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대학교]제주해녀와 에코페미니즘
닫기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12
  • 13
  • 14
  • 15
  • 16
  • 17
  • 18
  • 19
  • 20
  • 21
  • 22
  • 23
  • 24
  • 25
  • 26
  • 27
  • 28
  • 29
  • 30
  • 31
  • 32
  • 33
  • 34
  • 35
  • 36
  • 37
  • 38
  • 39
  • 40
  • 41
  • 42
  • 43
  • 44
  • 45
  • 46
  • 47
  • 48
  • 49
  • 50
  • 51
  • 52
  • 53
  • 54
  • 55
  • 56
  • 57
  • 58
  • 59
  • 60
  • 61
  • 62
  • 63
  • 64
  • 65
  • 66
  • 67
  • 68
  • 69
  • 70
  • 71
해당 자료는 10페이지 까지만 미리보기를 제공합니다.
10페이지 이후부터 다운로드 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소개글

[제주대학교]제주해녀와 에코페미니즘에 대한 보고서 자료입니다.

본문내용

나잠기술을 습득하기 위해서는 다음과 같은 과정을 필요로 한다.
여자아이가 7~8세가 되면 선창 안이나 썰물 때의 바닷가에서 어머니의 흉내를 내며 헤엄치는 연습을 시작한다. 어머니는 이것을 직접 지도하지 않고 아이들끼리만 헤엄치는 것이다. 이와 같이 해서 10세가 되면 어머니로부터 태왁을 얻는다. 이번엔 이것을 부낭으로 해서 약같 깊은 바다로 헤엄쳐 나가 잠수연습을 하지만 아직 어획물은 잡지 않는다.
14세가 되면 비로소 안경, 호미, 빗창 등을 어머니로부터 받아 어획물 잡기에 나선다. 이 때에 잠녀라고 하는 명칭을 받는다. 16세가 되면 잠녀조합의 회원이 되고 겨우 한 사람 몫의 일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해서 잠녀생활은 50세까지 계속 할 수 있다. 그 사이 가장 왕성해지는 시기는 16세에서부터 35~36세까지일 것이다.
따가운 남녘 햇볕을 쪼이면서 해녀생활을 보내는 그녀들의 체격은 당당한 것인데, 피부는 적동색 그리고 머리도 적갈색으로 변한다. 해녀가 많은 지방의 아이들은 집에서 따로 강요하지 않아도 또 양친이 없어도 보고 들으면서 훌륭한 잠녀로 되어가는 것이다.
- 이즈미 세이이치, 홍성목 역, 제주시 : 우당도서관, 1999, 182 쪽
해녀로 정식입문 했다는 것을 이즈미는 해녀가 되고자 하는 사람이 물질도구를 가지고 해산물을 채취하는 것이라고 설명한 대 비에, 한림화는 해녀들만의 전용공간인 불턱의 한 자리를 차지하는 것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즈미 : 해산물의 채취라는 행위를 강조
vs
한림화 : 해녀사회의 구성원이 되는 방식을 강조
02. 해녀 인구의 변화
1) 제주해녀의 감소
. 연도별 제주해녀의 수는 다음 표와 같다
(강의)
제주해녀의 수가 가방 많아TEjs 65년도에는 21%인 23000여명의 해녀가 있었다. 계속 해녀의 수는 감소하여 65년에서 00년까지 35년사이에 약 1/4로 감소하였다 .
65년부터 75년까지 10년동안 약 1/3으로 감소, 가장 급격하게 감소하였다.
산업화진행되면서, 상급학교에 진학하거나, 육지로 나가 공장에서 일하기 때문이다 .
한반도 = 육지, 육지부로 나감 (제주섬을 떠남)
섬에 남더라도 물질은 하지 않는다.
여성인력이 점점 관광산업부분으로 흡수되기 시작하였다 .
애기잠수의 이야기는 어느새 전설이 되어버렸다.
제주 해녀 집단의 노령화 현상
하지만, 어업종사자중 해녀가 차지하는 비율은 여전히 높다.
01년도는 다시 해녀의 비중은 81%까지 올라간다.
도내의 대부분의 어업활동이 해녀의 물질작업이다.
2) 제주해녀의 노령화
(강의)
