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차
Ⅰ. 들어가며
Ⅱ. 50년대에 나타난 시문학의 형태
1) 문학가 동맹과 문필가 협회의 대립
2) 전장시와 모더니즘시
3) 전통적 서정시와 인식론적 시의 탄생
Ⅲ. 마무리
Ⅱ. 50년대에 나타난 시문학의 형태
1) 문학가 동맹과 문필가 협회의 대립
2) 전장시와 모더니즘시
3) 전통적 서정시와 인식론적 시의 탄생
Ⅲ. 마무리
본문내용
투를 격려하기 위한 작품들, 또는 전쟁 후에 그 상흔으로 아파하는 모습을 그린 작품들이 전후 문학의 주류를 이루었다. 모윤숙의 <국군은 죽어서 말한다>라든지, 유치환의 <보병과 더불어>, 구상의 <적군 묘지 앞에서>등의 작품이 그러한 전장시 계열의 연장선상에 놓인다.
그 후, 5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당 시대의 문명을 비판하는 형태로 30년대의 전통을 새롭게 계승한 50년대 모더니즘이 등장하게 되는데 박인환, 조향, 김경린, 김차영, 김규동 등이 그 운동의 대표주자이다. 전장시들이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한 체험문학이라고 한다면 모더니즘 시들은 전후의 상실감이나 암울함을 감각적이고 인상적인 수법으로 표현한 것에 그 차이를 둔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는 그 내면적 방향에서 보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전장시가 실존의 문제에서 끝났다면 모더니즘시가 조금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려 했던 것이다. 뒤에서 다룰 전통적 서정시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현실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나 이들이 꿈꾸었던 것에 비해 성과는 미약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그들의 감상적이고 일회적인 충격에 그치고 마는 자극적인 단어들의 남발 등이 현실의 총체적인 구조 파악에 실패한 원으로 보인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三十里)면
가로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구상의 <적군 묘지 앞에서>의 전문. ≪초토의 시 8≫,1956]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던 잠시 내가 달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독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의 전문. ≪현대 한국문학전집15≫, 신구문화사, 1967 ]
구상의 시가 전장시로 볼 수 있는데 명확한 시어와 강한 호소력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 의식이 짙게 깔린 계몽적 분위기를 상당부분 자아낸다. 그에 비해 우회적인 느낌을 주는 박인환의 시는 주지적, 상징성, 감각적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허무하고 체념적인 시적 자아에게 당위성을 부여하여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수용의 태도를 보인다. 두 시만 비교해봐도 상당히 다른 형태로 나타나면서도 전쟁이 남기고 간 상실감과 아픔의 표현은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3) 전통적 서정시와 인식론적 시의 탄생
앞에서 다룬 <후반기> 동인을 위시한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에 의해 <청록파>를 중심으로 한 서정시가 비판받았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시인들이 그리고 대다수의 작품들이 견지하고 있었던 것은 전통적이며 서정적인 시들이었다. 서정주나 박재삼 등이 그 대표 인물인데, 이들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시적 사고의 안정을 보여주었다. 물론 50년대와 같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그러한 삶의 자세는 현실도피나 자기위안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때문에 사회참여를 기본으로 하는 다른 계열의 문인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부분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모더니즘 시에서 보이는 감상적인 자의식의 과잉 및 생경한 문명어와 도시어의 절제 없는 사용에 대해 큰 반발을 보였고 토속적인 서정의 세계와 현대적인 세계와의 새로운 결합을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시세계를 펼쳐나갔다.
이에 따라 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모더니즘의 연결선상에 놓되 정태적 서정시를 배제한 새로운 시가 모색되었는데 바로 김춘수, 신동집, 김종삼 등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김춘수는 사물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언어의 인식론적인 위상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두고 창작 활동을 해 나갔다. 그의 작품세계는 한국 현대 시사에 시의 형이상학적 지평을 열어 놓았다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고 보겠다. 마찬가지로 신동집이나 김종삼 등도 시적 대상과 언어 및 인식의 상호 관련에 대해 비록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나마 그것들을 꽤 깊이 있게 탐구하는 성실성을 보여준다.
「붉은 바위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
젊은 여인네한테 건네인 수작이다.
「붉은 바위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햇빛이 포근한 날 - 그러니까 봄날,
진달래꽃 고운 낭떠러지 아래서
그의 암소를 데리고 서 있던 머리 흰
그 후, 50년대 중반을 넘기면서 당 시대의 문명을 비판하는 형태로 30년대의 전통을 새롭게 계승한 50년대 모더니즘이 등장하게 되는데 박인환, 조향, 김경린, 김차영, 김규동 등이 그 운동의 대표주자이다. 전장시들이 리얼리티를 바탕으로 한 체험문학이라고 한다면 모더니즘 시들은 전후의 상실감이나 암울함을 감각적이고 인상적인 수법으로 표현한 것에 그 차이를 둔다. 하지만 시대의 아픔을 담고 있는 그 내면적 방향에서 보면 같은 곳을 바라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전장시가 실존의 문제에서 끝났다면 모더니즘시가 조금 더 발전된 모습으로 나아가려 했던 것이다. 뒤에서 다룰 전통적 서정시를 강하게 비판한 것도 현실참여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이라고 이해하면 되겠다. 그러나 이들이 꿈꾸었던 것에 비해 성과는 미약했다. 그것은 현실에 대한 그들의 감상적이고 일회적인 충격에 그치고 마는 자극적인 단어들의 남발 등이 현실의 총체적인 구조 파악에 실패한 원으로 보인다.
오호, 여기 줄지어 누워 있는 넋들은
눈도 감지 못하였겠구나.
