1) 고응척(1531-1605)
<대학곡> 28수에서부터 연시조 지향하는 움직임이 나타난다.
권 대학책이 엇디 야 됴 글고
2) 장경세(1547-1615)
<강호연군가>13수를 지난연군가의 선례와는 다르게 애절한 심정으로 탄식의 사설을 장황하게 표현함
3) 이신의(1511-1627)
<사우가> 松, 菊, 梅, 竹을 차례로 읊어 일시적인 시련에 흔들리지 않는 의연하는 자세를 보여주었다.
4) 조존성(1533-1627)
<호아곡>4수로 전원생활의 흥취를 그렸다.
5) 박선강(1555-1617)
훈민시조의 전통을 이어 <오륜가> 8수를 지었다. 임란이후, 사대부시조의 다양한 모습이 재현되며 조동일은 사대부시조가 재정비된다고 본다.
2. 사대부 시조의 변이
1) 김광욱(1580-1656)
전원시조인 <율리유곡> 17수 사대부가 전원생활을 하면서 농민의 처지를 이해하고 경험하는 데에서 나오는 작품들.
뒷집의 술 니 거츤 보리 말 못 다
즈는 것 마고 허 쥐비저 괴아내니
여러날 주렷 입이니 나 나 어이리
2) 이휘일(1619-1672)<전가팔곡> 8수
새배빗 나쟈 나셔 白舌이 소다.
일러라 아들아 밧 보러 가쟈스라
밤이 이슬 긔운에 얼마나 기런고 노라
3) 위백규(1727-1798)<농가구장>
은 든 대로 듯고 볏슨 대로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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