70년대 가장 물질을 많이 한 연령층 : 30~ 49세의 연령층 (물질기량은 원숙기에 접어듬)
이 연령층은 10년후까지도 활발하게 활동,
하지만 90년대부턴 50세 이상의 연령층이 많아짐 .
00년도에 3명의 30세 미만의 해녀 .
해녀는 55살까지 물질을 함 - 60년대의 이야기
해녀는 50살까지 물질을 함 - 30년대 해녀들에 대한 이야기 (일본인 이즈미)
젊은 해녀들이 없어서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 기간이 늘어남 .
03. 해녀의 생애사에 나타난 해녀되기
1) 안도인 (1926년생)
제주도 무형문화제 제1호인 해녀노래의 보유자였던 안도인은 1926년 북제주군 구좌읍 행원리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생애사는 그녀가 2004년 6월에 타계하기 전에 민속학자 좌혜경이 수집한 것이다. 안도인의 생애사를 통해 일제시대에 일본어로 출가(테카사키)라고 보통 부르는 <바깥물질>을 다니면서 물질을 시작한 과정을 살펴보자
바깥물질 - 섬 바깥으로 나가서 하는 물질, 그 곳이 한반도를 가리키는 <육지>인 경우 <육지물질>이라고도 부름.
물질수련기
- 안도인의 부모는 행원리의 다른 집들처럼 어업에 종사했다. 아버지는 배의 선주로 해녀들을 모아 육지로 바깥물질을 인솔하였고, 어머니는 해녀였다. 안도인이 네 살때인 1929년에 어머니는 도인을 버리고 개가했다. 그 후 아버지는 옆 마을인 한동리 출신 해녀와 재혼을 하였다.
1941년 도인이 열여섯 살이 되자, 할머니가 무슨 뜻에서인지 아주 작은 테왁(그 부럭을 이용하여 해녀들이 그 위에 가슴을 얹고 헤엄칠 때 쓰는 것, 현재에는 테왁을 스티로폼으로 만들지만, 당시에는 박으로 만들었음)과 망사리(해녀들이 잡은 해산물을 넣는 그물주머니로 테왁 밑에 메어 남, 지금은 망사리를 나일론 끈으로 만들지만, 당시에는 억새가 완전히 피기 전의 것을 가지고 꼬아서 만들었음)를 만들어 주었다. “도인아, 볼락통에 가서 숨비고 물에 드는 연습을 해봐라, 물 속에 드렁가서 돌도 끄집어내어 보고, 듬북도 끌고 나오고 하면서...” <볼락통>이라는 말은 볼락이라는 토종 고기가 잘 잡히는 바다를 일컫는다.
안도인은 친구들과 매일 물에 드는 것과 물 속에서 오래 숨쉬기를 연습했다. 열여섯 살이 면 두 발(발은 두 팔을 좌우로 폈을 때 오른손 끝에서 왼손 끝가지의 길이, 약 5자 , 5척 (150 cm정도)에 해당함) 정도의 바닷물 깊이에 가서 해산물을 제법 채취해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안도인이 열일곱 살 때, 울산에서 <육지물질>을 하고 있던 새어머니에게서 동생이 생겼다. 아버지는 도인을 아기업게로 대려갔다. 그러나 도인은 아버지를 졸라 울산에서 물질을 하기 시작하였다. 열여덟살이 된 다음해부터 남의 배를 타고 친구들과 함께 육지로 바깥물질을 다녔다.
물질 성숙기
- 1944년 열아홉 살이 되자, 안도인은 어느 지역, 어느 장소에 가더라도 물질에는 자신이 생겼다. afn속으로 두 발 정도 들어가서 하던 물질이 세발, 네발까지 들어가서 해산물을 캘 수 있는 기량이 생겼다.
그 해 바깥물질을 갔다가 팔월 추석쯤에 집으로 돌아오자, 아버지가 결혼을 하라고 종용했다. 동갑내기인 같은 동네 남자와 그 해 음력 12월에 결혼을 하였다. 안도인은 봄이 되면 바깥물질을 하러 육지로 가고, 남편은 일본과 부산을 오고 가는 무역선을 탔다.
2) 김순자(1965년생)
충남 서산에서 1남 4녀중 셋째 딸로 태어난 김순자(가명임)는 그녀가 일곱 살 때, 서산으로 <바깥물질>을 나왔던 제주해녀(양어머니의 동생)을 따라 남제주군 성산읍 온평리에 와서 자식이 없던 양어머니와 살게 되었다.
그녀의 생애사를 토
  • 가격6,000
  • 페이지수71페이지
  • 등록일2011.07.12
  • 저작시기2011.1
  • 파일형식한글(hwp)
  • 자료번호#689523
본 자료는 최근 2주간 다운받은 회원이 없습니다.
다운로드 장바구니