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 종식 - 인물을 중심으로 (레이건, 고르바초프, 교황, 부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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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개글

냉전 종식 - 인물을 중심으로 (레이건, 고르바초프, 교황, 부시)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목차

1. 냉전
(1) 냉전의 시작
(2) 냉전의 완화

2. 레이건- 레이건의 정책
(1) 군비경쟁
(2) 경제기술전
(3) 동구의 반체제 운동지원
(4) 소련과의 외교관계

3. 고르바초프
(1) 생애
(2) 페레스트로이카
(3) 노보에 므리쉴레니에

4. 교황
(1) 요한 23세
(2) 요한 바오로 2세

5. 부시
(1) 몰타회담
(2) 몰타회담의 주된 논제

본문내용

방문 14개월 후인 1980년 8월 14일, 폴란드 바웬사 전 대통령과 노동자들이 중심으로 '자유노조'를 설립하고 파업을 선언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소련 체제와 공산주의에 강경하고 단호한 태도를 보이며 이러한 폴란드 자유노조 등 민주화운동 세력을 적극 지원한다.
1983년 두 번째 방문에서 교황은 이들을 격려하고 공산당 서기장과 협상을 벌여 폴란드의 계엄령을 해제한다. 이후 폴란드의 자유화 물결은 연쇄적으로 헝가리의 국경 개방, 동독의 베를린 장벽 붕괴, 불가리아의 독재자 추방, 체코슬로바키아의 공산당과 야당의 연립 정부 수립 등으로 연쇄적으로 이어지게 된다.
- 고르바초프와의 만남 타결
또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행동하는 교황’을 표명하며 냉전 시대의 종식을 앞당긴 세기적 만남을 추진한다. 고르바초프 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을 바티칸으로 초청하여 이루어진 공식 방문이 그것이다. 교황은 20세기 후반 이념 해체의 격동기 속에서 정치적 좌표를 설정해 주며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의 붕괴를 이끌어낸다. 동유럽의 사회주의 체제 붕괴 이후 요한 바오로 2세가 남긴 '사랑 없는 연대는 있을 수 없다'는 발언은 지금까지도 냉전의 종식과 관련하여 자주 회자되며 전해진다. "우리에게는 패배도 승리도, 좌파도 우파도 없습니다. 단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의지하며 허물을 감싸주고 덮어주는 똑같은 인간만이 있을 뿐입니다. 실패를 경험한 이들은 진정한 의미의 회개와 근본적인 변화를 추구해야 합니다. 승리를 획득한 이들은 사랑과 자비의 복음에 따라 참된 평화의 기반을 다질 수 있도록 용서의 덕목을 실천해야 할 것입니다.“
-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평가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한 평가 및 논평을 마지막으로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먼저 ①설문조사; 2005년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지난 25년간 유럽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인물'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였다고 보도했다. 104개 국 3만 명에게 인터넷 설문조사를 한 결과 네티즌들은 교황을 종교가 아닌 정치적 이유로 교황을 1위로 꼽았는데, 이는 지난 25년 사이에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인 공산권의 몰락에 교황이 가장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고 평가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②미국의 유명 칼럼니스트 칼 토머스의 논단; 그는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없었다면 공산주의는 ‘역사의 잿더미’에 묻히지 않았을 수도 있다고 평가하며 냉전 종식에 대한 기여를 높이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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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페이지수6페이지
  • 등록일2015.02.23
  • 저작시기2015.2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957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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