어제까지 너희의 목숨을 겨눠
방아쇠를 당기던 우리의 그 손으로
썩어 문드러진 살덩이와 뼈를 추려
그래도 양지바른 두메를 골라
고이 파묻어 떼마저 입혔거니,
죽음은 이렇듯 미움보다도, 사랑보다도
더 너그러운 것이로다.
이 곳서 나와 너희의 넋들이
돌아가야 할 고향 땅은 삼십 리(三十里)면
가로막히고,
무주 공산(無主空山)의 적막만이
천만 근 나의 가슴을 억누르는데,
살아서는 너희가 나와
미움으로 맺혔건만,
이제는 오히려 너희의
풀지 못한 원한이
나의 바램 속에 깃들여 있도다.
손에 닿을 듯한 봄 하늘에
구름은 무심히도
북(北)으로 흘러가고,
어디서 울려오는 포성(砲聲) 몇 발,
나는 그만 이 은원(恩怨)의 무덤 앞에
목놓아 버린다.
[구상의 <적군 묘지 앞에서>의 전문. ≪초토의 시 8≫,1956]
한 잔의 술을 마시고
우리는 버지니아 울프의 생애와
목마를 타고 떠난 숙녀의 옷자락을 이야기한다.
목마는 주인을 버리고 거저 방울 소리만 울리며
가을 속으로 떠났다 술병에서 별이 떨어진다.
상심한 별은 내 가슴에 가볍게 부서진다.
그러던 잠시 내가 달던 소녀는
정원의 초목 옆에서 자라고
문학이 죽고 인생이 죽고
사랑의 진리마저 애증의 그림자를 버릴 때
목마를 탄 사랑의 사람은 보이지 않는다.
세월은 가고 오는 것
한때는 고독을 피하여 시들어가고
이제 우리는 작별하여야 한다.
술병이 바람에 쓰러지는 소리를 들으며
늙은 여류작가의 눈을 바라다보아야 한다.
......등대 ......
불이 보이지 않아도
그저 간직한 페시미즘의 미래를 위하여
우리는 처량한 목마 소리를 기억하여야 한다.
모든 것이 떠나든 죽든
그저 가슴에 남은 희미한 의식을 붙잡고
우리는 버어지니아 울프의 서러운 이야기를 들어야 한다.
두 개의 바위틈을 지나 청춘을 찾은 뱀과 같이
눈을 뜨고 한 잔의 술을 마셔야 한다.
인생은 외롭지도 않고
그저 잡지의 표지처럼 통속 하거늘
한탄할 그 무엇이 무서워서 우리는 떠나는 것일까.
목마는 하늘에 있고
방울 소리는 귓전에 철렁거리는데
가을 바람 소리는
내 쓰러진 술병 속에서 목메어 우는데.
[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의 전문. ≪현대 한국문학전집15≫, 신구문화사, 1967 ]
구상의 시가 전장시로 볼 수 있는데 명확한 시어와 강한 호소력으로 쓰여져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 민족주의를 바탕으로 한 현실 의식이 짙게 깔린 계몽적 분위기를 상당부분 자아낸다. 그에 비해 우회적인 느낌을 주는 박인환의 시는 주지적, 상징성, 감각적 분위기가 주를 이루고 있다. 허무하고 체념적인 시적 자아에게 당위성을 부여하여 절망적인 현실에 대한 수용의 태도를 보인다. 두 시만 비교해봐도 상당히 다른 형태로 나타나면서도 전쟁이 남기고 간 상실감과 아픔의 표현은 하나의 연장선상에 있음을 알 수 있다.
3) 전통적 서정시와 인식론적 시의 탄생
앞에서 다룬 <후반기> 동인을 위시한 모더니즘 계열의 시인들에 의해 <청록파>를 중심으로 한 서정시가 비판받았다고 하더라도 대다수의 시인들이 그리고 대다수의 작품들이 견지하고 있었던 것은 전통적이며 서정적인 시들이었다. 서정주나 박재삼 등이 그 대표 인물인데, 이들은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시적 사고의 안정을 보여주었다. 물론 50년대와 같이 격동의 시대를 살아온 한국인들에게 그러한 삶의 자세는 현실도피나 자기위안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때문에 사회참여를 기본으로 하는 다른 계열의 문인들에게 비판을 받았던 부분도 자연스런 현상이다. 그러나 이들 역시 모더니즘 시에서 보이는 감상적인 자의식의 과잉 및 생경한 문명어와 도시어의 절제 없는 사용에 대해 큰 반발을 보였고 토속적인 서정의 세계와 현대적인 세계와의 새로운 결합을 위해 그들 나름대로의 시세계를 펼쳐나갔다.
이에 따라 50년대 후반에 들어서며 모더니즘의 연결선상에 놓되 정태적 서정시를 배제한 새로운 시가 모색되었는데 바로 김춘수, 신동집, 김종삼 등의 작품이 바로 그것이다. 특히 김춘수는 사물의 의미를 궁극적으로 규정하는 언어의 인식론적인 위상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두고 창작 활동을 해 나갔다. 그의 작품세계는 한국 현대 시사에 시의 형이상학적 지평을 열어 놓았다는 데서 그 의미가 크다고 보겠다. 마찬가지로 신동집이나 김종삼 등도 시적 대상과 언어 및 인식의 상호 관련에 대해 비록 관념적이고 추상적이나마 그것들을 꽤 깊이 있게 탐구하는 성실성을 보여준다.
「붉은 바위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이것은 어떤 신라의 늙은이가
젊은 여인네한테 건네인 수작이다.
「붉은 바위ㅅ가에
잡은 손의 암소 놓고,
나ㄹ 아니 부끄리시면
꽃을 꺾어 드리리다」
햇빛이 포근한 날 - 그러니까 봄날,
진달래꽃 고운 낭떠러지 아래서
그의 암소를 데리고 서 있던 머리 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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